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다섯 손가락
지난 해 한국에 살고 있는 가까운 지인이 모처럼 시드니를 방문했습니다. 여러가지 선물들을 가져다 주셨는데 그 중에는 여러 권의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책들도 있었습니다. 사람이 늙어가면 어린아이처럼 되어간다더니 저에게도 다시 찾아내야 할 어린이 같은 동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셨나 봅니다. 선물로 주신 동화책 중에는 권정생 선생의 <강아지 똥> <하느님의 눈물> <도토리 예배당 종지기 아저씨>를 비롯하여 이미륵의 <이미륵 이야기>와 <무던이>, 그리고 송재찬의 <돌아온 진도개 백구>, 안녕달의 <수박 수영장>, 정채봉의 <모세암>과 함께 <다섯 손가락>이란 동화책들이 있어서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마침 한국에선 오늘이 어린이날로 지키는 날이어서 읽은 동화들 중에서 <다섯 손가락>이야기를 잡기장으로 남겨둡니다.
•<다섯 손가락, 5 Fingers>은 셀마 운글라우베가 동화를 쓰고 브루나 바로스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한국어판은 강인경이 옮겼으며 2016년에 미디어 창비에서 첫 출간한 불과 56쪽 짜리 작은 그림 동화책입니다. 그러나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이 셀마 운글라우베의 <다섯 손가락> 외에도 <다섯 손가락과 다섯 발가락>을 비롯하여 영어나 한글로 쓰여진 비슷한 동화집들을 참 많이 발견 할수 있습니다.

•<다섯 손가락>의 스토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장애가 있으신 분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손가락이 다섯 개가 있습니다. 보통 첫째는 <엄지 손가락>, 둘째는 <집게 손가락>, 셋째는 <중지 손가락>, 넷째는 <약지 손가락> 그리고 다섯째는 <새끼 손가락>이라고 부릅니다.
어느날 엄지 손가락이 자기 손가락을 치켜들면서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야, 너희들 잘 들어! 내가 우리 다섯 손가락 중에서 최고야! 내가 제일 굵고 또 힘도 제일 세잖아!”
그러자 집게가 나섰습니다. “무슨 소리야! 저기 저기 좀 봐! 누가 방향을 알려주니? 내가 없으면 사람들은 아무데도 못 보고, 아무 데도 갈수가 없어! 내가 최고야!”
이번엔 가운데 손가락, 중지가 나서서 말했습니다. “얘들아! 우리 다섯 중에서 누가 제일 키가 크니? 우리 한번 대보자구! 내가 제일 크지? 맞지? 내가 최고야!”
그 때 약지가 나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봐! 사람들이 반지를 낄 때 어디에다 끼니? 은반지, 금반지, 다이아몬드반지 모두 다 나한테 끼워 주잖아? 나는 사랑의 상징이고, 또 최고로 사랑 받는 손가락이야! 똑똑히 알아야 되! 내가 최고야!”
마침내 말없이 듣고만 있던 새끼 손가락이 나섰습니다. “얘들아! 사람들이 서로 약속할 때 어디를 잡고 약속하니? 사람들은 약속할 땐 꼭 새끼 손가락을 걸고 약속하고 맹세하잖아! 나는 우리 다섯 손가락 중에서 키는 제일 작지만 제일 믿을만 한 손가락이야! 내가 최고로 중요한 손가락이야!”
그런데 이 때까지 그 모든 말을 조용히 듣고만 있던 손바닥이 나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서로 싸우지 마라! 너희들은 모두들 자기가 최고라고 큰 소리치지만, 나 손바닥이 있으니까 너희들이 있는 거야! 너희들은 모두 다 손바닥인 나한테 붙어있는 거야! 손바닥이 없으면 너희들은 어디가서 뽑내고 자랑할 수가 있겠니?”
손바닥이 하는 이 말을 들은 다섯개의 손가락들은 마침내 부끄러워 하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맞다, 맞아! 우리는 모두 다 한 손바닥에 함께 묶여서 그냥 우리 각자의 몫을 감당하는 손가락이다!” 그날 부터 다섯개의 손가락들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등을 뒤로 뻣뻣하게 젖히지 않고 늘 앞으로만 구부러지면서 겸손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동화는 이렇게 단순한 이야기로 끝나고 일체 다른 사족을 붙이지 않고 있지만 이 작은 그림 동화책을 덮으면서 저는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많은 깨우침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개인이든 민족과 나라이든 모두 제각기 다른 특징과 장점과 단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섯개의 손가락과 다섯개의 발가락이 다 다르듯이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인종과 언어, 색갈과 생김새, 전통과 문화, 종교와 역사 – 그 어느 것 하나도 똑같은 것은 없고 모두들 제각기 입니다. 5개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그 크기와 생김새, 그 역활과 기능이 제각기 이듯이 세계 80억 인구와 200개의 나라와 민족은 저마다의 장단점과 다른 역활과 기능을 지니고 있습니다. 나와 생김새와 언어와 생활 방식과 습관과 생각이 다르고 해서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다른 것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닙니다.
