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 2:7, 창 3:19, 창 6:3)
우리는 지금 사순절 기간을 지나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기독교 전통에서 부활절 전 40일 동안의 기간을 의미합니다. 부활절은 춘분 다음의 보름이 지나고 첫번째 주일이 부활절입니다. 북반구의 춘분과 남반구의 추분은 같은 날에 발생합니다. 춘분은 북반구에서 봄이 시작되는 시점이고, 남반구에서는 가을이 시작되는 시점입니다. 2025년의 부활절은 4월 20일입니다. 사순절은 3월 5일(Ash Wednesday,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하여 부활절 전날인 4월 19일(Holy Saturday, 성 토요일)까지입니다. 사순절을 상징하는 색깔은 purple(보라색)입니다. 보라색은 전통적으로 왕족과 고귀함을 나타내는 색이기도 하지만, 사순절 기간에는 고난과 희생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9장 2절에서는 자주색 겉옷을 입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색깔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 왕의 옷을 입힌 것을 상징합니다. 이 색은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희생을 기억하며, 신자들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속죄하는 시간을 보내도록 상기시켜줍니다. 이 기간 동안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기념하며 금식, 기도, 회개 등의 영적 훈련을 실천합니다.

- 재의 회개
재의 수요일의 가장 대표적인 예식은 이마에 재를 바르는 것입니다. 이 재는 지난해 종려주일에 사용된 종려나무 가지를 태워 만든 것으로, 신자들의 이마에 십자가 모양으로 바릅니다. 이때 목회자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또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는 말씀을 전합니다. 재의 수요일에 사용되는 재는 인간의 유한성과 죄성을 드러내는 성서적 표식입니다.
재는 인간이 흙에서 왔고 다시 흙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합니다.
창세기 2: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했습니다. 흙이란 히브리어로 ADAMA이고 사람은 ADAM입니다. 원래 아담은 사람이란 일반 명사였으나, 나중에 하와가 등장하면서 고유명사 ADMA이 되었습니다. 라틴어로 흙은 humus, 인간은 homo입니다. 흙은 겸손(Humility)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인간이 흙에서 온 존재를 알게 되면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창세기 3장에 인간이 타락이 한 후 “네가 흙(아다마)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바사르)이니 흙(바사르)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창 3:19)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루아흐)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바사르)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창6:3). 하나님의 영이 없는 인간은 ‘바사르’입니다. ‘바사르’는 단순히 “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죄의 영향으로 타락한 육체를 의미합니다. 이는 헬라어 “사륵스”와 유사한 의미로, 단순한 신체가 아닌 죄로 인해 사악하게 된 상태를 나타냅니다.
미국의 록 밴드 Kansas가 1977년에 ‘Dust in the wind’란 곡을 발표했습니다. 이 곡은 인간의 유한성과 인생의 덧없음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전도서와 원주민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가사 중에 ‘All we are is dust in the wind’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만약 이 세상이 모든 것의 끝이라면, 죽음의 순간에 누구나 그렇게 고백할 수 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어제 미국에서 아래와 같은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이메일은 보낸 Pat 사관님은 시카고 구세군 사관학교 때 교관이었습니다.
Hi. I am saddened to share that our friend, Mary, was promoted to glory three days ago. She’d struggled a bit with health related issues for about a month. As always, however, all during that time she kept plugging along. Her celebration of life service will be April 17 at 10;30 at the Clearwater Corps. There will be a graveside service also, on a date yet to be announced. I trust each of you are well. You were very dear to Mary’s heart. Pat.
소천하신 Mary 사관님은 당시 사관학교 부교장이었습니다. 두 분은 모두 독신으로 은퇴를 하고 플로리다에 같이 사셨습니다. 구세군에서는 죽음을 ‘Prompted to Glory’라고 합니다. ‘하나님 임재 속으로간다’, ‘영광으로 올라간다’란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영’이 떠난 ‘바사르’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장례식을 축하행사(Celebration)라고 합니다.
