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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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스 왕을 아십니까?
성경에 고레스는 하나님을 믿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시고 목자로 세워, 유대인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해방시킨 중요한 인물입니다.
지난 수요일 올림픽 파크 옆에 있는 Bicentennial Park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 고레스(Cyrus) 기념비가 있습니다.
Cyrus는 영어 발음으로 키루스이고 히브리식 발음으로는 고레스라고 합니다. 이름 뒤에 the great란 말이 붙으면 ‘대왕’이란 뜻입니다. 왕 중의 왕이란 뜻입니다.
세계사에서 대왕이라고 칭호를 받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알렉산더 대왕, 우리나라는 광개토대왕, 세종대왕 등입니다. 고레스도 대왕이란 칭호를 받은 위대한 인물입니다. 대왕이란 자국을 넘어서 이웃국가, 더 나가서는 인류에 선한 영향력을 끼친 왕입니다.
고레스의 원통에는 그의 정책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관용정책을 펼쳐서 포로들을 석방하여 본국으로 귀환시켰고, 저들의 문화, 종교 등을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고레스 칙령’은 313년에 콘스탄티누스와 리키니우스가 발표되었던 ‘밀라노 칙령’과 유사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밀라노 칙령의 주된 내용은 기독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에 관한 관용인데, 종교적인 예배나 제의에 대해 로마 제국이 중립적 입장을 취한다는 내용의 포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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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스의 기념비가 시드니에 세워진 이유는 두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고레스는 피정복민의 인권을 보호했습니다. 고레스의 원통은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지만 복사본이 UN에 있습니다. UN은 인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곳입니다. 고레스의 원통의 내용을 ‘최초의 인권선언 헌장’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두 번째, 고레스는 최초로 다문화 사회를 세운 사람입니다. 호주는 인권을 중요시하고, 다문화 국가이기에 고레스 기념비를 세운것 같습니다. 이란에 가면 고레스 왕의 무덤이 있습니다. 바사는 알렉산더에 의해 멸망합니다.
고레스 무덤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써 있었다고 합니다. “나 고레스는 한때 세계를 지배했었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땅에 다른 왕에 의해서 점령될 것을 나는 안다, 그러니 점령자야 그대도 언젠가는 누구에게인가 점령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 무덤을 건들지 마라”
알렉산더는 이글을 읽고 무덤을 회손하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까운을 내려놓고 떠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레스 무덤은 지금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고레스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레스가 한 나라를 정복하고 왕자와 그 아들과 그리고 부인을 포로로데리고 왔다고 합니다. 고레스가 왕자한테 물었다고 합니다. “내가 너를 살려면 너는 나에게 무엇을 주겠느냐 왕자 잠깐 생각을 하다가 제 재산에 반을 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네 아들을 살려주면무엇을 주겠느냐? 왕자는 제 재산의 전부를 드리겠습니다. 만약에 네 와이프를 살려주면 너는 나한테 무엇을 주겠느냐? 주저없이 왕자는 대답하기를 내 생명을 드리겠습니다.” 왕자의 대답에 고레스는 감동을 받아 살려줬다고 합니다.
본국에서는 왕자와 아들과 왕자비가 무사하게 돌아온 거에 대한 축제를 열렸습니다. 왕자는 한가지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비록 고레스 왕이 적국의 왕이지만 참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내가 보니 정말 잘 생긴 미남이고, 의젓하고, 늠름하고, 장수답고, 사나이답더군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 아내는 왕자를 바라보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의 얼굴을 자세히 보지 않았습니다. 오직 저는 나를 위해서 대신 죽겠다고 늠름하게 말하는 한 남자의 얼굴만을 바라보고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동안에 다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성경 전체에서 고레스와 관련된 3명의 선지자와 한 명의 제사장이 있습니다. 3명의 선지자는 이사야, 예레미야, 다니엘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제사장이고 서기관이며 학자인 에스라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에스라서 1장 1-3절의 말씀입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나라를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그의 백성 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하라 그는 예루살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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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생각할 사람은 이사야입니다.
이사야는 고레스가 역사에 등장하기 2세기 전에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북왕국은 BC 722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을 했습니다.
