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의 공동체를 찾아서(13)
호주 브루더호프(Bruderhof)공동체
초대교회를 실현하는 비폭력, 무소유 신앙공동체
“사람들이 내게 매력적이라고 말해주면 좋겠다. 값비싼 집과 차, 옷을 소유한 사람들이 부럽다. 정말 부자가 되고 싶다. 찬사를 받고 싶다. 내 것과 남의 것을 자주 비교한다. 지금 내가 갖지 못한 것을 소유할 수 있었다면 내 삶은 더 훌륭했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흔적을 감추고 싶다.” 당신이 이렇지 않느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아니오’라 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젊고 매력적인 외모에, 재산도 많고, 다른 사람들의 선망과 찬사의 대상이 되는 삶. 그런데 ‘어플루엔자’(affluenza)의 저자 올리버 제임스(O. James)는 그런 질문에 ‘예’라는 답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심각한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어플루엔자(affluenza) 바이러스’, 즉 ‘부자병’이다. ‘풍요’(affluence)와 ‘유행성 감기’(influenza)의 결합어인 ‘어플루엔자’(affluenza) 바이러스는 풍요로워질수록 더 많은 것을 욕망하는 현대인의 탐욕이 만들어낸 질병으로 돈, 소유, 외모, 사회적 지위와 명성을 과도하게 선호하는 정서적 상태이다. 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소비지상주의의 환상을 추구하다가 무력감, 과도한 스트레스, 욕구 불만, 쇼핑 중독, 만성 울혈, 불안감, 우울증에 시달리기 쉽다.

‘어플루엔자’(affluenza)에는 저자 올리버 제임스(O. James)가 뉴욕, 싱가포르, 코펜하겐, 모스크바 등 20여개 도시 사람들과 인터뷰한 내용이 가득하다. “온 나라가 부동산 열풍입니다. 저녁 모임의 유일한 화제는 누가 뭘 샀는지, 얼마를 줬는지, 그 가치가 얼마인지입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백만장자가 들려주는 이 이야기가 남의 나라 이야기일까? 우리는 더 나은 집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필요가 아니라 ‘욕망’, 그것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데서 비롯된 일종의 ‘허위 욕망’이다. 어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매개체는 광고와 텔레비전이다. 텔레비전이 도입되지 않았던 1995년까지 피지에서는 풍만한 여성이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텔레비전이 들어오고 3년 만에 피지 여성의 11%가 마른 체형 선호에서 비롯된 스트레스로 신경성 장애를 앓게 되었다. 비정상적으로 부유하게 사는 매력적인 남녀들로 가득한 텔레비전은 이웃이 아니라 유명 스포츠스타의 가족이나 연예인들을 내 애인이나 배우자와 비교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임상심리학자 출신의 저자 올리버 제임스(O. James)가 제시하는 처방은 무엇인가? 삶의 진정성, 생동감, 놀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저자도 각별히 인용하는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가 던지는 충고, 즉 ‘소유 양식’이 아닌 ‘존재 양식’의 삶을 회복하라는 처방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생의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 1900-1980년)은 이미 친숙할 만큼 친숙해진 이름이어서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와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 등 그가 저술한 유명한 책의 제목 또한 누구에게나 눈에 익을 것이다. 하지만 친숙함과 이해의 감동은 다른 것이고,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간 이 심리학자가 파시즘의 기원 등 다양한 방면에 그의 돋보기를 들이대다 1976년 고희를 넘은 나이에 저술한 ‘소유냐 존재냐’는 책이 전하는 뜻과 함께 그 문학적 아름다움 역시 놀랍기에 차근차근 책장을 넘기면 새삼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소유냐 존재냐’는 제목에서 바로 짐작되듯이 책 전반에 걸쳐 소유양식과 존재양식을 대비하는 구조로 책이 전개된다. 에리히 프롬의 설명에 따르자면, 존재양식은 세계와 하나가 되는 실존양식이고 소유양식은 대상화된 객체를 소유하고 소비하는 방식이다. 그렇기에 존재양식은 자발적이고 생산적인 반면, 소유양식은 수동적이고 불안하다. 존재양식은 체험과 실천을 통해 주체를 성장하게끔 하지만, 소유양식은 그 무엇이든 체화(體化)하지 못하고 오로지 소유라는 변방을 떠돌기 때문이다. 에리히 프롬은 현대사회에 만연한 인간 소외가 바로 소유양식에서 기인한다고 진단하며 주체와 객체를 모두 사물화하는 폐단을 낳는 소유양식을 극복하라고 설파하였다.
소유양식에서는 내가 아니라 나의 소유물이 나의 존재를 정의하는 주체이기에 나의 참 존재를 찾고 삶의 의미를 얻기 위해서는 존재양식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의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서, 에리히 프롬은 그에게 영향을 준 다양한 인물들을 거론하며 그들이 사상과 인생을 통해 보여준 존재양식을 설명하고, 또한 언어 구사와 학습과정 및 사랑 등 다양한 사례에서의 ‘존재양식’과 ‘소비양식’의 대조를 뚜렷이 함으로써 그의 메시지를 명확히 한다. 한편 이러한 문제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하며 그 대안을 찾던 공동체가 있는데 그곳은 브루더호프공동체이다.

