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누가 영에 속한 사람인가?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2장 14절과 3장 1절부터 3절을 보면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 육신에 속한 사람,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은 쉽게 이해가 가는데 본문을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본문을 보면 육에 속한 사람, 신령한 사람 즉 영에 속한 사람 그리고 육신에 속한 사람을 세 번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딱딱한 음식은 먹지 못하고 젖을 먹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세 종류의 사람을 통해서 피차간에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인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계속되어 연구하고, 다양한 의견을 갖고 있습니다. 보통 인간의 본성을 세 종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선하게 태어난다는 성선설를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동양에서는 맹자와 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이 어려운 일을 당하면 측은지심을 발휘해서 도와주고, 불쌍한 사람 있으면 뭔가를 나누는 것을 보면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주장합니다. 둘째는 이름과는 다르게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합니다. 인간이 얼마나 악한가는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돼서 저렇게 뒷담화를 할 수 있어? 우리가 도와줬는데도 배신을 하는 거야? 우리는 이해하지 못할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란 말을 합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습니다’. 인간은 원래 악한 존재입니다. 인간은 죄 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셋째, 성백지설입니다. 존로크와 같은 사람이 주장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하얀 백지와 같은데 환경에 의하여 어떤 사람은 악하게도 되고, 어떤 사람은 선하게도 됩니다. 기독교는 죄 가운데 태어나서,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믿습니다. 기독교의 세계관에서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기에 악하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생각하고 느끼고 행하는 것을 육을 중심으로 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의지하면, 사람을 육에 속한 Natural 사람, 육신에 속한 Carnal 사람, 영에 속한 Spiritual 사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도표를 통해서 3종류의 사람에 관해서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Natural Man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면서 육과 혼을 갖게 됩니다. 혼은 생각하고, 느끼고, 결단하는 지정의를 갖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지정의가 조금씩 다릅니다. 지성이 높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성이 깨져 감당하기 힘든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IQ를 중요시했지만, 이제는 EQ를 더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아이큐가 높더라도 감성이 깨져있으면 아이큐는 잘못된 데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정의’를 합하여 인성이라고 합니다. 인성이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성이 좋은 사람들은 그 인성 자체가 경쟁력입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사이코패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사이코패스(psychopath)는 정신적 인격장애입니다. 이들은 악한 일을 행하면서도 악하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입니다. ‘소시오패스(sociopath)’라는 말도 있습니다. 이들은 악이란 것을 인지하지만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 못지않게 문제 있는 사람은 ‘나르시시스트(narcissist)’입니다. 나르시시스트는 자기 애로 가득 찬 사람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신의 외모나 업적에 지나치게 자만심을 가지고 있거나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을 묘사하는 데 사용됩니다. 영이 죽은 사람은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육을 중심으로서 생각하고 느끼고 그렇게 결단합니다. 인성이 좋고 나쁨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육에서 난 것은 육입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육 중심의 선택을 합니다.
둘째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Carnal Man입니다.
예수를 믿어 거듭났지만, 영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아서 딱딱한 음식을 먹지 못합니다. 영은 살았지만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믿지 않고 자신이 주인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모든 생각과 감정과 의지는 육을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영적으로 살아야 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육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 바로 이런 상태에 있었습니다.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롬 7:22-24) 자신 안에 있는 속사람과 겉사람이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가 육신에 속한 상태인데 육신에 속한 사람은 시기와 분쟁을 자꾸 일으킨다고 합니다. 시기심은 비교의식에서 나옵니다. 시기심이 유독 강하게 나타나는 것은 자기와 비슷한 사람이 자기보다 갑자기 잘 된다든가, 많이 갖는다든가, 자식이 잘되면 시기심이 발동됩니다. 일하는 업종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랑 전혀 관계없는 업종의 사람들이 잘되면 그냥 잘된다고 생각하는데, 자기와 비슷한 업종에 있는 사람이 잘 되거나 자기보다 뛰어나면 시기심이 발동됩니다. 성경에서 이 사울이 다윗에게 하는 것과 같은 그런 겁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뜨리고 입성하자 백성들이 “사울이 죽이냐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자는 만만이다”라고 칭송하자 사울은 시기심이 발동되어 정치를 해야할 에너지를 다윗을 죽이려는데 사용하게 됩니다. 결국, 사울은 다윗을 죽이지도 못하고 스스로 자멸하게 됩니다.