북왕국이 멸망할 때의 왕은 호세아였고, 남왕국의 왕은 히스기야 였습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 왕 때 남왕국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이사야는 남왕국의 멸망이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할 것이고, 고레스에 의하여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예언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사44:28).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사45:1).
하나님은 고레스를 “나의 목자”라고 불렀습니다. 이 칭호는 마치 목자가 자기 양 떼를 인도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도구가 될 것임을 암시합니다. 고레스가 예루살렘 회복과 성전 재건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 신자와 비신자 모두를 통해 일하시는 분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레스는 이스라엘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고레스를 유대인의 귀환과 성전 회복을 위해 사용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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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생각할 사람은 예레미야입니다.
예레미야는 남왕국의 요시야 왕 때부터 남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활동했던 선지자입니다.
고레스 등장 1세기 전에 남유다의 멸망과 함께 70년 만에 다시 돌아올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들이 므낫세, 무낫세의 아들이 아몬, 아몬의 아들이 요시야입니다.
히스기야는 요시야 왕의 증조부입니다.
히스기야가 29년 통치를 하고, 므낫세가 55년을 통치하고, 아몬이 2년을 통치하고 요시야 왕이 8살 때 남왕국의 16대 왕으로 등극하여 31년간 통치를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때부터 남유다의 멸망할 때인 BC 586년까지 활동을 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대하 36:2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렘25:12)
예레미야의 70년의 포로 기간이 끝나면 돌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학자들 마다 70년에 대하여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3번이 포로와 3번의 귀환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 맞춰야 할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70년이란 숫자를 정확하게 맞출 수 있는 한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입니다.
BC 586년 남왕국이 멸망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BC 516년 제 2 성전이 재건될 때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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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생각할 사람은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은 남유다 멸망의 서곡인 BC 605년 제 1차 포로 때 바벨론으로 끌려가 바사왕 고레스 통치 원년인 B.C. 538년까지 바벨론과 바사에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는 외국 땅에 살면서도 하나님께 충실했으며 자신의 믿음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꿈을 해석하는 다니엘의 지혜와 능력은 느부갓네살 왕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는 왕의 꿈을 정확하게 해석했고 명성을 얻었습니다. 다니엘은 평생 동안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굳건히 지켰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사자 굴에 던져져도 살아 남았습니다.
다니엘은 제국의 흥망성쇠와 메시아의 도래를 포함하여 미래 사건에 대한 환상과 예언을 했습니다.
그는 바벨론 뿐 아니라 바사에서도 높은 직책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9:2)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글을 연구하면서 바벨론의 정복과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로 인해 발생한 예루살렘의 황폐가 70년 동안 지속될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이 폐허로 남고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땅으로 돌아가도록 허용되기 전에 일정 기간 동안 포로 생활을 하게 될 것임을 의미합니다.
70년 황폐 기간에 대한 다니엘의 이해는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예언과 일치하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예레미야 25장 11-12절에 이스라엘 백성의 바벨론 포로생활이 70년 동안 지속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 예언을 알고 있는 다니엘은 포로 생활의 끝이 다가오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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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네 번째로 생각할 사람은 에스라입니다.
에스라는 제사장이자 학자였으며 서기관으로 율법을 공부하고 가르치는 데에 능했습니다.
바빌론 포로에서 제 2차 귀환으로 BC 458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무너진 백성들의 마음을 회복시켰습니다.
그는 영적 지도자로서 예루살렘의 회복과 종교 개혁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율법을 보존하고 가르치는 그의 노력은 유대 민족의 종교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재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그의 헌신과 포로기 이후 예루살렘과 유대인 공동체의 회복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강조합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스 1:1)
이 사건은 고레스의 통치 원년인 BC 538년에 일어났다고 기술하고 있다.
고레스는 유대인 혈통이 아니라 페르시아의 왕이었다는 점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구절은 고레스의 행동이 성경의 또 다른 선지자인 예레미야가 말한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고레스는 유대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예배 장소를 회복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령을 내리도록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통치자로 묘사됩니다.
