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바로 그 교회 (채스우드 이전 감사예배)
오늘 ‘이전감사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모두를 주의 이름으로 환영합니다.
우리 교회는 2019년 4월 14일, 콩코드 사택에서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같은 해 10월 6일 라이드 연합교회로 이전했습니다. 그후 5년이 조금 지나 라이드 시대를 마감하고, 2025년 1월 1일부로 채스우드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의 핵심가치는 3S입니다. Salvation, Sanctification 그리고 Sending입니다.
1) 사람을 살리는 교회: 구원(Salvation)
구원은 헬라어로 ‘소테리아'(Soteria)이다. ‘소테리아’는 ‘영혼구원’을 넘어 ‘전인구원’을 뜻하고, ‘개인구원’을 넘어 ‘사회구원’에도 사용합니다. 소테리아란 단어는 영혼구원에 국한된 단어가 아닙니다.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도 소테리아입니다. 감옥에 있는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도 소테리아입니다. 물에 빠지자를 건져 주는 것도 소테리아입니다. 전인구원은 ‘영, 혼, 육’의 구원입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사회란 구조이고 관계입니다. 구조가 잘못되고, 관계가 깨진 곳에서는 신앙생활하기가 어렵습니다. 사회는 개인이 모인 공동체이기에, ‘사회구원’과 개인구원’과 분리할 수 없습니다. 공산주의나 이슬람교 사회구조 속에서 개인의 신앙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교회를 떠나는 이유는 대부분 관계가 깨질 때입니다. 상담에서 개인상담이 있고, 가족상담이 있습니다. 개인상담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가족 구조와 관계를 바꿈으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2) 사람을 세우는 교회: 성화(Sanctification)
성화, 성결, 거룩은 헬라어 ‘하기오스’라는 같은 단어를 사용합니다. 성화란 구원받은 자가 구원받은 자답게 거룩하게 사는 것입니다. 구원은 완성이 아닌, 성결의 시작입니다. 성결은 일회적 사건이 아닌, 점진적 과정입니다. 성서는 성화를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엡 4:15), ‘그의 마음을 품으라’(빌 2:5),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라’(갈4:19), ‘성령 충만함을 받아라’ (엡 5:18) 등은 성화의 다른 표현입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처럼, 성화 역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거룩은 인간의 속성이 아닌, ‘하나님의 속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왜 성령충만을 구합니까? 능력을 받기 위해 구하십니까? 은사를 위해 구하십니까? 아닙니다. 성령인 ‘성결의 영'(롬 1:4)으로 충만해야지만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사람을 보내는 교회: 선교(Sending)
‘하나님의 선교’란 말이 있습니다. 선교의 주체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선교적 교회(Missaional Church)란 교회의 본질이 곧 선교인 교회입니다. 모이는 교회인 ‘에클레시아’가 ‘구원 공동체’라면, 흩어지는 교회인 ‘디아스포라’는 ‘선교 공동체’입니다. 모이는 교회가 ‘방주’ 라면, 흩어지는 교회는 ‘구조선’ 입니다. 교회는 모이기 위해서 모인 것이 아니라, 흩어지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교회는 교회를 위한 교회가 아니라 세상을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땅끝이 우리에게 오고 있습니다. ‘선교의 전후방’이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전 이야기입니다.
선교에는 ‘수평선교와 수직선교’가 있습니다. 수평선교는 공간을 중심으로 하고, 수직선교는 시간을 중심으로 합니다. 수평선교는 선교지를 가는 것에 역점을 두고, 수직선교는 가정과 교회를 중심으로 ‘세대’에 초점을 맞춥니다. 우리 교회는 작은 교회이지만 다음세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큰 교회입니다.
채스우드 시대를 열면서 3가지 비전을 제시합니다.
첫째 호주 구세군과 협력하여 다문화 공동체를 꿈꿉니다.
구세군은 신학적으로는 웨슬리어니즘(Wesleyanism)이고, 실천적으로는 전인구원(Holistic Salvation)을 추구하고, 조직적으로는 국제주의(Internationalism)입니다. 구세군은 세계 134개국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구세군은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을 이웃에게, ‘한손에는 빵 한손에는 성경’이란 모토로 ‘행동하는 교회’입니다.
호주는 다문화, 다민족, 다종교사회입니다. 다문화를 3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Cross Culture, Multiculture, Interculture입니다. 비슷한 용어이지만 조금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Cross Culture란 용어는 다문화 가운데 주관하는 문화가 있고, Multiculture는 다문화지만 반드시 함께 하지 않아도 되는 문화이지만, Interculture는 모든 문화가 차별 없이 동등하게 함께 하는 다문화입니다. 구세군에서 추구하는 다문화 공동체는 Interculture입니다.
둘째 다른 세대가 아닌 다음 세대를 꿈꿉니다.
