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영화
카라바조 : Caravaggio
감독) 데릭 저먼 / 주연) 숀 빈, 나이젤 테리, 틸다 스윈튼 / 1986년
- 16세기의 천재 화가 카라바조의 삶을 재구성한 영화
늙은 화가 카라바조는 죽음의 침상에서 과거를 회상한다. 이단적이고 불손한 태도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화풍으로 귀족들과 주교의 후원을 받던 카라바조는 모델 라누치오와 그의 연인 레나 사이에서 삼각관계에 빠지게 된다.
현대와 르네상스를 가로지르는 실험적인 형식 속에서 강렬한 명암대비와 빛으로 특징지어지는 카라바조의 대표적인 그림들을 탁월하게 재현한 작품으로, 데릭 저먼의 영상미가 정점에 도달한 영화.

○ 제작 / 출연
- 제작진
.감독: 데릭 저먼
.제작: 콜린 맥케이브, 사라 래드클리프
.작가: 데릭 저먼, 니콜라스 워드 잭슨, 수소 체키 다미코
.주연: 숀 빈, 나이젤 테리, 틸다 스윈튼
.촬영: 가브리엘 베리스타인
.의상 디자인: 샌디 파월
.작곡가: 러브레터
.개봉: 1987년 10월 1일 (오스트레일리아)
- 출연진
숀 빈 – 라누치오
나이젤 테리 – 메리시 카라바조
틸다 스윈튼 – 레나
우나 브랜든 존스
이모겐 클레어
노암 알마즈
첼리타 세쿤다
신디 오스윈
마이클 고프
스펜서 레이
돈 아치볼드
나이젤 대번포트

○ 내용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카라바조는 죽음의 침상에서 과거를 회상한다.
그는 사제와 귀족들의 후원 속에서 자기만의 화풍을 펼쳐나가던 중 모델이던 라누치오와 그의 연인 레나와의 삼각관계에 빠져든다.
데릭 저먼이 많은 영향을 받았던 16세기 화가 카라바조의 삶을 다룬 영화.
현대와 르네상스를 가로지르는 실험적인 형식 속에서, 강렬한 명암대비와 빛으로 특징지어지는 카라바조의 대표적인 그림들이 탁월하게 재현된다.
- 카라바조의 생애
1571년 밀라노 근교 카라바지오에서 태어나, 르네상스의 대가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와 구분하기 위해 살았던 마을 이름을 이름에 붙여 불렀던 초기 바로크의 대표적인 화가다.
그는 건축가의 아들이었는데 일찍 부모를 여의고 고아로 견습 기간을 거친 뒤 1592년(21세) 로마로 갔고, 초기에는 궁핍한 생활속에 하층민의 생활 카드 사기꾼(1594) 자화상 병든 바커스(1594)등의 그림을 그리다, 추기경 델 몬테의 후원으로 1597년부터는 종교적인 장면을 담아냄으로써 주목을 받기 시작한다.
그 결과 카라바지스티 (Caravaggisti)라 불리는 그의 추종자들이 유럽 전역에서 생겨나게 되고, 그 중 걸작 성 마태오의 소명 (1600)과 성 마태오의 순교 (1600)는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화단에선 그가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고, 밑그림 없이 캔버스에 직접 스케치하고 바로 그림을 그린다고 비난했고, 매장(1602), 성모의 죽음(1606) 같은 작품에선 모델이 그의 애인이던 매춘부였으며, 일부 묘사가 불경스러울정도로 지나치게 사실적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기도 했다.
1606년 그는 말다툼 끝에 한 남자를 죽이고 나폴리, 몰타로 도주하였는데 이 와중에도 걸작들을 남겼고, 몇년 뒤 체포되어 시칠리아로 추방당했는데, 이 시기에도 명암대조가 강한 후기 작품들을 남겼다.
1610년 그는 교황에게 사면을 구하러 로마로 가던 길에, 포르토 에르꼴리 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38세에 사망하였는데 사면은 이미 내려진 상태였으며, 그의 시체는 찾을 수 없었다.

