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여행일기

목회자 인문학교실 크루즈 일기 (1)
•<목회자 인문학교실>은 2017년 부터 시작된 <시드니 인문학교실>에서 파생되어 2023년 초 부터 모이기 시작한 작은 독서 모임이다. 이에 시드니에서 신앙과 인생길을 함께 하는 목회자들 몇몇이 매달 한번씩 첫째 화요일 오전에 호주미래대학 파라마타 캠퍼스에서 만나 인문학과 신학 이야기를 나누어왔다. 그동안 우리들은 손호현 교수가 쓴 <인문학으로 읽는 기독교 이야기>를 중심하여 성서와 해석학, 역사와 문학, 과학과 생명, 세계와 환경, 젠다와 성, 예술과 아름다움, 자본과 경제, 죽음과 테러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발제하고 토론하며 조금씩 생각의 지평을 넓혀왔다.
•이번 cruise에는 11명이 참가하여 3박 4일의 일정을 함께 했다. 목적은 3가지로 정리해 볼수 있다. 첫 번째는 피곤하고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쉼과 여유를 좀 가져보자는 것이요, 두 번째는 한달에 한번 갖는 모임에서는 늘 시간에 쫒겨 충분히 나누지 못한 이야기들을 좀 더 심도있게 나누어 보자는 것이었고, 세 번째는 피차 <살아온 인생 이야기와 생각들>을 허심탄회하게 나눔으로 좀더 서로를 이해하고 우리들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다.
•예약한 배는 Carnival Adventure였고 비용은 3박 4일 Ocean view 방향의 객실로 1인당 A$509 이었다. 이는 2인 1실 방과 전체 일정에 따른 식사가 모두 포함된 것이다. 일정은 6월 20일(금) 오후 시내 Circular Quay에서 출발하여 23일(월) 아침에 Balmain에 있는 White Bay로 돌아오는 것으로 그 기간 동안 우리가 탄 배는 한번도 기항하지 않고 N.S.W. 남부를 항해하는 스케줄로 되어 있었다.
•나는 인문학 교실에서 만이 아니라 평소 이런 저런 여행을 할 때 마다 여행일기를 써 왔다. 오늘 여기에 남겨두는 일기도 그런 습관에 따른 것이며 동시에 한 개인의 작은 흔적과 생각이 <인문학 친구들>에게 조그마한 보탬이나 자료가 되면 좋겠다 싶어서 부끄러움을 무룹쓰고 끼적거려 본다.

<2025. 6 .20 (금) 시드니 – 맑은 하늘에 공기는 차다 / At Sea – 맑고 파란 바다와 하늘>
오전 11시 반경 우리 부부는 동네에서 버스를 타고 Strathfield 역으로 나왔다. 거기에서 우리는 City Circle 기차로 갈아타고 Circular Quay에서 내렸다 한 10분쯤 걸어서 크루즈 터미날에 도착하니 오후 1시경이 되었다. 첵크인을 하는 입구에서 정원일 목사님 내외분과 장대호 목사님 내외분을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함께 첵크인을 하고 방을 배정 받았다. 3000명이나 타고 있는 이 거대한 유람선에서 8층 우리들의 방을 찿아오니 그 앞에서 우리는 옥주호 목사님 내외분, 임운규 목사님 내외분도 만나게 되었다. 우리 일행의 방들은 모두 8층에 이웃하고 있어서 참 좋다. 강성현 선생님 객실만 9층에 있었다. 객실에 들어와 보니 창문 앞이 탁티어져 있어서 무척 기분이 좋았다. 우리는 허리에 매는 가방만 가지고 와서 따로 짐을 붙이지는 않았고 그래서 모든 것이 간편했다. 2시가 채 되지 않았기에 우리는 모두 다 14층 식당으로 올라가 크루즈에서의 첫 점심을 함께했다.
다양한 음식들로 가득한 부폐식 이어서 선택의 폭도 넓었지만 무엇 보다도 마음과 생각을 함께 할 수 있는 인문학 친구들과 함께 몇일을 보낼 수 있게 되어 참 신이났다. 그동안 이번 크루즈를 위해 온 몸과 마음을 다해 준비하고 크고 작은 일들을 챙겨준 임운규 목사님과 사모님이 너무나 고맙다. 나는 우리팀의 크루즈를 예약해 주고 자상하게 안내해준 Sweet Tours에서 준 name tag를 나누어 드리고 모두들 거기에다 카드를 끼워 목에 걸었다.
