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달리다굼, 에바다, 마라나타
성경 구약은 히브리어로, 신약은 헬라어로 기록되었지만, 아람어의 영향을 받았다. 일부는 아람어로 적혀있다. 다니엘서 2장 4절 하반 절부터 7장 28절까지는 아람어로 기록되었다. 신약성경에 있는 달리다굼, 에바다, 마라나타 등의 단어는 아람어이다. 예수님 당시에 팔레스타인에서 사용했던 언어는 아람어였다.
1.달리다굼(막 5:41) – 소녀야, 일어나라
예수님께서 혈루병 여인을 고치는 현장에 회당장이 야이로가 그곳에 있었다. 말씀을 계속하고 계시는데,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말했다. “따님이 죽었습니다. 이제 선생님을 더 괴롭혀서 무엇하겠습니까?”(막 5:35) 예수님은 “딸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고 하셨다. 사람들은 비웃었으나, 예수님께서 소녀의 손을 잡고 “달리다굼”을 외치자 소녀가 살아났다. 지난 목요일 아침 기도문을 썼다. “주님, 오늘도 우리의 말이 사람을 살리고 사람을 세우는 말이 되게 하소서. 정죄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수용과 용납으로 말하게 하소서. 우리의 말이 주님의 성품을 반영하여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게 하소서. 사랑의 말로 증오의 감정이 녹게 해 주시고, 소망의 말로 절망의 늪에서 나오게 하시며, 믿음의 말로 불신의 안개가 사라지게 하소서.”
2.에바다(막 7:34) – 열려라
“에바다”는 ‘열려라’라는 뜻의 아람어이다. 예수님께서 여러 곳에서 사역을 마치고 다시 갈릴리 호수에 오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주시기를 간청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를 무리로부터 따로 데려가서,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고, 침을 뱉어서,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보시고서 탄식하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에바다” 하셨다. 그러자 곧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똑바로 하게 되었다. 그는 들을 수가 없어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예수님께 데리고 갔기에 고침을 받을 수 있었다.
3. 마라나타(고전 16:22) – 주여, 오소서.
마라나타는 “주여, 오소서!”라는 뜻이다.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간절한 기대와 기도이다. 마라나타는 초대교회 교인들의 인사말이다. 만날 때마다 ‘마라나타’의 인사로 서로를 격려하며 힘을 주었다. 이들은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주님의 재림을 기대하며 소망을 품었다. 마라나타의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삶을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한다. ‘종말론적인 삶’이란 막연히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그 날의 삶을 오늘 사는 것이고, 그곳의 삶을 이곳에서 사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였기에, 하나님 나라의 삶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이다. 개혁교회는 정체되거나 안주하지 않고 일일신 우일신하며 개혁을 계속해야 한다. 종교개혁(宗敎改革, Protestant Reformation)은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성경의 권위와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이신칭의’를 강조함으로써 부패한 가톨릭교회를 새롭게 개혁하고자 했다. 종교개혁의 5대 정신은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으로 종교개혁은 날개를 달게 되었다. 종교개혁의 배후에는 르네상스라는 시대정신이 있었다. 십자군 전쟁, 흑사병, 아비뇽 유수 등의 일련의 사건으로 교황권과 교권이 곤두박질치면서 르네상스가 발생한 것이다. 관상이란 영화가 있다. 마지막 장면에 한명회와 관상쟁이 김내경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명회는 관상만 봐도 사람의 운명을 알 수 있는 김내경이 수양대군의 반대편에 섰다가, 아들까지 잃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때 김내경은 탄식하며 말한다. “난 사람의 관상만 보았지, 시대를 보지 못했다. 파도만 보고 바람을 보지 못했다. 파도를 만드는 건 바람인데.”
