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성경에 ‘그리스도인’ (Christians)이란 단어는 단 3번 밖에 나오지 않는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행 11:26).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행 26:28).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벧전 4:16).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1. 그리스도의 사자 (Ambassadors for Christ)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사자’이다. ‘그리스도의 사자’란 영어로 ‘Ambassador for Christ’이다. ‘Ambassador’는 사신, 대사, 사자 등으로 번역한다. 사신이란 왕을 대신하여 특별한 임무를 갖고 타국에 파송된 사람이다. 사신의 파송한 나라의 왕을 대신한다. 서울시 서대문구에 있는 독립문은 ‘영은문’을 부수고 1896년에 세웠다. 영은문은 중국 명나라 사신을 맞이하는 ‘모화관’ 앞에 세웠던 문이다. 조선의 새 임금이 즉위하여 중국 사신이 조칙을 가지고 오면 임금이 친히 경복궁에서 모화관까지 나오는 것이 상례였다. 독립문은 조선이 더 이상 중국의 종속국이 아닌 자주 독립국임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문이다.
‘그리스도의 사자’란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람이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사자로서 특별한 신분은 갖게 되고, 그 신분은 어둠에서 그의 기이한 빛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기 위함이다.
2. 하나님과 화목 (Reconciliation with God)
불교와 기독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불교는 자력종교이고, 기독교는 타력종교이다. 불교는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 자연의 이치를 설명한다. 인과응보의 법칙은 자신의 행위를 근거로 모든 현상을 원인과 결과로 해석한다. 이생은 전생의 업보의 결과이고, 내생은 이생의 업보의 결과라고 한다. 업보 또는 카르마는 원래 행위를 뜻하는 말로써 인과의 연쇄 관계에 놓이는 것이며 단독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의 행위는 그 이전 행위의 결과로 생기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미래의 행위에 대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기독교에서 죄의 문제는 오직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해결 받을 수 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다. 관계의 단절은 죽음이고 관계의 회복은 생명이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 인간은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다.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있는 사람은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 그의 부활은 인간에게 영원한 삶을 제공하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길을 열어주었다. 하나님과의 화목은 사람 간의 관계의 회복, 그리고 인간과 세상 간의 조화로 이어진다.
3. 화목의 길 (The Way of Reconciliation)
레위기는 다양한 종류의 제사와 제물에 관한 규칙, 음식 규정, 모든 사람에 대한 도덕적 가르침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유대교의 예배와 의식, 헌신적인 생활에 대한 가이드로 활용되어 왔다. 레위기는 2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17장까지는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 18~27장까지는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는 길이다. 전반부가 제사를 통한 ‘구원의 법’이라면, 후반부는 절기와 율법을 통한 ‘성결의 법’이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는 제사장과 제물 그리고 제단이 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친히 대제사장이 되고, 제물이 되어, 십자가의 제단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돌아가셨다. 죄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이제는 우리가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화목하지 못한 사람들을 화목케 ‘그리스도의 사자’가 되었다.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 2:16)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선교
1. 전도와 선교 (Evangelism and Mission)
전도 (evangelism)는 ‘유앙겔리온 (euangelion)’에서 파생된 단어로 ‘유앙겔리온 (euangelion)’을 전하는 것이다.
유앙겔리온은 ‘좋은 소식’ 또는 ‘복음’이란 뜻이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이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1:15)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3일 만에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무덤에서 부활하셨다.
신앙은 하나님과 관계이고, 신앙생활은 사람과 관계이다.
신앙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손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선교(mission)라는 단어는 라틴어로 “보내다”를 의미하는 “missio”에서 파생되었다.
선교는 포괄적 방식의 전도이다.
선교는 사회정의, 지역 사회개발, 빈곤 완화, 교육, 의료 및 재난구호와 같은 다양한 활동을 통한 전도이다.
구세군에는 ‘한손에는 빵, 한손에는 성경’이란 모토가 있다.
빵만 가지고 가면 구제이고, 성경만 가지고 가면 전도이지만, 두 손으로 가면 선교이다.
전도는 ‘영혼구원’을, 선교는 ‘전인구원’을 강조한다.
