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 히에로니무스 (예로니모, 제롬; Jerome, 347 ~ 420)가 번역한 ‘불가타’ (Vulgata), ‘새 라틴어 성경’
‘불가타’ (Vulgata) 또는 ‘새 라틴어 성경’은 코이네 그리스어 (헬라어) 원문 성경을 5세기 초에 라틴어로 번역한 기독교 성경 번역본이다.
불가타의 시초는 382년 다마소 1세가, 기존의 옛 라틴어 성경을 개정하고자, 히에로니무스 (예로니모)에게 성경 번역을 지시한데서 시작한다. 이후 20세기 후반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불가타를 개정한 새 대중 라틴말 성경 (라: Bibliorum Sacrorum nova vulgata editio)을 발행하였는데, 이 노바 불가타가 현재 천주교회의 라틴 전례에서 사용되는 공식 성경이다. 로마 미사 전례의 특별 양식 미사인 트리덴티노 미사에서는 노바 불가타 이전 판본인 클레멘티누스 판의 불가타 성경 (Vulgata Clementina)을 사용한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본 거룩한 공의회는 유포되어 있는 모든 라틴어 성서본들 중에 어떤 것이 공신력이 있는지를 아는 것이 하느님의 교회를 위해 매우 유익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본 공의회는 여러 세기 동안 오래 사용됨으로써 교회 내에서 인정받고 잘 알려진 고전 불가타본 성경이 공개 강의와 토론, 설교와 해설을 하는 데에 공신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그 누구도 어떤 이유에서라도 불가타본을 함부로 혹은 교만하게 거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결정하고 공포하는 바이다.” – 트리엔트 공의회 제4차 회기 제2교령 中
4세기 후반에 완성된 라틴어 번역 성경. 가톨릭 라틴 교회에서 표준 성경으로 인정받는다.

○ 개관
불가타는 405년경 교부 예로니모 (Hieronymus)가 완성한 라틴어 성경이다. 원래 구약성경 원문은 히브리어였고 신약성경 원문은 희랍어였다. 예로니모는 신구약 원문에서 라틴어 번역을 완성한 것이다. 이후 불가타는 서방 교회 공식 성경이 되었다. 오늘날 성경은 여러 나라말로 번역되어 있지만 근대까지 성경하면 무조건 불가타를 가리켰다. 불가타 명칭은 에디씨오 불가타 (editio vulgata)에서 유래한다. 직역하면 불가타 판 (版)이란 뜻이다. 참고로 문고판 (文庫版)하면 가로 10.5cm, 세로 14,8cm로 간행된 작은 책을 말한다.
라틴어 불가타 (vulgata)는 ‘일반적인’, ‘대중적인’이라는 형용사다. 불가타 성경은 민중들이 사용하는 평범한 라틴어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당연히 로마 제국 서민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당시 귀족들은 고전 라틴어를 사용했다. 예로니모는 이들 중심이 아니라 평민 중심으로 셩경을 번역했기에 불가타라 했던 것이다. 따라서 일부 상류층은 한동안 불가타 성경을 외면했다. 천박한 말로 번역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382년 교황 다마소 1세는 예로니모에게 라틴어 성경을 만들라고 명한다. 물론 당시도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이 있었다. 하지만 공적으로 인정받기에 부족했다. 교황은 완벽한 성경을 원했던 것이다. 처음 예로니모는 70인역에서 구약 번역을 시도했다. 하지만 문제점이 드러나자 히브리 성경 원문에서 구약을 번역한다. 그리고 신약은 70인역에서 번역했다. 작업은 405년경 마무리된다. 불가타에는 구약성경 46권과 신약성경 27권 모두 76권의 책이 들어있다.
불가타는 즉시 인정을 받지 못했고 6세기부터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는 불가타가 라틴어 성경으로 유일한 권위를 가진다고 공적 선언했다 (1546년 4월 8일). 그러면서 결점을 최소한 줄여 출판하라 명했다. 이렇게 해서 1592년 교황 클레멘스 8세는 보완된 라틴어 성경을 발간했다. 클레멘스 불가타 성경이다. 근대에도 몇 번의 교정판이 출판되었다.
1907년 비오 10세 교황은 베네딕토회 수사들로 구성된 불가타 위원회를 설치해 개정판 간행을 추진한 적이 있다. 1965년 2차 바티칸 공의회는 불가타 성경 개정을 위한 위원회를 만들었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때 완성되었다. 노바 불가타 (Nova vulgata) 즉 새로운 불가타 성경이다. 현재 라틴 전례에서 공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성경이다.

