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바르샤바 1944 (Warsaw 44, Miasto 44)
감독) 얀 코마사 / 주연) 요제프 파블로브스키, 조피아 비흘라치 / 2014년
《바르샤바 1944》는 폴란드에서 제작된 얀 코마사 감독의 2014년 드라마, 전쟁 영화이다.
소피아 비츨라츠 등이 주연으로 출연하였다.
1944년 여름, 독일 나치 치하의 폴란드 바르샤바. 어머니와 남동생과 살고 있는 스테판 (요제프 파블로프스키)은 나치의 모욕을 견디며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위험한 일에 나서지 말라는 어머니의 만류에 갈등하다 결국 바르샤바 봉기 작전에 자원한 스테판.
정예군인이 아닌 이들은 훈련을 통해 나치에 반격할 진영을 꾸려나간다.
스테판은 알라 (소피아 비츨라츠)와 사랑에 빠지고, 청춘 남녀들은 낭만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유를 갈망하며 들뜬다.
하지만 8월1일 폴란드 저항군의 반격이 시작되자 나치는 무자비하게 저항군을 진압하고, 스테판을 비롯한 폴란드 젊은이들은 처참한 실제 전시 상황 속으로 내몰린다.
1944년 일어난 바르샤바 봉기를 소재로 한 전쟁영화다.
정식 훈련을 받지 않은 젊은 남녀로 구성된 저항군들은 자유로운 복장으로 자유를 부르짖지만 실제 상황에 맞닥뜨리자 덧없는 꽃처럼 지고 만다.
작품의 낭만적인 톤 앤드 매너와 몽환적인 무드, 로맨티시즘은 전쟁의 비극성을 외려 낯설고 이질적인 것으로 부각시킨다.
폭탄이 터지고 총이 연사되는 와중에도 감독은 감상적인 음악을 배경으로, 슬로모션으로 총탄을 피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연출한다.
메인 서사가 부실하고 삼각 멜로 라인이나 몽환적 연출이 다소 과도해, 전쟁 자체를 하나의 미적인 스타일로 해석한 것에 그치는 것처럼 보이는 아쉬움도 있다.
그러나 실화가 가진 힘과 더불어 피와 흙을 묻히고 혼란에 빠진 눈빛으로 서로를 응시하는 배우들의 연기는 인상적이다.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플래시 포워드 부문 초청작이다.
○ 제작 및 출연
– 제작진
감독: 얀 코마사 Jan Komasa
기획: 카타지나 푸카즈 체불라 Katarzyna Fukacz-Cebula, 마시에이 스테른 스테르진스키 Maciej Stern Sterzynski, 미케 스테른 스테르진스키 Mike Stern Sterzynski, 킵 트리블 Kipp Tribble, 데릭 윈고 Derik Wingo
각본: 얀 코마사 Jan Komasa
촬영: 마리안 프로콥 Marian Prokop
음악: 안토니 라자르키에비츠 Antoni Lazarkiewicz
편집: 미할 차르네키 Michal Czarnecki
출연: 소피아 비츨라츠, 안나 프루흐니악, 요제프 파블로프스키
국가: 폴란드
배급사: ㈜루믹스미디어
수입사: ㈜루믹스미디어
– 출연진
요제프 파블로브스키 Jozef Pawlowski – 스테판 역
조피아 비흘라치 Zofia Wichlacz – 비에드론카 역
안나 프루흐니악 Anna Prochniak – 카마 역
토마시 슈츠하르트 Tomasz Schuchardt – 코브라 역
안토니 크롤리코브스키 Antoni Krolikowski – 베스카 역
카롤리나 스타니에츠 Karolina Staniec – 베아타 역
필리프 구를라치 Filip Gurlacz – 로갈 역
마우리치 포피엘 Maurycy Popiel – 고랄 역
막스 리멜트 Max Riemelt – 요한 크라우스 역
모니카 크비아트코브스카 Monika Kwiatkowska – 엄마 역
– 수상
2014년 폴란드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소피아 비츨라츠)
○ 내용
1944년 여름 독일 나치 치하의 폴란드 바르샤바.
