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복 목사의 잡기장

차이의 존중
•조나단 색스 (Jonathan Sacks)가 지은 <차이의 존중>이라고 번역된 이 책의 원제목은 – How to Avoid the Clash of Civilization 으로 되어 있다. <문명간의 충돌을 피하는 길 – 차이의 존중>이라는 말이다. 초판은 2002년 미국의 Continuum에서 발간되었는데 우리말 번역의 초판은 2007년 <말글빛냄>에서 임서재님의 번역으로 나왔다. 내가 읽은 번역본은 2012년 제 10쇄 판이다.
•저자 조나단 색스는 유대인인데 특별히 보수적 정통파 유대교인이다. 런던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예시바 에츠 체임에서 랍비로 서품을 받은 후 런던 유대인 대학의 총장을 역임했다. 30여권의 책을 저술했는데 2016년엔 템플턴상을 받았고 영국 왕실로 부터 남작의 작위를 받기도 했다. 2020년 72세로 별세했다. 나는 이 책을 읽은 후 저자는 우리 시대의 한 양심적 지성인이며 균형잡힌 상식인이라고 평가한다.
•이 책의 욧점은 오늘날 극단주의로 치닫는 시대를 극복해내는 길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이해하고, 받아드리는 데 있음을 밝히는 데 있다. 책의 제목 그대로이다. <문명 사이의 충돌을 피하는 길은 서로간의 차이를 존중하는 길 뿐이다>
•이 책의 핵심은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다. <서로 다른 것은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인간 세상에는 서로 다른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인종, 언어, 생각, 삶의 방식과 태도, 습관, 전통, 관습, 종교 등등 모든 것이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서로 다른 점들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용납하지 못함으로 피차 갈등을 빗게 되고, 충돌하고, 더 나아가 사람을 죽이는데 까지 이르게 되다가 마침내 이것이 집단과 집단 사이로 까지 확대되면 테러나 전쟁을 불러오게 된다>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니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 이 책은 우리의 이런 공통적 고민을 해소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란 점을 알고, 이해하고,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나와 다른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그를 존중하게 되고, 그를 존중하게 되면 사랑하게 되고, 서로 사랑하게 되면 그때 우리에겐 평화가 온다> 조나단 색스는 이 극단주의가 판을 치는 세상에서 마음을 넓혀 너그러운 마음, 즉 관용의 정신을 갖고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자고 부르짖는다. 특히 그는 자기 자신 또한 종교인으로써 이런 상호 이해와 존중, 사랑과 평화는 서로 다른 종교를 지닌 신앙인들 사이에서 제일 크게 요구되며 지금 이들 종교인들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차이를 존중 하는 것>임을 강조한다.

다음은 최근 내가 <차이의 존중>을 다시 읽으면서 밑줄을 쳐놓은 글 중에서 약간은 내 나름으로 다듬어서 옮겨 적은 것들이다.
•인간들은 오랫동안 <하느님의 이름으로> 서로 싸우고 죽이고 피를 흘려왔다. 이집트, 수메르,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가나안에 이르기 까지 인간들은 늘 그들이 믿는 신들의 이름으로 전쟁을 치루어 왔다. 지난날 인간들이 일으킨 전쟁들은 모두가 신들의 대리전이었다.
•종교는 갈등의 원천이 아니라 평화를 앞당기는 힘이 되어야 하는데 지난날 종교의 역사는 늘 그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개인적으로 지닌 종교적 신앙은 일정 부분 마음의 평화나 안정을 가져다 주는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그 종교가 집단, 즉 부족, 공동체, 국가의 것이 되어, 개인적 신앙을 집단화 시키게 되면 늘 다투고 싸우고 죽고 죽이는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성서가 말하고 있는 유일신 사상의 뿌리를 자세히 더듬어 보면 거기엔 차이에 대한 존경심이 깊이 자리하고 있다.
•2001년 세계무역센타를 무참하게 파괴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죽인 테러범들은 종교적 열정과 불붙는 신앙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었다. 뜨거운 신앙심은 칭송 받을 만한 일이 아니라 무섭고 두려운 일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종교들은 자기집단, 혹은 자기집단에게 우호적인 사람들과만 대화를나눈다. 유대인들은 유대교도들에게,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들에게, 이슬람교도들은 이슬람교도들과만 서로 말을 건넨다. 그것은 정치인도 그렇고 경제인들도 그렇고 심지어는 학자들도 그렇다. 우리는 Broadcasting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Narrowcasting하는 사람들이다.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들과만 대화하고,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는 논쟁을 벌리고 싸움을 하려고 든다. 하느님은 이사야에게 <우리가 서로 변론해 보자, 이사야 1:18>라고 하시면서 서로 이야기 좀 해보자고 하셨는데 인간들은 늘 자기 말만 들으라고 하면서 대화에 벽을 쌓고 있다.