2. 소명과 사명 (Calling and Mission)
소명은 ‘부르심’이고, 사명은 ‘보내심’이다.
소명(召命)이란 ‘부를 소’에 ‘목숨 명’을 써서 소명이다. ‘부름 받은 목숨’이란 뜻이다.
사명(使命)이란 ‘사신 사’에 ‘목숨 명’을 써서 사명이다. 사명이란 ‘보냄 받은 목숨’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은혜로 부르셨고, 은사로 사명을 감당케 하신다.
은혜란 자격 없는 자에게 조건 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은 불타는 떨기나무로 모세를 부르시고, 아론과 함께 애굽으로 보내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부르시고, 세계 선교의 기수가 되게 하셨다.
결핍이 힘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금수저인 바울에게 ‘가시’는 장애가 아니라 은혜였다.
모이는 교회인 ‘에클레시아’가 부르심이라면, 흩어지는 교회인 ‘디아스포라’는 보내심이다.
에클레시아가 ‘구원의 방주’라면, 디아스포라는 ‘세상의 구조선’이다.
우리는 모이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흩어지기 위하여 모였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Saved to Save).
3. 하나님의 선교 (Missio Dei)
하나님의 선교는 선교의 주체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강조한다.
선교를 시작하고 추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선교는 창조자와 피조물과의 회복된 관계에 대한 하나님의 열망에 뿌리를 둔 신성한 계획이다. 선교는 교회의 여러 활동 중의 하나가 아니라, 교회의 존재 목적이 선교이다.
교회가 선교적이지 않으면 ‘선교의 적’이 될 수 있다.
“불이 타오름으로써 존재하듯, 교회는 선교함으로써 존재한다.” 스위스의 신학자 에밀 브루너의 말이다.
선교는 교회의 경계를 넘어 피조물 전체를 포함한다.
선교는 삶과 사회의 모든 측면에 구속, 치유,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다.
우리의 선교의 장은 어디인가? 우리가 사는 곳이 선교지이고, 우리가 하는 일이 사역이 되는 우리는 모두 선교사이다.
지금 땅끝이 우리에게로 오고 있다. 우리 안에 미전도 종족으로 늘어가고 있다.
선교는 말에 있지 않고 삶에 있다. 우리는 모두 선교적 삶을 살아야 한다.
삼팔선에서 휴전선으로
역사는 어제의 사건을 오늘의 사관이 내일을 위하여 기록한 글이다. 사건은 객관적이지만, 사관은 주관적이다. 올해는 광복 78주년이 되는 해이다. 1945년 8월 15일, 한국은 35년간의 일본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빼앗겼던 나라를 되찾았다. ‘광복절’이란 ‘빛을 다시 찾은 날’이란 뜻이다.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졌고, 8월 8일 소련이 참전을 선언했고, 8월 9일 나가사키에 다시 원폭이 떨어지자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8월 15일 연합군 최고사령부 일반명령 제1호가 발표됐다. 북위 38선을 경계로 남은 미군, 북은 소련군이 일본의 무장해제를 담당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한반도는 38선으로 분할되었다.
1945년 8월 15일 – 38선 (군사 분할선, 軍事分割線)
제2차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우리나라에 진주한 미군과 소련군의 군사분할선으로, 한반도 중앙부를 가로지르는 북위 38선을 지칭한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다음 일본의 항복이 확실해짐에 따라 소련은 1945년 8월 8일 재빨리 대일선전포고를 하고 만주를 휩쓸며 한반도로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당시 미군은 아직 오키나와에 있었다. 미국은 한반도의 공산화를 우려하여 38도 선을 기준으로 이남은 미군이, 이북은 소련군이 무장해제할 것을 제안했고 소련은 그것을 수락했다.
