‘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저술한 투키디데스 (Thucydides, BC 465년경 ~ BC 400년경)
투키디데스 (고그: Θουκυδίδης, 영: Thucydides, BC 465년경 ~ BC 400년경)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역사가이며, 기원전 5세기경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기원전 411년까지 싸운 전쟁을 기록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저술하였다. ‘역사는 영원히 되풀이된다.’는 말을 남겼다.
아테네 명문출신이며,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에 자신도 장군으로 선발되어 트라케에 파견되었으나 사명을 완수하지 못한 죄로 추방되었다가, 전쟁이 끝나고 아테네로 돌아왔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나면서 전쟁의 중대성을 예견하고 자료를 수집했던 그로서는 불행했던 추방도 적의 자료를 수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이렇듯 직접 체험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주제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저술하였다. 그는 자신의 저작 서문에서 밝혔듯이, 신의 개입을 인정하지 않고 인과 관계에 따라 분석하고 엄격한 기준으로 사료를 수집하여 과학적 역사관의 창시자로 인정받는다. 또 투키디데스는 정의보다는 패권에 기반하여 국가간의 관계를 보는 정치적 현실주의 학파의 시조로 여겨지기도 한다.

– 투키디데스 (Thucydides)
.출생: BC 465년경, Alimos, Greece
.사망: BC 400년경, Athens, Greece
.자녀: Timotheos
.직업: 역사가 (Historian), 장군 (general)
.주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
○ 생애
투키디데스의 생애에 관하여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그의 저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간혹 언급된 개인적인 기록이 거의 전부이다. 투키디데스는 그리스의 북부 지방 트라케 출신인 올로로스의 아들로서 기원전 465년을 전후로 하여 아테네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20대 중반에 페리클레스 정책에 동조하여 기원전 425년 또는 기원전 424년 군사 지휘관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기원전 422년에 그가 지휘하는 아테네군이 암피폴리스 전투에서 패배하여, 투키디데스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모국에서 추방되었다. 이후 그의 생애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다만 이 시기에 그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집필한 것으로 여겨진다.
○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대하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그: Ιστορία του Πελοποννησιακού Πολέμου, 영: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는 8권으로 된 투키디데스의 역사서이다.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그리스를 양분하여 서로 싸운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기술한 이 역사서는 기원전 411년까지의 사건만을 기록한 채 미완성 작품으로 전해진다. 문체는 이 책의 약 4분의 1을 점하고 있는 연설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조법과 같은 당시의 수사학영향을 받으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창출해 내고 있다. 하나하나의 문장은 사상이 지나치게 응집되어 추상적 문구의 지나친 사용과 함께 때때로 난해한 흠이 있으나 사색의 발자취가 그대로 문장에 남아 있다는 점에 투키디데스 문체의 독특한 매력을 찾아 볼 수 있다.
– 내용

아테네의 융성과 쇠퇴, 펠로폰네소스 전쟁 (기원전 431년 – 기원전 404년)의 경과를 기록한 이 책은 전 8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루케리노스의 ‘투키디데스 전’에 의하면 13권으로 나눈 사람도 있지만, 8권 .분류도 많이 보인다). 또한 이 제목은 후세에 붙여진 것이며, ‘역사’,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라고도 불린다. 이 책은 객관적이고, 실증적인 서술로 알려져 있으며, 이야기 서술인 헤로도토스의 ‘역사’ (히스토리아)와 대비되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의 곳곳에 나타나는 정치인과 장군들의 연설도 큰 특징 중 하나이다.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그리스 세계를 뒤흔들 대전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하고, 그 기록을 남겨서 후세의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이 기록 (그러므로 전사로 불리는)을 교훈으로 잘 살릴 수 있도록 집필했다고 서문에서 말하고 있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사’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전체 역사를 설명하는 것이었지만, 기원전 411년의 기록을 습득하다가 갑자기 중단되어 미완성이 되었다. 또한 집필 연대에 대해 단번에 쓴 글과 조금씩 쓰면서 모은 글이 같이 있으며, 투키디데스는 기원전 395년에 죽었기 때문에 중단된 부분을 직접 연결하는 글은 현재의 연구에서는 다뤄지지 않았다.
집필 작업은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에 인계되어 기원전 411년 이후의 역사는 ‘헬레니카’ (고그: Ἑλληνικά , Hellenica)에 정리한 것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기술은 완결되었다.
– 구성
1권 :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배경 기원전 432년까지
2권 : 기원전 431년부터 기원전 429년까지
3권 : 기원전 428년부터 기원전 425년까지
4권 : 기원전 425년부터 기원전 423년까지
5권 : 기원전 422년부터 기원전 416년까지
6권 : 기원전 416년부터 기원전 414년까지
7권 : 기원전 414년부터 기원전 413년까지
8권 : 기원전 413년부터 기원전 411년까지
○ 업적