•대결과 싸움은 뉴스가 되지만 화해와 관용은 전혀 뉴스가 못되는 세상이 되었다. 나와 신앙이 다른 사람들을 꼭 내가 가진 신앙을 갖도록 만들려고 하면 갈등과 다틈이 생기게 된다. 그럴 때 우리는 그냥 그대로 그들의 신앙도 인정해 주고, 함께 살아가면서, 그들 역시도 우리 못지 않게 훌륭하고 좋은 사람들임을 인정하고 사랑으로 그들을 보듬어주면 이 세상에 평화는 좀 더 가까이 오게 될 것이다.
•2000년 8월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는 약 2천명 정도의 서로 다른 종교지도자들이 모였다. 티베트 승려들의 선황색 승복, 일본 신도교 지도자들의 회색 예복, 수피교 지도자들의 독특한 모자, 시크교 승려들의 터번, 이슬람 이맘들의 검정색 예복, 스웨덴 북부에서 순록을 키우는 램족의 붉고 푸른 성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독수리 깃털로 만든 머리 장식, 아프리카 승려들의 자줏빛 로브, 영국성공회 성직자들의 옷깃 등등… 그 수많은 다른 문양과 색깔의 성의와 예복들이 가져다 주는 차이는 우리의 주변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것들을 꼭 하나로 통일하여 오직 하나의 디자인과 색상으로 된 성의만 입게 해야 한다고 주장 할 것인가? 그것은 옳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다. 다른 종교, 다른 예복, 다른 예배의식 가운데서도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인류의 미래에 대하여 공동의 책임을 키워나갈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조건 자기집단 혹은 자기 종교에 대한 헌신만을 강요해온 부족주의적 신앙은 늘 우리 사회를 분열시켜왔고 불행하게 만들어 왔다.
•극단주의자들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꺼히 자살도 감행하지만, 그런 자들은 결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
•<우리는 평화를 추구한다. 우리의 경전은 평화를 가르친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과 우리의 경전을 진리로 받아드리는 사람들에게는 평화가 올 것이다>라고 외치면서 자기들의 종교만 평화의 종교인양 외치는 자들은 결코 평화를 이루어 낼 수가 없다. 평화는 신앙이 다르고, 경전이 다른 사람들도 기꺼이 이해해 주고 관용으로 안아줄 때 이루어지는 것이다.
•종교는 불과 같다. 따뜻하게도 해 주지만 순식간에 모든 것을 태워버리기도 한다.
•내가 이 책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다음 7개의 C자로 요약해 볼수 있다. 1) Control (통제), 2) Contribution (공헌), 3) Creativity (창조성), 4) Co-operation (협동), 5) Compassion (자선과 공감), 6) Conservation (보존), 7) Covenant (언약)
•하느님을 잘 섬기기 위해서는 꼭 유대인이 되거나 유대교를 믿어야만 하는가? 아니다. 흔히 하느님은 한분이시기에 구원에 이르는 길도 하나라고 하지만, 아니다. 하느님은 유일성 (Unity)를 지닌 분이시지만 다양한 모습으로 숭배 받기를 기뻐하신다.
•우리에게는 <공동의 신학>도 필요하지만 개개인의 서로 다른 <차이의 인류보편의 신학>도 함께 필요하다.
•세상은 하나의 기계가 아니다. 세상은 다양한 생물, 다양한 사람, 다양한 문화, 다양한종교들이 공존하는 복잡한 생태공동체이다. 우리가 만약 어떤 근본주의 신앙에 사로잡혀 인류의 다양성을 무너뜨릴려고 한다면 이 세상은 붕괴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보편이 아니라 특수에 주의를 기울일줄 알아야 한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며 세상을 해석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대화할 수 있을까?
