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설교 : 성서속에 던져진 질문들 (6)

주제 : 성서속에 던져진 질문들 (The Great Questions in the Bible)
오늘의 본문 : 출애굽기 4장 1-4절
오늘의 제목 : (6)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출애굽기 4장 1-4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 민족은 기원전 15세기경 히브리 출신으로 이집트의 총리대신 자리에 까지 오른 요셉의 초청으로 가족이민을 왔고 그후 고센이라는 나일강 하류의 비옥한 삼각지에 자리를 잡고 크게 번성해 왔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흘렀고 이집트의 왕조는 바뀌었습니다. 투트모세 3세 치하부터 이들 히브리 이민자들은 심한 박해를 받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노예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애굽은 산아제한법을 만들고 이민자들의 인구억제 정책을 쓰면서 히브리 민족을 차별하고 모든 남자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 부터 죽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모세라는 인물은 이런 와중에 바로의 공주 하셉수트로 인하여 나일강에서 건짐을 받고 그녀의 양아들로 입양되어 파라오의 왕궁에서 자라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아주 우발적인 사건으로 한 애굽 사람을 살해하는 사건에 연류되어 그만 왕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나이 40이 되었던 모세는 마침내 미디안 광야로 도망을 쳤고 그는 그곳에서 제사장 이드로란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양을 치며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유목민의 족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은 호렙산에서 양을 치고 있던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호렙>이란 말은<사막>이란 뜻으로 버려진 땅, 적막하기 그지 없는 땅, 쓸모없는 황무지를 말합니다. 모세는 바로 그런 사막의 한 작은 떨기나무 불꽃 앞에서 처음으로 하나님과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떨기나무란 별로 쓸모가 없는 나무입니다. 백향목이나 상수리나무 처럼 건축 자재도 못되고 그냥 땔감 정도에 지나지 않는 아주 초라한 나무입니다. 사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적막한 땅, 쓸모없이 보이는 자리에서 절대자를 조우하게 됩니다. 저도 오래 전에 호렙산에 오르기 전 그 초입에 있는 성 캐서린수도원에서 상징적으로 심어놓은 떨기나무를 본적이 있습니다. <모세야,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다. 가까이 오지 말아라. 네가 선 땅은 거룩한 곳이니 신을 벗어라. 나는 이 백성의 신음소리를 듣고 그들이 당해온 고통을 다 알고 있다. 이제 나는 이 백성을 구원하겠다. 너는 가서 이 백성을 구원해 내거라> 그날 하나님은 호렙산, 타오르는 떨기나무 불꽃 속에서 나이 80이 된 모세에게 나타나 400여년이나 애굽에서 종살이를 해온 히브리 민족을 해방 시키라고 명하셨습니다. <나는 내 백성들이 당하는 학대를 보았고 그들의 고통소리를 다 들었다. 그들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였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낸다. 너는 이제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라> 그러나 모세는 이 하나님의 명령에 대해 이렇게 반응합니다. <하나님, 도대체 제가 가서 이 백성들에게 아무리 하나님께서 보내셨다고 말을 해도 제 말을 듣지도 않고 믿지도 않으면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이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물으셨습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입니다> <그것을 땅에다 던져라> 모세가 들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던지자 그것은 커다란 뱀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주춤하여 몸을 피하자 하나님은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그 꼬리를 잡아라> 모세가 그 꼬리를 잡자 뱀은 다시 지팡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시 명을 내렸습니다. <자, 보았지! 모세야! 가라!> 그러나 이번에도 모세는 머뭇거렸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시 말씀했습니다. <네 손을 한번 품에 넣었다가 빼보아라> 모세가 자기 손을 품에 넣었다가 빼보니 그의 손에는 나병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모세에게 말씀했습니다. <야, 모세야, 네 손을 다시 한번 더 네 품에 넣었다가 빼보아라> 모세는 말씀에 따라 그의 손을 다시 품에 넣었다가 빼 보니 처음처럼 다시 정상적인 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눈 앞에서 전개되는 이런 기사를 보고서도 모세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습니다. <나는 아닙니다. 나는 말할줄을 잘 모릅니다. 제발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더 엄명을 내리십니다. <가라. 모세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너는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을 해방시켜라!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하거라!>