하나님은 믿는 사람들 통해서도 역사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을 통해서도 역사하는 하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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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선지자는 타락하는 유대인들을 언제까지 이대로 두시겠냐고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을 통해서 징벌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박국은 유대인들보다 더 악한 바벨론을 통해서 징벌하겠다는 말씀을 이해할 수 없어 다시 질문했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면 그들도 반드시 징벌하겠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3가지 단어로 표현합니다. 전능하시고(Omni-potent), 전지하시고(Omni-scient), 무소부재하신(Omni-present)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교회 안에 가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통치하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일을 통해서도 역사하지만, 좋지 않은 일을 통해서도 역사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 모든 사건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연약함으로 제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을 알량한 우리의 지식으로 한계 짓지 마시기 바랍니다.
시공간을 초월하신 하나님을 우리의 생각으로 제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세시고, 공중의 나는 새와 들에 핀 꽃도 하나님의 허락없이 떨어지지 않고 꺾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우연은 없습니다. 모든 만남과 모든 사건에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경륜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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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을 넘어 영성으로
영성(Spirituality)이란 무엇인가? 혼의 성품은 인성이고, 영의 성품은 영성이다. 우리 주변에 인성이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착하고, 정직하고, 성실해서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인간은 영적인 존재로 ‘인성을 넘어 영성으로’ 살아야 한다. 영성이란 영적 지향성이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5-6) 영을 따르는 자는 3가지 영성을 가지고 산다.
1. 순례자의 영성
순례자는 천국을 향하여 여행하는 사람이다.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은 존 번연이 쓴 소설이다. ‘천로역정’은 ‘파멸의 도시’에서 ‘천상의 도시’로 영적 여정을 떠난 주인공 크리스천의 순례의 이야기이다. 순례의 길은 장미빛 아스팔트 길이 아니다. 주인공 크리스천은 낙담의 구렁텅이, 죽음의 계곡, 어려움의 언덕, 허영의 강과 같은 곳에서 위험과 유혹에 직면하며 위기의 순간을 맞기도 한다. 또한, 덕행과 영적 교제를 상징하는 충신, 소망, 해석자 등 다양한 인물들로부터 지도와 격려를 받는다. 우리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은 아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이 땅에 사는 사람이다(빌3:20). 우리는 방황하는 나그네가 아니라 천국을 향해가는 순례자이고, 표류하는 인생이 아니라 항해하는 인생이다. “저희가 이제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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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청지기의 영성
‘청지기’란 다른 사람의 집이나 재산을 위탁 받아 관리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청지기는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은 자기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인정하고 관리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창조 사역을 마친 후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 하시며 인간에게 청지기 사명을 주셨다.
마태복음 25장에 달란트의 비유가 나온다. 비유에서 주인은 여행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재산을 종들에게 맡겼다. 한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 다른 종에게는 두 달란트, 세 번째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배를 남겨 칭찬을 받고 더 많은 책임과 주인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보상을 받았다. 주인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한 달란트 받은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책망하고, 그의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종에게 주었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25:29).
3. 순교자의 영성
순교자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박해와 고통 그리고 죽음까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순교자’라는 용어는 ‘증인’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martys’에서 유래되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증인’은 예수의 삶, 죽음, 부활 그리고 그분을 통한 구원의 메시지에 대해 증언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힘으로 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초기 기독교는 로마 제국 치하에서 박해를 받고 있었다.
개인의 믿음을 지키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예수의 ‘증인’이 되겠다는 것은 죽겠다는 말이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죽음을 불사하고 증인으로 살았다. 순교자의 영성을 가진 사람은 증인의 삶을 사는 사람이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2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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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트르의 ‘존재와 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Existence precedes essence
『존재와 무』는 20세기 저명한 실존주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장 폴 사르트르가 쓴 철학서적이다. 1943년에 출판된 이 책은 사르트르의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작품 중 하나로 간주됩니다. 그 핵심에서 “존재와 무”는 실존적 현상학으로 알려진 사르트르의 철학 체계를 탐구합니다. 인간의 존재, 의식, 자유의 본질을 탐구하여 인간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우리 존재를 탐색하면서 직면하는 도전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Sartre는 “즉자(존재)”와 “대자(실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자기 존재(존재)”는 의식이나 자기 인식 없이 단순히 존재하는 무생물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자신을 위한 존재(실존)”는 자기 인식, 지향성 및 자유를 특징으로 하는 인간의 의식을 나타냅니다.