1948년 8월 15일 – 정부수립
모스크바삼상회의는 1945년 12월 16일부터 25일까지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미국·영국·소련의 3개국 외상이 한반도의 신탁통치 문제를 포함한 7개 분야의 의제를 다룬 회의이다. 채택된 의정서에는 한국에 미군사령부와 소련군사령부의 대표로 구성되는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고, 민족 독립달성을 위해 신탁통치할 수 있는 방책을 작성하게 되어 있었다. 신탁통치의 문제로 한반도는 찬탁과 반탁의 이념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었다. 미소공동위원회가 두 차례 결렬되자, 미국은 1947년 10월에 유엔총회에 한반도 문제를 상정하였다. 유엔은 한반도에서 인구비례에 따른 총선거를 하기로 하고,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을 파송하였다. 하지만 소련이 이들의 입북을 거부하였다. 1948년 2월 유엔 소총회에서 가능한 지역에서만이라도 선거할 것을 결정했다. 남한은 1948년 5월 10일 선거를 시행했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북한은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세웠다.
1953년 7월 27일 – 휴전선 (군사 분계선, 軍事分界線)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에 북한군이 불법 남침함으로써 6.25 전쟁이 시작되었다.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으로 밀려왔다. 낙동강 전선에서 대치 중에, 유엔군의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다. 통일을 향한 진군은 중공군의 참전으로 물거품이 되고, 38선을 중심으로 일진일퇴하는 고지전을 펼쳤다. 1차 대전이 참호 전쟁이었다면, 6.25 전쟁은 고지전이었다. 6.25 전쟁은 삼팔선이 휴전선으로 고착되면서 총성이 멈췄다.
성가대와 찬양대의 차이
1. 지금 한국교회에서는 예배 시간에 찬양을 담당하는 찬양대를 흔히 성가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성가대라는 말은 어디서 유래한 것인가요? 그리고 이 말을 교회에서 사용하는 것은 어떤 문제는 없는지요?
우리 믿는 성도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목적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즐거워하는 데” 있습니다. 즉 성도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역을 깨닫고 거기에 감격과 감사로 응답을 하는데 그것이 바로 예배인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예배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만을 찬양하는데 주안점을 두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경배와 찬양하는 일을 대표적으로 감당하는 이들이 바로 교회의 찬양대인 것입니다.우리가 구약성경을 보면 이 찬양대를 통하여 경배와 찬양의 행위가 결정적으로 나타난 때는 바로 그 유명한 다윗 왕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 왕은 인간이 최상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길은 아름답고 정성어린 노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성어린 찬양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사울 왕 때 못다 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예배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 예루살렘으로 하나님의 언약궤를 옮겨오고 성전예배의 모습을 갖추었을 때, 찬양대를 따로 세우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찬양대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찬송하는 일을 주로 맡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찬양대원은 누구나 다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 계열의 레위 지파에서만 뽑아 거룩한 직분으로 세웠습니다. 바로 이런 찬양대의 전통이 교회의 역사를 통하여 지금까지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그런데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한국 교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전담한 “찬양대”를 “성가대”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성가대라는 교회용어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개역성경에는 한번도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성가대” 또는 “성가”라는 말도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예배에서 하나님을 노래하는 일을 한결같이 “찬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2. 그렇다면 지금 교회마다 사용하고 있는 “성가” 또는 “성가대”라는 말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입니까?
설교자의 바른 말 사용을 주창하고 있는 오소운 (“설교자를 위한 우리 말 바른 말” 월간목회에 1997년부터 연재중)은 한국교회가 해방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들을 ‘찬양대”로 불렀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한 출판사가 흑인영가와 복음송가를 합하여 출판하면서 [성가곡집]이라고 부른 것이 “성가대”라는 이름이 시작된 동기라고 합니다.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일본의 “세이까다이-성가대 (聖歌隊)”라는 말이 직역되어 들어오면서 우리가 그 동안 불렀던 찬양대라는 이름이 성가대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제가 보기에 이런 주장은 매우 타당성이 있어 보입니다. 성가대라는 용어가 순수한 우리의 말이 아니었음은 을유문화사에서 나온 국어사전이나, 1958년 동아출판사의 우리말 사전에도 [성가대]라는 항목이 없고, 오직 [찬양대]라는 항목만이 있다는데서 이것을 분명히 입증하고 있습니다. 국어사전에는 [찬양대]를 “남녀 기독교 신도로 조직된 합창대”라고 풀이해 놓았습니다. [성가대]라는 말이 우리말 사전에 들어온 것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입니다. 1994년 민중서관의 국어사전이 처음 이 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성가를 부르기 위하여 조직된 합창대”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3. 그렇다면 이 [성가] 또는 [성가대]라는 용어가 왜 문제가 되는 것입니까?
