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아침 그리고 저녁
(욘 포세 저, 문학동네 출판, 2019년)
<아침과 저녁, Morgon og Kveld>은 노르웨이 소설가 욘 포세 (Jon Fosse)가 쓴 아주 짧은 장편소설이다. <짧은 장편 소설>이라고 써놓고보니 확실히 형용모순이다. 꼭 앞과 뒤가 전혀 맞지 않게 살아온 내 인생을 표현하는 말 같기도 하다. <아름다운 추함> <거룩한 더러움> <합리적 비합리성> 같은 것이 내 인생길을 그려내는 말이 아니가 싶어서 그런 생각이 든다. 욘 포세는 이 작품으로 지난 2023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한국어 번역은 박경희선생이 했고 2019년 문학동네가 출판했다.
장편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중편, 혹은 단편소설이라 할 만큼 매우 짧은 작품이다. 한국어 번역본은 총 길이가 135쪽에 지나지 않는다. 이 소설은 노르웨이의 한 작은 해안가에서 어부로 일하는 주인공 요한네스의 출생과 죽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2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중 1부는 요한네스가 태어나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모두 29쪽에 이른다. 나머지 2부는 그가 죽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모두 백여쪽 쯤 된다. 출생과 살아온 인생살이 이야기는 1/3 정도인데 얼마 않되는 마침과 죽음에 이르는 스토리는 2/3에 이른다. 욘 포세는 왜 그렇게 배치했을까?

작가 욘 포세는 주인공 요하네스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출생 이야기와 또 그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두개의 스토리를 통하여 모든 인간 개개인과 역사의 생성과 소멸, 삶과 죽음, 흥함과 망함, 있음과 없어짐의 문제를 깊이 있게 생각해 보도록 이끌어 주고 있다. 그는 아마도 <모든 삶 속에는 죽음이 담겨 있고, 모든 죽음은 처음부터 확정된 것이고 모든 인간 역사란 반듯이 출발과 마침, 성장과 소멸이 함께 하고 연이어짐>을 밝히려고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소설의 구성상 특징은 중간에 거이 마침표가 없이 그냥 쉼표로 문장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긴 문장과 문장들 사이엔 계속하여 퍽 긴 침묵이 이어진다. 욘 포세는 인생이란 결코 마침표로는 끝을 낼 수 없는 연속성을 지닌 것이며 우린 오직 그 가운데서 말없는 혹은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침묵의 세계를 통과하고 있음을 그의 마침표 없는 문장들을 통하여 증언하는 것이라고 해석해 본다. 때로 그에게 있어서, 침묵이란 <이미 다 말해 버렸기 때문에 다시는 말 할 필요가 없는 또 다른 방식의 언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가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사실 <그것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소설에서 나는 밑줄을 쳐 둔 부분도 그리 많지 않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신은 존재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 멀리 있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너무 가까이 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아예 자기 가슴속에 모시고 있을 뿐이다>
<에르나는 이미 가고 지금 없는데 그가 쓰던 빨래통은 여전히 남아 있구나! 그런 것이다. 사람은 가고 사물은 남는다>
<목적지가 있나? 없어! 그곳은 장소가 아니야!>
<그곳은 좋은가?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어! 그냥 고요하고 잔잔하고 빛나는 곳이야!>
나는 아침에 <아침과 저녁>을 펼쳐들었는데 아직도 햇살이 따스하게 비쳐오는 오후가 되자 이 <아주 짧은 장편 소설>의 책장을 덮었다. 소설은 단편이지만 생각은 장편으로 이끌어 준다. 나는 혼자서 실없이 중얼거렸다. <아직 저녁이 될려면 좀더 남은 것 같은데, 그런데도 잘 시간이 벌써 가까워지는가 보군, 그럼, 그렇지, 그렇고 말구, 나도 이젠 잠 잘 때가 다 됐지 뭐! 저녁이 되었으니까!> 오스트랄리아는 겨울철이 되면 저녁 5시 쯤엔 어둑어둑해진다. 나는 보통 8시경엔 침실로 들어간다. 이젠 육체의 잠만이 아니라 인생도 수면 시간이 되었다. 어언 80을 넘었으니까. 저녁 8시와 인생 80이 신비하게 교차된다. 나는 저녁 잠 자리에 들 때 마다 중얼거린다. <자, 이젠 죽으러 가자!> 그리고 아침에 눈을 뜨면 또 중얼거린다. <애이구, 오늘도 죽지 않고 다시 부활했네!> 그런데 그 날도 역시 저녁은 금새 찾아오고 나는 또 중얼거린다. <자, 이젠 또 죽으러 가자!>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은 나를 날마다 죽이고 날마다 다시 살린다. 나를 날마다 살리고 날마다 다시 죽인다. (끝) *홍길복 (2024. 6)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