공장에서 일하며 어머니와 어린 남동생을 부양하는 스테판 (요제프 파블로프스키)은 나치로부터 매일 모욕을 당한다.
이에 반나치 저항군에 가담하고 싶지만 위험한 일에 연류되지 말라는 어머니의 부탁으로 갈등하다 결국 친구들과 함께 비밀스러운 봉기 작전에 돌입하고 그 곳에서 알라 (소피아 비츨라츠)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1944년 8월 1일, 폴란드 저항군의 반격이 시작되자 스테판은 어머니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친구들과 전투에 가담한다.
나치군들이 자신의 집 주변을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집으로 향한 스테판은 독일군에 의해 어머니와 어린 남동생이 무자비하게 사살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
1944년 여름, 나치 치하의 바르샤바. 스테판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초콜릿 공장을 다니면서 어머니와 남동생을 부양한다.
그러나 나치로부터 일상적 수모를 겪으면서 점차 반나치 저항군에 합류하고픈 충동을 느끼게 되고, 군사 행위에 가담하지 않기로 한 어머니와의 약속 때문에 갈등한다.
결국 친구들과 함께 비밀스러운 봉기 작전에 돌입하고, 그곳에서 한 소녀와 사랑에 빠진다.
이 영화는 1944년 8월 1일 나치 지배하의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일어난 실제 봉기를 소재로 한다.
폴란드인들에게는 수도가 쑥대밭이 되어버린 참혹한 기억으로 새겨진 사건이다.
20대 남녀들이 등장하는 청춘 스토리이자 러브 스토리이기도 한 이 영화에서 전반 30분을 가득 채우는 인물들의 희망과 열정은 이어지는 중후반부의 참혹함과 극단적으로 대비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도 찬란하게 꽃피는 사랑은 젊기에 가능한 것일까?
사랑에 대한 신념이 빛나는 작품으로, 영화 전체를 감싸고 흐르는 서정적인 선율이 포화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멋진 연출이 돋보인다. (이수원_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 영화 이모저모
Miasto 44. 2014년에 개봉한 폴란드 전쟁영화. 바르샤바 봉기를 다룬다. 감독은 얀 코마사. 주연은 요제프 파블로프스키와 소피아 비츨라츠가 맡았다.
2014년이란 개봉년도에서 볼 수 있듯이 바르샤바 봉기 70주년 기념 영화로 나왔다. 원제는 바르샤바가 아니라 Miasto인데 이는 폴란드어로 도시를 뜻한다.
처음 프로젝트가 구상된 지 10년이 지나서야 영화로 완성되었다. 실제 촬영기간은 2년 정도이다.
하국내에는 2014년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었다.
당시 투입됐던 다양한 병기들이 실물 혹은 레플리카로 등장한다는 점이나 당시의 참혹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표현한 점 등은 높게 쳐줄만하다.
영화 중반부에 탱크를 노획했고 전투도 성공적으로 승리해서 축하를 하고, 사람들은 환호한다. 하지만 그 탱크는 궤도달린 공병용 폭약 운반차였고 운전자가 잘못 만졌는지 폭발하게 된다.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고, 하늘에서 피와 사람들이었던 조각이 우수수 떨어진다. 충격적인 장면이다.
또한 등장하는 무장친위대 사단과 봉기군의 복장고증 역시 상당히 철저한편. 봉기 진압에 투입된 오스카 디를레방어 사단 병사들이 쓰던 스나이퍼 마스크등과 같이 비교적 마이너한 물건도 대부분 실물로 등장한다.