1. 르네상스(Renaissance) – Back to Greece and Rome
르네상스(Renaissance)는 불어로 “부활” 또는 “새로운 태동”을 의미한다. 르네상스는 중세 시대의 신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그리스와 로마의 인간중심의 휴머니즘(Humanism)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휴머니즘’은 인간을 의미하는 라틴어 ‘homo’ 에서 파생되었으며, 인간 중심의 가치, 이성적 사고, 도덕적 행동, 인권, 사회적 정의 등을 강조하는 사상이다. 휴머니즘은 ‘유신론적 휴머니즘’과 ‘이신론적 휴머니즘’ 그리고 ‘무신론적 휴머니즘’으로 나눌 수 있다. 유신론적 휴머니즘은 신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고, 이신론적 휴머니즘은 신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인간의 문제는 인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했고, 무신론적 휴머니즘은 신 없는 인간중심의 사상이다. 시드니 한인사회에서 인문학 교실이 열리고 있다. 人文學은 사람 人에 글월 文이다. 몸에 새기는 무늬를 文身으로, 문은 ‘무늬’란 의미다. 두 단어를 연결하면 ‘人文’이란 ‘인간의 무늬’이다. ‘인간의 무늬’란 인간의 발자취와 흔적으로 문학, 철학, 역사, 예술, 언어 등 인간이 남긴 것이다. 인문학(人文學, humanities)이란 ‘인간의 무늬’를 연구하여, ‘인간은 무엇인가’를 알려는 학문이다. 적십자의 상징이 십자가이기 때문에 기독교 단체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적십자는 예수의 이름이 아닌, 휴머니즘 정신으로 활동하는 단체이다.
2. 종교개혁(Reformation) – Back to the Bible
종교개혁의 정신은 “성경으로 돌아가자”이다. 루터는 성서를 신앙의 최종 권위로 삼고, 교회의 잘못된 전통과 교황의 권위에 도전했다. 루터의 95개의 반박문은 대부분 ‘면벌부’(Indulgence)에 대한 내용이다. 면벌부의 정확한 의미는 죄를 용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죄의 결과로 받아야 할 벌을 용서해 주는 것이다. 면벌부의 개념은 종교개혁 때 나타난 것이 아니다. 가톨릭의 오래된 전통이다. 죄를 지면 그것에 상응한 고행을 치러야 하는데, 가톨릭이 타락하면서 고행을 돈으로 대신한 것이다. 면벌부를 사면, 과거의 죄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와 미래의 죄까지 용서해 주고, 더 나가서는 연옥에 있는 사람의 죄까지 용서해 준다고 했다. 마틴 루터는 학자의 양심과 수도사의 신앙으로 부패를 묵인할 수가 없었다. 그는 1517년 10월 31일 95개항의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당의 문에 걸었다. 그가 10월 31일을 택한 것은 가톨릭에서는 11월 1일은 ‘성인의 날’이기 때문이다. 성인의 날은 순교자를 기념하는 날로서 모든 신자들이 교회를 찾는다. 95개조의 반박문은 순식간에 온 유럽으로 전해졌지만 모든 사람은 침묵을 하게 된다. 결국 루터는 1520년 3개의 논문을 발표한다. ‘독일 그리스도인에게 고함’에서는 만민 제사장설을, ‘그리스도인의 자유’에서는 종의 자유를, ‘교회의 바벨론 유수’ 에서는 성례전을 7개가 아니라 ‘세례와 성찬’만 성서적이라고 주장했다. 루터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1521년 그는 보름스 궁전으로 소환이 되어 종교재판을 받고 ‘파문'(excommunication)을 당한다.
루터는 로마서 1장 17절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의 말씀을 의지하여 끝까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하나님의 의’란 무엇인가? 로마서 10장 3절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의’와 ‘사람의 의’가 비교되어 나와 있다. 자기 의는 ‘행위의 의’이고, 하나님의 의는 ‘믿음의 의’이다. 자기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될 수 있다. 기독교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만 우리는 죄 사함과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우리의 죄를 감추지 말고 인정하고, 십자가 앞으로 나가면, 예수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새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핵심 사상인 ‘이신칭의'( 以信稱義 , Justification by Faith)이다. 인간은 자기 의가 아니라, 의로운 분이 의롭다고 칭할 때 비로소 의로워 질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글을 쓸까?
글쓰기는 학문적, 창작적, 비즈니스, 또는 다른 분야의 글을 작성할 때 필요한 중요한 기술입니다. 아래에는 글쓰기를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자세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합니다:
주제 선택과 목표 설정:
글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려면 먼저 적절한 주제를 선택하십시오. 주제는 여러분이 관심을 갖거나 전문 지식을 가진 분야로 선택하세요. 또한 글의 목적을 명확히 설정하여 글쓰기의 방향을 결정하세요. 글이 설득, 설명, 감동, 또는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고려하세요.