•시장이나 자본이란 처음부터 도덕과는 관계가 없는 영역이다. 시장은 <가치>를 묻고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 <가격>을 묻고 따지는 곳이다. 평균적으로 북미인들은 맥시코인들 보다 5배, 중국인들 보다는 10배, 인도인들 보다는 30배 정도를 더 소비하고 있다. 세계인구의 약 33%인 13억 명이 절대빈곤선 아래에서 살고 있다. 8억 4천 명은 영양부족 상태이다. 8억 8천은 전혀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10억은 제대로 된 주택이 없고, 13억은 안전한 식수를 마시지 못하고 있다. 세계 어린이들 중 약 1억 2천은 죽을 때 까지 학교란 데는 한번도 못가고 있다.(그 중 2/3는 여자 어린이들이다) 매일 약 3만 명의 어린이들이 병으로 죽어간다. 세계인구 상위 20%가 세계 GDP의 80%를 가지고 있고 세계인구 하위 20%는 세계 GDP의 1%를 가지고 연명하고 있다. 세계 3대 억만장자의 재산은 저개발국 6억명의 재산을 합친 것 보다 더 많다. 전세계 인구 중 65%는 모발폰이 없다. 40%는 전기도 없이 살고 있다.
•가인은 아벨을 죽였다. 이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의 발단은 제사문제, 즉 예배의식의 차이로 인한 갈등 문제였다. 이는 최초의 종교적 살인사건이었다. 제물이 다르다는 이유로 부터 비롯된 이 살인사건은 그후 십자군전쟁, 종교재판, 지하드, 유대인학살, 홀로코스트로 이어졌고 오늘날은 르완다, 캄보디아, 발칸반도로 이어지고 있다. 종교의 이름, 제사와 예배의식의 차이, 성직자의 복장을 미끼로 죽고 죽이는 일들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 그모스와 야훼신 사이의 부족전쟁은 오늘날 축구경기에서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이기기를 바라는 것과 흡사하다. 그냥 즐거움으로 해야 할 것을 가지고 경기장으로 뛰어들어 패싸움을 하다가 난장판을 만들고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는 말이다.
•인간이 존엄한 이유는 우리 각자는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두 다르다. 일란성 쌍둥이 조차도 서로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내가 옳으면 너는 틀린 것이고, 내가 믿는 것이 참이면 네가 믿는 것은 거짓이다. 따라서 나는 너를 그런 거짓에서 건져내야한다>는 생각은 보편주의가 만들어낸 오류이다.

•창세게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스토리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 <온 땅에 구음이 하나이고 언어가 같은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께 반항하도록 만드는 바탕이 된 것이다. 나프탈리 즈비 예후다 베를린 (N.Z. Y. Berlin)의 주석에 의하면, 하느님은 바벨탑사건을 통하여, 전체주의와 보편주의를 해체시키셨다. <인간들은 언어와 문화와 종교를 하나로 통일하여 쉽사리 바벨탑을 쌓아 하느님과 대결하려고 했으나 하느님은 창조의 다양성에 반하는 인간 행위를 묵과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이런 언어와 문화의 흩어 놓으심은 결국 인류 최초의 Global Project인 바벨탑을 쌓지 못하게 만드셨다. 하느님은 보편주의가 아니라 개인주의를 선호하셨기 때문이다.
•유대교는 한분 하느님을 믿는다. 그러나 구원에 이르는 길은 하나 뿐이라고 말하지는않는다. 유대교에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Extra Ecclesam non est Salus>같은 교리는 없다.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일 뿐 아니라 이방인 제사장인 멜기세덱의 하느님이시기도 하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사람 모세의 하느님이기도 하시지만 이방인인 이드로나 라합이나 다말이나 룻의 하느님이기도 하시다.
•하늘의 통일성은 지상의 다양성을 창조했다. 하느님은 인간세상을 하나의 언어, 하나의 문화, 하나의 종교, 하나의 제사법으로 동일화하지 않으셨다. 보편적 원리를 추구하는 과학도 있지만 개별적 사랑을 노래하는 시나 소설도 있다. 철학적 하나님과 신앙의 하느님은 구별된다.