점심 후 우리는 배의 여러 시설들을 둘러 보고 갑판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아름다운 시드니 시내를 바라보며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오후 4시가 되자 배는 고동을 울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선상의 날씨는 많이 찼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며 갑판 위에서 시드니 내항을 떠나 서서히 외항으로 나가는 뱃길을 바라보았다.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라고 불리우는 아름다운 시드니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350여개의 크고 작은 만들로 이루어져 있는 시드니 외항을 바라보는 동안 배는 서서히 North Head와 South Head를 벗어나 남태평양을 향하여 뱃머리를 돌렸다. 시드니의 겨울은 금새 어두워졌다. 멀리 Bondi Junction에서는 불빛이 반짝였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여행이다. 여행 중에서도 망망 대해를 향하여 움직이는 뱃여행이다. 인생이란 크루즈다. 우리는 지금 3천명의 승객들과 함께 천여명의 봉사자들을 따라 인생길을 헤치고 간다. 우리 배는 어느덧 남태평양으로 나왔다. 물결은 찰싹거리고 어둠은 온 천지을 뒤덮고 있다. 배안에는 넘치는 음식과 마실 것들을 포함하여 춤과 노래가 이어진다.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온갖 영상과 쇼들이 펼치어지고 있다. 여기엔 정말 없는 것이 없이 모든 것들이 가득하게 차려져있다. 그런데 우리는 눈을 돌려 밖을 바라본다. 여기는 대낮 처럼 환하지만 거기는 칠흑같은 어두움이 온 천지를 뒤덮고 있다. 여기는 즐겁지만 거기는 슬프다. 여기는 행복하지만 거긴 불행하다. 이곳엔 있지만 그곳엔 없고, 우리들은 노래하지만 거기에선 통곡하는 것이 인간 세상이다. 빛이 비치는 곳은 작은 섬이요, 우주는 영원히 어둠의 세력이 자리를 잡고 있다. 아마 크루즈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역사와 인생의 모습을 가장 잘 상징화하며 또한 그걸 제일 선명하게 보여주는 거울이 아닐까 싶다.
어느덧 저녁 식사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5층에 자리하고 있는 Water Front Restaurant에 모여 쓰리 코스로 준비된 저녁을 잘 대접받았다. 수백명의 승객들이 모여 노래하며 북적거렸다. 일부에선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흥겨워했다. 결혼기념과 생일, 가족들의 특별한 행사와 친구들의 자축 그리고 노인들의 안식과 평안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형태로 즐기고 있었다. 펌킨 숲이 참 맞있었다. 우리 부부는 닭고기와 생선요리를 주문하여 나누어 먹었다.
식후 7시 쯤, 우리 일행은 다시 14층에 있는 휴계석으로 자리를 옮겨 9시가 넘기까지 이야기의 꽃을 피웠다. 이야기의 주제는 <지금까지 내가 여행해 본 곳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곳 – 그래서 다시 가고 싶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었다. 우리는 태양계 밖 우주를 제외한 5대양 6대주를 모두 섭렵하다 싶이했다. 호주와 고국은 물론이고 아시아와 유럽, 남북미 대륙과 아프리카에 이르기 까지 끝없이 아름다운 세상의 파노라마가 펼치어졌다. 우리 부부는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상트 뻬떼르부르크 이야기를 입에 침이 마르도록 했다. 이젠 많이 늙어서 다시 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후배들에게는 <인생의 여행지>가 될만한 곳이라고 강추를 했다. 긴 시간 동안 특별한 장소가 주는 아름다움과 의미는 물론이고 자신만이 지닌 스토리들이 담긴 이야기들을 나누는 동안 우리들은 서로를 더욱 더 이해하게 되었고 인생을 공유하는데 커다란 보탬을 받게 되었다. 우린 아쉬운 마음을 안고 9시가 넘어 각자의 방으로 돌가며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좋은 꿈 꾸세요. 내일 아침 만나요>
여행 속에는 또 다른 여행이 있고 내가 던진 이야기 가운데는 나도 미쳐 몰랐던 더 깊은 스토리들이 담겨 있는 법이다. (계속)
홍길복 (2025.6. 26)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