대상 독자 파악:
글의 대상 독자를 이해하고 고려하세요. 독자의 관심사, 배경, 지식 수준을 고려하여 글의 내용과 스타일을 조절하세요.
연구와 정보 수집:
주제와 목표에 관련된 충분한 정보와 자료를 수집하고 검증하세요. 신빙성 있는 출처를 찾아 활용하고 필요한 정보를 모으세요.
아웃라인 작성:
글을 구조화하기 위해 아웃라인을 작성하세요. 소개, 본문, 결론으로 나누고, 각 섹션에 주요 주장과 서브포인트를 정의하세요. 이것은 글을 체계적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됩니다.
강력한 소개:
글을 시작할 때 흥미로운 소개를 작성하여 독자의 주의를 끄세요. 소개에서 글의 주요 주제와 목적을 명확히 제시하세요.
본문 작성:
본문에서는 각 서브포인트를 논리적인 순서로 발전시켜 주장을 뒷받침하세요. 각 단락을 의미 있는 주제 문장으로 시작하세요. 논리적인 연결을 통해 글의 흐름을 유지하세요.
간결하고 명확한 표현:
글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작성하세요. 글이 난해하지 않도록 복잡한 어구나 불필요한 어구를 제거하세요. 특히 글의 목적에 부합하는 간결한 언어를 사용하세요.
문법과 맞춤법 확인:
문법 및 맞춤법 오류를 확인하고 수정하세요. 문법 검사 도구를 사용하여 자주 발생하는 오류를 찾아 수정하세요.
다양한 문체 활용:
글의 성격과 목적에 따라 적절한 문체를 선택하세요. 학술적 글쓰기, 창작 글쓰기, 비즈니스 문서 등에 따라 다양한 문체를 활용하세요.
독자 고려:
독자의 수준과 관심사를 고려하여 글을 조절하세요. 독자의 이해를 돕는 설명이나 예시를 추가하세요.
리뷰 및 수정:
글을 완성한 후에는 반드시 리뷰하고 수정하세요. 다른 사람에게 검토를 의뢰하거나, 시간을 두고 다시 읽어보세요.
연습:
글쓰기는 기술이므로, 지속적으로 연습하며 향상하세요. 글을 쓰는 기회를 찾고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경험을 쌓으세요.
창의성과 원칙:
글쓰기는 창의성을 펼치는 기회이지만, 학문적인 표준과 윤리적 원칙을 준수하세요.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따르면 글쓰기 과정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뛰어난 글을 작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글쓰기는 지속적인 연습과 노력을 통해 개선될 수 있는 기술이므로,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세요.
독일의 분단과 통일
독일의 통일은 19세기 독일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다수의 독일 국가와 왕국을 하나로 통합한 과정을 나타냅니다. 독일 통일은 1871년에 완성되었으며, 그 결과 독일 제국(Deutsches Kaiserreich)이 세워졌습니다. 이 과정은 다음과 같은 주요 단계로 이루어졌습니다:
1.나폴레옹의 침공와 나폴레옹 전쟁: 1806년부터 1815년까지, 나폴레옹 병합 전쟁(Napoleonic Wars) 동안 나폴레옹 본 파르트(Napoleon Bonaparte)의 프랑스 제국은 독일 지역을 침공하고 많은 독일 국가를 정복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폴레옹은 라인 연맹(Rhine Confederation)을 조직하여 독일 지역을 재배치하고 중앙 집중화를 촉진했습니다.
2.비엔나 국제 집행력 회의: 나폴레옹의 패배 후, 1814년부터 1815년까지 비엔나 국제 집행력 회의(Congress of Vienna)가 열렸습니다. 이 회의에서 유럽 국가들은 독일 지역의 재편을 논의하고 독일 연방독일 제국의 탄생을 시도했습니다.