물론 모세가 그날 들고 있던 지팡이란 목동들이 소몰이나 양몰이를 할 때 들고 다녔던 평범한 지팡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보잘것 없게 보이는 목자의 지팡이를 뱀이 되게 하셨습니다. 이 지팡이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이건 이집트의 마술사들이 요술을 부리는 단순한 지팡이가 아닙니다. 아시다싶이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머리에 쓰고 있던 모든 왕관이나 그들이 앉는 왕좌에는 크고 웅장하게 보이는 코브라들이 아로새겨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집트의 옛날 무덤이나 신전에서 출토된 미이라를 비롯한 각종 물품에는 크고 무섭게 생긴 코브라 형상이 발견됩니다. 이집트에서 뱀이란 권력의 상징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손에 들린 지팡이를 뱀이 되게 하시고 또 다시 지팡이가 되게 하심으로 모세로 하여금 이집트의 막강한 왕권을 좌지우지 할 수 있게 하리라 약속하신 것입니다. <내가 이 지팡이 하나를 가지고 마음대로 하듯이 너를 사용하여 이집트의 왕권을 마음대로 주관하게 만들테니 걱정하지 말고 가라! 이 백성을 해방 시켜라> 이는 예전 우리 어렸을 때 약장수들이 마을에서 약을 팔며 가수 김성환씨가 <약장수> 노래에서 부르는그런 <배암, 배암>이 아니었습니다. 이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되시는 하나님이 친히 모든 권세를 그 손에 쥐고, 던졌다, 잡았다 하시면서 마음대로 조정하실테니 걱정하지 말고 가라는 메시지입니다. 그 다음 손을 가슴에 넣었다 뺏다 하면서 나병의 표적을 행하신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기에서 나병이란 지금 이스라엘백성들이 이집트에서 당하고 있는 온갖 고통과 차별과 쓰라림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모세야, 걱정하지 말아라. 지금 이 백성들이 이집트 땅에서 마치 나병환자 처럼 고통당하고 멸시와 천대와 차별을 당하고 있는 것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금 너 보았지! 나 하나님은 그까짓 나병도 생기게도 하고 없애기도 할 수 있다. 이제 너는 가라! 당당히 바로에게 가서 말해라! 하나님이 우리 백성을 나가게 하라고 명하신다! 이스라엘을 해방시켜라!>
밀고 당기는 오랜 실랑이 끝에 마침내 모세는 이스라엘을 해방 시키는 역사에 앞장을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모세는 과연 무엇을 믿고, 무슨 빽을 가지고 이 민족적 구원의 역사, 해방의 전위대에 설 수가 있었다고 보십니까? 오직 하나입니다. 지팡이입니다. 그날 하나님께서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물을실 때, <지팡이 뿐이니이다> 라고 답했던 그 지팡이를 들고 갔습니다. 자기 면전에서 코브라가 되게 하셨다가 다시 지팡이가 되게 하셨던 그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모세는 바로 앞에 섰습니다. <그날 모세는 애굽으로 돌아갔는데 그의 손에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있더라> 20절에서는 아주 분명하게 이 지팡이를 모세의 지팡이라 하지 않고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하셨습니다. 그후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손에 들려주셨던 그 지팡이를 가지고 애굽 땅에 10가지나 되는 재앙을 내립니다. 나일강 물을 피로 물들게 할 때 부터 시작하여 개구리 재앙 때도, 티끌을 이가 되게 할 때도, 우박재앙 때도, 흑암재앙 때도, 그리고 마침내 홍해를 가를 때에도 모세는 그 하나님의 지팡이를 내밀어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 냅니다. 처음 모세의 손에 들렸던 지팡이는 목동의 지팡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후에는 하나님의 손에 잡힌바 되어 하나님의 능력의 도구가 되어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니 홍해를 가르고 반석을 쳐서 물이 솟아나오게 됨은 물론이요, 영원히 이집트의 종이요, 사탄의 노예로 살아야 할 인간들을 구원하여 자유와 해방, 구원과 영생을 얻게 해 주시는 도구가 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모세와 똑같이 목동출신이었으나 훗날 이스라엘의 제 2대 왕이 된 다윗도 그 유명한 시편 23편에서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요.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이끄셨나이다>