○ 명칭
불가타라는 말은 ‘대중 (라틴어) 판’이라는 뜻의 라틴어 에디치오 불가타 (editio vulgata)에서 유래했다.
당시 로마에서 몇몇 귀족 계층은 고전 라틴어에 가까운 말을 사용했으나, 대다수 서민들은 로망스어로 분화하기 직전 단계의 라틴어를 사용했다.
불가타라 이름함은 성경 번역을 상류층이 아닌 대다수 대중들이 사용하는 라틴어에 기준하였단 뜻이다.
이 때문에 불가타 번역이 나올 당시에는 오히려 천박한 (영어의 ‘vulgar’) 말로 성경을 번역했단 이유로 싫어한 사람이 많았다.
불가타를 영어식 표현 (Vulgate) 그대로 읽어서 ‘벌게이트’라고 하는 예도 있다.
○ 번역 배경
다마소 1세는 로마교회의 대주교로 착좌하면서 이교의 조짐에 맞서 보편교회를 수호하는데 전력을 다하였다. 368년과 369년 두 차례 로마에서 시노드를 소집한 그는 아폴리나리우스주의와 마케도니우스주의를 단죄하고, 381년 이단 문제를 다루기 위해 소집된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에 사절단을 파견하였다. 이 공의회는 대단히 중요하다. 아리우스주의가 단죄되고 제1차 니케아 공의회의 신앙 선서문이 공적으로 채택되었다.
다마소 1세는 비밀리에 히에로니무스를 자신의 비서로 임명하였다. 409년 히에로니무스는 “여러 해 동안 나는 로마의 주교 다마소를 도와 동·서 공의회에서 그에게 문의된 질문들에 대한 그의 답변을 적는 것과 같은 서신 작성을 하였다.”고 기록하였다.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국교로 선포된 것은 다마소 1세가 재임하던 (380년) 중이었다. 그리고 다마소 1세의 교회 개혁에 따라 라틴어가 서방 기독교 지역의 중심적 전례 언어가 되었다. 또한, 당시에는 성경의 라틴어 번역본이 여러 역자가 번역하여 용어와 구성에 통일성이 없이 난잡하고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라틴어 지역에서 보편교회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통일성 있는 새로운 공용 라틴어 성경 번역본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다마소 1세는 히에로니무스에게 헬라어 신약성경과 70인역 구약성경을 정확히 라틴어로 번역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부정확한 옛 라틴어 번역본에서 벗어나 당시 대중이 널리 사용하는 대중 라틴어로 정확하게 번역하도록 강조하였다.

○ 제롬의‘ 불가타’ 번역
성 히에로니무스 (라: 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347년 – 420년 9월 30일) 또는 예로니모, 제롬 (Jerome)은 382년부터 신약성경을 코이네 그리스어, 즉 헬라어에서 라틴어로 직접 번역하였고, 구약성경의 경우에는 먼저 신약과 마찬가지로 헬라어로 쓰인 70인역에서 번역하였다. 이 성경 번역본은 로마교회의 공의회를 통해 공식적인 라틴어 성경으로 인준을 받았다. 이후에도 그는 계속 베들레헴의 수도원에 머물면서 번역 작업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여 3차 번역에서는 히브리어 원문에서 라틴어로 직접 번역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유대인 랍비들과 직접 토론을 벌이면서 새로이 번역 작업을 수행하였다. 그 결과 불가타 성경이 나왔다. 406년까지 지속한 작업으로 라틴어 성경 번역본은 13세기 이후 널리 쓰이는 번역본이라는 의미에서 ‘versio vulgata’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며, 이를 줄여 불가타판이라 한다.
불가타판은 원문에 매우 충실하고 정확한 번역일 뿐만 아니라 대중이 쉽게 읽을 수 있는 라틴어로 되어 있었으므로 5세기 이후 로마교회지여 즉 서방 기독교 사회에 널리 보급되었다. 서방교회의 종교개혁 이후 1546년 반종교개혁 공의회인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천주교회는 불가타판 번역을 공식적인 성경으로 재확인했다. 종교개혁 지지 지역은 루터의 독일어 성경 번역을 시작으로 다양한 국가의 언어로 번역하였다.
역사적으로 불가타는 단순한 성경 번역본이 아니라 16세기까지 서방교회의 중요한 성경 본문이었고, 현재는 가톨릭교회의 정본이다. 그래서 “번역된 출판”이라는 뜻의 베르시오 불가타(versio vulgata)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클레멘티누스 판의 불가타에는 76권의 책이 들어있다. 정경 (구약성경 39권과 신약성경 27권)과 10권의 제2경전이다 (히에로니무스는 10권의 구약성경 외경 또는 제2경전을 ‘교회의 책’이라고 정경과 구분하여 언급하였으며, 불가타 성경 서문에 교회의 책들에 대하여 ‘읽어서 신앙에 유익하지만 교리를 도출하면 안된다’라고 하여 보편교회 교부들의 관점을 따랐다. 그러나 현대 가톨릭교회에서는 사해문서 등에서 제2경전에 대한 히브리어 본문의 발견을 근거로 이를 부정하고 교리와 전례 기반으로 사용한다).

○ 구성과 번역
불가타의 대부분은 히에로니무스에 의해 번역되었지만, 옛 라틴어 성경에서 개정되지 않은 부분도 있고, 번역자 미상인 부분도 있다.
– 옛 라틴어 성경에서 그대로 놓은 것: 므나쎄의 기도, 에스드라 1서, 에스드라 2서, 지혜서, 코헬렛서, 바룩서, 마카베오 상, 마카베오 하 (현재는 지혜서, 코헬렛서, 바룩서, 마카베오기 1서, 마카베오기 2서만이 가톨릭교회 정경으로 인정받는다.)
– 옛 라틴어 성경에서 다소 개정한 것 (개정자는 미상이나 아마도 히에로니무스일 것으로 추정): 사도행전, 바오로의 서간들, 요한의 묵시록
– 히에로니무스가 아람어판에서 번역한 부분: 토빗기, 유딧기
– 히에로니무스가 70인역에서 번역한 부분: 라틴어 시편, 에스테르기
– 히에로니무스가 테오도티온에서 번역한 부분: 아자리야의 노래와 세 젊은이의 노래, 다니엘서, 벨과 용 (가톨릭교회에서는 이외에 수산나 이야기까지 포함해 다니엘서로 분류한다.)
– 히에로니무스가 그리스어 사본을 참조하면서 옛 라틴어 성경에서 개정한 부분: 4복음서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 히에로니무스가 히브리어 성경에서 처음 번역한 것: 시편을 제외한 구약성경. 이 작업은 405년에 끝났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