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나의 이민목회 이야기 (4)
<나는 실패한 목사입니다>
도대체 성공이란 무엇인가? 정치가의 성공, 사업가의 성공, 의사의 성공, 교수의 성공, 배관공의 성공, 용접공의 성공, 미용사의 성공, 환경미화원의 성공, 아버지로서의 성공, 어머니로서의 성공 등등 직업과 신분에 따라 수많은 성공과 실패의 모습들이 있을 수 있겠다. ’成功’이란 ‘이룰 成’에다 ‘공덕 功’을 쓴다. ‘공을 쌓는 것’이 성공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말한다. ‘크게 출세하고 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성공이다’
성공에 대한 우수개 이야기들이나 명언들은 많이 전해진다. ‘10대엔 아버지가 성공하면 내 성공이고 20대엔 학벌이 좋으면 성공이다. 30대엔 좋은 직장을 얻으면 성공이고 40대에는 2차 쏠 정도이면 성공이다. 50대엔 공부 잘하는 자식을 두면 성공이고 60대엔 아직도 할일이 좀 있으면 성공이라 할 수 있다. 70대엔 건강만 해도 성공이고 80대엔 아직도 아내가 밥 차려 주면 크게 성공한 것이다. 90대엔 아직도 전화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성공이고 100세엔 아침에 눈을 뜨면 진짜로 성공한 인생이다’ 에머슨 (Ralph Waldo Emerson)은 말했다. “성공이란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이다. 성공한 인생이란 내가 태어날 때보다는 죽을 때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만들어 내고, 나 때문에 단 한 사람이라도 행복해지는 것이다” 워렌 버핏은 이런 말을 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사랑받는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다”
일반적으로 성공이란 정해 놓은, 혹은 정해진 그 어떤 목적을 달성하고, 그 목표에 도달했을때 부르는 말이다. 반대로 합의된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을 경우 우리는 그것을 실패라고 부른다. 물론 이 경우 그 목적 혹은 그 목표는 칸트식의 도덕적 타당성과 인문학적 합목적성을 지녀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다른 말로하면 정당하게 규정되거나 주어진 책무를 완성했으면 그것은 성공이고, 그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실패라고 할수 있다. 정치의 바른 목적, 사업의 최종적 목표, 교수나 학자의 진정한 자세, 아버지와 어머니의 책무와 역할, 목사와 선교사에게 주어진 사랑의 삶 등에서 우리는 무엇이 성공이고 또 무엇이 실패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
목회란 무엇인가? 영어로는 Ministry라고 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주로 ‘목회’라고 말하고 천주교에서는 ‘사목’이라고 말한다. 한자로 ‘칠 牧’ 자에다 ‘모을 會’를 쓴다. 사람들을 모아서 보호하고 인도하며 전인적으로 돌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한자나 우리 말에서 ‘목’ 자를 ‘칠 牧’로 사용하다 보니까 아주 권위주의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목사는 목자이고 교인들은 양이라는 도식이 만들어지게 되어 목사나 신부들은 자기가 교우들 보다 높은 위치에 있어서 그들을 가르치고 이끌어 가는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근본적으로 목사나 신부나 교우들 모두를 먹이고 인도하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목사도 신부도 다 예수 그리스도의 양이다. 따라서 목사라고 해서 목자가 아니다. 목사나 신부도 다 죄인이요 구원 받아야 할 존재요 주님의 보살핌과 긍휼을 필요로 하는 양떼 중 하나일 뿐이다. 목자인양 우쭐거리가나 잘난 척해서는 않된다. 원래 Ministry란 <친다, 이끈다, 먹인다, 보호한다>는 의미 보다는 섬긴다, <봉사한다, 섬긴다, 함께한다>는 뜻을 지닌 말이다. 목회자도 같은 양 떼 공동체에 속한 한 마리의 양으로서 다른 양 떼들과 함께 손에 손을 잡고 서로 서로를 섬기고 보살피는 것이 목회요 사역이다. 여기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모여진 공동체로서의 교회와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사랑으로 보살피는 일이다. 사회와 교회는 공동체이지만 그 공동체 속에 있는 사람들은 개인들이다. 목회란 개별적이고 개인적인 관계에서 시작된다. 목회란 자본주의 대량생산 체제와 대량 소비구조 체제가 아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와 신자유주의와 영합하는 초대형교회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닐 뿐만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을 섬기는 우상숭배 집단이다. 이런 교회는 원천적으로 사랑과 섬김의 목양구조가 될 수 없다. 사랑도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봉사도 이벤트로 조작하는 곳에서는 결코 참된 목양이 이루어 질 수가 없다. 목사가 나의 얼굴이나 이름 조차도 몰라주는 그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그 교회의 진짜 교인이 아니다. 동시에 그 사람이 내 교회의 교우인지도 모르는 목사는 이미 그 공동체의 참 목자일수도 없다. 목회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과 사람이 일대일로 사랑하고 사랑 받는 관계요 그것의 확장으로 지구 촌에 속한 모든 사람들을 품어주는 일이다. 목회란 삶이고 더불어 함께 사랑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일이다.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사랑과 의로움이 더해지는 세상을 향해 같이 먹고 자고, 일하고 놀면서 손잡고 살아가는 인생의 여행길이 목회다.
나는 여기에서 목회의 성공이란 과연 무엇일까, 목회에서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진정 무슨 의미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더 나아가 나는 진정 목표를 이룬 목회자인가, 나는 성공한 목회자인가, 자문하게 된다. 1968년 신학생이 되어 전도사란 소리를 듣기 시작한 후 1974년엔 목사가 되고 1980년 호주에 와서 2013년 목회에서 은퇴한 후와 그 전후 이곳 저곳에서 가르친답시며 나서대면서 살아온 50여년이 넘는 내 인생길을 되돌아본다. 지난 날 나의 목회와 인생을 되돌아보며 자문하게 된다. 나는 어떤 목사인가? 나는 어떤 인간인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가 함께 결합되어야 한다고 본다. 하나는 <하느님을 믿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 가는 일>이다. <믿는 것>과 그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다. 믿음은 한번의 고백이고 삶은 그 고백에 따른 연속적 행동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뒤돌아보니 나는 <하느님을 믿는 일>은 그런대 잘 해 왔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하느님은 살아계시고, 인간과 우주만물의 창조주요, 주인이시며, 사랑과 공의의 하느님이시며, 역사의 마지막 심판자이심을 믿는다. 그런데 나는 그 믿음의 터전 위에서서 예수님이 가신 발자취를 따라 가지는 못한 사람이다. 예수님 처럼 살지를 못했다. 내 몫에 대인 십자가를 지고 산 사람이 아니었다. 이웃을 내 몸 처럼 사랑하지 못했다. 입으로 믿고 고백하는 데 까지는 이르렀지만 내 삶을 통하여 주님 가신 길을 따라가지는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실패한 목사요, 실패한 인간이다. 나는 부끄러운 목사다. (계속)
<위의 글은 홍길복의 은퇴기념문집 “호주 디아스포라 목회와 신학” 한국장로교출판사 발행, 2014년판, 80쪽에서 85쪽 사이에서 옮겨온 글입니다>
*홍길복 (2025.10. 20) 나의 이민목회 이야기 (4)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