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북과 시초(蓍草)
고대 중국에서 여자 무당인 무(巫)와 남자 무당인 격(覡)은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중재자로서 천신(天神)의 사자(使者)이자 씨족의 수호자였다. 문명의 모태, 혹은 문화의 시초로서의 샤머니즘은 원시의 무교(巫敎)였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샤먼은 무의(巫醫)이자 술사(術士)이며 혼백을 보내는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샤먼은 질병을 치료하고 사회의 제사 활동을 주재했으며 아울러 사자의 혼령을 저승으로 보내는 역할을 했다.
상고시대 중국 무당이 사용한 도구는 주로 돌, 나무, 동물, 귀책(龜策; 나라의 정책을 점칠 때에 쓰는 가새풀과 거북, 즉 시귀-蓍龜) 등이었다. 복서(卜筮)는 길흉화복을 예측할 때에 주로 사용했다. 귀갑(龜甲; 거북의 등 껍데기)로 점치는 것을 복(卜), 가새풀로 점치는 것을 서(筮)라 했다. 중국에서 5천 년 전 즉, 하상주(夏商周) 시대에 뼈점(骨卜), 거북점(龜卜), 시초점(蓍草占; 혹은 시서-蓍筮)이 유행했다. 사기(史記)의 ‘귀책열전'(龜策列傳)에 “삼왕(三王)이 각기 다른 거북을 사용했고 사방의 오랑캐가 각기 다른 복점을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어 상고시대에 다양한 형태의 복서(卜筮)가 존재했으며, 각각의 소수민족들이 다른 점복법(占卜法)을 사용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거북점은 거북의 등 껍데기를 불로 지져 거기에 나타나는 모양으로 길흉을 판단하는 점이다.
상대(商代)의 왕은 샤머니즘의 교주로 그 아래에 별도로 복(卜), 축(祝), 종(宗), 사(史) 등을 담당하는 관직이 있었다. 점복(占卜)에 사용한 거북은 당시 네 가지 영물 기린(麟), 봉황(鳳), 거북(龜), 용(龍) 가운데 하나로 간주되었는데, 거북의 형상이 천지의 형상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고대인이 볼 때 둥근 하늘처럼 거북의 등 껍데기는 원형이고 평평한 땅과 같이 거북의 배 껍데기는 바둑판처럼 네모나고 평평한 방형(方形)이었다. 하늘에 있는 일월성신(日月星辰)을 천문(天文)이라 했고, 거북의 등 껍데기에 종횡으로 교차하는 무늬를 갑문(甲文; 껍데기 글자)이라고 했다. 하늘은 사방의 기둥이 받치고 있어서 무너지지 않으며 거북은 네 다리가 있어 등 껍데기를 지탱한다. 고대인은 거북을 사용하여 천지와 소통하려고 했다.
귀복법(龜卜法) 외에도 서법(筮法; 시초蓍草-즉 가새풀로 점을 치는 것)이 있었는데, 서법의 기원 또한 귀복과 마찬가지로 오래 되었다. 고대인은 짐승의 뼈나 거북의 껍데기 외에도 식물의 줄기나 잎을 사용하여 점을 쳤다. 식물의 줄기나 잎의 숫자를 규칙에 따라 분배하고 이를 근거로 길흉을 점쳤다. 원시 시대의 서법은 간단해서 손에 잡히는 대로 풀 한 포기를 뽑아서 잎이나 수염뿌리의 수를 헤아려 홀수인지 짝수인지를 가지고 길흉을 판단했다. 서(筮) 자는 죽(竹) 자와 무(巫) 자로 구성되는데, 무당이 대를 이용하여 점을 친다는 뜻이다.
가새풀, 즉 시초(蓍草)로 점을 치는 것은 주대(周代)에 이르러 최고조에 달했다. 주례(周禮) 춘관(春官) ‘서인(筮人)’에 “초봄이 되면 시초를 살핀다(상춘상서; 上春相筮)”는 기록이 있어 주대 사람들이 매년 봄 그 해에 사용할 새로운 시초를 골라야 했음을 알 수 있다. 고대인은 시초에 천지의 귀신과 소통하고 영감이 일어나게 하는 효용이 있었다고 믿었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시초는 쑥 종류다. 천 년을 살면서 300개의 줄기가 나온다. 역(易)에서는 이것을 가지고 점을 쳤다. 천자의 시초는 길이가 9척이고 제후는 7척, 대부는 5척, 사는 3척이다.”
