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무 목사의 주일묵상

새해를 여는 믿음
새해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다가온다. 닫힌 한 해의 문을 등지고, 아직 아무 발자국도 찍히지 않은 시간 앞에 선다. 사람들은 새 달력을 걸고, 새 다짐을 적고, 새출발이라는 말을 쉽게 꺼낸다. 그러나 성도에게 새해는 단순한 날짜의 갱신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다시 서는 자리, 믿음의 방향을 다시 점검하는 영적 문턱이다.
성경은 시간에 대해 철저하다.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야고보서 4:14). 인간이 붙들고 있는 새해의 기대와 계획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단호하게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새해를 맞이한다. 이유는 분명하다. 시간은 인간의 소유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맡기시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성도란 누구인가. 교회에 다니는 사람일까, 성경을 읽는 사람일까. 성경은 성도를 이렇게 부른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베드로전서 2:9). 성도는 선택받은 신분이기 이전에, 보냄 받은 존재다. 새해를 연다는 것은, 이 부르심을 다시 자각하는 일이다.
우리는 해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많은 계획을 세운다. 건강, 관계, 경제, 성공. 그러나 성도에게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나는 올해 무엇을 더 이루려 하는가가 아니라, 나는 올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시편 기자는 고백한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시편 25:4). 새해의 기도는 목표 설정이 아니라, 길을 묻는 기도여야 한다.
새해를 여는 성도는 시간을 소유하려 들지 않는다. 대신 시간을 맡기신 분을 신뢰한다. 그래서 성도의 새해는 조급하지 않다. 세상은 더 빨리, 더 많이, 더 높이 오르라고 재촉하지만, 성도는 멈추어 묻는다. 이 길이 주의 길인가, 이 선택이 하늘을 향하는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로마서 12:2). 새해는 달력만 바꾸는 게 아니라, 마음이 새로워질 때 비로소 열린다.
또한 새해를 여는 성도는 과거에 함부로 사로잡히지 않는다. 실패와 후회, 상처까지도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 바울은 말한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빌립보서 3:13). 이것은 기억상실이 아니라, 과거에 매이지 않는 자유다. 새해는 과거를 부정하는 시간이 아니라, 과거를 구속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시간이다.
오늘 우리의 사회는 불확실성 속에 있다. 경제도, 정치도, 인간관계도 쉽게 흔들린다. 이런 시대일수록 성도의 존재 방식은 더욱 분명해야 한다. 새해를 여는 성도는 소란의 한복판에서 방향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희망을 말하되 가볍지 않고, 절망을 보되 무너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브리서 13:8). 변하는 시간 속에서 변하지 않는 분을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새해의 첫 문턱에서 성도는 거창한 선언보다 조용한 결단을 해야 한다. 오늘 하루를 성실히 살겠다는 결단, 주어진 자리에서 사랑하겠다는 결단, 말씀 앞에 정직하겠다는 결단. 그렇게 하루가 쌓여 한 해가 되고, 한 해가 모여 신앙의 생애를 이룬다.
새해를 연다는 것은 미래를 장악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일이다. 성도는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새해를 맞이하면서 해야 할 일을 그리고 가야 할 길을 찾는다.

한상무 목사
시드니생명나눔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