또한 재는 참회를 의미합니다. 구약에서 회개하는 이들이 재를 뒤집어쓰고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욥 42:6, 단 9:3, 욘 3:6 등). ‘메타노이아’는 그리스어로 “회개”를 의미하며, 문자 그대로는 ‘마음을 바꾸다’ 또는 ‘생각을 바꾸다’라는 뜻입니다. 기독교에서 ‘메타노이아’는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삶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강조합니다. 회개는 후회와 다릅니다. 회개는 미래지향적인 단어이고, 후회는 과거지향적인 단어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통곡하며 땅에 주저 앉아 있었을 때까지는 ‘후회’였습니다. 하지만 20절에 일어나 아버지를 향했을 때부터는 ‘회개’입니다.

- 십자가의 고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라고 했습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우리의 이기적인 욕망과 계획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쉽지 않지만, 그 길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생명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분의 희생을 본받아 살아가야 합니다.
자기 부인이란? 육의 사람을 부인하고 영의 사람, 옛사람을 부인하고 새사람, 겉사람을 부인하고 속사람, 나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쉽지 않지만, 그 길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생명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분의 희생을 본받아 살아가야 합니다.
십자가의 고난이란 믿음 때문에 받는 고난을 말합니다. 믿음대로 살다가, 믿음을 지키다가, 믿음을 전파하다가 당하는 고난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십자가와 연관 짓습니다. 자식이 사고를 치면 ‘자기 십자가’라고 하고,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자기 십자가’라고 하고, 사업이 망해도 ‘자기 십자가’라고 하고, 시험이 떨어져도 ‘자기 십자가’라고 합니다. 자신의 잘못이나 무지로 인한 고난을 ‘자기 십자가’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받는 고난은 ‘회개’해야 할 일이지, ‘자기 십자가’라고 합리화해서는 안됩니다. 십자가의 고난은 믿음의 고난입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은 불로 연단하여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벧전1:7)

- 부활의 영광
부활은 단지 미래에 일어날 종말적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변화시키는 실제적인 능력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면, 우리는 이미 부활 생명 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바울이 갈라디아서 2:20에서 말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는 말씀과 맥을 같이합니다. 부활은 현재적이며, 미래적이기도 합니다. 부활은 하나님 나라와 맥을 같이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 선언으로 자신의 공생애를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해 이미 시작되었으나, 그의 재림 때에 완전히 실현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경의 핵심 주제이며, 예수님의 가르침의 중심이자, 기독교인의 희망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의 개념은 단순히 현재와 미래를 구분하는 이분법적 관점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이미 그의 통치를 시작하셨지만 그 최종적 실현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미, 그러나 아직'(already, but not yet)이라는 구조입니다. 부활신앙은 하나님의 나라를 오늘 이곳으로 당겨와 살게 하는 힘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순절은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이자, ‘그 길 끝에서 다시 시작되는 부활의 삶’을 누리는 시간입니다. 회개는 우리의 유한성과 죄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미래를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결단입니다. 십자가는 내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입니다. 부활은 궁극적으로 죽음과 죄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내 삶에 현실화하는 능력입니다. 이 기간의 묵상과 실천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변화된 삶을 살게 되시길 기도합니다.