3.독일 연방의 창설: 비엔나 국제 집행력 회의의 결과로, 1815년 독일 연방(German Confederation)이 창설되었습니다. 이 연방은 39개 독일 국가와 왕국을 하나로 묶었지만, 여전히 강력한 중앙 집중화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4.프라이드리히 빌헬름 1세와 옷토 폰 비스마르크: 독일 통일의 핵심 인물 중 두 명은 프라이드리히 빌헬름 1세(Frederick William I)와 옷토 폰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였습니다. 비스마르크는 프라이드리히 빌헬름 1세의 지도하에 1864년의 따난 전쟁(Second Schleswig War), 1866년의 프라고-데니츠전쟁(Austro-Prussian War), 그리고 1870년의 프랑스-프러시아 전쟁(Franco-Prussian War)을 주도하면서 다양한 국가와 영토를 통합했습니다.
5.독일 제국의 선포: 1871년 1월 18일, 프랑크푸르트 궁전(Frankfurt Palace)에서 프라이드리히 빌헬름 1세가 독일 제국을 선포하고 빌헬름 1세를 독일 제국의 황제로 선언하여 독일 제국이 탄생했습니다.
독일 통일은 각종 외국 침공과 전쟁을 거쳐 이루어졌으며, 비스마르크의 실력있는 정치적 지도와 지혜로운 외교가로 인해 가능했습니다. 이로써 독일은 독일 제국의 형태로 통합되고 독일 제국은 유럽에서 강대한 국가 중 하나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독일의 분단은 20세기 동안 독일 역사의 중요한 측면 중 하나이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9년부터 1990년까지 이어진 독일의 분열 상태를 나타냅니다. 독일 분단은 다음과 같은 주요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제2차 세계대전 후의 분할: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1945년, 독일은 연합군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독일은 서독(연방공화국 독일)과 동독(독일 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나뉘었습니다. 서독은 미국, 영국, 프랑스, 그리고 후에 미국과 프랑스의 영향 아래 독일 연방공화국으로 발전하였고, 동독은 소비에트 연합(이후 러시아)의 영향 아래 공산주의 국가로 성립되었습니다.
2.베를린 분단: 베를린, 독일의 수도,도 분할되어 동베를린과 서베를린으로 나뉘었습니다. 이것은 베를린 벽이 세워진 1961년까지 계속되었으며, 동서 독일 간의 이동과 연락을 막았습니다.
3.냉전과 군사적 대결: 냉전 시대 동안, 서독은 서부 국가들과 군사적으로 연합되었으며, 동독은 소비에트 연합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에 따라 독일은 냉전 시대 동안 중요한 군사적 대립 지역이었으며, 독일 내에서 유럽 국가들의 군사적 대립이 이루어졌습니다.
4.독일 통일: 1989년 베를린 벽 붕괴와 독일 내외에서의 통일 요구가 고조되었습니다. 이러한 압력과 국제 지원을 받아 1990년에 독일 통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며, 독일 연방공화국이 독일 통일을 선포하였습니다.
독일의 분단은 냉전 시대 동안의 정치적 대립과 군사적 갈등을 유발하였으며, 독일 통일은 냉전의 종결과 독일의 통합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남아 있습니다. 독일 통일은 독일의 분열 상태를 종식시키고 중앙 유럽에서 힘 있는 국가로 도약하게 되었습니다.
서독과 동독의 통일은 1989년의 독일 통일로 이루어졌으며, 이것은 냉전 시대 동안 독일이 서독(연방공화국 독일)와 동독(독일 민주 공화국)로 나뉘어 있던 상황을 종식시키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1989년 독일 통일의 주요 사건 및 과정:
1.동독의 무장 경비대들과 독일 벽 붕괴: 1989년 11월부터 12월까지, 독일 민주 공화국(동독)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였으며, 이 시위는 독일 통일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벽이 무장 경비대들의 개입 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2.정부 간 협상: 서독과 동독 정부, 그리고 동방 독일의 주요 이해당사자들 간에 통일과 관련된 협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서독의 총리 헬무트 콜(Helmut Kohl)와 동독의 국가원수 에르히 호네커(Erich Honecker)가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3.통일을 위한 조치: 1990년 8월 31일, 서독 연방의회와 독일 민주 공화국의 인민대표회가 통일 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이 계약은 통일을 추진하기 위한 법적 프레임워크를 마련했습니다.
4.1990년 10월 3일 통일: 1990년 10월 3일, 독일 통일이 공식적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이날, 연방 공화국 독일이 설립되었고, 독일 민주 공화국은 사실상 해체되었습니다.