시초(蓍草)의 생장기간은 100년 이상이다. 고대인은 시초가 100년 동안 한 그루에서 100개의 줄기를 낸다고 믿었다. 신령한 물건이므로 생장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한 것이다. 주역(周易)에서는 “천하의 길흉을 결정하고 천하의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는 시초점이나 귀복보다 큰 것이 없다”고 했다. 당시에는 서법과 귀복이 분리되지 않았으므로 고대인은 시초와 거북 사이에 모종의 신비로운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기(史記) 귀책열전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전(傳)에 이르기를, ‘위에 무성한 시초가 있으면 아래에 신령한 거북이 있다’고 했는데, … 들리는 말에 의하면 ‘시초가 자라 뿌리가 100개가 되면 그 밑에는 반드시 신령한 거북이 있어 이를 지켜주고 그 위에는 항상 푸른 구름이 있어 이를 덮어준다’고 한다.” 고대인은 시초와 거북 모두 수명이 길고 형상도 기이하므로 이것들을 신물(神物)로 삼아 점을 치는 데 사용했다.
귀점(龜占)과 서점(蓍占) 모두 원시 사회 말기에 시작되어 상대와 주대에 함께 발전했으며, 상대에는 귀복(龜卜)이 중시되었고 주대에는 서점이 중시되었다.
역(易)의 괘효상수(卦爻象數)는 원시 무술(巫術)이나 샤먼문화 중의 귀복(龜卜), 서수(筮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괘효의 상은 주로 거북 껍데기의 갈라진 무늬에서 계시를 얻어 창조된 것이며, 괘효의 수는 주로 서법(筮法)에서 계시를 얻어 더해진 것이다.
○ 거북점
거북이나 그 형상을 이용하여 길흉을 판단하는 점법.
‘점(占)’자의 구성이 거북의 등에 나무를 세우고 그 방향을 찾는 형상이라고 하거니와 점복과 거북이와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거북 등에 새겨진 주름살을 구배문(龜背文)이라 해서 이것을 해석하여 점치는 방법은 일찍이 중국 고대사회에 있었는데, 우리 나라에도 백제 때에 있었다. 의자왕 20년에 대궐 안에 귀신이 들어와 땅속으로 들어갔는데 파보니 거북이 있었고 그 등에는 백제가 망하고 신라가 흥한다는 것을 예언한 글귀가 있었다고 한다.
점치는 방법은 처음에는 거북 등의 껍데기를 불에 태워 그 금의 균열에 따라 점을 쳤는데, 나중에는 거북 형상을 만들어 시초(蓍草)나 막대를 꽂아두고 그것을 뽑아내어 길흉을 판단하게 되었다.
나무나 쇠로 거북모양을 만들어 속을 파내어 입을 통해서 점괘(占卦)를 쓴 종이와 막대, 또는 괘를 표시한 시초를 넣는다.
점장이는 점을 보는 사람의 생년월일시와 주소 등을 암송하여 인적 사항을 고하고, 주언(呪言)을 외어 점이 잘 맞기를 염원한 뒤 거북을 흔들어 종이나 시초를 뽑아내서 거기에 적혀 있는 괘문(卦文)으로 점을 풀이한다.
괘문은 시문으로 된 것도 있으나 일반적으로 육효의 설괘를 이용한다. 예로부터 거북은 장수하는 동물이며 등에 주름살이 있어 이를 영물(靈物)로 여겨 점에 많이 활용되었고 지금도 거리에서 거북점집을 볼 수 있다.
○ 설시법(揲蓍法)
시초를 조작해 주역의 괘를 얻고 괘의 상징과 말을 이용해 장래의 일과 그 길흉을 점치는, 즉 시초점을 치는 방법을 가리키는 유교용어.
시초점은 시초(蓍草)라는 식물의 줄기를 이용해 점을 치는 것이다. 고대의 여러 가지 점법 가운데 거북점과 시초점이 많이 알려졌는데, 주역의 점은 시초점이 주류를 이루었다.
시초는 한 뿌리에서 매우 많은 줄기가 나오는 특이한 풀인데, 후대에는 편의에 따라 대나무를 깎아서 시초를 대신해 쓰게 되었다.
주역 계사전 상편(繫辭傳上篇)에 시초점을 치는 방법이 실려 있지만, 내용이 매우 간략하기 때문에 주석가들에 따라 실시 과정과 의미 해석에 몇 가지 다른 견해가 있다.
주역 계사전 상편에서는 “대연지수(大衍之數)는 50이고, 그 중에 사용하는 것은 49이다. 49를 둘로 나누어서 하늘과 땅, 양의(兩儀)를 상징한다.
1개를 떼내어 따로 걸침으로써 하늘과 땅과 사람 삼재(三才)를 상징한다. 나머지 시초를 4개씩 덜어내어 사계절을 상징한다. 4개씩 덜어낸 나머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다음 두 손의 나머지를 내려놓음으로써 윤달을 상징한다.