브루더호프공동체의 기원은 16세기 유럽의 급진 종교개혁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때 소위 재침례파라 불렸던 수천 명의 사람들이 소박한 생활과 형제애와 비폭력을 찾아 제도권 교회를 떠났다. 이러한 비제도권 교회 운동의 하나가 모리비아의 공동체 마을 또는 브루더호프(Bruderhof, ‘형제들의 처소’)에 정착한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은 그 지도자 제이콥 후터(Jakob Hutter)의 이름을 따서 후터파라 불렸다. 여기서 이들의 탁월한 장인정신, 앞선 의료기술, 농업의 성공,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의 진보적인 학교들(귀족 자제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이 이들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브루더호프는 독일의 저명한 강사이자 작가인 에버하르트 아놀드(Eberhard Arnold, 1883?-1935년)가 16세기 초 종교개혁 당시 제도권 교회를 떠나 삶의 단순성과 형제애, 비폭력을 추구하던 후터파 공동체에게 영향을 받아 1920년 독일에서 시작했다. 공동체는 나치의 박해와 2차 세계 대전의 혼란 속에서도 살아 남았다. 독일에서 어려움이 커지자(그리고 1937년에는 축출되었다), 1930년대 말에 영국에 새로운 브루더호프공동체들이 세워졌다.

2차 세계대전의 발발과 함께 두 번째 이주가 불가피하게 되자, 이번에는 다국적 집단을 기꺼이 받아들이려 했던 유일한 나라인 파라과이로 옮겨가게 되었다. 1950년대에는 공동체의 지부들이 미국과 유럽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1960-61년에는 남미 공동체들이 폐쇄되었고 지체들은 유럽과 미국으로 옮겨갔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2500명 가량이 12개의 공동체(미국에 7, 영국에 3, 독일에 1, 호주에 1)에 나뉘어 살고 있다. 각 공동체는 250-300명 가량이 초대교회의 공동체 생활방식에 따라 일체의 사유재산 없이 부유하지도 않고 가난하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다.
브루더호프공동체의 기초는 하나님의 공동체로의 부름이다. 현대사회의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브루더호프공동체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인간들을 불의의 체재에서 정의로, 폭력과 공포와 소외의 옛길에서 평화와 사랑과 형제애의 새 길로 불러내고 계신다. 간단히 말해, 그분은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시고 계신다. 브루더호프공동체 생활의 기초는 그리스도의 산상설교를 비롯해서 신약에 기록된 그분의 다른 가르침들, 특히 형제 사랑과 원수 사랑, 서로간의 섬김, 비폭력과 무장 거부, 성적 순결, 충실한 결혼 생활 등에 대한 가르침이다.
브루더호프공동체의 정신적 기초 : 산상수훈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마 5:1-12)
브루더호프공동체는 사유 재산을 소유하는 대신에 사도행전에 기록된 대로 초대 그리스도인들이 한 것처럼 모든 것을 공유한다. 각각의 지체는 자신의 달란트와 시간과 노력을 어디든지 이것들을 필요로 하는 곳에 사용한다. 돈과 재산은 자발적으로 헌납하며, 모든 지체가 공유하게 된다. 점심과 저녁 식사는 함께 하며, 교제, 찬양, 기도, 의사 결정을 위한 모임을 한 주에 몇 차례 저녁 시간에 가진다.