‘아마데우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아마데우스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생애를 영화화했습니다. 영화의 첫 장면은 궁전 음악장인 ‘살리에리’의 고해성사로 시작합니다. 살리에리는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꼬마와 같은 모차르트가 자기의 음악 수준을 훨씬 뛰어넘어,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는 것을 보고 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나는 이렇게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쟤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더구나 생활도 방탕한 것 같은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그는 모차르트를 시기하는 것을 넘어서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삶은 모차르트를 시기하면 할수록 자멸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헤겔이라는 철학자가 있습니다. 헤겔은 서양 근대철학을 집대성한 유명한 인물입니다. 헤겔의 변증법은 정반합의 논리를 통하여 절대정신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이론을 바탕으로 등장한 이론이 마르크스의 공산주의입니다. 헤겔이 관념론적인 변증법을 설명했고, 마르크스는 포이에르바하의 유물론을 받아들여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역사를 해석하였습니다. 헤겔 당시에 같은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했던 염세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있습니다. 헤겔을 시기하던 그는 같은 시간에 강좌를 열었지만 자기 강의에 학생들이 오지 않는 것을 보고 더욱더 헤겔을 질투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이를 참지 못하고 개 이름을 ‘헤겔’이라고 짓고 분풀이를 했습니다. 신앙생활도 비슷합니다. 자기가 전도해 온 사람이 자기보다 믿음이 더 좋은 것 같으면 시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경제의 용어 중에서 ‘블루오션’과 ‘레드오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레드오션’은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뛰기 때문에 모두가 경쟁자이고 1등은 한 사람만 존재합니다. ‘블루오션’은 모두가 다른 방향으로 뛰기 때문에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오래전 동아일보에서 한중일 세국가 국민을 대상으로 시기심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만점이 5점인데 조사 결과가 한국 사람이 3.7 중국 사람이 3.49 일본 사람이 3.09입니다. 한국 사람이 중국이나 일본보다 시기심 더 높은 것으로 나왔습니다. 우리가 심한 경쟁적인 사회라서 이제 뭐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한가지 알아야 하는 것은 시기 통해서 상대방의 것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혹시 시기와 질투가 조금 다르다는 것은 아십니까? 시기심은 철저하게 상대방을 깎아내리든지, 아니면 그 사람 때문에 자신의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아주 부정적인 용어입니다. 질투도 물론 부정적이지만, 긍정적인 요인도 있습니다. 질투를 ‘jealousy’라고 하는데 ‘부러움’이라고 번역을 하기도 합니다. 상대방이 잘된 것을 보고 앞으로 ‘나도 잘해야지’라는 마음을 가질 때 사용합니다. 질투는 자기 성찰을 해서, 자기 성장을 위한, 동기부여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또 다른 특징은 분쟁입니다. 하나의 공동체가 무너지는 것은 외부의 도전이 아니라 내부의 분쟁 때문입니다. 배가 침몰하는 것은 외부의 물 때문이 아니라 내부의 물 때문입니다.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한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가 아니라 부정적으로 자기 생각을 보태어 몇 사람에게 전하면 그 공동체는 쉽게 분쟁에 싸이게 됩니다. 신천지가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누군가의 신임을 바탕으로 근거 없는 소문을 여기저기에 퍼트립니다. 최종 표적은 목회자입니다. 목회자의 중심이 되는 목회자가 분쟁의 중심에 서면 교회는 쉽게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히브리서 10장 25절 “어떤 사람들의 습관처럼, 우리는 모이기를 그만하지 말고, 서로 격려하여 그 날이 가까워져 오는 것을 볼수록, 더욱 힘써 모입시다.” 아침 묵상을 보내드렸습니다. 우리는 정말 모이기에 힘써야 합니다. 모이는 게 중요하지만, 모여서 상처를 받게 된다면 그런 차라리 모이지 않느니만 못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만약에 예배를 드리면서 누군가에 의해서 상처를 받아서 다음 주부터는 절대로 나오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모인 것이 불행니다. 모여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고 능력이 돼야지, 모여서 서로가 서로에게 비난하고 헐뜯고 음해할 것 같으며 차라리 모이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셋째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Spiritual Man입니다.