신앙인의 세 가지 덕목
데살로니가 전후서는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때 고린도에서 쓴 편지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머물면서 많은 이들이 믿음을 갖게 되었지만, 갑작스러운 박해로 인해 3주 만에 떠나야 했습니다. 바울은 떠난 뒤에도 그들의 영적 상태와 믿음의 견고함에 대해 염려했기에, 동역자인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파견하여 상황을 확인하게 했습니다. 디모데가 돌아와 교회의 신앙이 견고하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며 데살로니가 교인을 향한 최대의 칭찬을 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오실 때에, 그분 앞에서, 우리의 희망이나 기쁨이나 자랑할 면류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이야말로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입니다.”(살전 2:19-20). 하지만, 여전히 어려움과 유혹 가운데 흔들릴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해 성도들을 격려하고 믿음 안에서 굳건히 설 수 있도록 권면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면 2차 전도 여행 때 함께한 실라와 디모데 이름이 기록되었습니다. 실루아노는 실라 (Silas)입니다. 바울이 마가의 문제로 바나바와 헤어진 후 실라를 동역자로 택하였습니다(행 15:40). 감옥에도 함께 갇혔습니다(행 16장). 디모데 (Timothy)는 루스드라에서 합류하였습니다(행 16:1-3). 루스드라는 바울이 1차 전도여행 때 날 때부터 앉은뱅이를 일으킨 곳입니다. 디모데는 젊고 신실한 신자였으며, 바울이 ‘자기 아들과 같은 자’라고 표현하였다(빌 2:22). 이외에는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 (Luke)이다. 사도행전 16장 10절부터 “우리(we)” 문장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드로아(행 16:10)부터 동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절을 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지만 매순간 새롭게 곱씹어야 할 세 단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곧,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며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믿음의 역사 (Work of Faith)
믿음의 역사란? 한국어 성경에서는 “믿음의 역사”라고 번역했는데, 영어로는 Work of Faith라고 했습니다. 헬라어 원문으로 보면 “(ἐργον πίστεως, ergon pisteos)” 즉 “믿음의 행위(또는 일)”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비록 고난이나 유혹 앞에서도 “하나님께서 역사(일)하실 것을” 믿는 그 믿음의 행함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일하심과 약속을 신뢰하고, 그 믿음으로 ‘믿음의 역사(행함)’가 일어납니다. “믿음의 역사”라는 표현은 “구원받은 믿음이 실제 삶에서 일으키는 행동과 실천, 열매”를 의미합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비를 보내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아무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방주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갈 바를 알지 못하고도 본토와 친척을 떠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삶의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창 12:1–4). 다니엘 3장을 보면 다니엘의 3친구는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2. 사랑의 수고 (Faith of Love)
사랑은 결코 가벼운 말이나 감정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헌신과 희생, 즉 수고를 동반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십자가의 사랑’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나타내신 하나님의 무조건적이고 희생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 사랑은 조건이나 자격을 따지지 않고, 죄인된 인간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신 사랑이며, 기독교 신앙의 중심이자 복음의 핵심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공의가 동시에 이루어진 곳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의 공의는 만족되었고, 동시에 그의 사랑은 우리에게 용서와 구원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34절에 세족식을 마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가족과 교회 공동체, 나아가 이웃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려놓고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참된 사랑의 수고는 어려움을 만나도 포기하지 않고, 상대방을 위해 끊임없이 베풀며 섬기는 모습을 통해 드러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재물을 아끼지 않고 도운 것처럼, 우리도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손을 내밀 수 있어야 합니다. (눅 10:30–37)

3. 소망의 인내 (Patience of Hope)
소망의 인내란, 단순히 ‘고통스러운 상황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미래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비롯되는 인내를 가리킵니다. 즉,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단순한 인간적 기대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보증된 소망을 붙들고 기다리기 때문에 가능한 인내입니다. 로마서 8장에 나오는 바울의 고백처럼,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확신이 인내의 힘이 됩니다. (롬 8:18)