브루더호프공동체의 비전은 “공동체의 지체들이 문화와 나라와 생활 방식이 다르지만 모두 형제요 자매이며, 우리는 개인으로서 그리고 하나의 공동체로서 우리의 부족함을 인식하지만 주일만이 아니라 하루 하루를 예수께서 가르치신 분명한 사랑과 자유와 진리대로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이 행성, 지구는 새로운 나라, 새로운 사회질서, 새로운 일치, 새로운 기쁨에 의해 정복되어야 한다. 기쁨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평화와 일치와 공동체의 영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다. 이것은 예수께서 주시는 메시지이다. 우리는 그분의 메시지가 오늘에도 타당하다는 믿음과 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브루더호프공동체 사람들은 겉치레에 연연하지 않는다. 집안에는 거울조차 두지 않고 마을길을 오가는 이들의 얼굴에선 화장기를 찾아볼 수 없다. 화려한 옷매무새도 없다. 공동 세탁소에서 세탁되는 속옷들은 대부분 구멍이 나 있을 만큼 공동체 가족들은 ‘좋은 내 옷’을 갖는데 관심이 없다. 그렇지만 이곳에선 바깥사람들의 경쟁에 지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어린이를 위한 가구나 놀이기구 생산업체인 Community Playthings와 장애자용 기구인 Lifton생산이 이들의 주 수입원인데,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다.
그리고 플라우(Plough)출판사는 브루더호프 지체들이 소유하고 운영하는 출판사로 그리스도인의 급진적인 제자도, 공동체, 결혼 생활, 자녀 양육, 사회정의, 영적 생활 등에 대한 책을 보급하고 있다. 또한 시사 문제와 대중매체가 지나치는 주요 흐름에 대한 글들과 개인적, 사회적 변혁을 반영하는 논문들을 담아 The Plough라는 조그마한 정기간행물을 출판하고 있는데, 주로 대중매체에서 무시하는 현안들과 더불어 개인과 사회변혁에 관한 논설을 싣고 있다. 플라우 출판사는 공동체의 기획기사를 출판하기도 하지만, 폭력에 대한 사회정의의 문제를 내부적 주요과제로 삼고 이에 대한 출판물을 상당수 발간하고 있다. 특히 아동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폭력의 문제를 정의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플라우는 출판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기부금을 받기는 하지만 요청이 있을 경우 견본은 무료로 발송한다.
이처럼 브루더호프의 운영은 Community Playthings와 Rifton Equipment for People with Disabilities, 그리고 플라우(Plough) 출판사를 통하여 주로 이루어진다. 보편적으로 공동체의 운영이 공동체의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듯이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브루더호프가 아이들과 장애인들이 함께 할 수 있는 가구와 장난감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마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해와 관심에서 출발한 듯하다.

이들은 노동을 기쁘고도 당연한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브루더호프의 생활은 일하는 소리만큼이나 노래 소리와 노는 소리로 가득한 즐거운 생활이다. 브루더호프는 Community Playthings(아이들을 위한 장난감과 기구 생산업체)와 Rifton Equipment for People with Disabilities(장애인 보조 기구업체)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판매하여 공동체를 꾸려가고 있다. 전세 비행기 사업과 애완견 사육과 같은 다른 사업도 하고 있다. 브루더호프에게 노동은 투기나 모험이 아니다. 빨래를 하고 설거지를 하는 일에서부터 작업장에서 제품을 조립하거나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이르기까지, 노동은 서로에 대한 사랑의 실제적인 표현이다.
사실 대부분의 공동체들이 노동의 의미를 강조한다. 그것은 아마도 노동을 통하여 땀의 의미를 알고 땀의 흘림을 통하여 수확의 기쁨과 동시에 자연과의 교감을 스스로 자각하게 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여진다. 또한 땅은 인류가 함께 해야 할 동료라는 느낌을 주기 위함으로 판단된다. 이 의미는 브루더호프를 비롯한 공동체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로 해석된다. 노동의 강조는 인간이 땅과 함께 하는 상호의존적인 존재이며 동시에 한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브루더호프의 생활양식은 ① 무소유, ② 한 식구로 마음 나누기, 그리고 ③ 선교와 하나되기 위한 노력들이 삶 가운데 나타난다. 첫째로 브루더호프에서는 화폐개념을 강조하지 않는다. 단지 외부생활에 필요한 화폐로서의 용도이다. 브루더호프는 보편적으로 무월급제도이며, 필요에 따라 쓰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아이들이 경우, 개인에게 지급되는 돈은 학비 정도이다. 외부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점심은 공동체에서 먹으며, 먼 곳으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도시락을 지참한다. 곡 필요한 것이 있으면 청구를 하고 영수증을 제출하면 된다. 이러한 방침은 화폐의 개념을 제도권으로부터 분리하는 사고로부터 나오는 듯하다. 즉 화폐는 소유의 기본적이며 필연적인 요소라고 판단하는데, 공동체에서 적용하고 있는 무월급제도 및 화폐에 대한 관점은 무소유를 지향하는 그들의 작은 움직임이라고 판단된다. 둘째로 식구가 되기 위한 제도적인 절차보다는 서로간의 마음나누기가 우선된다. 이들은 절대 남을 험담하지 않는다. “Straight Talking In Love”(사랑 안에서 직접 솔직하게 말하는 것)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여 세례 받을 때 서약까지 하는데, 이것이 없이는 함께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정도다. 그래서 이 글은 브루더호프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규칙 중에 하나로서 각 가정에 액자로 비치되어 있다. 자신의 욕구를 포기한 빈자리를 이들은 인류애로 채워 넣는다. 셋째로 선교와 하나되기 위한 노력들이 있다. 브루더호프는 죄수와 마약 중독자들의 교화, 사형 폐지운동, 쿠바 어린이들과의 교류 등의 봉사활동에 나서고 있다. 지역사회 차원에서, 브루더호프공동체는 자원봉사 활동과 재소자 사역에 참여하고 있다. 사람들을 회심시키거나 새로운 지체들을 모집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선교는 언제나 브루더호프 활동의 핵심이다. 브루더호프공동체는 자신의 삶에서 새로운 것을 찾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환영한다.

