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노자의 도덕경 (道德經) 중에서
• 얼마전 시드니 인문학교실에는 김춘택 선생님께서 오시어 노자 (老子)의 도덕경 (道德經)에 대한 강의와 해설을 곁들여 유익한 말씀을 전해 주셨다. 또 요즘 우리 교실에서는 최진 선생님께서 신영복 선생의 <담론>을 중심하여 노장철학의 현대적 해설을 자상하게 일러주셨다. 이때 배운 노자의 도덕경과 최근 펑유란의 <간명한 중국 철학사, 정인재 옮김 2018> 노자편에서 읽은 귀절들 몇개를 여기 잡기장에 남겨 놓는다. 이는 복잡다단하고 긴 고대 중국철학사 이야기가 아니라 별로 긴 설명을 요하지 않는 잠언들이고 경귀들이다.
• 물극필반 (物極必反) – 세상 모든 것은 반듯이 반전의 때가 오게 마련이다. 커진 것은 반듯이 작아지고, 작은 것은 꼭 커질 때가 있다. 떠나 간 것은 반듯이 돌아오고, 가까이 있는 것은 언젠가 멀어질 때가 온다. 화 곁에는 복이 있고, 복 속에는 꼭 화가 있다. 적은 것도 언젠가는 많아지게 되고, 많은 것 역시 꼭 적어질 날이오고 없어질 때가 오는 법이다. 살아있는 것은 죽게 마련이고, 죽은 것은 다시 살아나게 되어 있다. 모든 인위적이고 인공적인 것들은 결코 자연적 순리를 이길 수가 없다. 이것이 만물의 이치다.
• 무위이무불위 (無爲而無不爲) –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다 되게 되어있다. 억지로 기쓰며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것은 다 때가 되면 저절로 이루어진다. <자연과 인간 세상과 삼라만상은 그냥 가만히 놔두어도 때가 되면 다 스스로 변하고, 제 자리를 찿아가고,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게 되어 있다> – 정치든, 경제든, 문화든, 그 무엇이든간에 인간 세상은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한다. 인위적으로, 억지로, 조급한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려고 하면 그릇치게 된다. 이것이 도가 사상의 정수 중 하나다.
• 상선약수 (上善若水) – 그 뒤에 이어지는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畿於道, 수선리만물이부쟁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 라는 귀절도 여기 써둔다. 최고의 선이란 물과 같다. 물은 착하고 선하다. 그래서 만물을 이롭게해 준다. 물은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일체 그 자리를 다투지 않는다. 억지로 남을 눌러 그 위에 올라서려고 하지 않고 무리해서 더 높은 자리로 올라가 자리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물은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내려가길 좋아한다. 물은 더 이상 내려 갈데가 없을 때 까지 끊임없이 내려간다. 진실로 물이야말로 최고로 선한 것이며 가장 道에 가까운 것이다.
• 지자불언 언자부지 (知者不言 言者不知) –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함이로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일체 말이 없이 조용히 있지만, 말이 많은 사람은 알지 못하기에 오히려 떠들어댄다. 침묵은 금과 같지만 다언은 먼지와 같은 것이다. 입 다물고 조용히 있으면 중간 쯤은 간다. 알지도 못하면서 이렇쿵 저렇쿵 떠벌리다간 망신만 당하게 된다. 말 많은 사람을 보면 그의 천박함이 드러나고 과묵한 사람을 보면 그의 진중함과 겸손이 나타난다.
• 지족불욕 지지불태 (知足不辱 知止不殆) – <만족할 둘 알게 되면 욕먹는 일은 없어지고, 멈출 줄을 알면 위태로운 일을 당하게 되지는 않는다> 적당한 선에서 스스로 멈출줄 알아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동안 쌓아온 명예도 땅에 떨어지게 되고 오히려 더 큰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인간이란 탐욕적 존재이다. 그리고 그 탐욕은 끝이 없다. 인간의 비극 중 하나는 멈출 줄 모르는 것이다. 인간은 자동 제어기가 없는 기계와 같아서 오직 돌진만 한다. <하면 된다. 불가능은 없다>는 선전과 선동에 쉽게 속아넘어간다. <인간에게는 해도 해도 못하는 것이 있다.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가능한 일 보다 훨씬 더 많다>
• 다언삭궁 (多言數窮) – 말이 많으면 꼭 궁지에 빠지게 된다. 앞에서 쓴 知者不言 言者不知와 비슷한 말이다.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영조 때 김천택이 편찬한 <청구영언, 靑丘永言>에는 이런 귀절이 있다. <말하기 좋다하여 남의 말 말 것이니, 내 남의 말하면 남도 내 말 할 것이니,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종교인인 저 역시 정치인들과 흡사하여 <교언영색, 巧言令色 – 말은 그럴듯하게 하고 얼굴은 착해 보이지만 말로써 다른 사람을 속이고 실천하지도 못 할 말을 늘어놓는다>하고, <구밀복검, 口蜜腹劍 – 입에는 꿀을 바르고 배 속에는 칼을 품고 있는 인간 같아서 겉으로는 웃으며 친절한 것 같지만 마음 속으로는 어떻게든지 이겨 볼려는 심보를 지닌 인간> 한 인간이기에 부끄럽기가 한이 없어 얼굴을 들기가 어렵다.