흔히 모세의 일생은 3기로 나누어서 말합니다. 그는 120살까지 살았는데 처음 40년은 바로의 왕궁에서 호의호식하며 왕권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며 온갖 권세와 명예를 누리며 살았던 시기입니다. 당시 세계 최고의 문명국가 중 하나인 이집트의 왕실에서 최고의 교육과 호사를 누리며 금수저 출신이 아니면서도 금수저 처럼 살았습니다. 제 2기는 호렙산에 가서 처가살이를 하며 양을 치며 목자로 살았던 40년 세월입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의 중반기, 황금기인 40년을 겨우 먹고사는 정도로 만족하며 거칠은 사막에서 평범한 목동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40년, 제 3기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내는 기간입니다. 정치권력과 대결하고, 민족의 자유와 해방을 선도하며 뜻깊고 의미있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처음 왕궁에서 산 40년은 흔히 <하나님 없이 산 인생, Life without God> 이고 그 다음 호렙산에서 산 40년은 <자아 없이 산인생, Life without Himself> 이었으나 마지막 40년은 <하나님과 함께 산 인생, Life with God>이었습니다. 그의 인생 중 2/3는 물질적, 세속적, 인간적, 탐욕적으로 무가치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1/3은 영적사명을 다하며 창조적이고 유의미한 인생길을 걸었습니다. 사실 모세의 인생 중 처음 40년이란 겉으로 보기엔 그럴싸하고 멋지고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권세도 있고 지식도 쌓고, 쩡쩡거리는 위치에서 호의호식하면서 큰소리 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정말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귀와 영화, 권세와 명예, 다 헛되고 헛된 것들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내가 해 아래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보았노니 보라, 모든 것이 다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그 다음 모세의 인생 2기인 호렙산에서 지낸 40년 역시 별로 의미없는 인생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냥 먹고 사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별로 자랑 할 것도 없고 내놓을 것도 없는 인생길을 걸어왔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이 땅에서 산다는 것은 별거 아닙니다. 성공하고 출세하든, 그냥 평범한 서민으로 살든 인생이란 오십보 백보일 뿐입니다. 아무리 성공하고 출세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 큰소리 치며 쩡쩡거린다 하더라도 모든 것은 다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한국이나 미국의 대통령은 물론이고 이 땅에 권세 잡은 자들이 꼭 좀 깨달아 알기를 바랍니다. 몇년만 지나면 그들도 또 감옥에 갇힐지도 모릅니다.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마크 저커버그, 워런 버핏, 빌 게이츠 같은 부자들도 꼭 좀 깨달아 알기를 소원합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명예도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이요, 바람을 잡는 것이며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그럼, 그렇다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분명합니다. 인생 최대의 의미있고 가치있고 보람있는 삶이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과 얼굴을 맞대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는 것, 그것이 참으로 우리네 인생을 아름답게하고 성공으로 이끌고 가치있게 만들어 주는 정답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간과하지 말고 아주 신중하게 듣고 새기고 깨달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하나님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모세를 찾아오셨다는 점입니다. 인간이 발버둥치며 애쓰고 노력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친히, 직접 볼픔없이 막대기하나 들고 양이나 치면서 살아가는 우리를 찾아오시어 우리 이름을 불러주시고 우리를 향하여 <지금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 주실 때, 우리네 인생에는 놀랍고 새롭고 신비로운 새세계가 열려지게 됩니다. 여기엔 우리의 영적 예민성이 요구됩니다. 세미하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영적 감각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별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떨기나무를 통해서도 친히 찾아오시어 만나주시고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자각할 수 있었던 모세와 같이 우리 또한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현장 속에서 고요하고 세미하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드릴 때는 물론이지만 밥할 때, 설거지할 때, 청소할 때, 차를 몰고 운전할 때를 포함하여 우리 삶의 모든 순간 순간 속에서 나를 찾아오셔서 물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시어 동일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저는 오늘의 말씀을 준비하면서 여러분들도 익히 잘 아시고 계시는 톨스토이의 단편 <사랑이 있는 곳에는 신이 계신다>를 다시 읽었습니다. 구두쟁이 마르틴의 이야기입니다. 일찍 아내는 죽고 세살짜리 아들 또한 잃은 마르틴은 성경을 읽다가 예수님의 말씀과 삶에 크게 감명을 얻고 자기도 꼭 예수님 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추운 겨울 날 아침 마르틴은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야, 마르틴아, 내가 오늘 널 찾아갈테니 만나자!