이미 앞서 말씀드렸듯이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노래하는 것을 찬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가] (聖歌)라는 말은 단순히 성스러운 노래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모든 종교에서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노래를 성가라고 부릅니다. 그렇기에 불교도 자신들의 노래를 구분하여 부르고 싶어서 “찬불가”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그들의 노래를 “성가”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성가”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무리를 “성가대”로 부르는 것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일반적인 성스러운 노래를 부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을 찬양하며 높이는 노래를 부릅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하나님을 노래하고 경배하는 것을 가리켜 “찬양”(개역성경에 213회), 또는 “찬송” (98회) 또는 “찬미” (14회) 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찬양을 받기 윈하신다고 했지, 성경 어디에서도 하나님이 성가를 받기 원하신다는 표현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반 모든 종교에서 사용하는 “성가” 또는 “성가대”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보다는, 더군다나 우상을 섬기기로 유명한 일본 사람들이 귀신들을 섬기며 노래할 때 쓰는 단어인 “세이까다이”, 즉 “성가대”라고 부르는 용어를 한국교회에서 사용하는 것은 하루라도 빨리 원상복구 시켜 놓아야 합니다. – <예수찬양방송 자료실>
시드니 일일관광 코스
1. 웨버리 공동묘지 (Waverly Cemetery)는 호주 시드니의 한 대표적인 공공묘지로 유명합니다. 이 묘지는 뉴사우스웨일스주 웨버리 지역에 위치하며 아름다운 해안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웨버리 공동묘지는 1877년에 개장되었으며, 호주 역사상 유명한 인물들과 많은 시드니 시민들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묘지는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어 방문객들에게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특히 묘지의 풍경과 해안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합니다. 또한, 호주의 선구자들, 예술가들, 정치인들과 같은 다양한 역사적 인물들의 묘소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웨버리 공동묘지는 관광 명소로서 뿐만 아니라 조용한 산책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도 인기가 있습니다. 이곳은 시드니 시내에서도 가까우며 역사와 자연의 조화로운 경치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본디 비치는 오스트레일리아 신사우스웨일즈주 시드니의 유명한 해변 중 하나로, 시드니 시내에서 약 7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본디 비치는 그 아름다운 백사장과 푸른 바다로 유명하며, 서핑과 해변에서의 여러 레저 활동이 가능한 장소로 많은 사람들이 찾습니다. 이곳은 해수욕객, 서핑객,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 관광객 등 다양한 이들로 북적이는 장소입니다.
해변 근처에는 다양한 레스토랑, 카페, 상점들이 있어서 식사와 쇼핑을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본디 비치 주변에는 코스타블랜카 지역과 같이 관광 명소도 많아서 방문객들에게 다양한 활동과 경험을 제공합니다.
3. 시드니 왓슨스 베이는 호주 시드니에 위치한 중요한 지역 중 하나입니다. 왓슨스 베이는 시드니 하버의 일부이며, 아름다운 해변과 풍부한 자연 경관으로 유명합니다. 이 지역에는 다양한 레스토랑, 카페, 상점, 그리고 레크리에이션 시설들이 있어 방문객들에게 다양한 활동과 관광 명소를 제공합니다.
주요 관광 명소로는 “왓슨스 베이 해변”이 있는데, 이곳은 해수욕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인기 있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또한 “왓슨스 베이 국립공원”도 있어 자연을 즐기기에 좋은 공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국립공원은 트레킹, 하이킹, 피크닉 등 야외 활동을 즐길 수 있는 좋은 장소입니다.
시드니 왓슨스 베이는 대중 교통으로도 접근이 용이하며, 시드니의 랜드마크인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나 시드니 하버 브릿지와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아름다운 해안 선상의 전망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거나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습니다.