문화, 음식, 옷과 모자, 언어와 종교만해도 5개가 뭡니까? 수십, 수백개도 더 되는 다양한 것들이 함께 있어서 이 세상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종교인인 저만해도 이 세상에는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유대교 같은 5개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함께 있어서 서로를 받쳐주고 밀어주고 보완해 주어서 세상은 더욱 더 아름다운게 아니겠습니까? 물론 저는 밥과 김치를 주로 먹지만 이 세상에는 우리가 일일이 그 이름도 모르는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여러가지 음식들이 있어서 우리를 즐겁게 해 줍니다.
저마다 자기가 지니고 있는 것을 가지고 뽑낼 수도 있고 자랑할 수는 있습니다. 엄지는 엄지대로, 중지는 중지대로 그리고 새끼는 새끼대로, 그들 나름대로의 특징들이 있기에 그들은 <자기를 내세우며 자랑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섯개의 손가락들이 손바닥을 중심삼아 서로 힘을 합치면 또다른 새로운 일, 더 크고 보람있는 일을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다. 다섯개의 손가락들은 불끈 주먹을 쥐고 적을 몰아낼 수도 있습니다. 손을 펼치어 앞에 있는 사람을 안아주거나 쓰다듬어 줄 수도 있습니다. 손을 모아 악수도 할 수 있고 주거나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섯 손가락은 힘을 모아 쓸어져가는 사람을 힘있게 붙잡아 일으겨 줄 수도 있습니다.
이는 공존과 공생의 이야기입니다. 균형과 조화를 통해 평화를 이루어 가는 스토리입니다. 세계는 백인들만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황인과 흑인들도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서구 문화만이 절대적이거나 최고가 아닙니다. 아프리카나 동양문화도 똑같이 존중 받아야 합니다. 여당이나 야당은 서로 죽이고 없애버려야 상대라고 생각해서는 않됩니다. 당신이 있어서 내가 있는 것이고, 내가 있음으로 당신도 있는 것입니다. 자본가나 기업인들의 방식만 최고는 아닙니다. 노동자들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합니다. 당신이 몸담고 있는 종교만이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는 않됩니다. 다른 종교도 내가 모르는 심오한 진리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America First – 옳치 않습니다. 엄지척 하면서 자기만 최고라고 자랑하는 것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세상과 국가를 마치 자기가 하던 비지니스 처럼 만들면 않됩니다. 인간성 속에 도사리고 있는 이기적 DNA를 국가와 민족으로 까지 넓혀 나가는 것은 절대로 옳은 태도가 아닙니다. 오스트랄리아는 180여개 나라에서 온 다양한 배경을 지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를 엮어 가느라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극단을 배제하고 조화를 이루어 가는 세상,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세상 – Living Together>을 위하여 애쓰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이상적일지는 몰라도 그래도 이런 무지개 꿈을 지닌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얺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마침 지난주말 호주에서는 연방 의회를 다시 구성하는 총선거가 있었습니다. 야당에서는 지난해 미국이 펼쳤던 MAGA – Make America Great Again을 따라서 MAGA – Make Australia Great Again을 선거 구호로 외쳤던 야당이 참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다섯개의 손가락들이 제 자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서로 힘을 합하여, 서로 돕고, 서로 얼싸안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들의 꿈입니다.
인간 세상에는 그 어느 한 사람도 소중하지 않은 존재란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병든 사람도, 장애를 지닌 사람도, 늙은 사람도, 젊은 사람도, 흑인도, 백인도, 황인도 다함께 이 세상을 조화롭고 평화로운 세상으로 만드는데 없어서는 않될 꼭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국적과 인종, 피부색과 언어, 빈부유무식, 남녀노소 그리고 생각이나 종교 까지도 넘어서서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함께 공생하고 공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찌기 칸트가 말한대로 <그 어떤 사람도 절대로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해야 합니다>
함께하는 단체운동에는 여러 명의 선수들이 있습니다. 물론 그들 각자에게는 제각기 다른 포지션과 역활이 주어져 있습니다. 수비도 있고 공격도 있습니다. 투수도 있고 포수도 있습니다. 외야수도 있고 내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팀의 인원이 5명이든, 9명이든 11명이든, 그들에게는 제각기 주어진 포지션은 다르다 하더라도 자신의 팀을 위해서 함께 뛰고, 함께 힘을 모아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자기 혼자서만 이기고, 팀은 지는 경우란 없습니다. 져도 같이 지고 이겨도 같이 이기는 것이 팀웤입니다. 공생공사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정원에는 한가지 꽃만 피어있지 않습니다. 튤립과 장미, 무궁화와 사꾸라를 비롯한 다양한 색갈과 다양한 모양의 꽃들이 있어서 더욱 더 향기를 발합니다. 샐러드 볼에는 한가지 과일이나 한가지 채소만 담기지는 않습니다. 사과, 포도, 복숭아, 체리, 당근, 오이, 무, 배추 등등이 함께 섞이어 맛있는 샐러드를 만들어 냅니다.
다섯개의 손가락은 모두 다릅니다. 크기, 굵기, 길이, 생김새는 물론이고 각자에게 주어진 기능과 역활도 다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다 한 손바닥 안에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여럿이면서 또 하나입니다. <다섯 손가락> 이야기는 어린이 동화를 넘어서 어른들도 꼭 읽었으면 하는 아름다운 이야기입니다. 특별히 우리 처럼 다문화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린이들 뿐만이 아니라 모든 어른들도 꼭 읽고, 깊이 생각해 보고, 서로를 보듬어 주면서 살아야 할 이야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
홍길복 (2025. 5. 5)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