우리가 영에 속해 있으면 생각도 감정도 의지도 영의 것을 추구합니다. 영에 속한 자는 땅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육의 것이 아니라 영의 것을 지향합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영성’(spirituality)으로 살아갑니다. 영성이란 ‘영적 지향성’입니다. 영적인 것에 초점을 맞춰서 영적인 것을 위하여 삽니다. 로마서 8장 5절과 6절에 “육신을 따른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습니다. 육신을 따른 자는 육신적으로 생각하고, 육신적으로 느끼고, 육신적으로 결단하지만, 영에 속한 자는 영적으로 생각하고 영적으로 느끼고 영적으로 결단합니다. 바로 이것이 영성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개의 안테나가 있습니다. 영의 안테나와 육의 안테나입니다. 육신에 속한 사람은 육의 안테나에 반응하지만, 영에 속한 사람은 영의 안테나에 반응합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나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느끼고 결단을 합니다. ‘나 라면’이 아니라 ‘주님이라면’ 어떻게 생각하시고 어떻게 느끼시고 어떻게 선택을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합니다. 오늘 예배 때 마하나님 찬양대가 ‘감사’ 찬송을 했습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간구의 기도보다 감사의 기도를 더 많이 합니다. 나 중심의 기도가 보다는 하나님 중심의 기도를 합니다. 자기 기도의 내용을 살펴보면 육신에 속한 사람인지 영에 속한 사람인지 여러분 스스로가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7장을 보면 바울의 마음에 영적 전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19-24) 바울은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영과 육의 전투를 바라보면서 좌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8장에는 반전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반전의 주인공은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 8:1-2) 무슨 얘기입니까? 자신의 마음으로는 할 수 없었지만, 성령이 법이 주관하니 영적인 사람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에베소 5장 18절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너는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술 마시는 사람은 처음에는 자기가 술을 마시다가, 두 번째는 술을 술이 마시다가, 세 번째는 술이 사람을 마신다고 합니다. 자기 의지로 술을 마시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술이 술을 마시고, 급기야는 술이 그 사람을 마신다는 말입니다. 술 취하는 것과 성령 충만은 유사합니다. 술 취하는 것은 술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고, 성령 충만한 것은 성령이 차고 넘친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을 갖고 이 땅에 살고 있기에 육신에 얽매이지 않고 영적으로만 사는 것이 절대로 쉽지가 않습니다. 그때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지배를 받아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으로 축원합니다.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가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후 13:5) 우리의 믿음은 교회가 아니라 세상에 있을 때 알 수 있고, 평범할 때가 아니라 시험을 받을 때 알 수 있다. 시험을 당할 때 어떻게 반응하는 가를 보면, 자신의 신앙 상태를 스스로 확증할 수 있다. 믿음으로 반응하면 믿음 안에 있는 것이고, 세상으로 반응하면 세상 안에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7장에 신앙생활은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했다. 집은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 평상시에는 모래위에 지었는지, 반석위에 지었는지 알 수가 없다. 어느날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 때 알 수 있다. 사상누각‘이란 말이 있다. 사상(沙上)은 ‘모래 위’이고, 누각(樓閣)은 ‘다락이 있는 집’을 말한다. 사상누각이란 모래 위에 지은 집이란 뜻으로, 겉모양은 번듯하나 기초가 약하여 오래가지 못함을 일컫는 말이다. 지금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고 가변적이며, 절대란 절대로 없다는 시대정신이 팽배하다. 절대가 없다고 하는 시대에 절대를 주장하는 것이 기독교이다. 기독교 신앙의 가장 기본이 되고, 가장 중요한 진리는 성육신, 십자가 그리고 부활이다.