베드로 전후서는 일명 ‘소망의 서신’이라고 합니다. 시대적 배경은 본격적인 기독교 박해가 시작될 때로,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사는 성도들에게 믿음과 그리스도에 대한 ‘산 소망’을 굳게 잡음으로 닥쳐올 핍박을 이겨내라고 권면하는 서신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 3) 산소망은 ‘현실의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소망이다. 현실에 이기지 못하는 소망은 ‘죽은 소망이다. 물고기가 작더라도 살아 있으면 역류할 수 있지만, 큰 물고기라도 죽어 있으면 현실의 물결에 쓸려갑니다. 신학자 몰트만은 “희망이 없는 신학은 죽은 신학이다”고 말하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미래의 성취를 현재의 삶과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힘으로 보았습니다. 인내는 단순히 ‘견디는 것’이 아니라, 소망 안에서 적극적인 기다림과 준비를 의미합니다. 매 순간 주어진 위치에서 성실히 감당하며 깨어 있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소망은 현실을 부정하거나 도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변화시키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히브리서 6장 19절에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히브리서 기자는 소망은 ‘영혼의 닻’이라고 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믿음에는 역사가 나타나야 하고, 사랑에는 수고 있어야 하며, 소망에는 인내가 함께 해야 합니다. 역사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수고가 없는 사랑은 죽은 사랑이며, 인내가 없는 소망은 죽은 소망입니다. 믿음, 사랑, 소망이라는 이 세 가지 덕목은 우리 신앙 생활의 중심이며 핵심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그리고 소망의 인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복음의 능력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역사 | ἔργον τῆς πίστεως | 믿음에서 비롯된 실천, 행동 |
사랑의 수고 | κόπος τῆς ἀγάπης | 사랑 때문에 기꺼이 감당하는 고된 수고 |
소망의 인내 | ὑπομονὴ τῆς ἐλπίδος | 장차 올 소망을 붙들고 현재를 견디는 인내 |

2025년 3월의 기도문
♡2025년 3월 31일 (월)♡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
3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3월 한 달 동안 지켜주시고 인도해주신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때로는 마음이 바빴고, 실수가 있었지만 주님은 변함없이 우리를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주님, 오늘도 작은 것을 귀하게 여기고, 평범한 것에 감사하는 날이 되게 하소서. 4월에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그리고 소망의 인내가 넘치는 달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시편 51:17)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기뻐하시는 제사는 외적인 형식이나 화려한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상하고 깨진 마음, 죄를 슬퍼하고 회복을 간구하는 겸손한 심령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삶이 무너지고 마음이 깨어졌을 때, 그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깊이 만날 수 있습니다. 상한 마음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는 가장 진실한 예배입니다.
♡2025년 3월 29일 (토)♡
주님,
가을비가 밤새 내리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저희 영혼을 적셔 주시고, 메마른 마음에 다시금 소망이 움트게 하소서. 겉모습만이 아닌, 속사람까지 아름답게 빚어주시고, 주님 안에서 피어나는 참된 생명을 누리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품 안에서, 감사로 가득한 하루가 되길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는 삶에서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함으로 그 믿음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게 됩니다. 감사의 제사가 단지 말이나 예배 행위에만 머무르지 않고, 삶의 태도와 행동으로 나타나야 함을 강조합니다.
♡2025년 3월 28일 (금)♡
주님,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비와 함께 시작된 이 고요한 아침에 우리의 마음도 주님 안에서 잠잠하게 하소서. 우리의 영혼에 생명 수를 부어 주옵소서. 굳어진 마음이 다시 부드러워지고, 메마른 기도가 다시 살아나며, 사랑의 물결이 넘쳐 흐르게 하소서. 주님, 오늘도 우리의 영혼이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만이 우리의 소망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7)
사람의 말도, 물질의 풍요도, 권력의 힘도 영원하지 않지만,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은 변함없어, 우리는 그 안에서 산소망을 발견합니다. 주님은 고난과 혼란 속에서도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며, 우리를 미래로 인도하시는 신실한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주님만을 바라보며, 새로운 하루의 희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2025년 3월 27일 (목)♡
주님,
오늘도 새로운 아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늘과 물의 황금빛처럼 우리의 마음도 밝고 따뜻하게 비추어 주시옵소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며 주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소서. 삶의 방향이 주님의 뜻 안에서 흔들림 없이 나아가게 하소서. 주님, 오늘의 말씀을 따라 우리의 길을 주님께 맡깁니다. 우리가 보지 못해도, 주님은 일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주님 안에서 조용히 기다릴 수 있는 믿음을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시 37:5-6)
우리의 인생에서 스스로 모든 것을 감당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을 신뢰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을 주관하시고 결국에는 우리의 선한 면모를 세상에 드러내 주실 것입니다. 때로 세상이 불공평하게 보여도, 하나님은 반드시 그의 자녀들의 삶을 선하게 인도하시고, 드러내시며, 회복시키십니다.