•하느님은 부모가 자기의 자식을 사랑하는 것 처럼 인간을 대하신다. 한 부모 밑에도여러 자식들이 있듯이 한분 하느님 밑에도 여러 인종이 있고 여러 문화, 여러 언어를사용하는 인간들이 있다. 하느님은 부모가 자기가 낳은 자식들을 차별하지 않듯이 당신이 만드신 인간들을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사랑하신다. 이삭도 사랑하지만 이스마엘도 축복하신다. 야곱도 사랑하지만 에서의 자손들에게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느님이다. 부모는 자식들이 서로 다투고 싸우는 것을 싫어한다. 하느님도 그의 자식들인 인간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살기를 원하신다. 세상을 다양하게 만드신 하느님은 그 다양성 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히브리 성경에는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레위기 19:18>는 말씀이 있다. 또 <너는 이방인을 압제하지 말아라 너희도 애굽에서 이방인이었느니라, 출23:9>는 말씀을 비롯하여 <이방인을 사랑하라>는 귀절이 36군데나 나온다. 너희도 한때는<다르다>는 이유로 학대받은 경험이 있지 않느냐? 국외자, 타국인, 이방인이 된다는것이 무엇인지 몸으로 겪어본 적이 있지 않느냐? 모세는 맏아들 게르솜에게 말했다. <나는 이방인의 땅에서 이방인이었다, 출 2:22> 룻은 보아스에게 말했다. <나는 이방인이거늘 어찌하여 당신은 내게 은혜를 베푸시고 나를 돌보시나이까? 룻기 2:10>
•부족주의는 이방인을 부정하고, 보편주의는 이방인이 나와 동화 되기를 강요한다. 비극은 여기에서 생겨나고 인간의 존엄성은 이럴 때 파괴된다.
•9.11 처럼 두 문화가 충돌하면 세계는 비참하게 무너진다. (마침 이 부분을 쓰는 날, 나는 우리 집에서 한 25Km쯤 떨어진 시드니 동부 해안가 Bondi Beach에서 유대인들이 모여 그들의 민족적 축제인 하누카 행사를 하던 중 그들 유대인들을 향하여 총기를 난사하여 16명이나 죽이고 40여명에게 상처를 입힌 테러사건을 접하게 되었다)
•우리의 문화, 종교, 언어, 삶의 방식은 다 다르다. 우리는 그 다름속에서 공통점도 찿아보고 차이점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둘 사이에서 어떤 균형과 조화를 찾아보려고 노력한다. 어려운 숙제이다. 그래도 이것이 문명의 충돌을 피하는 길이다.
•자연속에 있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서로 의존하면서 살아가듯이 다양한 문화와 종교와 전통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들도 피차 의존하면서 살아간다.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자기들만이 유일하게 진리를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은 참으로무서운 일이다. 나만이 옳다는 생각, 나만이 진리를 알고 있다는 생각, 내 생각과 내 믿음을 따라오지 않는 사람들은 틀렸다는 생각은 오만하고 끔찍한 생각이다> – 이사야 벌린 (Isiah Berlin)의 책 Liberty p345쪽.
•이사야 벌린이 저자 조나단 색스에게 들려준 이야기 중 하나이다. <이는 랍비 시몬이했다고 전해지는 스토리이다. 하느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 제일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실려고 하셨는데, 그 때 마침 내가 인간을 만들어야 할찌, 말아야 할찌 망설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하느님은 그의 수호 천사들에게 “내가 사람, 즉 아담을 만들면 좋을지, 아니면 만들지 않는 것이 더 좋을지, 너희들의 생각은 어떠하냐?”고 물으셨다. 그러자 천사들은 두 팀으로 갈라졌다. 한쪽에서는 말했다. “하느님, 절대로 사람을 만드시면 않됩니다. 인간이란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을 만들면 그 자는 하느님이 만드신 이 우주만물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것입니다. 절대로 인간을 만들지 마시옵소서” 그러자 다른 편의 천사들이 나서서 이렇게 간하는 것이었다. “하느님, 그래도 인간은 만드시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됩니다. 하느님 혼자서이 우주만물을 다 관리하시기도 어려우니 인간을 시켜서 이걸 다스리게 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아담에게 하느님의 형상을 더해 주셔서 만드시면 그래도 많이 도움이될 것 입니다. 인간을 만드시옵소서” 양쪽의 말을 들은 하느님은 고민이 되셨습니다. 인간을 만들어야 좋을지, 만들지 말아야 좋을지 망설여 졌습니다. 그러다가 하느님은인간을 만들려고 손에 들고 있던 진흙 덩어리를 자기도 모르게 그만 땅에 떨어뜨리고말았습니다. 하느님은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애라. 모르겠다. 될대로 되거라” 그래서 만들어진 인간은 그만 하느님의 말씀대로 “될대로 되어 버린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성적이면서도 비이성적이고, 영적이면서도 육적이고, 이타적이면서도 이기적인 존재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 그야말로 “알 수 없는 존재요”, “될대로 막 되어버린 존재”가 인간인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은 천상에서 지상으로 내려오자 여러가지로 해석하게 되었다. 천상의 진리는 시공을 초월하지만 지상의 해석은 시공의 제약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진리를 다 알고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사람들은 부분적인 것을 가지고 마치그것이 전체인양 떠들어댄다.