여호수아 1장 1절에도 “모세가 죽은 후에”(수 1:1)라는 말로 시작되면서 모세의 시대는 마감되고 여호수아의 시대가 열림을 알리고 있습니다. 사사기 1장 1절에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사사기의 서론적 표현으로서 사사기의 시대적 배경을 나타냅니다. 두 사람의 차이가 있다면, 모세가 죽은 후에 신앙의 바통을 이어받은 ‘다음세대’(Next Generation)가 등장하지만,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는 신앙의 바통을 이어받지 못한 ‘다른세대’(Another Generation)가 등장합니다. ‘다른세대’란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알지도 못하는 세대입니다.
사사기 2장 10절입니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10절) ‘다음 세대(Next Generation)’라고 하지 않고, ‘다른 세대’ (Another Generation)라고 했습니다. 사사기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인 21장 25절은 사사기서를 한 문장으로 요약했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는 하나님 없이 자기의 뜻대로 사는 ‘다른 세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세번째 ‘성경과 함께 성령과 함께’ 동행하는 교회가 되기를 꿈꿉니다.
우리교회는 개척부터 지금까지 ‘성경과 함께, 성령과 함께’라는 교회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항상 변화하고 성장하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책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5:39)”,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영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요15:26)”,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증인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우리 교회는 고정된 틀에 안주하지 않고, 시대의 요구와 상황에 맞춰 복음 전파의 방법을 끊임없이 새롭게 모색하며, 그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바로 그 교회’가 되겠습니다. ‘성경과 함께 성령과 함께’ 성도의 삶을 사는 교회가 되겠습니다.
2025년 1월 1일(수)
새해에는
푸르른 물결 속에서 희망은 싹을 틔우고,
햇빛처럼 밝은 꿈들이 세상에 펼쳐집니다.
새하얀 눈꽃처럼 순결한 마음을 불러오고,
겨울바람 속에서도 희망은 봄처럼 피어납니다.
희망을 안고, 감사를 품고, 사랑을 나누며,
설레는 마음으로 주님과 함께 새해의 문을 엽니다.
2025년 교회의 표어입니다. “성경과 함께, 성령과 함께 “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책이고(요 5:39),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영(요 15:26)입니다.
우리는 성도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증인입니다(행 1:8).
2025년,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해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2025년 1월 2일(목)
주님,
2025년 1월의 둘째 날입니다.
팔복의 첫번째 복을 묵상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주님 주시는 복을 누리며, 마음이 가난한 자로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오늘도 겸손의 옷을 입고 주님을 의지하며 천국의 축복을 누리고, 나누며 살게 하소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7)
겸손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마 5:3)
새해에 가장 많이 하는 인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입니다. 복이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누리는 영적 축복과 그분의 은혜로 주어지는 모든 선물을 의미합니다. 물질적인 풍요보다는 하나님 안에서의 참된 만족과 평안이 성경이 말하는 복의 핵심입니다. 팔복의 문장 구조는 원어 성경과 우리말 성경이 조금 다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이 있는 자가 심령이 가난합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자신의 영적 빈곤을 인식하고,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닫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구하며, 천국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2025년 1월 3일(금)
주님,
1월의 셋째 날입니다.
오늘 우리의 죄와 세상의 고통을 애통하며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따르지 못하고, 우리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해 죄를 범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소서.
주님, 세상에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특별히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로 오열하는 유가족을 위로하여 주소서.
그들에게 주님의 평화와 사랑을 허락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will be comforted.) (마 5:4)
팔복은 구원의 복이 아닌, 성결의 복입니다.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처럼, 성결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거룩은 ‘인간의 속성’이 아닌, ‘하나님의 속성’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팔복의 두번째 복은 애통하는 자의 복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자신의 죄와 세상의 고통에 대해 슬퍼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영적으로 민감하며, 하나님께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2025년 1월 4일(토)
주님,
2025년 1월의 넷째 날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온유한 길로 인도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은 종종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고 말하지만, 온유한 자가 복이 있고 땅을 기업으로 받을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마음에 새기고, 온유함을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 안에서 온유함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시고,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소서.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will inherit the earth.) (마 5:4)
성경에 나오는 ‘온유’라는 단어의 헬라어 원어는 ‘praus’인데, 이는 길들여진 야생마를 묘사하는 데 사용되곤 했습니다. 야생마는 본래 강하고 거칠지만, 길들여지면 여전히 그 힘과 에너지를 유지한 채로 주님에게 순종할 수 있게 됩니다. 온유는 길들여진 야생마와 같습니다. 강한 힘과 열정을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주님의 뜻에 따라 사용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온유는 주님의 뜻에 잡힌 바람을 만난 연과 같습니다.
2025년 1월 5일(주일)
주님,
교회 이전을 축복하는 태양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신 주님께 영광 돌립니다.
오늘도 주신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저희의 심령을 채워주소서.
세상의 유혹과 욕심에서 벗어나 주님의 길을 따르며, 사랑과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힘을 허락해 주소서.
오늘도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날이 되게 하소서.
공의와 사랑이 넘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Blessed are those who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for they will be filled.) (마 5:6)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를 갈망하는 상태를 뜻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의는 ‘행위의 의’가 아니라 ‘믿음의 의’입니다. 우리가 의로운 분을 믿고 그분이 의롭다고 칭할 때, 비로소 우리는 의로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이신칭의’라고 합니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