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갈망과 낙망 그리고 소망
구역성경 39권은 원래 히브리성경, 타나크로 24권으로 되어 있다. 타나크는 토라(모세오경, 5), 네비임(예언서, 8), 케투빔(성문서, 11)으로 구분되어 있다. 토라가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말씀이라면, 네비임은 예언자들을 통해서 주신 말씀이고, 케투빔은 그 말씀대로 산 사람들의 신앙 고백이다. 시편은 케투빔에 속해 있다.
시편의 구성은 모세오경의 구성과 비슷한 유형을 갖추었습니다. 그 주제와 내용에 따라 총 다섯 권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러한 구분은 모세오경에 나타난 각 책의 주제들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 제1권은(1-41) 창세기에 대응하며, 주로 나타나는 내용은 인간에 대한 것. 제2권은(42-72) 출애굽기에 대응하며, 주요 내용은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것. 제3권은(73-89) 레위기에 대응하며, 주요 내용은 성전에 관한 것. 제4권은 민수기에 대응하며, 주요 내용은 방황과 불안에 관한 것. 제5권은(107-150) 신명기에 대응하며, 주요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것이다. 각 권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송영으로 마무리한다.
시편 42편은 2권의 첫번째 시이다. “고라 자손의 마스길, 영장으로 한 노래”라는 머리말이 붙어 있다. 마스길이란 ‘교훈시’란 뜻이고, 영장은 ‘지휘자’란 뜻이다. 저자에 대해 언급하고 있지 않다. 학자들은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 의하여 반란을 당한 기막힌 상황에서 썼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모든 것이 시인을 외면하고 돌아선 듯한 비참한 지경에서 시인은 자신을 ‘목마른 사슴’으로 묘사하였다. 목마른 사슴의 갈망은 조롱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낙망하지만, 자기 격려로 일어나 소망의 하나님을 찬송하게 된다.

1. 목마른 사슴 (갈망)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1절) 시인이 처한 환경은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광야와 같다. 오랜 가뭄 끝에 기진맥진한 사슴이 시냇물을 갈망하듯이, 시인은 하나님을 갈망하였다. 시인은 인생에서 가장 곤고한 날에 환경이나 사람을 탓하지 않고 더 하나님을 갈망했다. 세상의 사면이 막혀 있어도 하늘은 언제나 열려 있다. 어려움을 당할 때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세상으로 가지 않고,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은혜이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121:1-2).
열왕기는 왕들의 이야기다. 왕상 1-11장까지는 솔로몬, 왕상 12장 – 왕하 17장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왕, 왕하 18장 – 왕하 25장까지는 남유다 왕의 이야기다. 왕하 17장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할 때 남유다의 왕은 히스기야였다. 히스기야 14년에 앗수루는 남유다를 침공한다. 예루살렘을 포위한 랍사게는 유대말로 백성들에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고 항복할 것은 종용하였다. 앗수르 왕 산헤립은 하나님을 조롱하며 항복하지 않으면 모두 진멸할 것이라는 편지를 히스기야에게 보냈다. 히스기야는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 편지를 펼쳐 놓고 하나님을 갈망했다. “그 날 밤에 주님의 천사가 나아가서, 앗수르 군의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쳐죽였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을 때에 그들은 모두 주검으로 발견되었다”(왕하 19:35).
2. 조롱하는 사람 (낙망)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3절) 사람들은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나님이 계시면 네 처지가 이러냐?“ 비아냥거리고 있다. 과거에 행복했던 기억들이 더 심한 고통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윗이 압살롬에 쫓겨 갈 때 시므이가 한 이야기를 연상하게 한다.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삼하16:7) 다윗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요단을 건너기도 전에 제일 먼저 찾아가 용서를 빌었던 기회주의자이다. 그는 결국 솔로몬에 의하여 죽는다.
인생은 관계에서 시작해서 관계로 끝난다. 만남, 관계, 사랑 등은 같은 의미의 다른 단어이다. 정채봉 작가의 ‘만남’이란 글이 있다. ‘생선 같은 만남’(오래갈수록 냄새나는 만남), ‘꽃송이 같은 만남’(피었을 때는 환호하지만 시들면 버리는 만남), ‘지우개 같은 만남’(만났다 헤어지면 지워지는 만남), ‘건전지와 같은 만남’(힘이 없으면 버려지는 만남), ‘손수건과 같은 만남’(함께 웃고 함께 웃는 아름다운 만남)으로 구분하였다. 오래전에 배낭만 메고 성지순례를 5개국을 다녔다. 배낭여행과 단체여행은 장단점이 있다. 배낭 여행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보고 싶은 곳을 볼 수 있지만 시간이 많이 걸린다. 단체여행은 시간은 절약되지만 보여 주는 것을 보고, 들려주는 것을 듣는다. 배낭여행을 마치고 여행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여행은 만남이다, 길을 걸으며 오늘의 사람을 만나고, 유적지를 방문하여 어제의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내일의 나를 만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역사가 일어나고,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면 기적이 일어난다.