○언론시소개 : 시대의 이단자, 화두를 시대에 던지다
.영화 <카라바조>와 르네상스 화가 카라바조
.데릭 저먼과 카라바조, 주류문화 거부하는 예술을 현실속으로
흔히 르네상스는 인류역사상 문화가 기장 부흥했던 시기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르네상스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창조적인 기운과 열정 그리고 지적 호기심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의 종교화는 신앙심의 근원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위엄과 신분을 과시하기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르네상스는 인류사에 있어서 가장 위선적인 시대라고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그 ‘위선의 시대’를 견디지 못하고 자학에 가까울 정도로 처절하게 자신을 던져 시대와 사회에 대항했던 카라바조 (Caravaggio, 본명 Michelangelo Merisi, 1571~1610)는 40년이라는 짧은 생애 속에서 그 어떤 화가보다도 귀한 작품을 많이 남겼고 그 보다 더 많은 이야기 거리를 생산해낸 화가이다.
특히 그는 확연하게 대비되는 빛과 그림자, 역동적인 자세, 군더더기 없는 배경 그리고 누구도 ?아오지 못할 사실적인 묘사로 바로크 (Baroque)시대를 향해 문을 열어준 화가이다. 그는 매우 사실적이고 파격적인 주제 때문에 당시 로마에서 비난을 받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지만 1599~1600년간에 그린 ‘산 루이기 데이’프란체시 성당의 제단화를 통해 최고의 화가로 자리잡으면서 르네상스미술의 방향을 틀어버린다.
하지만 고흐보다 더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살았던 그는 오랫동안 잊혀진 채로 있다가 20세기에 들어서 새롭게 평가받으며 거장의 반열에 올려졌다.
이렇게 카라바조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르네상스 시대에 로마와 피렌체에서 최고의 화가로 등극했지만 그는 타고난 뜨거운 피로 인해 불의와 종교적 위선에 대항했다. 또 세기말 혼란과 폭력이 난무하던 로마의 뒷골목을 휘젓던 싸움꾼이자 살인자로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었던 화가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까지 인간의 고귀한 종교적 행위와 신에 대한 찬미가 자신들의 부와 영예를 영원히 이어가려는 욕망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몇 안 되는 르네상스시대의 사람이었다. 소위 콰트로첸토 (Quattrocento)기의 화려하고 성스러운 신비감이 넘쳐났던 그림들은 카라바조를 만나면서 비로소 인간의 모습을 얻게 되었다.

그는 지금까지 신성에 가려있던 인성을 되살려냈으며 교리상의 인물들 모두를 비천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바꾸어버렸다. 르네상스시대에 최고의 권력자인 교황과 추기경, 세속적인 권력자 황제와 재산가 그리고 뒷골목의 권력자인 깡패들 모두와 통했던 카라바조는 로마 뒷골목 창녀와 싸움꾼, 건달과 노름꾼, 거지와 야바위꾼 등의 모습을 통해 진정으로 낮은 곳에 임하는 하느님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
인간의 추악함, 고통, 배반, 슬픔, 속임수 그리고 사랑과 환희 등등 사람의 욕망과 정서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리하여 그의 하나님과 성모와 성경 속 모든 이들은 인간의 모습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구원받을 수 없는 인간들까지도 기꺼이 천상의 세계에 함께 거두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시대의 이단자로 반항아로 한편으로는 자신을 용서해 줄 것을 간절하게 바라는 심약한 인간으로 살았던 카라바조의 인생은 실로 짧았지만 극적인 삶이었다. 이런 그의 삶을 영화화 한 것은 20세기의 ‘무서운 아이’ 데릭 저먼 (Derek Jarman, 1942~1994)이었다. 데릭저먼은 카라바조에 버금가는 삶을 살았던 영화감독이자 미술가이자 무대디자이너였다.
그는 주류문화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린 사람이지만 그들과 타협하지 못하고 완강하게 시대와 세상에 저항했던 작가다. 게다가 영민하게 계산적이지도 상업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무정부주의와 동성애를 평생 동안 추구한 혁신적인 미학적 실험주의를 일관되게 유지했다.