•영어를 잘 한다고 해서 오페라에서도 감동을 받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지닌 신앙이 훌륭하긴 하지만 다른 사람이 지닌 신앙에서도 감동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 고도의 소비문화속에서는 모든 것이 다 장난감이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는 여러가지 장난감들을 사주었다. 값비싼 것들도 있었고 값싼 것들도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점점 커 가면서 그 장난감들을 하나씩 버리기도 하고 다른 어린 아이들에게 주기도했다. 인간의 성장은 장난감들을 진화 시키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어른이 되어서 필요한 것이라고 사들인 것들도 또 다른 장난감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느님도 우리 일생을 통하여 여러가지 다른 장난감들을 주신다. 싸구려 중고차를 주시기도 하시고 롤스 로이스나 벤즈 같은 장난감도 주신다. 값싼 옷가지나 허름한 집도 주시는가 하면 명품이나 해안가에 있는 수억불 짜리 집도 주신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하나의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 죽은 후에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의 소유물이란 다 장난감들이다. <죽을 때 장난감 제일 많이 남기는 사람이 인생의 진정한 승리자는 아니다> (Demos, The Life, P3)
•우리는 가격은 따지지만 가치는 묻지 않는 사람이다. 사랑, 헌신, 신뢰, 겸손, 이타주의 같은 것을 파는 백화점이나 수퍼 마켙은 하나도 없다.
•요즘 시장에서는 상품만 팔지는 않는다. 그들은 친절, 웃음, 서비스도 팔고 있다. 시장이 팔고 있는 서비스에는 상담이나 개인적 신앙지도만이 아니라 기도도 포함되어 있다. 돈을 내고, 돈을 받으면서 기도해 주기 때문이다. 좋은 말과 칭찬, 격려와 희망, 그리고 천당가는 길도 교회라는 시장에서는, 성직자라는 사장님이, 신자라고 하는 고객들에게 <돈 받고 돌보아주는>(paying for attention) 서비스 품목으로 자리를 잡았다.(R. Reich, The Future of Success, P 172-180)
•우리는 탈도덕화 (Demoralization) 시대에서 살고 있다. 정숙, 겸손, 신중, 자제, 의무, 책임감, 판단력 그리고 지혜 같은 도덕성들은 골동품 박물관에나 가야 만날 수 있다.
•정부란 무엇인가? <바라는 것은 많지만 기대 할 것은 없는 기관이다> 우리는 우리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들을 정부, 경찰, 검사, 판사 혹은 상담가, 교사, 성직자들이 결정해 주도록 맡기곤 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 대가로 세금이나 사례비를 지불하고 있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자기의 삶은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 시대 인간이란 스스로 무엇인가를 만드는 maker가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made) 제품이 되고 말았다. 인간은 인형놀이에 나와서 춤을 추는 인형들이다.
•내가 랍비가 되어 처음으로 장례식을 집전했을 때였다.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고인을 위해 추도사를 하기 위해서 그의 가족과 친구들에게 그는 어떤 분인지를 물었다. 그런데 그들의 대답은 거이가 비슷한 것이었다. 착한 분, 선한 분, 다정하신 분, 사랑이 많은 분, 남을 잘 도와 주던 분 등등 좋은 이야기만 들려 주었다. 그들은 고인이어디서 무슨 공부를 했고, 돈은 얼마나 벌었고, 무슨 차를 몰았고, 휴가는 어디로 갔고, 어떤 자리, 어떤 위치 까지 올라갔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고 설혹 그런 말을 해도 그는 착한 사람, 선한 사람이었음을 설명하기 위한 예로써 그런 이야길 했다. 그들은 고인이 따뜻한 분, 겸손한 분, 의지 할 수 있는 분, 책임감이 강한 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때 나는 알게 되었다. <인간을 참으로 위대하게 만드는 것, 사람을 참으로 행복하게 만든 것, 인생을 정말로 가치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인 지를 깨닫게 해주었다>
•링컨은 미국에서 제 17대 대통령으로 재선된 후 취임사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이제 모든 원망은 거두어 드리고, 모든 사람을 사랑으로 대합시다, With malice toward none, with charity for all> 이 취임사를 한지 꼭 한달 만에 그는 암살당했다.