널리 알려진 업적은 신화 (또는 설화)와 역사의 분리이다. 투키디데스 이전까지 역사는 신화와 딱딱 분리되지 않았다. 호메로스의 오딧세이아나 일리아스에서 인간들은 신의 의지나 신탁에 따라 움직인다. 따라서 전쟁은 모두 신들의 게임이었고 역사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헤로도토스조차 ‘역사’에서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 세계가 이길 수 있었던 이유는 신의 섭리라고 서술했다. 실제로 당시 그리스인들은 트로이 전쟁이 신의 전쟁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투키디데스는 소피스트의 회의주의와 히포크라테스의 과학 정신의 영향을 받은 세대였고 이를 역사학에 적용했다. 전설이나 신화처럼 확신할 수 없는 요소는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적으려고 애쓴 것이다. 이를테면 이전의 그리스인들은 트로이 전쟁에서 테베가 오래 버틸 수 있었던 이유를 테베인의 용맹에서 찾았다. 반면 투키디데스는 이를 당시 헬라스의 경제 발전 상황과 연관지었다. 당시 헬라스는 경제적인 수준이 낮아 가난했고 자연히 트로이 원정군의 장비나 보급 수준도 엉망이었다. 그렇기에 테베는 손쉽게 공격을 버틸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에 대한 분석과 함께 ‘개인’을 강조하였다. 역사는 개인, 특히 정치 지도자들의 판단에 따라 방향이 바뀐다. 지도자의 한 수 (一手)는 폴리스의 시민에게 평화를 줄 수도, 타국의 노예로 만들 수도 있다. 역사 속에서 현명한 지도자는 여럿이었지만 투키디데스의 기준에서 가장 현명했던 지도자는 페리클레스였다. 그에 따르면 페리클레스는 정치적인 재능이 뛰어나고 전쟁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는 힘을 가진 인물이었으며, 아테네의 몰락은 페리클레스만큼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는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역사는 신에 대한 찬양이나 강연이 아닌 현재와 미래 세대를 위한 도움이라고 생각하였다. 역사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고 그 패턴은 비슷한 상황이 되면 끊임없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는 최초로 역사학자의 사명과 역사학의 목적을 제시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저술이 후대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 썼던 것이다), 그로 인해 그는 신화가 아닌 사회, 정치, 경제에 중점을 두어 세상을 분석했고 이를 토대로 전쟁사를 적었다. 이는 훗날 ‘실증주의 역사관’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국제 정치학 이론 중 ‘현실주의’의 시초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폴리스들이 서로 전쟁을 벌였던 원인을 공포와 명예 (위신), 이익에서 찾았고 (아테네와 멜로스의 대화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 설명은 현대의 국제 사회에도 유효한 이론이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국제 분쟁을 이해하기 위한 고전으로 보고 연구하기 시작한다. 이 책이 가장 빛을 발한 시기는 역시 냉전 시대일 것이다. 헬라스 세계를 양분했던 기존 강대국 스파르타와 떠오르는 별인 아테네의 관계는 20세기 세계를 양분해 충돌 직전까지 갔던 미국과 소련을 떠오르게 한다. 다른 국가들은 미국과 소련을 골라 동맹에 들어갔고, 중립국을 외치던 약소국은 비참한 운명을 맞았다. 이는 놀라우리만큼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와 비슷하다. 아시아를 양분하려는 신흥 강국 중국과 기존 패권을 지키려는 미국을 보고 있자면 두 강대국의 이해 관계가 경합하는 한반도에게도 결코 남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역사의 패턴은 반복되고, 따라서 역사를 통해 현재의 문제 해결을 위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투키디데스의 혜안이 맞았던 것이다.
역사에 대한 사실적인 판단과는 별개로 인용된 연설들의 수사학적 퀄리티가 유명한 책이다. 다만 원문 그대로 인용된 것은 아니며 대부분 투키디데스의 재구성이 들어갔다.
“각각의 인물이 전쟁 직전이나 전쟁 중에 발언한 연설에 관해 말하자면, 직접 들었든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든 나로서는 정확히 기억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실제 발언의 전체적인 의미를 되도록 훼손하지 않으면서 연설자로 하여금 그때그때 상황이 요구했음직한 발언을 하게 했다.” _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1권 22장 1
○ 명언 (천병희 번역 ‘펠레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발췌)
인간관계에서 정의란 힘이 대등할 때나 통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관철하고 약자는 순응해야 한다는 것쯤은 여러분도 우리 못지않게 아실 텐데요.(5권 89) [Right, as the world goes, is only in question between equals in power, while the strong do what they can and the weak suffer what they must.]
번영을 누리는 평화 시에는 도시든 개인이든 원치 않는 어려움을 당하도록 강요받는 일이 없으므로 더욱 높은 도덕적 수준을 유지한다. 그러나 일상이 충족될 수 없는 전쟁은 난폭한 교사이며, 사람의 마음을 그들이 처한 환경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뜨린다.(3권 82)
소수자가 아니라 다수자의 이익을 위해 통치되기에 우리 정체를 민주정치라 부릅니다. 시민들 사이의 사적인 분쟁을 해결할 때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합니다. 그러나 주요 공직 취임에는 개인의 탁월성이 우선시되며, 추첨이 아니라 개인적인 능력이 중요합니다. 마찬가지로 누가 가난이라는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도시를 위해 좋은 일을 할 능력이 있다면 가난 때문에 공직에서 배제되는 일도 없습니다.(2권 37, 페리클레스의 추도사 中)
○ 부록 – 투키디데스의 함정 (Thucydides Trap)
투키디데스의 함정 (Thucydides Trap)은 신흥 강국이 부상하면 기존의 강대국이 이를 견제하는 과정에서 전쟁이 발생한다는 뜻이다. 이 용어는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저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주장된 것으로, 투키디데스는 기존 맹주 스파르타가 신흥 강국 아테네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게 되고 이에 두 국가는 지중해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오늘날 ‘투키디데스의 함정’은 신흥 무역 강국이 기존 구도를 흔들면 기존의 무역 강국과 신흥 무역 강국 간에 무력 충돌이 발생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