1.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
성육신(Incarnation)이란 안에(in), 육체(car), 탄생(Natus)을 합성한 단어이다. 성육신이란 하나님께서 사람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을 입고 오신 이유는 무엇일까? 죄인인 인간이 자기 노력으로 하나님께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1절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고 했고, 14절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했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바울은 성육신과 십자가의 사건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6-8)
2. 십자가(十字架, Cross)
십자가의 의미는 ’고난과 죽음‘이다. 십자가는 가장 고통스럽고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는 도구이다. 십자가형은 십자가에 사람을 묶어 놓거나 못을 박아 놓고 죽을 때까지 매달아 두었다. 십자가형은 극도의 고통 속에서 죽음은 천천히 다가온다. ’능지처참‘이란 말이 있다. ‘능지’의 원래 뜻은 산이나 구릉의 완만한 경사를 말한다. 능지처참이란 가장 가혹한 형벌로 가능한 한 최대한 느린 속도로 고통을 극대화하면서 사람을 죽이는 형벌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십자가는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되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만난 곳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공의를 바탕으로 한 사랑이다. 공의가 없는 사랑은 ‘무법주의’이고, 사랑이 없는 공의는 ‘율법주의’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하셨다. 자기 부인으로 인한 자기 십자가는 ‘자발적 십자가’이다. 자발적 십자가란 개인이나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발적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고통과 희생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3. 부활(復活, Resurrection)
예수의 사역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죽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만약 거기서 모든 것이 끝났다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15:14-19)이 된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다시 오실 것은 약속하시고 승천하셨다. 우리는 예수를 믿을 때 죽었던 우리의 영은 부활하였고,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는 부활의 새 몸을 갖게 된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는 ’다 변화‘ 할 것이다(고전 15:51). 우리의 썩을 몸은 썩지 않을 몸으로 바뀔 것이다(고전 15:53).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 우리는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라 영에 속한 사람이 고, 옛 사람이 아니라 새 사람이 되었고, 겉사람이 아니라 속사람이 되었으며, 이제는 나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사는 것이다.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이고, 어둠의 자식이 아니라 빛이 자녀가 되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사명을 이렇게 말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자존감과 자신감과 자만감
자존감, 자존심, 자만감은 모두 개인의 자아에 대한 감정이나 태도를 나타내는 다른 개념입니다.
자존감 (Self-esteem):
자존감은 개인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자신에 대한 감정적인 상태를 의미합니다.
높은 자존감을 가지는 사람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가집니다.
자존감이 높으면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실패에 대한 대처능력도 향상될 수 있습니다.
자존심 (Pride):
자존심은 자신의 성과나 능력에 대한 긍정적인 자부심을 나타내는 감정입니다.
자신의 성공을 인정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느낌을 포함합니다.
자존심이 과도하면 자만심으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자만감 (Arrogance):
자만감은 과도한 자부심으로,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태도를 나타냅니다.
자만적인 사람은 자기 중심적이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감정을 무시하기 쉽습니다.
자만감은 사회적 문제를 초래하거나 대인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자존감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고 자신에 대한 감정적인 상태를 의미하며, 자존심은 자신의 성과나 능력에 대한 긍정적인 자부심을 나타내고, 자만감은 과도한 자부심과 자기 중심적인 태도를 나타냅니다. 이러한 감정과 태도는 개인의 행동과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존감, 자신감, 그리고 자만감은 모두 개인의 자아에 대한 감정이나 태도를 나타내는 다른 개념들입니다.