제2차세계대전중 폴란드의 바르샤바 봉기 (Warsaw Uprising, 1944년 8월 1일 ~ 1944년 10월 2일) 개관
바르샤바 봉기 (Warsaw Uprising, 폴: powstanie warszawskie)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바르샤바를 독일 제3제국군에게서 해방시키기 위해 폴란드 국내군이 일으킨 일제 봉기이다. 당시 소련 붉은 군대가 독일군을 몰아내며 바르샤바 동부 외곽으로 접근하던 것과 시기를 같이했다. 그러나 소련군은 바르샤바 코앞에서 진격을 멈추었고, 그 사이 독일군은 전열을 재정비하여 폴란드 봉기군을 진압했다. 외부의 도움이 전혀 없는 63일동안 바르샤바는 독일군의 잔혹한 진압 아래 파괴되었다. 바르샤바 봉기는 제2차 세계 대전 저항운동사에서 최대 규모의 단일 군사행동이다.
– 바르샤바 봉기 (Warsaw Uprising)
.날짜: 1944년 8월 1일 ~ 1944년 10월 2일
.위치: 폴란드 바르샤바
.피해: 폴란드 국내군 – 병력 45,000여 명, 피해 16,000여 명 전사 또는 실종, 15,000여 명 포로, 민간인 200,000여 명 사망, 바르샤바의 85% 이상 파괴 / 나치 독일 – 병력 39,000여 명, 피해 3,000명 전사, 9,000명 부상
봉기는 1944년 8월 1일 시작되었다. 폴란드 지하국은 소련 육군이 바르샤바로 진격중이던 것 (루블린-브레스트 공세)과 보조를 맞추어 폴란드 전역에서 봉기를 일으키려 계획했으며 (폭풍우 작전), 바르샤바 봉기는 이 상위 계획의 일부였다. 폴란드 저항운동가들의 목표는 우선 첫째로 독일 점령군을 도시에서 몰아내어 독일과 추축국이라는 거악에 맞서는 싸움에 힘을 보태는 것이었고, 둘째로 소련군이 바르샤바를 “해방”시키기 전에 자기들 손으로 바르샤바를 해방시켜 소련의 괴뢰집단인 폴란드 민족해방위원회에 대한 정통성 면에서의 우월성을 점유하려 한 것이었다. 또한 독일군이 사지 멀쩡한 폴란드인들에 대한 집단검속을 개시했고 모스크바에서 봉기를 독촉하는 등의 단기적 위협들도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봉기 초기 단계에서 폴란드인들은 바르샤바 중심가 대부분을 점령, 해방구로 삼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소련군은 폴란드인들의 무전 접촉을 무시하고 바르샤바 경계 밖에서 대기만 하고 있었다. 이윽고 전열을 정비한 독일군과 폴란드인 사이에 격렬한 시가전이 벌어졌다. 9월 14일 소련군 휘하의 제1폴란드군이 비스툴라 강 동안에 도착했으나, 이들 중 강을 건너 바르샤바로 진입할 수 있었던 것은 1,200 명에 불과했다. 또한 붉은 군대는 이들을 증원하지도 않았고, 공중지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정황은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반공적인 폴란드 지하국 소속 저항운동가들이 독일군에게 분쇄되기를 바라고 고의적으로 그들을 방치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원인이 되었다. 아서 쾨슬러는 바르샤바의 소련군의 태도를 일컬어 “후세 역사가들은 리디체의 일과 더불어 이것을 이 전쟁에서 가장 끔찍한 오명 중 하나로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윈스턴 처칠은 스탈린과 루스벨트에게 영국에 소재한 폴란드 망명정부를 도와줄 것을 항변했으나 전혀 통하지 않았다. 처칠은 소련군의 공중지원 없이 왕립공군, 남아프리카 공군 및 영국 고등사령부 지휘하에 있던 폴란드 공군을 동원해 200개 이상의 저수준 보급품을 투하했고, 이후 소련군이 공중 교통을 정리한 이후에 미국 공군이 프랜틱 작전의 일환으로 대규모의 공중 투하를 한 차례 실시했다. 그러나 소련군은 서부전선의 미국 폭격기가 폴란드인들에게 보급품을 투하해준 뒤 소련 공군기지에 착륙하는 것을 불허했다.