♡2025년 3월 26일 (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주님,
오늘도 새로운 하루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어둠을 물리치고 떠오르는 태양처럼, 우리의 마음에도 주님의 빛을 비추어 주옵소서. 우리의 삶이 주님의 빛을 반영하여,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 희망이 되게 하소서. 오늘도 외로운 이들에게 위로를, 아픈 이들에게 치유를, 방황하는 이들에게 길을 보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삼하 5:5)
다윗은 30세에 왕위에 올라 총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습니다. 다윗은 즉위 초기 7년 6개월 동안 헤브론을 중심으로 유다 지파를 통치했습니다. 북이스라엘 지파들이 다윗의 왕권을 인정하면서, 그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고 33년간 이스라엘 전체를 통치했습니다. 수도를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긴 것은 군사적 요충지 확보와 함께 종교적 중심지를 설정하려는 정치적 고려가 포함된 결정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을 신정적 통치의 핵심으로 설정함으로써, 다윗은 왕권의 신적 정당성을 강화하고 국가적 통합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2025년 3월 22일 (토)♡
공의로우신 주님,
세상의 가치는 흔들리고 사람의 마음은 변할지라도, 주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심을 믿습니다.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신뢰하며 감사하게 하소서. 우리의 입술에서 원망이 아닌 찬양이 넘치게 하소서. 오늘도 지존하신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내가 여호와께 그의 의를 따라 감사함이여 지존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리로다(시 7:17)
다윗은 자신의 상황 속에서 억울함과 핍박을 겪었지만, 하나님이 의롭게 심판하시고 무고함을 밝히시며 보호해 주실 것을 확신했기에, 결국 ‘지존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겠다고 고백합니다.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는 ‘지존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하고 높여드릴 때,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중심으로 재정비되고, 억울함이나 두려움은 기도와 찬양으로 바뀝니다.
♡2025년 3월 21일 (금)♡
주님,
찬란한 새벽빛으로 우리에게 새 하루를 허락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아침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루의 문을 엽니다. 삶이 힘들고 메마를 때에도 주님의 사랑이 생명보다 귀하다는 고백을 하게 하소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갖게 하소서. 걱정과 두려움이 앞에 있을지라도, 주님의 능력으로 승리할 것을 믿게 하소서.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 주시는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날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시 63:3)
시편 63편은 다윗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며 지은 시입니다. 그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사모하고 신뢰하며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생명보다 귀하다고 고백하며, 인생의 밤에도 주님을 찬양합니다. 다윗은 결국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심판하고 자신을 보호하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2025년 3월 20일 (목)♡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주님,
오늘도 주님의 보호와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다윗이 동굴에서 주님께 도움을 구했던 것처럼, 주님께 나아가 우리의 마음을 올려드립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은혜와 진리를 신뢰하며, 주님의 보호하심을 간구합니다. 주님의 신실하심을 믿으며, 감사의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은혜의 강가에서 주님을 기뻐하는 날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시편 57편의 주요 주제는 하나님의 보호와 신실함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을 피해 동굴에 숨어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그의 신실함과 보호를 찬양합니다. 이 시편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의 은혜와 진리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2025년 3월 19일 (수)♡
샬롬의 주님,
하늘과 강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물들은 새벽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걱정과 근심이 많으나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주님 주시는 평안으로 채워주소서. 우리의 마음이 흔들릴 때, 주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신실하심을 신뢰하게 하게 하소서. 모든 순간, 주님과 함께 걸으며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시 4:8)
다윗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평안히 눕고 잘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당시 다윗은 여러 위기와 적들의 공격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2025년 3월 18일 (화)♡
사랑하는 주님,
이 아침, 눈을 뜨게 하시고 새로운 하루를 선물로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창조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도 우리의 삶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양이 되게 하시고, 입술로, 행동으로, 마음으로 주님을 기뻐하는 날이 되게 하소서.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요새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시 59:16)