자존감(Self-Esteem):
자존감은 개인이 자기 자신에 대한 평가와 자신을 어떻게 느끼는지를 나타내는 감정입니다. 높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긍정적으로 보며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가집니다. 이는 자신의 가치와 능력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의미합니다. 자존감이 높을수록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더 긍정적으로 적응하고 자신을 개발하는 데 더 적극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신감(Self-Confidence):
자신감은 개인이 자신의 능력과 기술에 대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자신감 있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자신 있게 표현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잃지 않습니다. 이것은 주로 특정한 역량이나 기술에 관련된 것으로, 특정 분야나 상황에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감이 높으면 새로운 도전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자만감(Overconfidence):
자만감은 자신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거나, 자기 능력을 현실보다 높게 평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종종 현실적인 판단을 왜곡하고 오류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자만감이 지나치게 높으면 실수를 범하거나 타인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자신감과 자만감은 다르며, 자신감은 현실적인 자기 인식을 바탕으로 나오는 믿음이지만, 자만감은 현실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자존감은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에 관한 것이며, 자신감은 자신의 능력과 기술에 대한 믿음에 관한 것이며, 자만감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에 관한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개인의 심리적 상태와 행동에 영향을 미치며,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존재론, 가치론, 인식론
존재론, 가치론, 인식론은 철학적인 주제로, 각각은 인간의 존재와 경험, 가치 판단, 그리고 인식과 지식에 대한 이론을 다룹니다. 각 주제에 대한 간단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존재론 (Ontology):
존재론은 존재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을 다루는 분야입니다.
이론적으로 존재론은 “무엇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을 탐구하며, 현실에서 존재하는 것들의 본질과 존재의 의미를 연구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것이 실재적이며 어떤 것이 개념적인지 논의하거나, 존재하는 것의 분류 및 관계를 연구하는 것이 존재론의 관심사입니다.
가치론 (Axiology):
가치론은 가치와 윤리적 판단에 대한 연구를 다루는 분야입니다.
가치론은 “무엇이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며, 도덕적 가치, 미학적 가치, 정치적 가치 등을 탐구합니다.
가치론은 인간의 행동, 사회적 제도, 예술 작품, 정책 결정 등 다양한 측면에서 가치 판단을 분석하고 이론화합니다.
인식론 (Epistemology):
인식론은 지식과 인식에 대한 철학적 연구를 다루는 분야입니다.
인식론은 “우리는 어떻게 지식을 획득하는가?”라는 질문을 다루며, 지식의 성격, 인식의 한계, 진리의 정체성 등을 탐구합니다.
인식론은 논리, 진리, 의미론, 믿음, 의심, 감각 경험, 사고 프로세스 등에 관련된 주제를 다루며,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등 다양한 지식 이론을 연구합니다.
이 세 가지 분야는 철학적으로 깊은 주제이며, 인간의 인식, 행동, 믿음, 가치 판단, 그리고 존재와 현실에 대한 이해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자아 심리학의 안나 프로이드와 하인즈 하트먼
“자아 심리학”은 심리학 분야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자아, 즉 자아의 인식, 자아개념, 자아정체성, 그리고 자아의 발전에 대한 연구를 중점으로 하는 심리학적 접근법입니다. 자아 심리학은 개인의 내적 세계와 자아에 대한 이해를 탐구하고 분석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자아 심리학의 주요 개념과 관련된 몇 가지 중요한 측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아인식 (Self-awareness): 자아 심리학은 개인이 자신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연구합니다. 이것은 개인이 자신의 생각, 감정, 행동, 가치관, 믿음 등을 인식하고 평가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자아개념 (Self-concept): 자아 심리학은 개인이 자신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을 탐구합니다. 자아개념은 개인이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고 이해하는지를 나타냅니다.
자아정체성 (Self-identity): 이 접근법은 개인이 자아를 어떻게 식별하고 각성하는지를 연구합니다. 자아정체성은 개인이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개인적인 식별과 연관이 있습니다.
자아발전 (Self-development): 자아 심리학은 자아의 발전과 성장에 관심을 둡니다. 개인의 자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하는데, 이러한 과정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이 접근법을 활용합니다.
자아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Self in Relation to Others): 자아 심리학은 개인의 자아가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과 관계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변화하는지를 연구합니다. 개인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아를 발전시키고 유지합니다.