3. 소망의 하나님 (소망)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11절) 시인은 마치 자신이 두 사람인 것처럼, 자기가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을 조롱했지만, 자신이 자신을 격려하고 인정하고 있다. “낙심하지 마, 불안해 하지마, 걱정하지 마, 소망의 하나님을 너를 도와 줄거야. 너는 하나님을 찬양하거야” 인지행동치료 심리학자인 ‘길버트’에 따르면, 자기를 심하게 비판하는 사람일수록 행동은 변화되지 않는다고 했다. 행동 변화로 이어지려면 자신에 대한 자비를 가져야 한다. 자기 자비가 없는 사람은 자기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존감이란 자기 자신에게 주는 점수이다. 인간의 자기 모순은 자기는 자기를 하찮게 여기면서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자신의 결핍을 다른 사람을 통해서 체우려고 한다. 자존감은 하나님의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판도라의 상자’란 말이 있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류 최초의 여성이다. 제우스는 판도라에게 상자를 주면서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였다. 판도라는 프로메테우스의 아우 에피메테우스와 결혼한 판도라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다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어느 날 상자를 열었다. 그 순간 상자 속에서 슬픔과 질병, 가난과 전쟁, 증오와 시기 등 온갖 악이 쏟아져 나오자 놀란 판도라가 황급히 뚜껑을 닫자 희망은 빠져나오지 못하였다. 이후 인간은 고통을 떨쳐 버릴 수는 없지만,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이 있어 살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제임스 와트가 그린 ‘소망’이란 유명한 명화가 있다. 지구 위에 남루한 옷을 입고 하프를 켜고 있는 소녀가 있다. 하프의 줄은 끊어지고 단 한 줄만 남았다. 그 줄은 예수라는 ‘소망의 줄’이다. 인간을 좌절 시키는 것은 현실의 무게가 아니라 미래의 불투명이다. 오늘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내일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결코 절망하지 않는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39:7)
종교개혁의 3개의 기둥
10월의 마지막 주일은 ‘종교개혁주일’이다. 종교개혁은 1517년 10월 31일 독일 비텐베르그 성당에 부착한 ’95개항 반박문’이 도화선이 되었다. 종교개혁은 ‘Reformation’이라고 한다. 혁명 ‘Revolution’과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혁명이란 기존의 질서를 깨부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자는 의미이고, 개혁은 기존의 잘못된 질서를 수정하여 바로 잡자는 뜻이다. 루터의 의도는 가톨릭의 개혁을 원했지 혁명을 원한 것은 아니었다.

1. 오직 성경– 전통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3:16-17)
‘오직 성경’은 ‘가톨릭의 전통’에 反하여 성경에 권위를 부여했다. 당시 가톨릭 교회가 성경에 사도들의 전통과 교리를 강조하며 성경의 권위를 추락시킬 때, 종교개혁자들은 성경만을 기준으로 삼았다. 성서를 ‘Canon’이라고 한다. 이 말은 ‘Cane’라는 대나무와 같은 식물에서 왔다. Cane는 일정한 마디가 있어서 잣대와 같은 역할을 했다. Canon은 ‘잣대, 기준, 다림줄, 표준’이란 의미이다. 성경(聖經)의 경(經)은 “원칙, 날실, 다스린다” 등의 뜻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성경은 세상의 다림줄이고, 성경은 구원의 약속이다.
2. 오직 믿음 – 행위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10:2-3)
자기의 행위를 통하여 얻는 의를 ‘자기 의’라고 하고, 하나님의 행위를 통하여 얻는 의를 ‘하나님의 의’라고 한다. 하나님의 행위란 독생자 예수를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이며, 그 사실을 믿는 ‘믿음의 의’이다. 이것을 ‘이신칭의(以信稱義)’라고 한다.
3. 오직 은혜 – 공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엡 2:8-9)
은혜란 상이 아니라 선물이다. 상은 자격이 있어야 받는 것이지만, 선물은 자격이 없어도 받을 수 있다. 은혜란 자격 없는 자에게 조건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은혜이고, 구원받은 자답게 사는 것도 은혜이고, 천국 가는 것도 오직 은혜로만 간다. 우리의 믿음조차도 은혜라는 것을 아는가?
인간이란 누구인가?