이 책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인 측면으로서 “무”라는 개념을 탐구합니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의식은 항상 자신의 한계와 비존재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무(無)에 대한 자각은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창조할 책임과 자유와 씨름하면서 불안과 실존적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사르트르의 작업은 또한 자유를 피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려는 개인의 시도를 가리키는 “나쁜 믿음”(mauvaise foi)의 개념을 탐구합니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자유를 부정하고 사회적 기대에 순응하거나 다른 사람이 부과한 역할과 정체성을 채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자신의 자유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져야만 진정한 진정성과 진정한 존재가 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존재와 무”의 중심 주제 중 하나는 “상호주관성” 또는 개인 간의 관계에 대한 아이디어입니다. Sartre는 인간이 사회적 맥락에서 존재하며 타인과의 관계가 자아를 형성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는 사랑, 욕망, 갈등을 포함한 대인 관계의 역학과 그것이 우리의 자유와 진정성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합니다.
책 전반에 걸쳐 사르트르는 지각, 의식, 시간성, 자유, 윤리, 존재의 본질을 포함한 광범위한 철학적 주제를 다룬다. 그의 글쓰기 스타일은 실존주의 전문 용어와 철학적 용어를 사용하여 조밀하고 복잡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존재와 무”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우리가 살아온 경험의 복잡성에 대한 심오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실존주의 철학의 중요한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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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對自 pour-soi), 즉자(卽自 en-soi)
의식의 성격을 초월성으로 규정할 수 있다. 초월성이란 의식이 의식 아닌 다른 존재에 대해 부단히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의식은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않고 다만 의식 밖의 「그 자체로 있는 존재」에 관한 의식으로만 존재한다. 의식은 언제나 자기 외부에 존재하는 그 무엇에 관한 의식인만큼 그 자신의 성질이나 상태를 가지지 않는다. 그것은 완전히 투명하고 속이 비어 있다.
그러나 그것이 대상으로 삼는 존재는, 우리의 의식이 있건 없건, 다른 존재가 있건 없건 그냥 「그 자체로 존재」한다. 우리가 지각하는 대상인 탁자, 의자, 나무, 책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그 자체로 존재」하므로 이것을 즉자(卽自, en-soi)라고 부른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은 이와 다르다. 의식은 그 자체로는 존재하지 못하고, 대상의 세계 안에 있는 즉자들에 대한 인식, 지각, 욕망, 해석, 이해등의 방식으로만 존재한다.
이것이 대상에 대한 초월성인데, 의식은 이외에도 자기와 대면하여 자기를 반성하는 성질도 갖고 있다. 나무나 책상같은 사물은 자기와 자기가 이중으로 분리되어 자기가 자기를 바라보며 비판을 하거나 평가를 하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의 의식은 자기와 자기의 두겹 분리가 그 특징이다. 즉 「자기에 대해서 있는 존재」이다. 자기에 대해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대자(對自, pour-soi)라고 부른다.
그런데 자기와 자기 사이의 빈틈, 그리고 의식과 의식외부의 대상과의 사이에 있는 빈틈이 무이다. 따라서 대자는 한 가운데에 무가 들어있는 그러한 존재 양식이다. 그런데 의식은 그 자체의 존재가 없이 투명하고 오직 외부의 어떤 존재를 향해서만 있다고 했으므로 의식 그 자체도 무이다.
그러므로 의식과 대자, 그리고 무는 모두 동의어이다. 이처럼 무(無)인 의식 때문에 인간은 다른 생물과 구별된다. 의식은 내용물이 없고, 투명하고, 아무것도 아닌데, 바로 이 무 때문에 인간은 세계를 인식하고 자신을 반성할 수 있다. 그런데 무란 무엇일까? 글자 그대로 「없음」인데 사르트르는 이것을 존재속에 위치 시킨다. 존재의 앞이나, 뒤, 또는 밖이 아니라 마치 과일 속의 벌레처럼 바로 존재의 심장부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샤르트르는 타자의 시선에 대해서도 말했다. 타자란 존재와 실존의 역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주체가 될 때는 타자는 객체가 되지만, 타자가 주체가 될 때는 내가 객체가 된다.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다 보면 나는 대자에서 즉자로 전락하게 된다. 자기대상이 자기를 만들어가는 것과 같다.