5.서독과 동독의 합병: 통일 이후, 서독과 동독은 한 국가로 합병하였으며, 본래 동독 지역의 독일 연방주들은 서독 지역의 독일 연방주로 편입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독일 통일은 서독과 동독 간의 냉전 시대 분단을 종식시키고 독일 연방공화국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독일 통일은 냉전의 종결을 상징하며, 독일이 다시 한 국가로 통합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종교개혁자들
교회 부흥의 주역들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며, 각 시대의 문맥과 지역에 따라 다른 인물들이 주목받았습니다. 다음은 16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교회 부흥 운동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들입니다:
16세기:
마틴 루터 (Martin Luther, 1483-1546): 루터는 프로테스턴트 개혁의 중심 인물로, 루터교를 창시하고 침례교회에서의 세례론을 강조했습니다.
요한 칼빈 (John Calvin, 1509-1564): 칼빈은 스위스 개혁자로, 칼빈주의를 창시하고 리폼드 교회(Reformed Church)를 이끌었습니다.
17세기:
조너선 에드워즈 (Jonathan Edwards, 1703-1758): 에드워즈는 세컨드 그레이트 어웨이크닝의 주요 지도자 중 하나로, 그의 절멸주의적 전도와 작품 “좋은 것들에 대한 애정”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조지 화이트필드 (George Whitefield, 1714-1770): 화이트필드는 영국과 미국에서 세컨드 그레이트 어웨이크닝의 주요 전도자로 활동하였습니다.
18세기:
존 웨슬리 (John Wesley, 1703-1791): 웨슬리는 메소디즘을 창시하고 메소디즘 운동을 주도하여 영국과 미국의 교회 부흥을 이끌었습니다.
체스터튼 브라운 (Charles Simeon, 1759-1836): 브라운은 영국의 앵글리칸 교회에서 본질주의를 강조하고, 총신 주의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19세기 :
샤를스 핀니 (Charles Finney, 1792-1875): 핀니는 세컨드 그레이트 어웨이크닝(Second Great Awakening)의 주요 교회 부흥 지도자 중 하나로, 그의 화려한 전도와 세례론 이론은 미국에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소쉬르와 라캉의 기표와 기의
기호에서 기표(시그니피앙)와 기의(시그니피에) 사이의 관계는 자의적이다. 기호의 의미는 다른 기호들과 차이에 의해 발생한다. 나누는 저의가 있다. 과거에는 기호가 기표인줄 알았다. 단어가 대상과 일대일의 대응관계가 있다고 생각했다. 기호는 차이에 의하여 발생된다.
Ferdinand de Saussure의 언어학 이론에 따르면, 기표와 기의 간의 관계는 동시에 생성되며 상호 의존적입니다. Saussure의 이론은 “기표와 기의는 동시에 떠올린다”라는 개념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언어적 표시체(기표)와 그것이 가리키는 의미(기의)는 동시에 형성되고 서로 결합하여 언어적 의미를 형성합니다.
Saussure의 이론은 언어 구조와 의미론에 대한 혁신적인 접근 방식을 제공합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동시성 (Synchrony): 언어 시스템은 특정 시간에 동작하는 것으로 보며, 기표와 기의는 언어 체계 내에서 동시에 형성됩니다.
상호 의존성 (Interdependence): 기표와 기의는 서로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으며, 한 가지를 이해하려면 다른 쪽을 고려해야 합니다. 즉, 표시체(기표)와 의미(기의)는 상호 의존적입니다.
의미의 상대성 (Relativity of Meaning): 언어의 의미는 상황과 언어 체계에 따라 상대적이며, 의미는 기표와 기의의 상호 작용에 의해 발생합니다.
따라서 기표와 기의는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그들 간의 관계는 언어 체계와 의미의 구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개념은 언어학과 의미론 분야에서 중요한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며, 언어의 복잡한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구조주의 언어학에서의 “기표”와 “기의”는 Ferdinand de Saussure의 언어학 이론에서의 기호 체계를 개념적으로 바탕으로 하며 라캉은 이러한 개념을 심리 분석과 정신 분석에서 적용했습니다. 라캉의 이론은 언어와 정신 분석의 관계를 탐구하며 인간의 주체성과 의식에 대한 이해를 개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기표 (Signifier): 라캉의 이론에서 기표는 언어적 표시자나 표현으로 사용되며,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적 단어, 문장 또는 기호를 나타냅니다. 이것은 언어나 기호의 외적 형태를 가리킵니다.