시편 59편은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길 때, 특히 사울이 그를 죽이려고 사람들을 보내 감시했던 상황에서 기록된 시입니다(삼상 19:11). 이 시편은 주로 악인들의 음모와 공격 속에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을 간구하는 내용입니다. 다윗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뜻을 신뢰하며, 세상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2025년 3월 17일 (월)♡
사랑의 주님,
아침해가 기지개를 켜는 새날입니다. 새로운 하루를 선물로 주심에 감사합니다. 어제의 실수와 연약함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오늘은 더욱 주님의 뜻을 따르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우리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사랑과 은혜를 담게 하시고, 우리 마음이 불평이 아닌 감사로 가득 차게 하소서.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삼상 15:22)
사울 왕이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섬기려 했을 때, 선지자 사무엘이 그를 책망하면서 한 말입니다. 신앙은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이는 사울이 하나님의 명령을 부분적으로 따랐던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명령하셨지만(삼상 15:3), 사울은 좋은 가축을 남겨두고, 아말렉 왕 아각도 살려두었습니다(삼상 15:9). 사울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가축을 남겼다고 변명했지만, 하나님은 순종이 제사보다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025년 3월 15일 (토)♡
주님,
오늘 하루, 주님의 지혜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 주시어, 어떠한 위기와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과 동행하며, 생명과 사랑의 길을 걷게 하소서. 또한, 우리의 공동체가 정의를 외면하지 않고 사람을 살리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우리의 연약함 속에서도 주님의 능력과 은혜가 더욱 빛나게 하시며, 각각의 자리에서 주님의 뜻을 분별하고 따르는 날이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이다 하여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삼상 14:45)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더 풍성하게 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어떤 규칙이라도 생명을 위협하고 진정한 정의에서 벗어난다면 수정하고 재고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사랑’을 실천하며, 인간은 그분의 뜻을 분별하여 따라야 합니다.
♡2025년 3월 14일 (금)♡
주님,
나무사이로 햇빛이 반짝이는 새날입니다. 오늘은 이 땅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이 주님의 뜻을 구하며, 정의와 사랑으로 이끌어갈 수 있도록 지혜와 분별력을 주옵소서. 정직한 마음과 겸손한 태도로 섬기는 지도자가 되게 하시고,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강한 믿음을 허락하소서. 무엇보다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사무엘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보느냐 모든 백성 중에 짝할 이가 없느니라 하니 모든 백성이 왕의 만세를 외쳐 부르니라(삼상 10:24)
사무엘은 기름을 부음으로써 사울을 ‘하나님이 택하신 왕’으로 공인했습니다(삼상10:1). 이 구절은 사울이 왕으로 임명되어 백성에게 소개되는 장면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큰 전환점으로, 더 이상 사사 체제가 아닌, 왕정 체제가 시작되었음을 상징합니다.
♡2025년 3월 13일 (목)♡
주님,
나무 뒤로 하얀 태양이 떠오르는 새 아침입니다.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도 한나처럼 간절히 기도하는 자가 되게 하시고, 사무엘처럼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자가 되게 하소서.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고백하게 하소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삼상 1:20)
한나는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고, 하나님은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무엘’을 아들로 주셨습니다. 사무엘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들으셨다’ 또는 ‘하나님께 구한 자’라는 뜻을 가집니다. 한나는 하나님께 간절히 구했고,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히브리어로 사무엘(Shamuel)이라는 이름은 두 가지 어원에서 유래되었다. “샤마” (Shama) → “들으시다”, “응답하시다” “엘” (El) → “하나님” 따라서,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들으셨다” 또는 **”하나님께 구한 자”**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는 한나의 간절한 기도가 응답받았음을 나타냅니다.
♡2025년 3월 12일 (수)♡
임마누엘의 주님,
룻과 보아스의 이야기를 통해 주님의 섭리와 계획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도 룻과 같이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시고, 보아스와 같이 사랑과 자비를 베풀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오늘도 주님의 평강이 저희를 지켜주시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룻 4:17)
룻과 보아스의 결혼은 다윗 왕의 조상으로 이어지며,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도 포함됩니다. 이로 인해 룻기는 다윗 왕과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룻과 보아스는 오벳이라는 아들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의 아버지가 됩니다. 이새는 다윗 왕의 아버지입니다.