불교에서 ‘무’는 ‘무(無)’라는 한자로 표기되며, 그 의미는 ‘없음’, ‘비어 있음’, ‘부재’ 등으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무’는 불교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다양한 의미와 사용법이 있습니다.
첫째로, ‘무’는 불교에서 현실적인 존재의 부재를 나타냅니다. 이는 모든 현상과 사물이 지속적인 변화와 무상태로 인해 실재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불교에서는 모든 존재가 변화하고 불완전하며, 영원한 실재가 아니라는 개념을 강조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무’는 모든 현상에 대한 비의의와 불확실성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둘째로, ‘무’는 욕망이나 탐욕, 매달림과 같은 사고나 욕망에 대한 해방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불교에서는 욕망과 사고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위해 ‘무’의 개념을 강조합니다. 욕망과 사고에 사로잡히지 않고 무소유, 무지, 무사심과 같은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개인의 해방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무’는 부처님의 철학과 가르침을 표현하는 말로도 사용됩니다. 부처님은 인생의 고통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교훈을 전해주셨는데, 이를 ‘무’라는 개념을 통해 표현하고 설명합니다. 불교 신앙의 핵심 가르침인 ‘사찰세계’와 ‘무사심’도 ‘무’와 관련이 깊습니다.
요약하자면, 불교에서의 ‘무’는 부재, 비어 있음, 부처님의 가르침 등 다양한 의미를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현상의 무상태, 욕망과 사고의 해방,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한 깨달음 등을 의미하는 중요한 키워드로 사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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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은 누구인가?
Jacques Lacan은 1901년부터 1981년까지 살았던 프랑스의 정신 분석가이자 정신과 의사였습니다. 그는 특히 Sigmund Freud의 이론을 재해석하고 종종 Lacanian이라고 하는 자신의 정신 분석 프레임워크를 개발하는 등 정신 분석 분야에 대한 영향력 있는 공헌으로 유명합니다. Lacan의 작업은 무의식과 인간 주관성의 본질을 분석하기 위해 철학, 언어학 및 구조주의를 사용하는 도전적이고 매우 이론적일 수 있습니다. 라캉의 이론과 관련된 몇 가지 주요 개념에는 거울 단계, 상징적 질서, 상상계, 실재계가 포함됩니다.
거울 무대는 라캉의 가장 잘 알려진 아이디어 중 하나입니다. 그는 영아기에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볼 때 자기 인식과 동일시의 순간을 경험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이 순간은 아이가 언어와 문화, 사회구조의 영역인 상징계에 진입하는 순간이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라캉에 따르면 거울의 단계는 자아의 형성이나 자아의식을 형성한다.
라캉은 또한 인간의 주체성을 형성하는 데 있어 언어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언어가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현실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구조화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언어는 우리의 욕망과 그것을 완전히 표현하는 능력 사이에 간극을 만들어 무의식 속에 항상 존재하는 결핍감이나 욕망으로 이끈다. 라캉은 마음의 작용에 대한 언어의 영향을 강조하기 위해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라캉의 이론에서 무의식은 억압된 욕망의 저장소가 아니라 기표와 기의의 상징적 네트워크이다. 이러한 기표와 기의는 우리의 생각, 행동 및 욕구를 결정하는 복잡한 웹으로 구성됩니다. 라캉은 무의식적 과정과 심리적 고통의 근원에 대한 통찰을 얻기 위해 언어와 언어의 상징적 의미를 분석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라캉은 또한 상상계와 실재계의 개념을 소개했다. 상상계는 우리의 자기 인식과 사회적 상호 작용을 형성하는 이미지, 환상, 환상의 영역을 말합니다. 반대로 실재는 언어 너머에 존재하며 완전히 파악하거나 상징화할 수 없는 것을 나타냅니다. 실재는 트라우마, 말할 수 없는 것, 상징적 표현에 저항하는 인간 경험의 파괴적인 측면과 관련이 있습니다.
라캉의 사상은 정신분석, 문학이론, 문화연구,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업은 많은 학자와 실무자들이 그의 개념과 방법을 채택하거나 비판하면서 광범위한 토론과 토론을 계속 생성합니다.