기의 (Signified): 기의는 기표에 의해 나타나거나 나타나는 개념, 아이디어 또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기의는 기표를 통해 표현되는 것으로, 이것은 언어나 기호의 내적 의미나 개념적 측면을 나타냅니다.
라캉은 이러한 기표와 기의 간의 상호작용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의 이론은 언어, 주체성, 정신 분석에서의 의미 생성에 대한 이해를 강조합니다. 그는 언어적 표시체가 주체의 정신 구조와 주체성에 영향을 미치며, 언어와 의미의 관계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주장했습니다. 라캉의 이론은 특히 정신 분석에서 잠재 의식과 무의식의 역할을 탐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의 이론은 언어와 주체성의 복잡성을 다루는 데 있어 많은 현대 이론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조현병 (Schizophrenia)
조현병 (Schizophrenia)은 중추 신경계 질환 중 하나로, 현실감각과 정신 기능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는 만성적인 심리적 질병입니다. 이 질병은 주로 정신 분열증이라고도 불립니다. 조현병은 사회적 및 직업적 기능의 손실, 인지 및 정신 건강 문제, 혼란, 환각, 호기심, 정신적 혼란 등 다양한 증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조현병의 주요 특징과 증상에는 다음이 포함됩니다:
환각 (Hallucinations): 환각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청각적으로 듣거나 시각적으로 보는 경험을 의미합니다. 이런 환각은 종종 대화를 듣거나 실체적인 존재를 보는 것과 같이 현실적으로 인식됩니다.
망상 (Delusions): 망상은 현실과 대조적인 오해 또는 혼란된 신념을 가리킵니다. 조현병 환자는 자신이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거나 사건들이 특별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인지적 장애 (Cognitive Impairments): 조현병은 주로 인지 기능에 영향을 미치며, 주의 집중 불능, 정보 처리 문제, 기억 문제, 문제 해결 능력 저하 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정신적 혼란 (Disorganized Thinking): 환자들은 일상 대화나 의사소통에서 논리적 흐름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으며 이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 또는 무리한 주장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감정적 양극 (Emotional Flattening): 조현병 환자는 감정을 표현하는 데 제한이 있을 수 있으며 양극성이나 정서적 변화가 더 둔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 및 직업 기능 저하 (Social and Occupational Dysfunction): 조현병은 환자의 사회적 관계와 직업적 성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고립과 기능 손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조현병은 복잡한 신경학적 원인을 가지며, 유전적, 환경적, 신경생리학적, 그리고 뇌 구조와 기능에 관련된 다양한 요인이 작용할 수 있습니다. 치료 옵션은 주로 항정신증 약물과 정신건강 지원, 상담, 심리치료, 지원적 치료 등이 포함됩니다. 초기 진단과 적절한 치료는 증상의 관리와 개선을 돕는 데 중요합니다.
치료적 동맹
치료적 동맹(Therapeutic Alliance)은 정신건강 및 의료 분야에서 중요한 개념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환자와 의료 전문가 간의 협력적이고 긍정적인 관계를 나타냅니다. 치료적 동맹은 다양한 분야에서 발견되며, 환자의 진전과 치료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치료적 동맹의 주요 특징과 중요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협력적 관계: 치료적 동맹은 환자와 의료 전문가 사이의 협력적 관계를 강조합니다. 이는 환자와 전문가가 함께 치료 목표를 설정하고 이루어내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신뢰: 환자는 의료 전문가에게 자신을 맡기고 자신의 이야기를 열고 공유하기 위해 신뢰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의료 전문가는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신뢰성과 도덕성을 유지해야 합니다.
의사소통: 효과적인 의사소통은 치료적 동맹의 핵심입니다. 환자와 의료 전문가는 서로를 이해하고, 감정과 경험을 공유하기 위한 효과적인 의사소통 방법을 개발해야 합니다.