> 마르틴은 종일 구두를 수선하면서 언제 예수님이 오시려나 하면서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하루종일 기다려도 주님은 오시질 않고 그날 따라 정말 춥고 힘들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만 여럿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늙은 몸으로 그 추운 날씨에 청소하는 할아버지, 겨우 허름한 여름 옷 하나를 걸치고 어린애기를 안고 구걸하는 아줌마, 그리고 도둑으로 몰려 억울하게 경찰서로 막 끌려가는 어린 청년, 마르틴은 그날 이들을 모두 자기 구두방으로 데리고 와서 차와 빵을 대접하고 옷과 돈을 주며 사랑과 친절을 베풀어 주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구두방 문을 닫으면서 마르틴은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오신다더니 오시지도 않고, 참 이상하구나!> 그런데 그날 밤 이었습니다. 주님은 꿈결에 다시 마르틴에게 나타나셔서 이리 말씀하셨습니다. <야, 마르틴아, 오늘 참 고맙다. 내가 오늘 변장하여 할아버지와 애기엄마와 어린 소년으로 너를 찾아갔는데도 불구하고 네가 어쩜 그렇게도 나를 잘 알아보고 차와 빵, 옷과 돈, 그리고 무엇 보다도 사랑과 친절을 베풀어 주어서 참 대접 잘 받았다. 고맙다> 사랑과 베품이 있는 주님이 계십니다.
오늘 우리를 찾아오시어 만나주시는 하나님도 우리들에게 대단한 것을 묻거나 요구하지 아니하십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냥, 단순하게, 지금 내가 지니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으십니다. 동전 몇개, 김밥과 햄버거, 사과와 땅콩 몇알, 청소도구, 뜨개질 바늘 그리고 성경, 찬송, 볼펜, 종이 –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너희에게 빵이 얼마나 있느냐?> 예수께서 물으셨습니다. <여기 한 소년이 가지고 온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가 있나이다> 주님은 바로 그 적고 작은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5천 명을 먹이시고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게 바로 모세가 들었던 그 보잘 것 없는 지팡이로 홍해를 가른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다윗은 골리앗과 싸울 때 무엇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투구입니까? 칼입니까? 갑옷입니까? 아닙니다. 겨우 물매돌 5개였습니다. 소년 다윗이 가진 물매돌 5개도 모세의 손에 들렸던 지팡이와 같은 것입니다. 엘리사의 생도 중 하나가 죽었을 때 그의 아내가 찾아와 하소연을 했습니다. 빗쟁이들이 몰려와 자신과 두 아들을 종으로 삼으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물었습니다. <네 집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기름 한 병 뿐입니다> 엘리사는 말했습니다. <됐다. 이웃과 온 동네에 다니면서 빈그릇을 빌려와라. 그리고 그 그릇에 기름을 부어라> 그 여인은 엘리사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빌려온 병에 기름이 다 찰 때까지 기름은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엘리사는 말했습니다. <이젠 그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아이들과 함께 살아라> 꼭 금지팡이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한병 기름으로도 한 가정을 살리십니다. 꼭 신학대학에 가고 목사되고 박사학위를 받고 이름난 부흥사나 선교사가 되거나 뛰어난 목회자나 신학자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다. 그냥 지팡이만 있으면 됩니다. 그냥 보리떡과 물고기만 있어도 충분합니다. 그냥 물매돌 몇 개와 빈 기름병만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역사를 만들어 내십니다. 12제자를 짝지어 보내시면서 주님이 하신 명령은 지금도 여전히 효력있는 말씀입니다.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지 말아라>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 뿐입니다> 지난주 시드니에서 4번째로 콘써트를 갖었던 천인욱 선생과 마찬가지로 전신마비로 인해 평생을 휠체어에 앉아 노래해온 시인 송명희의 노랫말로 오늘의 말씀을 마치고져 합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없으나, / 나 남이 못보는 것 보았고, 나 남이 듣지 못한 음성 들었고, 나 남이 받지 못한 사랑 받았고, 나 남이 모르는 것 깨달았네. /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가진 것 없으나, 나 남이 없는 것 갖게 하셨네> 모세에게 물었던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던져진 질문입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지팡이 뿐입니다> 작은 지팡이! 그것만 있으면 됩니다. 재물, 지식, 건강 – 없어도 됩니다. 그냥 하나님만 바라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지팡이 하나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그외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