자아 심리학은 심리학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 및 이론을 포함하며, 자아 심리학자들은 자아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 다양한 연구 및 실험을 수행합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자아의 복잡성과 개발 과정을 이해하고, 개인의 심리적 웰빙과 행동을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안나 프로이드(Anna Freud)는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로, 자아 심리학의 중요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녀는 심리 분석 이론을 발전시킨 지속적인 과정에서 자아 심리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안나 프로이드는 자아 심리학의 개념을 확장하고, 아동 및 청소년 심리학 분야에서 많은 연구와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를 통해 안나 프로이드가 자아 심리학과의 관련성을 갖는 몇 가지 주요 측면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아 심리학의 확장: 안나 프로이드는 아버지인 Sigmund Freud의 심리 분석 이론을 기반으로 자아 심리학을 확장하고 발전시켰습니다. 그녀는 아동 및 청소년의 발달과 정신 분석적 이해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아동 분석: 안나 프로이드는 아동 분석의 선구자 중 하나로, 아동의 정신 분석을 개발하고 아동의 무의식과 자아 발달을 연구했습니다. 그녀는 아동의 내면 세계와 정신적 고통을 이해하는데 기여했습니다.
방어 기제의 연구: 안나 프로이드는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s)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자아의 방어 메커니즘을 탐구하고 해석하는데 기여했습니다. 그녀의 연구는 개인이 정신적으로 어떻게 자아를 보호하고 관리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안전한 결합 및 심리적 발달: 안나 프로이드는 안전한 결합(secure attachment) 및 아동의 심리적 발달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그녀는 아동이 안전한 결합을 형성하면서 자아를 발달시키는 과정을 강조했습니다.
안나 프로이드의 작업은 자아 심리학 분야에서 중요한 발전을 이루었으며, 특히 아동 및 청소년의 정신 건강에 관한 이해를 향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녀의 연구와 이론은 아동 및 청소년 심리학, 임상 심리학, 교육학, 부모상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을 미쳤으며, 자아 심리학의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하인즈 하트먼(Heinz Hartmann)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심리학자로, 심리 분석 이론을 기반으로 자아 심리학 분야에 중요한 기여를 한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의 연구와 이론은 아동 및 청소년 심리학, 정신 분석, 자아 발달에 관한 주요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하인즈 하트먼의 주요 기여 및 이론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됩니다:
자아 심리학의 개발: 하인즈 하트먼은 자아 심리학 분야를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자아의 개념과 중요성을 강조하며, 자아가 개인의 정신적 기능과 정서적 조절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연구했습니다.
자아의 기능 및 구조: 하트먼은 자아를 기능적인 측면에서 이해하고, 자아의 주요 기능은 현실 적응과 지속적인 변화를 통해 유지되는 정신적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또한 자아의 구조를 연구하여 인식 자아, 기능 자아, 형태 자아 등의 다양한 측면을 다루었습니다.
정신 분석적 발달 이론: 하트먼은 정신 분석적 발달 이론을 개발하고, 아동과 청소년의 정신 발달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그의 이론은 아동이 어떻게 자아를 발달시키고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는지를 설명했습니다.
방어 기제의 이해: 하트먼은 방어 기제(defense mechanisms)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자아의 방어 메커니즘과 그것들이 개인의 정신적 조절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이해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하인즈 하트먼의 작업은 자아 심리학과 정신 분석 이론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이론과 연구는 심리학 분야에서 여전히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인지행동치료와 정신역동치료
인지행동치료(Cognitive-Behavioral Therapy, CBT)와 정신역동치료(Psychodynamic Therapy)는 둘 다 정신 건강 문제를 다루는 데 사용되는 치료 방법이지만, 다음과 같은 주요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론적 기반:
CBT: 인지행동치료는 인지론(Cognitive Theory)과 행동주의(Behavioral Theory)에 기반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생각과 행동이 감정 및 문제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중점을 두며, 부정적인 사고와 행동 패턴을 식별하고 수정함으로써 개인의 정신 건강을 개선하려는 방법입니다.