세계 최고의 교육환경을 자랑하는 영국에서도 브루더호프는 교육의 천국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곳 아이들은 공동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 중등학교에서 부모 같은 선생님들의 사랑과 신뢰 속에서 자란다. 텔레비전이 없는 이곳 아이들은 부모나 공동체 가족들과의 깊은 대화와 교제, 독서로 많은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사고력이 깊어져 공동체 밖의 고등학교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고, 상당수가 영국의 명문대에 진학하고 있다. 브루더호프 아이들은 성장 시기를 이성에 대한 관심으로만 보내기보다는 내적 성숙에 초점을 맞추며 결혼 전까지 순결을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에버하르트 아놀드(E. Arnold)는 아이들의 진정한 본성을 아홉 가지로 열거하여 설명하고 있다. ① 아이는 신뢰한다. ② 아이는 용서를 믿는다. ③ 아이는 숨김없이 말한다. ④ 아이는 자유로운 인격이다. ⑤ 아이는 내적인 종교적 감정을 지니고 있다. ⑥ 아이는 사회 정의에 대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⑦ 아이는 개인이다. ⑧ 아이는 유전적인 특성을 지닌다. ⑨ 아이다움은 자의적으로 죄를 범할 때 끝이 난다. 이처럼 브루더호프는 종교적, 제도적, 주술적인 관점에서 어린이를 이해하기보다는 어린이다운 천진성을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교육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브루더호프 지체들 가운데는 독신자도 많지만, 가족이 공동체의 기본 단위이다. 그리고 여러 가정의 지체들은 공동생활의 중심이다. 부모들이 아이들 교육을 일차적으로 책임지지만, 교사들은 아이들을 격려하고 필요할 때는 이끌어 준다. 이렇게 해서 문제는 해결되고, 짐은 덜어지며, 기쁨은 나눠질 수 있다. 부모들이 일하는 동안, 아기들과 어린아이들은 ‘어린이 집’에서 보살핌을 받는다. 어린이집의 일일 스케줄에는 독일 교육 개혁가인 프뢰벨과 페스탈로치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된다. 브루더호프의 교육은 아이들에게 진정으로 아이들일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동체의 학교에서는 유치원 교육과 초등학교 교육을 담당한다. 9학년 후에는 아이들이 공립학교에 들어가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 과정이 짜여지지만, 교실의 커리큘럼은 미술, 음악, 스포츠, 자연 학습, 하이킹, 현장 견학 등과 같은 과외 활동들과 함께 진행된다. 십대들은 공립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에 가거나 기술과 직업 훈련을 받는다. 어떤 젊은이들은 선교 활동에 참여하며 귀중한 지식과 경험을 얻고 돌아온다.
브루더호프의 청소년들은 고등학교 과정을 마치면 1년 이상 바깥세상을 경험한 뒤 브루더호프에 남을 것인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데, 95% 가량이 브루더호프에 남는 길을 선택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 세상에서 브루더호프 만한 삶이 없고 의미를 찾을 만한 곳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공동체의 제 2세대의 육성은 공동체 유지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기제이기도 하다. 한편 장애인과 노인들은 공동체의 보배와 같은 존재이다. (하루에 몇 시간만이라도) 공동 작업에 참여하든 집에 남아 있건 간에, 이들은 아이들의 방문을 자주 받으며 아주 중요한 방식으로 공동체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이처럼 브루더호프에서는 가족별로, 작업장별로, 학교별로 친밀한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브루더호프에는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사는 제 1세대와 미래를 향한 환상과 꿈을 지니고 사는 제 3세대와 현재를 이끌어 가는 제 2세대가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남녀노소 상관없이 생산적인 노동에 참여함으로써 세대간의 갈등을 극복하고 있다.
헬리 나우웬(Henry J. M. Nouwen)은 “브루더호프의 글들은 제자도가 살아 숨쉬는 공동체 안에서 체득한 경험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다. 우리는 이런 공동체 안에서 연단되고 정화된다. 용서와 치유의 모든 것을 배우는 곳은 바로 공동체이다.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지 배우는 곳이 공동체이다. 공동체야말로 참된 사랑의 학교이다. 아놀드는 그의 전 생애를 공동체에서 생활하였다. 그러기에 누구보다도 공동체의 필요와 그 가치를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복음 속의 그리스도를 만나는 곳이 다름 아닌 공동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호주 단토니아 브루더호프(Danthonia Bruderhof) 또한 다른 지역의 브루더호프와 같은 비전을 공유하며 공동체로 살아간다. 이 공동체에서 아침식사는 각 가정별로 하지만 점심과 저녁은 모여서 한다. 방문객들은 매일 아침마다 번갈아 여러 가정으로 초대되어 식탁의 교제를 나눈다. 아침 식사 후 8시에 오전 작업이 시작되고 성인남자들은 모두 공동작업장과 이외 여러 분야에서 일을 한다. 자매들은 함께 아이들을 돌보며 가사 일에 참여하며 아이들은 공동체 내에 있는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다. 오전 작업 후 12시에 공동식사가 있고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오후작업이 계속된다. 그 이후부터 저녁의 공동식사 후 취침 전까지는 즐거운 휴식이 이어지며 주일에는 풍성한 대안식을 누린다.