인간이란 누구인가? 철학은 질문하고, 신학은 대답한다. 인간을 정의하는 많은 용어가 있다. ‘직립하는 인간'(Homo Erectus), ‘생각하는 인간'(homo Sapiens), ‘말하는 인간'(Homo Loquens), ‘만드는 인간'(Homo Faber) 등. 하지만 이 모두 인간을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인류 최초의 인간(Adam)
히브리어로 인간을 ‘아담'(adam)이라 한다. 아담은 집합적인 의미에서의 ‘사람(인간 전체)’을 뜻한다. 아담이란 이름은 ‘흙’을 뜻하는 ‘아다마(adama)’에서 왔다. 즉 인간의 재질은 흙이다. 하나님께서 흙에 ‘생기’를 불어 넣으니 ‘생령’이 되었다.(창2:7) 원래 아담은 ‘일반명사’ 였으나, ‘고유명사’로 바뀌어 인류 최초의 ‘남자이름’이 되었다. 이와는 반대로 시저(Caesar)는 원래 ‘고유명사’였으나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컷던지 ‘일반명사’가 되어 로마의 황제는 모두 시저(Caesar)로 통한다.
인간은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창1:27) 인간의 육신은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가지만, 천하 그 무엇보다 귀한 이유는 그 안에 ‘생기’가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하나님의 외적 모습이 인간과 같다는 뜻이 아니고, ‘영'(요4;24)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적 존재란 뜻이다.

하늘을 보는 인간(ανθρωπος)
헬라어로 인간을 ‘안드로포스’(ανθρωπος)라 한다. ‘안드로포스’는 ‘위를 바라보는 존재’라는 뜻이다. 위란 단순히 높은 곳이 아니라 영원을 사모하는 존재란 뜻이다. 전도서 기자는 말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3:11)
파스칼은 ‘팡세’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않고서는 우리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신학에서 ‘인간론’을 배운다. 창조자를 인정하지 않고는 인간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인간은 3가지 관점에서 자기를 알 수 있다. 첫째 내가 생각하는 나, 둘째 네가 생각하는 나 그리고 하나님이 생각하는 나. 이 셋 중에 누가 나인가? 나와 너는 변하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정한 나는 하나님 앞에서 선 나이다.
겸손이 미덕인 인간(Homo)
라틴어로 인간을 ‘호모'(Homo)라 한다. 이 단어는 ‘흙’이란 ‘humus’에서 나왔다. ‘겸손’이란 단어인 ‘humility’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이 단어에서 사람의 형용사로 쓰이는 ‘Human’이 나왔다. ‘Human Being’은 Human과 Being이 합쳐서 ‘human Being’이란 인간을 의미한다. 또한 Humanism은 중세시대의 신 중심 사상에 반대하여 나타난 인간중심의 사상인 ‘인문주의’를 뜻한다. 인간은 흙에서 나왔으니 겸손할 수밖에 없다. 인간이 겸손하지 않으면 ‘인격에 기스’난 사람이다.
인간은 ‘Human Being’이다. 진행형을 썼다는 것은 인간은 ‘된 존재’가 아니라 ‘되어가는 존재’이고, 인생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란 뜻이다. 구원에는 3 단계가 있다. 초기적 구원(Initial Salvation), 지속적 구원(Ongoing Salvation), 궁극적 구원(Ultimate Salvation)이다. 초기적 구원이란? 예수 믿고 ‘구원’받은 상태이고, 지속적 구원이란? 구원 받았으면 구원 받은 자답게 사는 ‘성결’을 의미하고, 궁극적 구원이란? 사명을 마치고 천국 가는 ‘영화’를 뜻한다.
관계적 존재인 인간(人間)
한자로 인간은 사람 인(人)에 사이 간(間)이다. 한자는 상형문자이다. 인(人)은 혼자서 존재할 수 없어 둘이 하나를 이루는 모양이다. 인간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적 존재’란 뜻이다. 인간은 위로는 하나님과 관계, 옆으로는 사람과의 관계를 맺고 산다. 성경에서 ‘죽음’이란 하나님과 관계의 단절이고, 생명이란 관계의 회복을 의미한다. 인간은 동물과 많은 차이가 있는데, 본질적인 차이는 ‘영’이다. 영이신 하나님의 대화가 ‘기도’이며, 대화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다.
동시에 인간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는 ‘사회적 존재’이기도 하다. 특히 동양에서는 관계를 존재보다 더 중요시 여기고 있다.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의 존재를 중요시 여긴다. 한자의 人間이란 단어가 그래서 나오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맹자는 인간은 4가지 마음씨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측은지심(惻隱之心): 불쌍히 여기는 마음,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측은히 여기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 부끄러워하는 마음, 의롭지 못한 일에 대해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 남을 공경하고 사양하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마음. 모두가 관계 속에서 찾는 존재의 의미이다.
이제 “인간이란 누구인가?”를 한 문장으로 정의를 내린다. “인간이란 하늘을 소망하며 이 땅에 사는 영적이며 사회적인 존재이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