♡2025년 3월 11일 (화)♡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주님,
우리는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말게 하소서. 주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고 그 뜻대로 순종하며 살게 하소서. 우리의 겉모습만 거룩한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신앙생활을 하게 하소서. 오늘도 육의 사람이 아닌 영의 사람으로, 옛사람이 아닌 새사람으로, 겉사람이 아닌 속사람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삿 17:13)
‘미가의 신상’ 이야기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던 사사 시대의 혼란스러운 도덕적 상황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사건입니다. 사사기 17장과 18장에는 ‘미가’라는 인물이 자신의 집에 만든 은 신상과 자신이 고용한 제사장이 어떻게 단 지파의 우상숭배로 이어지는지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2025년 3월 10일 (월)♡
저희의 연약함을 아시는 주님,
오늘도 세상의 염려와 걱정 속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우리의 믿음을 굳게 붙들어 주시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더하여 주옵소서. 때로는 넘어지고 실수할지라도 주님의 은혜로 다시 일어설 힘을 주시고 항상 주님 안에서 기뻐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오늘도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고 주님의 평안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삿13:5)
나실인(Nazirites)의 뜻은 따로 ‘구별된 자, 헌신한 자, 분리된 자’라는 의미로 구약시대에 특별하게 하나님께 드려진 사람을 ‘나실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신구약의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나실인은 삼손, 사무엘. 세례요한 등 3명입니다. 이들의 부모는 모두가 자녀를 제때 얻지 못하다가 하나님에 의해 태어났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실인에게는 지켜야할 규례가 있습니다. 머리를 밀지 않는 것,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않는 것 그리고 시체와 같이 부정한 것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 등입니다.
♡2025년 3월 8일 (토)♡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주님,
오늘도 새날을 허락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하루를 주님의 은혜 안에서 시작하며, 우리의 생각과 마음, 계획을 온전히 주님께 맡깁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게 하시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나아가게 하소서.
연약할 때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게 하시고, 길을 잃을 때 주님의 지혜로 인도받게 하시며, 낙심할 때 주님의 평안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자기 가운데에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로 말미암아 마음에 근심하시니라(삿 10:16)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를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서자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을 보시고 마음 아파하시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참된 회개는 잘못된 길에서 떠나는 것뿐만 아니라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것을 포함합니다.
♡2025년 3월 7일 (금)♡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주님,
오늘도 우리에게 베푸시는 자비와 은총을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어,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뜻을 분별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교만하거나 나태하지 않도록 늘 깨워 주시고, 겸손과 사랑으로 서로를 섬길 수 있는 힘을 주십시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주님을 향한 믿음과 소망을 놓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기도와 찬양이 오롯이 주님께만 드려지도록 인도하여 주십시오. 오늘도 우리의 삶이 주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거룩한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삿 7:2)
기드온이 모집한 군사의 수는 32,000명이고, 미디안의 군대는 135,000명(삿 8:10)이었습니다. 숫자로 보면 이미 상대적으로 열세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군대를 줄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힘으로 이긴 것처럼 교만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입니다. 기드온은 32000명을 10000명 줄이고, 마지막에는 300명만 모집했습니다.
