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근 목사 칼럼
두 가지의 고통
우리가 당하는 고통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아프고 난 다음에 회복을 위한 고통이 있고, 다른 한 가지는 아프기 전에 미리 예방하기 위한 고통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미리 고통을 당하, 미련한 사람들은 아픈 하고 난 후에 고통을 당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난 다음에 고통을 당합니다. 마치 옛날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 아주 적합한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예방적 고통과 회복적 고통입니다.
“우리는 종종 병이나 다른 건강 문제로 인한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은 미리 예방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방적으로 건강을 관리함으로써, 미래의 고통을 피하고 더 건강하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예방적 건강 관리에는 몇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로, 규칙적인 운동은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을 조화롭게 결합하여 신체적인 건강을 유지하고 다양한 질병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데도 고통은 따릅니다. 시간을 내야하고, 그리고 운동을 하는데도 쉬운일이 아닙니다. 필자의 경우에 달리기를 하는 것도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 특히 날씨가 더울 때도, 또한 반대로 추울 때도 어려움을 경험합니다.
또한 건강을 지키기 균형 잡힌 식단은 우리의 건강을 지키는 데 중요합니다. 채소, 과일, 단백질과 같은 영양소가 균형 있게 섭취되어야 합니다. 과도한 유해한 음식이나 단백질 섭취는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것도 자신이 좋아하는 대로 할수 없습니다. 때로는 단것을 좋아 하면서도 먹지 못할수도 있고, 과일이나 채소를 싫어함에도 먹어야 하기 먹어야 하는 고통이 따르게 됩니다.
치료적 고통
예를 들면 우리들이 쉽게 이해할수 있는 부분이 암 일 수 있습니다. 암을 걸리게 되면 물리적 고통으로서 통증입니다. 암은 종종 신체의 특정 부위에서 통증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종양의 압력이나 확장, 조직의 파괴 등에 의해 발생하는 통증은 환자의 삶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때로는 어떤 분들은 피부가 마치 건조해서 땅이 갈라지는 것과 같이 피부가 갈라지는 것 같은 고통이 온다고 했습니다. 때로는 심한 구역질과 구토의 고통을 당하기도합니다. 항암 치료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 중 하나로, 이로 인해 식사나 적절한 영양 공급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 뿐만아니라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고통을 감수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울과 불안함으로 인해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나 외로움 같은 감정적 스트레스는 암 환자의 심리적 안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존감 감소가 올수 있습니다. 외모의 변화나 건강 상태의 변화로 인해 자신감을 잃을 수 있으며, 이는 암 환자의 감정적 안정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볼때에도, 암 진단을 받은 환자는 종종 사회적 고립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친구나 가족들과의 소통이 점차 줄어들고, 이로 인해 외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암 진단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 간의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위에 두가지 고통을 비교하게 되면 훨씬 예방의 고통이 아주 적게 느껴진다. 병이 걸린후에 병을 극복하기 위한 고통은 너무나 그 과정이 힘들다. 그렇다고 다 회복을 하는것도 아니다. 때로는 죽음을 맞이할수 있다. 따라서 하루에 한시간 정도 미리 예방을 하게 되면 나 중에 오는 고통은 면할수가 있다. “예방은 더 나은 치료다”(“Prevention is better than cure.)라는 미국 격언이 새삼스럽게 생각난다. 따라서 평등법안도 미리 막아야 한다. 어떤 고통을 선택하느냐는 각자의 선택이다.
순리와 역리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롬1:27).
사도 바울은 이 구절에서 인간의 방탕한 행위들, 특히 동성애 행위들을 거론하며, 이러한 행위들이 하나님의 자연스러운 질서에 어긋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어떻게 말하고 있느냐의 부분이다. 우리 크리스찬들은 성경의 진리를 따라야 한다. 진리의 기둥이 무너지면 모든게 다 무너지게 된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도 진리는 굳건히 서 있어야 한다.
1. 가장 먼저 동성애는 부끄러운 일로 설명하고 있다.
여자와 여자끼리, 남자가 남자끼리 관계는 부끄러운 일이다. 문화적 맥락으로 볼때에도 그 당시 많은 사회는 성적 행위를 엄격하게 규제했으며 특히 유대 사회는 레위기에 명시된 법률을 따라 엄격한 부분을 강조하고 있다. “너는 남자와 동침함 같이 여자와도 동침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 18:22). 만일 남자가 남자와 같이 동침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하였으니 그들은 반드시 죽일지니 그들의 피가 그들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13). 창조의 자연적 질서를 거스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볼때에도 자신들의 육적 욕망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 영적인 쇠퇴를 가져오며, 특히 이러한 행위가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끼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2.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여기서 ‘그릇됨’은 하나님의 법칙과 도덕적 질서에 어긋나는 행위를 의미하며, ‘보응’은 그러한 행위로 인해 자연스럽게 따르는 결과나 대가를 가리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동성애를 죄로 규정하고, 죄의 결과는 자연스러운 하나님의 질서에 도전하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결과는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길이며 죄에 대한 대가는 불가피하게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못된 선택의 결과는 고통이 따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본문을 통해 각자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또한 성에 대한 부분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질서를 거스르고 있는지, 또 그로 인해 어떠한 영적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를 거스리면 결국 결과는 고통입니다. 그리고 문제의 해결은 다시 역리에서 순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지마우리는 이들에게도 희망을 줄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떠한 죄에서도 벗어나 참된 해방과 회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될수 있다고 말해야 합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김병근 목사
시드니성시화운동 대표회장, 엠마오상담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