• 사이불망자수 (死而不妄者壽) – 죽어서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잊혀지지 아니하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노자가 남긴 이 말의 앞 귀절은 이렇게 되어 있다. <불실기소자구, 사이불망자수 不失基所者久. 死而不亡者壽 – 인간이 반드시 서 있어야 할 그의 자리, 위치, 근본을 잃지 않는 사람은 죽어도 결코 잊혀지지 아니할 것이다> 육신의 몸은 비록 죽어서 사라진다 하더라도 역사를 통하여 영원히 잊혀지지 아니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자기를 알아야한다. 자기의 신분, 위치, 본질, 속성을 아는 자가 죽어도 죽지 않는 사람이다.
• 지부지상 부지지병 (知不知上 不知知病) –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하는 것이 제일 좋은 삶의 태도요, 모르면서도 아는 척하는 것은 아주 몹쓸 병에 걸린 것이다. 인간 삶의 핵심은 겸손이다. 타인 앞에서는 물론이고 자연 앞에서 까지도 머리를 숙일 줄 알아야한다.
• 절학무우 (絶學無憂) – <학문을 끊어버리고 나니 마침내 근심과 걱정도 없어지는 구나!> <아는 것이 병이요. 모르는 것이 약이다. 하나라도 더 알려고 애쓰는 것은 그 자체로써도 고통스런 일이지만 더 나아가 많은 지식이 오히려 우리의 삶을 근심과 걱정으로 채운다>
• 낙엽귀근 (落葉歸根) – <떨어진 나뭇잎은 다시 뿌리로 돌아간다> 떨어진 낙엽은 뿌리를 위해 자양분이 되고, 뿌리는 그 낙엽을 먹으며 꽃을 피운다. 모든 것은 다 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원인은 결과를 낳고 결과는 또 다른 원인을 만들게 된다.
• 유약승강강 (柔弱勝剛强) – <부드럽고 약한 것이 오히려 굳세고 강한 것을 이겨낸다> 부드럽고 유약한 것은 휘어질 지언정 부러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걷으로 보기에 힘있고 강한 것은 오히려 더 쉽게 부러지게 마련이다. 힘 자랑하지 말아라. 겸손하게 머리 숙이는 법을 배워라. 최후의 승리는 겸손하게 머리 숙이는 사람에게로 돌아간다.
• 무위지치 (無爲之治) –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제일 잘 다스리는 정치다> 너무 많은 공약을 남발하고 지나치게 이것 저것 일을 벌리고 애쓰고 노력하는 사람은 일을 이루어 낼 확률 보다 오히려 벌려놓은 일들을 망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정치가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좋다. 모든 것은 백성들이 스스로 알아서 정치가 보다 훨씬 더 잘 처리해 나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찌 정치의 영역에서만 그럴 것인가?
<김춘택 선생님과 유여 최진 선생님으로 부터 노자의 도덕경 강해를 통한 동양사상의 진수를 새롭게 배우며 생각의 폭이 조금은 더 넓혀지는 듯합니다. 우리 시드니 인문학교실에서는 지금까지 주로 서양철학을 중심한 자연과 인간과 사회, 그리고 인간 이성과 실천에 집중해 왔었는데 동양적 사유의 세계를 통하여 새로운 안목을 열어주셨습니다. 거기에다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에 몸담고 살아온 사람으로써 서구의 긍정적이고 진취적이고 정복자적 세계관과 역사관에 많이 매몰되어 왔던 사람으로써 다시 한번 더 생각을 새롭게 하며 그 깊이를 더하게 되었습니다. 동양과 서양, 있음과 없음, 행위와 무위 사이에서의 균형과 조화를 더욱 더 고민할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김춘택 선생님과 최진 선생님은 강의 중에 우리들이 질문을 하거나 이견이나 의견을 제시하면 자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모르지요. 제가 뭐 아나요. 잘 모르겠어요>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런 말씀들은 단순히 인간적 겸손의 모습을 넘어서 동양사상의 한 뿌리인 道의 경지에 이르신 음성 처럼 들려왔습니다. *>
홍길복 (2025.5.20)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