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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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2023년이 시작되었다. 인생은 예습도 없고 복습도 할 수 없는 미지의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올해도 성경이 나침반 되고 성령이 능력이 되어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 1월은 영어로 ‘제뉴어리’(January)이다. 로마 신화의 ‘야누스’(Janus) 신에서 유래되었다. 야누스는 문(門)의 수호신이다. 문안과 문밖은 다르다. 야누스는 하나의 머리에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서로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뒤통수의 얼굴은 과거를, 정면의 얼굴은 미래를 내다보는데, 역사를 통찰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를 의미한다. 현대는 일반적으로 ‘두 얼굴을 가진 사람’, 말과 행동이 다른 ‘이중인격자’를 가리켜서 ‘야누스의 얼굴’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고대 이스라엘에선 포도주를 담을 때 양이나 염소 같은 가죽 부대에서 담았다. 새 포도주를 오래 담아 두면 발효를 하여 팽창하게 된다. 낡은 부대는 딱딱하게 굳어서 신축성이 없어 팽창하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터지지만, 새 부대는 신축성이 있어 팽창하는 압력을 견디어 터지지 않는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을 수 없듯이, 예수님으로 시작된 복음, 은혜, 성령, 하나님 나라를 낡은 습관이나 율법의 전통 안에 담을 수 없다. 혁신이란 단어가 있다. 혁신은 가죽 革에 새로울 新으로 이루어져 있다. 직역을 하면 ‘새 가죽’으로, 새로운 시대에 새 부대를 만드는 것이다. 영어로 혁신(innovation)은 ‘안’를 뜻하는 ‘in’과 ‘새롭다’는 뜻의 ‘nova’가 결합한 것으로, 이를 해석하면 안에서부터 변화를 뜻한다.
새 시대는 새 마음에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다. 마태복음 13장에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있다. 농부가 복음의 씨를 마음의 밭에 뿌리는 비유이다. 4종류의 마음의 밭이 있다. 1. 길가와 같은 마음.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다. 2, 돌밭과 같은 마음. 말씀을 듣고 반응하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해 시든다. 3. 가시떨기 같은 마음. 세상 걱정근심이 많이 신앙이 자라지 않는다. 4. 옥토와 같은 마음. 말씀을 잘 듣고 깨달아 삼십배, 육십배, 백배의 열매를 맺는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마13:12) 옥토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점점 더 많은 열매를 맺고, 길가와 돌밭과 가시떨기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가진 것도 빼앗기게 된다.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의 비유에도 마찬가지이다. 악하고 게으른 종의 1달란트를 뺏아, 10달란트를 가진 착하고 충성된 종에게 주었다. 세상의 경제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양극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된다. 놀랍게도 영적인 법칙도 마찬가지이다. 옥토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계속하여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되고, 강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있는 것까지도 잃어버리게 된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전에 먼저 마음을 변화시켜야 한다.
현대는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모든 것이 불투명하다. 전쟁, 코로나, 유가, 금리 등의 변수들이 우리 앞에 산재하여 있다. 우리는 외적인 요소를 통제할 수 없지만, 내적인 것은 지금 결단하여 통제할 수 있다. 외적인 환경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내적인 변화를 통하여 새로운 시대를 맞아야 한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알파와 오메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사화복과 역사의 흥망성쇠를 주관하신다. 하나님은 전지하시고 전능하시며 무소부재하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해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29:11)
다른세대가 아닌 다음세대
역사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역사는 과거의 사건을 오늘의 사관이 내일을 위하여 기록한 글이다. 역사는 릴레이와 같다. 릴레이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바통 터치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세대가 ‘신앙의 바통’을 잘 터치하면 ‘다음세대’가 되고, 그렇지 못하면 ‘다른세대’가 된다.
사사기 1장 1절에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사사기의 서론적 표현으로서 사사기의 시대적 배경을 나타낸다. 여호수아 1장 1절에도 “모세가 죽은 후에”(수 1:1)라는 말로 시작되면서 모세의 시대는 마감되고 여호수아의 시대가 열림을 알리고 있다. 두 사람의 차이가 있다면, 모세가 죽은 후에 신앙의 바통을 이어받은 ‘다음세대’(Next Generation)가 등장하지만,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는 신앙의 바통을 이어받지 못한 ‘다른세대’(Another Generation)가 등장한다.