윤달은 대개 5년에 두 차례 있으므로 그 이치를 상징해 덜어낸 나머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는 동작을 두 번해 괘를 찾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기록은 너무 간략해 여러 가지 해석의 여지가 있다. 당나라 때의 공영달(孔永達)이 주역정의(周易正義)에서 이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송나라 때 주희가 주역본의(周易本義) 서례(筮例)의 서의(筮義) 및 주문공문집(朱文公文集) 시괘고오(蓍卦考奧)에서 이것을 보다 자세히 설명함으로써 그 체계가 분명해졌다.
이들의 설명에 의하면, 서죽(筮竹)은 원래 50개인데, 그 가운데 한 개는 태극을 상징한다고 하여 빼놓고 49개만 사용한다. 태극은 세계의 근원으로서 변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규정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왕부지(王夫之)같은 학자는 빼놓은 하나는 점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상징한다고 보기도 하고, 현대의 주역 연구가 김경방(金景芳)은 대연의 수는 55이고 49를 사용하는 것은 그래야만 이후 모든 괘의 성립과 변화를 연출할 수 있는 숫자가 되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시초를 가지고 점을 치는 일반적 과정은, 먼저 시초 49개를 경건한 마음으로 셈하지 않고 양쪽 손에 나누어 가지는데, 이 때 좌측 손의 것을 천수(天數), 우측 손의 것을 지수(地數)라고 한다.
다음에 천수에서 한 개를 뽑아 내서 무명지와 세끼손가락 사이에 끼우는데, 이를 괘(掛)라고 한다. 이어서 좌측 손에 있는 나머지 시초를 네 개씩 덜어내고 세 개 이하의 시초를 손가락 사이에 끼운 것에 함께 끼우는데, 이를 륵(扐)이라고 한다.
그 다음에 지수에서 네 개 단위로 덜어내고 나머지 시초를 역시 손가락 사이에 끼운다. 그렇게 해서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는 시초의 수를 합계해 하나의 수, 즉 5 혹은 9를 얻는다. 여기까지의 절차를 제1변이라고 한다.
다음은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던 시초를 제외한 나머지 시초를 가지고 제1변과 같은 절차를 되풀이해 두 번째 수 4 혹은 8을 얻게 되는데, 이것을 제2변이라고 한다.
제1변과 제2변에서 이미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던 시초를 제외한 나머지 시초로 다시 제1변과 같은 절차를 되풀이해 세 번째의 수, 즉 4 혹은 8을 얻게 되는데, 이것을 제3변이라고 한다.
제1변, 제2변, 제3변을 통해 얻은 수를 비교해 보아 노음(老陰)·노양(老陽)·소음(少陰)·소양(少陽)을 정한다. 노음은 세 번의 수가 9나 8로 모두 많은 수일 때, 노양은 세 번의 수가 5나 4로 모두 적은 수일 때를 말한다.
소음은 세 번 중 두 번은 적은 수, 한 번은 많은 수일 때, 소양은 세 번 중 두 번은 많은 수 한 번은 적은 수일 때를 말한다. 즉 세 번의 수가 노양 혹은 소양이면 양효, 노음 혹은 소음이면 음효가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한 효를 얻게 된다.
따라서 초효에서 상효에 이르기까지 각 효마다 3변(三變)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육효(六爻)를 완성하려면 모두 18변을 거듭해야 한다. 그래서 설시법을 18변서법(十八變筮法)이라고도 한다.
18변을 통해 완성된 괘는 64괘 가운데 어느 하나에 해당되는데, 그 괘를 찾아 괘사와 효사를 음미해 길흉을 판단한다.
18변의 과정을 통해 육효를 얻을 때 노음 또는 노양의 수에 해당되는 음효, 혹은 양효를 변효(變爻)라고 하는데, 사물이 극한에 도달하면 변화한다는 주역의 근본 원리에 의해 노양인 양효는 음효로, 노음인 음효는 양효로 변화하게 된다.
이처럼 효가 변화해 새로 얻어지는 괘를 지괘(之卦)라고 한다. 지괘가 있을 때는 원괘의 상태가 장차 지괘의 상태로 변화할 운세에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 원괘와 지괘의 괘사, 처음에 얻은 효와 변효의 효사 등을 대조, 음미하여 길흉과 장차의 변화를 판단한다.
18변서법은 그 절차가 복잡하고 많은 시간과 지속적인 정신 통일이 요구되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여러 가지 간략한 방법이 사용된다.
– 참고
주역정의(周易正義)
주역본의(周易本義)
周易全解 (金景芳, 吉林大學出版社, 1989)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