Lacan의 글은 매우 복잡하며 종종 그의 이론적 틀과 용어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연구하려면 일반적으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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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와 구조주의
20세기 프랑스의 저명한 두 지식인인 장 폴 사르트르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사이의 논쟁을 하였습니다. 그들 사이의 논쟁은 특히 구조주의와 실존주의의 맥락에서 인간의 자유와 인간 사회의 본질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사르트르와 실존주의: 장 폴 사르트르(1905-1980)는 저명한 철학자이자 실존주의자였습니다. 실존주의는 개인의 존재, 자유, 선택을 강조하는 철학적 운동이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유롭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 그는 개인이 자신의 선택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창조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타고난 인간 본성이나 본질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사르트르에게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즉, 먼저 우리는 자유로운 존재로 존재하고 선택과 행동을 통해 자신을 정의한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이 무의미해 보이는 세상에서 자신의 삶을 형성하고 의미를 창조할 수 있는 절대적인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레비스트로스와 구조주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 1908-2009)는 인류학자이자 구조주의의 선도적 인물로, 근본적인 구조와 패턴을 통해 인간의 문화와 사회를 이해하고자 하는 이론적 접근 방식입니다. 구조주의에서는 개인의 행위나 자유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인간의 행동과 사고를 형성하는 보편적인 구조를 식별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Lévi-Strauss는 인간의 행동이 마음의 무의식적인 구조에 의해 지배되고 이러한 구조가 문화 현상을 일으킨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무의식의 구조”라고 부르는 특정 보편적 정신 구조가 다양한 사회에 걸친 다양한 문화적 표현과 관행의 근저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인간의 행동, 의식, 신화 및 사회 조직을 형성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는 소쉬르의 언어 구조주의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토론: Sartre와 Lévi-Strauss 사이의 논쟁은 주로 인간의 자유와 결정론에 대한 그들의 대조적인 견해에서 나왔다. Sartre는 인간 주체성을 경시하고 개인을 기본 구조의 단순한 산물로 축소하는 Lévi-Strauss의 구조주의적 관점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그러한 견해가 인간의 책임과 진정한 존재의 가능성을 부정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한편으로, Lévi-Strauss는 사르트르의 실존주의가 인간 행동을 형성하는 더 넓은 문화적, 사회적 힘을 무시하는 주관적 자유를 강조한다고 비판했습니다. Lévi-Strauss에 따르면 개인의 자유에만 초점을 맞추면 다양한 문화에서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패턴을 놓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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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적으로 사르트르와 레비스트로스 사이의 논쟁은 개인의 자유와 행위주체(실존주의)에 대한 강조와 인간의 행동과 문화를 형성하는 근본적인 구조와 패턴에 대한 강조(구조주의) 사이의 충돌로 볼 수 있습니다. 두 관점 모두 철학, 인류학, 사회학을 포함한 다양한 연구 분야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그들의 논의는 인간 존재와 사회의 본질에 대한 현대적 논쟁과 계속 관련이 있습니다.
Ferdinand de Saussure(1857-1913)는 현대 언어학과 구조주의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진 스위스 언어학자였습니다. 그는 언어와 그 구조 연구에 상당한 공헌을 하여 뒤따르는 많은 언어 이론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일반 언어학 과정: 소쉬르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은 그의 강의 노트를 바탕으로 사후에 출판된 “일반 언어학 과정”(1916)입니다. 이 책은 언어학과 기호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소쉬르는 생전에 완전한 작품을 출판하지 않았고, 그의 아이디어는 학생들의 노트를 통해 전파되었고 나중에 학생들에 의해 편집되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호와 기표: 소쉬르의 중심 개념 중 하나는 기표와 기의의 두 가지 요소로 나눈 기호의 개념입니다. 기표는 언어 요소의 물리적 형태(예: 단어의 소리 또는 문자 기호)를 말하며, 기의는 해당 형식과 관련된 개념 또는 의미입니다. 소쉬르는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자의적이며 언어공동체의 관습에 기초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시 및 통시 언어학: 소쉬르는 언어 연구에 대한 두 가지 접근 방식인 공시적 접근과 통시적 접근을 구별했습니다. 동시 언어학은 특정 시점의 언어 연구에 중점을 두고 현재 존재하는 언어의 구조와 요소를 분석합니다. 반면에 통시 언어학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언어의 역사적 발전과 진화를 조사합니다.