‘다른세대’란 하나님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행하신 일을 알지도 못하는 세대이다. 이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각기 자기의 생각에 옳은 대로 살았다. 사사기서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인 21장 25절은 사사기서를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는 하나님 없이 자기의 뜻대로 사는 ‘다른 세대’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사기(Judges)
이스라엘 사사들의 활동을 기록한 사사기서는 여호수아가 죽은 이후 사무엘에 의해 왕권 제도가 생길 때까지 약 350년간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세계사의 암흑기가 중세라면, 성경의 암흑기는 사사기시대이다. 사사기서는 5S(Sin, Slave, Supplication, Salvation, Silence)로 요약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주변 나라들을 통해 그들을 벌하시고, 회개하고 간구할 때 그들을 구원하지만, 그들은 곧 망각하고 다시 죄를 짓는 일이 일곱번이나 반복해서 나타난다. 하나님이 용서하지 못할 죄는 없다. 인간은 계속 잘못을 저지르지만,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끊임없이 자비를 베풀어 주셨다. 인간은 죄를 지어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아서 망한다.
다른세대 (Another Generation)
다른 세대는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이 하신 일도 모른다.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10절) 오늘 본문에 보면 가나안 땅에서 태어난 신세대를 가리켜서 ‘다음 세대’라고 하지 않고, ‘다른 세대’ (another generation)이라고 했다. ‘다른 세대’란 말 속에는 ‘광야 세대’와 ‘가나안 세대’ 다르다는 것을 뜻한다. 광야 세대는 2장 6절에 보면 땅을 차지하였고, 7절엔 하나님께서 베푸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던 세대였다. 가나안 세대는 사사기 2장 11-15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겨,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 괴로움을 당한 세대가 되었다. 하나님을 아는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마땅히 ‘신앙의 유산’을 남겨 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면 그들은 ‘다음세대(Next Generation)’가 아니라 ‘다른세대(Another Generation)’가 된다.
다음세대 (Next Generation)
신명기는 출애굽 2세대를 향한 모세의 유언과 같은 3번의 설교이다. 신명기를 요약하면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교육하고, 미래를 기대하라’이다. 다음 세대는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도 안다. 신명기 6:4-9절을 ‘쉐마’라고 한다. 쉐마는 ‘들으라’는 뜻으로, 다음세대를 위한 교육헌장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6:4-9).” 교육의 목적은 하나님 사랑, 교육의 내용은 성경, 교육의 방법은 강론이다. ‘강론’이란 히브리어로 ‘디베르’ “Talk about’의 의미로, 짝과 함께 대화하고 질문하며 토론하는 ‘하브루타’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앞모습을 보고 배우지 않고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 아이들은 말한대로 행하지 않고 본 대로 행한다. 문제 아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문제 부모만 있을 뿐이다. 사무엘과 같은 아들을 꿈꾸는가? 먼저 한나가 되어야 한다. 디모데와 같은 아들을 꿈꾸는가? 먼저 유니게가 되어야 한다.