정신역동치료: 정신역동치료는 피어슨 지식 구조(Psychoanalytic Theory)에 기반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무의식적인 과정, 무의식적인 충동, 양립하지 않는 욕구와 감정, 그리고 과거 경험이 현재의 행동 및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합니다.
치료 목표:
CBT: 인지행동치료의 목표는 부정적인 사고 및 행동 패턴을 인식하고 수정함으로써 현재의 증상 및 문제 해결을 중점으로 둡니다. 목표는 실제로 변경 가능한 것들에 초점을 맞춥니다.
정신역동치료: 정신역동치료는 무의식적인 과정과 과거 경험이 개인의 현재 행동 및 문제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고, 이를 통해 개인의 내면의 이해와 변화를 촉진하려고 합니다.
치료 방법:
CBT: 인지행동치료는 구체적인 기술 및 전략을 사용하여 부정적인 사고를 식별하고 수정하는 데 중점을 둡니다. 이 방법은 과제, 순차적 계획, 심리 교육 등을 사용합니다.
정신역동치료: 정신역동치료는 대화 중심 치료로, 환자와 치료자 간의 대화를 통해 개인의 무의식적인 과정, 꿈, 양립하지 않는 욕구 및 감정, 과거 경험 등을 탐구합니다.
치료 기간:
CBT: 인지행동치료는 짧은 기간 내에 집중적으로 진행되는 경향이 있으며, 증상 개선을 목표로 합니다.
정신역동치료: 정신역동치료는 보다 장기간에 걸쳐 진행되는 경우가 많으며, 개인의 무의식적인 과정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데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습니다.
정신역동치료와 CBT는 각각 다른 이론과 방법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환자의 요구 사항과 문제에 따라 적절한 치료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때로는 두 가지 치료 방법을 결합하여 사용하기도 합니다.
대인관계와 대상관계의 차이점
대인관계와 대상관계는 사회 및 심리학적 관점에서 다르게 정의되며, 다음과 같은 주요 차이점이 있습니다:
정의:
대인관계 (Interpersonal Relationship): 대인관계는 두 명 이상의 개인 간의 상호 작용, 연결 및 커뮤니케이션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과 연결에 관한 개념으로, 친구, 가족, 동료, 연인 등과의 관계를 포함합니다.
대상관계 (Object Relationship): 대상관계는 정신 분석 이론에서 나온 용어로, 개인이 다른 개인이나 사물에 대한 내적 태도와 기대를 나타냅니다. 이것은 주로 개인의 정서적 연결 및 경험과 관련이 있습니다.
주체와 대상:
대인관계: 대인관계에서는 두 개 이상의 주체(개인)가 서로 상호작용하고 관계를 형성합니다. 예를 들어, 친구 간의 관계에서 친구들끼리 서로 대화하고 활동을 공유합니다.
대상관계: 대상관계에서는 주로 한 개인이 다른 개인이나 대상(사물, 아이디어 등)에 대한 내적 태도와 기대를 다룹니다. 이것은 자아와 대상 간의 관계와 관련이 있으며, 주로 정신 분석적 이론에서 강조됩니다.
목적:
대인관계: 대인관계는 주로 사회적 상호 작용, 연결, 지원, 공감과 같은 목적을 갖습니다. 이것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거나 협력하여 목표를 달성하는 데 사용됩니다.
대상관계: 대상관계는 주로 개인의 심리적 과정과 내적 세계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사용됩니다. 예를 들어, 정신 분석에서는 대상관계를 통해 무의식적인 욕구나 충동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적용 분야:
대인관계: 대인관계는 사회학, 심리학, 대인관계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며, 일상 생활에서 발생하는 모든 종류의 관계에 관심을 둡니다.
대상관계: 대상관계는 주로 정신 분석 및 심리 치료 분야에서 연구되며, 개인의 내적 세계와 관련된 심리적 문제 및 정서적 상태를 다루는 데 사용됩니다.
요약하면, 대인관계는 두 개 이상의 개인 간의 상호작용과 연결을 의미하며, 대상관계는 개인의 내적 태도와 기대와 관련된 개념으로, 주로 정신 분석 및 심리치료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