랑그와 가석방: Saussure는 언어의 기본 시스템과 화자의 실제 사용을 구별하기 위해 “langue”와 “parole”의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랑그는 공동체의 모든 화자가 공유하는 언어의 추상적이고 체계적인 구조를 말하며, 파롤은 특정 화자의 개별 발화 행위를 의미합니다.
구조주의: 소쉬르의 연구는 현상을 형성하는 기본 구조와 시스템을 분석하여 현상을 이해하려는 이론적 접근 방식인 구조주의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구조주의는 언어학, 인류학, 문학 이론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현대 언어학에 대한 영향: 소쉬르의 아이디어는 언어학 연구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언어의 임의적 특성과 랑그와 파롤의 구별에 대한 그의 강조는 언어가 어떻게 기능하고 화자가 어떻게 학습하는지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었습니다. 또한 언어의 구조적 측면에 대한 그의 초점은 현대 언어 이론의 발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반적으로 Ferdinand de Saussure의 작업은 언어학 분야를 크게 발전시켰으며 언어의 본질과 기본 구조를 이해하는 데 관심이 있는 언어학자와 학자에게 계속해서 기본적인 참고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Ferdinand de Saussure와 Claude Lévi-Strauss는 각각 언어학과 인류학 분야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전문 분야를 가지고 있고 다른 주제에 집중했지만 그들의 작업과 지적 유산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연관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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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주의: 소쉬르와 레비스트로스는 모두 구조주의 운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언어에 대한 소쉬르의 생각은 언어의 기본 구조와 기표와 기의 사이의 관계의 임의적 특성을 강조하면서 구조적 언어학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반면에 Lévi-Strauss는 구조주의를 문화와 인간 사회 연구로 확장하여 신화, 의식, 친족 체계 및 기타 문화 현상을 형성하는 기본 구조를 조사했습니다.
레비스트로스에 대한 소쉬르의 영향: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소쉬르의 영향을 인정했습니다. 소쉬르가 랑그(언어의 기본 체계)와 파롤(개별 언어 행위)을 구별한 것은 레비스트로스가 문화 연구에서 “구조”와 “사건”을 구분하는 데 영감을 주었습니다. Lévi-Strauss는 사회 내의 문화적 패턴과 관계를 분석할 때 기본 구조에 대한 Saussure의 개념을 채택했습니다.
기호학: Saussure와 Lévi-Strauss는 모두 기호와 기호 및 이들이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기호학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기표와 기의가 있는 소쉬르의 기호 이론은 기호학 연구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Lévi-Strauss는 기호학을 사용하여 신화 및 기타 문화적 표현을 분석하고 이를 기본 의미가 있는 기호 체계로 해석했습니다.
언어학과 인류학 연결: Saussure는 주로 언어와 언어학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그의 아이디어는 특히 Lévi-Strauss의 작업을 통해 인류학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인류학자인 Lévi-Strauss는 Saussure의 구조주의적 접근 방식을 인간 사회와 문화 연구로 확장했습니다. 그는 문화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이항 대립과 기본 구조와 같은 유사한 개념을 적용했습니다.
인간 과학에 대한 접근: 소쉬르와 레비스트로스는 20세기 초에 인간 과학 연구에 보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접근 방식을 도입하려는 광범위한 경향의 일부였습니다. 소쉬르의 구조적 언어학은 언어를 지배하는 체계적 규칙을 밝혀내는 것을 목표로 했고,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적 인류학은 인간의 문화적 표현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구조를 밝히려 했습니다.
요약하면, Saussure와 Lévi-Strauss는 서로 다른 주제(각각 언어학과 인류학)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구조주의 원칙을 채택하고 기본 구조와 시스템을 강조한다는 공통점을 공유했습니다. 그들의 작품은 각자의 분야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언어, 문화 및 인간 사회 연구의 광범위한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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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Martin Heidegger(1889-1976)는 실존주의, 현상학 및 해석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진 매우 영향력 있는 독일 철학자였습니다. 독일 메스키르히에서 태어나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와 마르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 신학, 고전문헌학을 공부했다.