구세군은 하나님의 군대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창 32:1-2)
성서에서 구세군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용어는 구약에서는 창세기 32:2절의 ‘하나님의 군대’이고, 신약에서는 딤후 2:3절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일 것이다. 구세군인은 ‘하나님의 군대’에 입대한‘그리스도의 좋은 군사’이다. 구세군은 ‘윌리엄 부스’에 의하여 1865년 7월 2일 창립되었다. 감리교 목사였던 ‘윌리엄 부스’가 목사직을 그만두고 아내인 ‘캐서린 부스’와 함께 동부런던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사역으로 시작되었다. 구세군은 화려한 건물이 아닌, 황량한 거리에서 태동된 단체이다. 오늘은 구세군의 3가지 상징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1, 군기
구세군 군기는 빨강, 파랑, 노랑 삼원색으로 구성되어 있고, 중앙에는 8각의 노란별 안에 ‘피와 불'(Blood and Fire)이 써있다. 처음 군기가 등장하는 것은1878년 9월 이었다. 캐더린 부드는 영국 중부에 위치한 코벤트리(Coventry) 영문에 군기를 수여했다. 당시는 중앙에 별이 아니라 태양이었다. 인도에서 선교를 할 때 선교지역인 파르세스(Parsees)사람들이 태양신을 섬기고 있어서, 1882년 태양에서 별로 변경하였다. 초기에는 별의 각이 다양했지만, 후에 8각으로 규격화되었다. 군기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상징한다. 붉은색은 ‘예수그리스도의 보혈’, ‘푸른색은 하나님의 성결’, 노란색은 ‘성령의 불’이다. 구세군을 지탱하는 두개의 기둥이 있다. ‘구원(Salvation)과 성결(Holiness)’이다. 구원이란 성령으로 거듭남을 말하고, 성결이란 구원받은 자답게 사는 것이다. 사관의 견장이 붉은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의미하고, 병사의 견장이 푸른 것은 ‘하나님의 성결’을 의미한다. 성결은 하나님의 성품이기에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는 자는 성결해야 한다. 구약에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갈 때 ‘하나님께 성결'(Holiness Unto God)이라는 머리띠를 매고 들어간다. 이 둘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노란색의 ‘성령의 불’이다. 구원이 순간적인 성령세례라면, 성결은 지속적인 성령충만이다. ‘그에게까지 자라고’, ‘그를 닮아 가는 것’이 성결이다. 성결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이다.
2. 군복
구세군은1865년에 동부런던 기독교부흥협회(East London Christian Revival Society)에서 시작하여, 1867년에 동부런던 기독교선교회(East London Christian Mission), 1869년에는 기독교선교회(Christian Mission), 1878년에 구세군(Salvation Army)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이름만 바꾼 것이 아니라 조직도 군대식으로 변경하여, 악대와 군기를 만들고 군복도 입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일정한 양식의 군복이 없어서 색깔과 모양이 모두 달랐다. 그후 통일된 군복을 입게 되었다. 군복에 거부감이 있는 나라에서 선교할 때는 오해로 인한 문제도 발생되었다. 지금은 구세군인들의 희생적인 활동을 통하여 군복은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군복은 내적인 신분의 외적인 표현이다. 우리가 누구이며, 누구에 속한 자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상징이란 보이는 것을 통하여 보이지 않은 것을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군복에는 S자가 두 개 있다. SS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다. ‘구원과 성화'(Salvation and Sanctification), ‘구원은 성화의 시작이다. ‘구원받은 것은 구원하기 위함'(Saved to Save), 구원은 선교의 시작이다. ‘구원과 봉사'(Saved to Serve), 구원은 봉사의 시작이다.
3. 악대
구세군 악대의 태동은 ‘기독교선교회’에서 ‘구세군’으로 이름을 바꾼 1878년이다. 초기 구세군은 ‘모이는 교회’보다는 ‘흩어지는 교회’에 중점을 두었다. 교회로 모이라고 하지 않고, 직접 그들이 사는 현장으로 찾아 갔다. 초기부터 구세군은 ‘가로전도'(Open Air)에 열심을 냈다. 거리에서 밴드를 연주하면 두 가지 이점이 있다. 첫째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고, 둘째 야유하는 사람들의 함성을 잠재울 수 있었다. 이들은 창립자 윌리암 부스의 권고로 구세군 사역에 동참하게 되고, 실내 집회에서도 많은 영혼을 구원했다. 최초의 영문 밴드는 1879년 더럼(Durham) 지방의 콘세트(Consett) 영문에서 결성되었다. 1880년 윌리암 부스는 구세공보에 악기를 통한 사역을 강조하며, 영문에서 재능 있는 사람들은 악기를 배울 것을 독려하고, 악기를 기부해 줄 것도 당부했다. 이 기사가 구세군 전체에 알려지면서, 다양한 종류의 많은 악기들이 기부되었다. 1880년에는 영문마다 밴드 창단 붐이 일어났다. 밴드를 연주하는 3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고, 둘째는 구원받은 사람은 성결해지고, 셋째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영어식 표현은 ‘연주’(Playing)라고 하지 않고 ‘밴드 메시지’(Band Message)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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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