특히 그는 박물관 창고에 쳐 박혀있던 카라바조와 <에드워드 2세> 같은 역사영화에 동시대 문제를 투영시켜 동성애적인 정체성을 찾으려 시도하면서 새로운 화두를 시대와 사회에 던졌던 이단아이자 혁명가였다. 이런 그가 르네상스기 화가 카라바조의 삶을 주목하면서 완성한 것이 바로 영화 <카라바지오> (1986)이다.
“기존 정치나 매체는 결코 진실을 말해본 적이 없다.”며 자신의 영화는 문화에 대한 자신의 감정과 입장을 개인적으로 분석한 기록영화라고 믿었다.
그는 군인 아버지를 둔 중산층 가정에서 전형적인 영국식 교육을 받았다. 화가가 되려고 미술대학에 진학했지만 동성애자라는 자신의 성 정체성에 눈뜨면서 중산층으로서의 삶을 버리고 오페라와 발레단의 무대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영화 <악마들> (1971)의 세트 디자이너로 일한 직후 영화에 뛰어든다.
그는 ‘반항심이 퇴색될까봐 두려워서’ 상업성이 없는 8미리와 16미리 영화를 찍었다. 또 80년대 후반에는 가정용비디오로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영화가 칸과 베를린영화제에서 상영되면서 문제감독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런 그의 예술적, 성적 취향은 그의 최초의 35밀리 영화 <카라바조>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가 1993년 만든 파격적인 영화, 아니 영화라고 할 수 없는 푸른 화면에 목소리와 음향만 들을 수 있는 <블루> (Blue,1993)가 자신의 실험을 끝까지 밀어붙인 작품이라면 <카라바조>는 데릭 저먼의 몸을 빌려 오늘에 환생한 카라바조가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후원자를 자처하는 주문자들의 요구와 자신의 예술적, 미학적 태도, 동성과 이성 사이에서 성적정체성 때문에 갈등하는 카라바지오의 삶을 통해 화가의 미학적 욕망과 성적 욕망은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흥미로운 질문을 관객에게 던진다. 그는 약 400년간의 시차를 두고 살았던 두 사람이 한 영화에서 공존하기 위해 시공간을 초월하는 설정으로 관객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그래서 결국 성 정체성이란 오늘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욕망이 존재했던 그때부터라는 감독의 생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이렇게 시대를 넘나드는 여기에 카라바조의 정지된 스틸사진 같은 화풍을 영화적으로 완벽하게 재현함으로써 아름답고 신비로운, 때로는 시차를 느끼지 못하게 한다.
이런 느낌을 위해 그는 보통영화가 24프레임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초당 3프레임에서 6프레임의 속도로 영화를 촬영함으로써 화면에서 육안으로는 움직임을 감지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촬영된 필름을 영사해서 다시 초당 24프레임의 표준속도로 촬영했다. 이 결과 마치 꿈꾸는 듯 몽롱한 분위기의 리듬과 색감이 스크린에 나타났다.
그는 이렇게 카라바조의 확인되지 않은 에피소드들 즉 동성애와 폭력, 살인 등등을 그의 연대기적인 삶과 연결시켜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서 이 영화는 결코 장소를 옮기는 것 없이 커다란 창고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찍으면서 단지 47만 5000 달러의 제작비를 들였을 뿐이라고 한다.
따라서 영화는 영화라기보다는 연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최대한 장면 전환을 자제하고 필요하다면 극히 일부만을 바꿔 마치 카라바조의 그림에서 보이는 것 같은 미니멀한 구조의 배경을 지닌다. 이런 점에서 데릭 저먼은 자신을 통해 카라바조를 이 시대에 현현케 함으로써 자신의 저항정신과 비상업적인 태도 그리고 자신의 동성애적인 성 정체성을 드러낸다.
그리고 르네상스시대 화가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트럭, 오토바이, 잡지와 타이프라이터 그리고 촬영지였던 창고가 철도변에 위치해서 그런지 몰라도 가끔 들려오는 기차 달리는 소리가 배경음악이 되어 영화의 철저하게 사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세계로 이어진다. _ 글 정준모 (미술비평, 문화정책) 2009.8.5 주간한국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