하이데거의 가장 중요한 작품인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은 1927년에 출판되어 철학사의 전환점을 기록했습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인간 실존의 본질과 ‘존재’ 자체의 의미에 대한 물음에 파고들었다. 그는 인간이 세상과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지, 시간과 존재 사이의 관계, 철학적 탐구에서 개성의 역할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언어, 해석학, 전통적인 서구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에 대한 독특한 접근 방식이 특징입니다. 그는 실존적 사고의 중심이 된 “Dasein”, “Being-toward-death”, “authenticity”, “care”와 같은 개념을 소개했습니다.
경력 초기에 하이데거는 실존주의 운동과 관련이 있었고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와 친밀한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철학적 탐구에 깊이 파고들수록 그는 실존주의와 거리를 두고 자신만의 뚜렷한 철학적 접근을 발전시켰다.
하이데거의 철학은 높은 찬사를 받기도 했지만 심한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존경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그가 1930년대와 1940년대 초에 나치 정권과 연루된 것에 대해 그를 비판합니다. 하이데거의 정치적 선택과 그의 국가 사회주의 참여는 학자들 사이에서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습니다.
그의 삶을 둘러싼 논란에도 불구하고 마르틴 하이데거의 철학적 작품은 계속해서 널리 연구되고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는 실존주의 철학자, 해석학 학자, 포스트모더니스트, 환경 윤리학자 등 다양한 철학 분야의 사상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927년에 출판된 마틴 하이데거의 대작 “존재와 시간”(독일어: “Sein und Zeit”)은 실존 철학과 현상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 중 하나입니다. 이 작업에서 하이데거의 중심 관심사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존재” 자체의 의미를 조사하는 것입니다. 그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인간이 주변 세계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이해하고자 합니다.
Dasein: Heidegger 철학의 핵심에는 “Dasei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독일어 용어는 인간을 “현존재”로 번역됩니다. Dasein은 인간이 세상의 다른 존재와 달리 존재하는 독특한 방식을 말합니다. 하이데거는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 존재에 대한 분석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 인간은 존재의 의미에 대해 질문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시간성: 하이데거는 인간의 실존이 근본적으로 “시간성”으로 특징지어진다고 주장한다. 시간성은 Dasein이 항상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안에 위치하며 끊임없는 “되기”의 과정에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이데거는 존재의 시간성을 무시하고 그것을 고정된 추상적인 범주로 환원하는 전통적인 서구 철학을 비판한다.
진정성과 비진정성: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존재 방식과 관련하여 진정성(Eigentlichkeit)과 비진정성(Uneigentlichkeit)의 개념을 도입한다. 진정성은 자신의 존재를 소유하고, 죽음의 필연성에 직면하고, 자신의 가치와 가능성에 비추어 의미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반대로 비진정성은 개인이 사회적 규범에 순응하고 진정한 자아를 회피하며 “타락” 또는 소외된 상태에서 살아가는 존재 방식을 가리킨다.
죽음을 향한 존재: 하이데거는 자신의 죽음에 대한 자각이 인간 존재의 중요한 측면이라고 주장합니다. 죽음을 향한 존재는 단지 육체적인 죽음을 예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유한성이 우리가 사는 방식을 형성하고 우리의 존재에 긴박함을 부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필멸의 삶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진정한 선택을 하고 더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돌봄(Sorge): 하이데거는 현존재의 존재 방식을 “돌봄” 또는 “관심”으로 묘사합니다. Care는 Dasein의 세 가지 구조적 구성 요소의 상호 연결성을 의미합니다. 특정 역사적 및 문화적 맥락으로의 “투영”(Geworfenheit), 미래 가능성을 향한 “투영”(Entwurf), 일상적인 루틴과 사회적 역할로의 “떨어짐”(Verfallen)입니다.
존재의 해석학: 인간 존재를 이해하기 위한 하이데거의 접근 방식은 인간 존재의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고 밝히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해석학적 방법을 포함합니다. 그는 추상적인 추론에 의존하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의 경향을 비판하고 생생하고 구체적인 인간 경험에 관여하고자 합니다.
전반적으로 “존재와 시간”은 존재, 시간, 철학 자체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재정의하려는 복잡하고 도전적인 작업입니다. 그것은 실존주의, 해석학, 현상학을 포함한 많은 철학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계속해서 격렬한 학술적 논쟁과 해석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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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