4.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 위치한 유명한 건축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페라 공연장입니다. 이 건축물은 현대 건축의 대표적인 명소 중 하나로, 그 특이한 디자인과 아름다운 해변 라인에서 돋보이는 모습으로 유명합니다. 시드니 항의 물길을 따라 자리하며, 백사장과 푸른 바다의 배경으로 아름답게 펼쳐져 있습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는 1973년에 완공된 이래로 세계적인 예술 공연의 장으로서 활용되어 왔습니다. 오직 오페라만이 아니라, 뮤지컬, 연극, 클래식 음악 등 다양한 예술 장르의 공연들도 열리는 곳으로, 많은 아티스트와 관객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오페라 하우스의 특징적인 디자인은 여러 개의 꼭대기 부분이 조각처럼 돌출돼 있는 모습으로, 이러한 모습이 해파리나 선박의 돛과도 비슷하다고 비유되기도 합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건축가는 덴마크 출신의 요른 우트손 (Jørn Utzon)으로, 그의 독특한 아이디어와 디자인이 이 건축물의 랜드마크적인 외형을 만들어냈습니다.
시드니 여행 중에는 오페라 하우스 주변을 산책하며 아름다운 전망을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열리는 다양한 공연들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예술과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꼭 추천하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족보의 의미
유대인에게 족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족보는 가족의 역사와 혈통을 기록한 문서 또는 가계도를 나타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 몇 가지 중요한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체성과 연속성 유지: 족보는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정체성과 연속성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이는 과거의 세대와 현재 세대 사이의 연결을 나타내며, 이를 통해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역사와 뿌리를 이해하고 유대인 커뮤니티와의 연관성을 알 수 있습니다.
종교적 중요성: 유대교는 역사적으로 가족과 혈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종교적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성서에서 이스라엘의 역사와 다윗 왕과 솔로몬 왕 같은 성인들의 가족과 연관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족보는 종교적인 관점에서도 중요합니다.
상속과 유산: 족보는 부동산 및 가족 유산의 상속과 관련된 문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 가계의 재산 및 유산 관리는 종종 족보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으며, 가족 구성원 간의 상속 권리와 책임을 명확히 할 수 있습니다.
커뮤니티와 연결: 족보는 유대인 커뮤니티 내에서 다른 가족들과의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가족 간의 연결은 유대인들이 서로를 지지하고 유대인 사회를 더욱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족보는 유대인들에게 깊은 문화적, 종교적, 역사적 중요성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개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신의 유산과 연결되며, 유대인 공동체 내에서 연속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이는 또한 유대 민족의 역사와 그들의 집단적 정체성을 형성한 사건에 대한 기억을 보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고중독이란?
“생각중독 (Overthinking)”은 개인이 과도하게 생각하거나 고민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용어입니다. 이것은 주로 부정적인 생각이나 걱정, 의심, 자책 등의 형태로 나타나며, 이러한 생각이 지속적으로 뇌에서 뒤죽박죽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생각 중독은 일상 생활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으며, 아래와 같은 특징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과도한 고민: 생각 중독에서는 단순한 문제나 결정에 대해 지나치게 고민하거나 여러 가능성을 고려할 때 과도하게 시간을 소비합니다.
부정적인 생각: 이러한 생각 중독은 주로 부정적인 사고에 초점을 맞추며, 잠재적인 문제나 위험에 대한 과도한 걱정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직업적 영향: 생각 중독은 사회적 관계나 직업적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과의 대화나 업무 업무 성과에 집중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불안과 스트레스: 생각 중독은 불안과 스트레스를 증가시킬 수 있으며, 불면증과 같은 수면 문제를 유발할 수도 있습니다.
분석 마비: 과도한 생각으로 인해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지는 것을 “분석 마비 (analysis paralysis)”라고도 합니다.
생각 중독은 일시적으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지만, 만약 이것이 일상적으로 나타나고 더 큰 문제를 초래한다면 심리적인 지원을 받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심리 상담, 스트레스 관리 기술, 명상 및 인식 기반 요법과 같은 기술은 생각 중독을 관리하고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