평등성: 치료적 동맹에서는 환자와 의료 전문가가 평등한 파트너로서 대우받아야 합니다. 환자의 의견과 욕망은 존중되어야 하며, 이것이 치료적 결정에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공동의 목표: 환자와 의료 전문가는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기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이 목표는 환자의 개별적인 치료 목표와 치료 전문가의 전문적인 지식과 지원을 통합한 것이어야 합니다.
치료적 동맹은 정신 건강 치료, 의료 치료, 상담, 심리 치료 및 다양한 의료 및 상담 서비스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 관계가 강화되면 환자가 치료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치료 목표를 달성하는 데 더 효과적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30년 전쟁의 베스트팔렌조약
30년 전쟁은 최초의 국제전쟁이라 부르기도 한다. 유럽 역사에서 중요한 국제 분쟁 중 하나입니다. 이 전쟁은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지속되었으며 주로 독일 지역에서 발생한 교리적, 정치적 및 군사적 갈등으로 인해 발발했습니다. 이 전쟁은 종교적 분쟁, 국가 간의 권력 다툼, 외국 군대의 개입 등이 복합적으로 얽힌 복잡한 충돌이었습니다.
30년 전쟁은 종교적 차별과 정치적 갈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었는데,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그룹 간의 갈등이 중심적인 문제 중 하나였습니다. 이 전쟁은 유럽의 다양한 국가와 군대를 휘어넘기며 막대한 파괴와 인명 피해를 초래했으며, 막강하던 황제로 알려진 헤브리더 투스크로가 뒤집혀 제외되는 등 중요한 정치적 변화도 초래했습니다.
30년 전쟁은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종결되었으며, 이 조약은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고 국가 간의 주권을 인정하는 등 중요한 국제 규정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은 유럽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며, 국제 정치와 종교적 자유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회이에서 루터파는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30년 전쟁은 유럽에서, 로마 가톨릭교회를 따르는 국가들과 개신교를 따르는 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종교 전쟁이다. 30년 전쟁이란 표현을 처음 쓴 이는 17세기의 사무엘 폰 푸펜도르프(Samuel von Pufendorf)라고 한다. 이 전쟁으로 독일 지역은 지역 대부분이 황폐화되고 인구가 크게 떨어졌으며, 베스트팔렌 조약의 영향으로 여러 개의 영방국가로 나뉘게 되었다. 네덜란드와 스위스는 각각 스페인과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았고, 프랑스와 스웨덴은 영토를 늘렸다. Protestant라는 말이 나왔다.
낭트 칙령(Edict of Nantes)은 앙리 4세가 1598년 4월 13일 선포한 칙령으로, 프랑스 내에서 가톨릭 이외에도 칼뱅주의 개신교 교파인 위그노의 종교적 자유를 인정하였다.
노출치료와 이면감정
노출치료(Exposure Therapy)와 이면감정(underlying emotions)은 각각 심리치료와 감정 관련 개념으로, 특히 불안장애와 과도한 두려움과 관련된 상황에서 주로 사용됩니다. 이 두 요소의 관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노출치료(Exposure Therapy):
노출치료는 과도한 불안, 두려움, 또는 공포를 경감하기 위한 치료 방법 중 하나입니다. 이 치료는 대상자를 그들의 공포나 불안을 유발하는 상황이나 대상에 직면시키는 것을 중심으로 합니다. 목표는 대상자가 이러한 상황에 노출됨으로써 불안이나 공포를 경감하고, 이러한 상황에 더 적응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높은 곳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사람에게는 점차적으로 높은 곳에 가서 높이에 적응해 나가도록 하는 노출치료를 시행할 수 있습니다.
이면감정(Underlying Emotions):
이면감정은 개인의 감정 상태 아래에 숨어 있는, 덜 자각적이거나 숨겨진 감정을 나타냅니다. 이면감정은 종종 불안, 두려움, 분노, 슬픔과 같은 주요 감정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은 때로는 개인의 행동, 생각 및 느낌에 영향을 미치지만, 표면적으로는 자각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두 개념은 불안이나 공포 관련 치료에서 연결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출치료를 받는 개인은 불안이나 공포를 경감하는 과정에서 이면에 있는 불안, 두려움, 또는 다른 이면감정을 자각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노출치료가 개인의 이면감정을 탐구하고 다루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노출치료가 불안 또는 공포에 대한 감정을 이해하고 관리하는 과정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