•받아드리기 어려운 것을 받아드리는 것이 진정한 용기요, 지혜요, 희망이다.
•이기적 충동심은 도덕적 동맥경화 현상이다.
•우리는 습관적으로 보통 식사전에는 기도하고 밥을 먹는다. 그러나 식후에 기도하는것도 우리에게 큰 의미를 더해 준다. 한번 밥먹은 후에도 손잡고 기도해 보아라.
•기업의 최대 목표는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지 정의로운 세상을 만든데 있지는 않다.
•우리가 갖은 것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ownership이란 없다. 점유하고 있는 것, possession을 나의 것, ownership이라고 착각해서는 않된다.
•가난한 사람들의 자존감에 상처를 주는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다. 가장 좋은 자선은 물질로 돕는 것이 아니라 자존감을 갖고 살게 해 주는 것이다. 최고의 평등은 부의 평등, 기회의 평등, 법 앞에서의 평등이 아니라 자존감의 평등이다.
•홉스는 말했다.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죽은 다음에나 멈추어진다>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계약적, contractual> 이다. 그러나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는 <언약적, covenantal>이다. 계약적 관계는 피차 주고 받는 관계이고, 언약적 관계는 헌신 commitment)과 신의 (loyalty)의 관계이다.
•<치유가 질병 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 John Passmore, Man’s Responsibility for Nature P,27
•최대의 행복은 최신형 자동차나 새로운 디자인의 의상에서 오는 게 아니다. 사랑에서 행복이 온다. 사랑하고 사랑 받는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자연보존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의 문제다.
•안식일 제도는 인간의 휴식과 경제활동의 제약만을 위해서 제정된 것이 아니다. 안식일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자연 개입을 제한시킨 날이다. 안식년과 희년도 제발 모든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두라고 명하신 제도이다. 똑같은 피조물인 주제에 다른 피조물을 억압하거나 파괴하고 자기 마음대로 다스리는 행위를 금지하신 것이다.
•진정한 사회정의는 사람들 끼리만의 정의가 아니라 동식물과 무생물에게도 정의롭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삼손 라파엘 히르쉬 Hirsch의 말)
•인간은 교만한 존재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성과 과학이 그것을 부추겼다. 그러나 <인간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 <또 할 수 있다 하더라도 해서는 않된다. 그것은 멸망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Robert Nisbet, History of the Idea of Progress)
•개인과 역사의 이 거치른 파도에서 우리를 인도해야 할 것은, 다음 네 가지다. 첫째 자신의 자유를 스스로 제약하는 통제 (Self-Control), 둘째 도덕적 이상으로써의 선행 (Sharing & Commitment), 셋째 부단한 자기 훈련으로써의 교육, 넷째 상호협력 (Cooperation)이다.
•누가 진정한 영웅인가? 원수를 물리친 사람인가? 아니다. 원수를 죽이지 않고 살려서내 친구로 만든 사람이다. 진정한 영웅호걸은 용서할줄 아는 사람이다. 악은 악을 낳고 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보복의 악순환을 끊을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다. 용서다.
•증오의 바이러스는 죽일수도 없고 죽지도 않는다. 그것은 돌연변이를 통해서 더 무섭게 달려든다.
•하느님은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들었는데 인간들은 자기들의 심보를 따라 하느님을 만들어 왔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황이 나아지리라고 막연하게 믿는 것은 <낙관주의>다. 그러나 우리에게 던져진 상황을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게 만들려고 다짐하며 노력하는 것은 <희망의 서광>이 된다. (끝) *홍길복 (2025. 12. 10부터 2026년 1. 5일 까지)

홍길복 목사
(호주연합교회와 해외한인장로교회 은퇴목사)
홍길복 목사는 황해도 황주 출생 (1944)으로 연세대학교와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목회자다. 1980년 호주로 건너와 40여년 간 이민목회를 하는 동안 시드니제일교회와 시드니우리교회를 섬겼고, 호주연합교단과 해외한인장로교회의 여러 기관에서 일했다.
2010년 6월 은퇴 후에는 후학들과 대화를 나누며 길벗들과 여행하는 자유를 만끽하는 중이다. 자신이 경험한 이민, 특히 이민한 기독교인들의 삶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글쓰기를 바탕으로 ‘동양인 예수’, ‘내 백성을 위로하라’, ‘성경에 나타난 이민자 이야기’, ‘이민자 예수’ 등의 책을 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