2001년 인버렐(Inverell)의 외곽지역에 4백명의 브루더호프공동체 식구들이 정착할 공동체 건설 신청당시 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브루더호프의 영향으로 그들을 가장 신랄하게 비판했던 사람들까지 오히려 브루더호프를 지지하게 된 일도 있었다. 호주 브루더호프의 주 수입원은 나무 간판제작으로 그들이 만드는 나무간판들은 인버렐 뿐만 아니라 팅가, 텐터필드, 빙가라, 마이틀랜드, 글렌 아이네스 등 주변지역으로 널리 퍼져 나갔다. 사실 브루더호프에는 화폐의 개념이 없다. 단지 외부생활에 필요한 화폐단위만 존재할 뿐이다. “소유의 도구는 화폐이다. 그리고 소유는 사람과 사람의 벽을 생기게 한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것이라는 집착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소유하지 않으면, 물건으로 인한 이기심의 벽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표현이다.
브루더호프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받은 강한 느낌은 안정감이다. 거래나 경쟁이 아닌 근본적인 신뢰와 평안이 흐른다. 하루의 공동체 작업이 끝나는 네다섯 시경부터는 그야말로 잔잔한 안식이 밀려온다. 기쁨, 평화, 사랑, 안식 같은 말은 여기선 더 이상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실제로 누려지는 것들이다. 하루의 일이 끝나면 부모는 아이들을 작은 수레에 태우고 공동체 내에 잘 가꾸어진 자연을 감상하며 이리저리 산책한다. 그리고 동료들끼리 모여 벤치와 잔디밭에 앉아서 삼사오오 얘기를 나눈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들도 잔잔한 미소를 띠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눈다. 저녁 공동체 식사 후부터 취침 때까지도 역시 그렇다. 아이들은 이집 저집 방문하며 놀러 다닌다. 저녁식사 후 한 집에서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와서 가까이 가보니 그 집의 부모와 그 집에 놀러 온 아이들이 함께 어른의 기타반주로 즐겁게 노래 부르고 있다.

한편 공동체 회원들에게 사석에서 어떤 가벼운 농담조의 험담도 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권면한다. 서로에게 문제가 있을 때 최선의 방법은 서로에게 ‘사랑 안에서 직접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라고 이들은 생각한다.
– 호주 브루더호프공동체 안내
주소 : Danthonia Bruderhof, 4188 Gwydir Highway Elsmore NSW 2360
전화 : 02) 6723-2213

임운규 목사(호주성산공동체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