바르샤바 봉기 때 발생한 사상자 수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폴란드 저항군 중 16,000 여명이 죽고 6,000 여명이 중상을 입었다. 또 폴란드 민간인이 150,000 ~ 200,000 명 죽었다,. 독일군의 가택수색으로 일부 폴란드인들이 보호해 주고 있던 유대인들이 노출되기도 했다. 독일군 사상자는 사망자와 실종자를 합해서 8,000 명 이상이고 부상자는 9,000 여명이었다. 시가전을 거치면서 바르샤바의 건물 4분의 1이 파괴되었다. 폴란드 저항군이 항복한 뒤에도 독일군은 남은 도시의 35%를 또 파괴했다. 1939년 폴란드 침공 때 발생한 피해에 1943년 바르샤바 게토 봉기 때 발생한 피해까지 더하여 바르샤바는 1945년 1월 독일군이 바르샤바를 방기하고 퇴각할 때까지 전쟁 이전의 85%가 파괴되었다. 바르샤바 봉기의 주도세력인 폴란드 국내군과 지하국은 봉기 실패로 완전히 와해되었을 뿐 아니라 독일군이 버리고 떠난 바르샤바를 소련군이 접수한 이후 그 지도부는 NKVD에 의해 살해당하거나 수용소로 끌려갔다.
– 종전후
소련의 위성국가였던 폴란드 인민 공화국에 의해 바르샤바 봉기에 대한 정보는 검열, 폐기되었으며 폴란드 국내군 (Armia Krajowa) 단어의 사용은 금지되었다.
1989년 폴란드 민주화 운동으로 폴란드 인민 공화국이 해체되고 폴란드 제3공화국(폴란드 공화국)이 성립되면서 바르샤바 봉기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2004년 8월 1일 바르샤바 봉기 60주년을 맞아, 독일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가 추모식 기념비에 헌화를 했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1970년에 반나치의 인사 중 한 명이었던 빌리 브란트 총리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빌었었다.
이봐, 친구들아, 총검으로 무장하자
(Hej, chłopcy, bagnet na broń)
기나긴, 머나먼 길로, 뜨거운 가슴에
(Długa droga, daleka przed nami, mocne serca)
손에 카빈소총을 들고, 총검을 들고 포탄 속으로 가자
(A w ręku karabin, Granaty w dłoniach i bagnet na broni)
여명이 밝아온다, 바람이 불어온다
(Jasny świt się roztoczy, wiatr owieje nam oczy)
폐가 펌프질하고, 피가 뜨거워진다
(I odetchnąć da płucom i rozgrzać do krwi).
노래가 우리사이로 퍼져나간다
(I piosenkę, jak ręczę, nad nami roztoczy)
앞으로 전진 하는 행군 속에. 하나, 둘, 셋
(W równym rytmie marsza: raz, dwa, trzy)
(머리 위로)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반짝인다
(Ciemna noc się nad nami roziskrzyła gwiazdami)
긴 밤과 낮 동안, 흰 견장은 먼지 길 위에 있다
(Białe wstęgi dróg w pyle, długie noc i dni)
새로운 폴란드의 승리가 우리에게 달려있다
(Nowa Polska Zwycięska jest w nas i przed nami)
앞으로 전진하는 행군속에. 하나, 둘, 셋
(W równym rytmie marsza: raz, dwa, trzy)
이봐, 친구들…
(Hej, chłopcy…)
바르샤바 봉기 당시 봉기군이 불렀던 노래
‘이봐, 친구들아, 총검으로 무장하자(Hej, chłopcy, bagnet na broń)’ – 폴란드어 원문 및 노래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