♡2025년 3월 6일 (목)♡
주님,
우리 삶의 우선순위가 세상의 성공이나 물질이 아니라 주님의 뜻과 사랑이 되게 하소서. 우리 마음이 분주할 때, 주님의 평안으로 채워 주시고, 우리 시선이 흔들릴 때, 주님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서게 하소서. 특별히 어려움 속에 있는 이들을 기억합니다. 병든 자들에게 치유를, 마음이 상한 자들에게 위로를, 외로운 자들에게 주님의 따뜻한 임재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족속과 싸우리이까 (삿 1:1)
사사기(士師記, Judges)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부터 사무엘이 등장하기 전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이 시기는 이스라엘이 왕이 없고, 각 지파가 흩어져 살면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했던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2025년 3월 5일 (수)♡
주님,
오늘도 주님의 사랑과 은혜로 하루의 문을 엽니다. 작은 것 하나까지도 주님의 축복임을 깨닫게 하시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가게 하소서. 때로는 힘든 순간도 있지만, 그 안에서도 주님의 계획이 있음을 믿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불평보다 감사가 먼저 나오게 하시고, 주어진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수 24:32)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과의 언약을 새롭게 맺는 장소로 세겜을 선택했습니다(수24:1) 그 후 요셉의 뼈를 세겜에 묻은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기념하는 상징적인 행위였습니다. 세겜은 요셉의 후손의 기업이 되었고, 나중에 이스라엘 왕국이 분열될 때 북이스라엘의 첫 수도가 되었습니다 (왕상 12:25).
♡2025년 3월 4일(화)♡
주님,
오늘 하루도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평강으로 가득 채워 주시고, 어떤 상황 속에서도 믿음과 사랑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소서.
우리의 말과 행동이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게 하시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과 배려를 나눌 수 있도록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하여 실로의 여호와 앞에서 제비를 뽑고 그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의 분파대로 그 땅을 분배하였더라(수 18:10)
가나안 정복 후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할 때 제비를 뽑아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성경에서 제비 뽑기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방법으로 여러 번 등장합니다. 오늘날의 ‘운에 맡기는’ 제비뽑기와는 차이가 있으며, 성경적 의미에서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을 인정하는 신앙적 행위였습니다.
자녀들은 다같이 피와 살을 가지고 있으므로 예수께서도 그들과 같은 피와 살을 가지고 오셨다가 죽으심으로써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악마를 멸망시키시고 한평생 죽음의 공포에 싸여 살던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2:14- 15절
비난 대신 감정을 표현하라. 열심히 살아도 후회될 일들이 많이 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다윗은 15년을 기다렸고, 요셉은 22년을 기다렸고, 모세는 40년을 기다렸다.
법적, 도의적, 윤리적의 문제가 없다.
♡2025년 3월 3일(월)♡
주님,
오늘도 아름다운 새날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기도보다 성령보다 앞서는 날 되지 말게 하소서. 오늘 아픔과 슬픔 속에 있는 이들을 주님께 올려드립니다. 외로운 자에게 친구가 되어 주시고, 병든 자에게 치유의 손길을 내밀어 주소서. 마음이 무너진 자들에게 위로를 주시고, 낙심한 자들에게 새 힘을 허락하여 주소서. 우리의 반석이고, 산성이며, 요새시요, 환난 날에 피난처 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오직 레위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기업으로 준 것이 없었으니 이는 그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는 화제물이 그들의 기업이 되었음이더라(수 13:14)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서 각 지파는 기업으로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레위 지파는 제사장 직분을 맡았기 때문에 다른 지파처럼 특정한 땅을 기업으로 받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들은 48개 성읍(도피성 6개 포함)에 흩어져 살면서 제사와 율법 교육을 담당하였습니다. 요셉의 두 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각각 하나의 지파로 인정받아, 12지파의 수가 유지되었습니다(창 48:5-6).
♡2025년 3월 1일(토)♡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삼일절을 맞아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운 모든 분들을 기억합니다. 그들의 희생과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도 이 땅에 평화와 정의를 세우는 데 힘쓰게 하소서. 주님, 이 땅에 공법이 물같이 정의가 하수 같이 흐르게 하소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민족이 복음으로 하나 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수 6:16)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여호와께서 이 성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주셨느니라”는 과거형 표현은 아직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이루어진 실제라는 것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삼일절입니다. 1919년 3월 1일, 일제의 식민 통치하에 있을 때 독립을 선언한 날입니다. 그리고 독립을 했습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믿음은 미래를 현실화하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은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성취됩니다. 우리에게 어려움과 장애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이 주신 승리는 이미 결정된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역사는 반드시 나타납니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채스우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