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생명의 말씀 안에서 누리는 기쁨 (요일 1:1-4)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 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일 1:1-4)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으로, 요한복음, 요한 1서, 요한 2서, 요한 3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한은 갈릴리 호수 근처에서 어부로 일하다가 예수님을 만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형제 야고보도 예수님의 제자였으며, 이 두 형제는 ‘보아너게’라는 별명을 가졌는데, 이는 ‘우레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요한은 예수님과 매우 가까운 관계를 가졌으며, ‘사랑받는 제자’로도 불립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밖힐 때 유일하게 그곳을 지켰던 제자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했습니다. 요한은 마리아를 모시고 에베소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요한복음, 요한 1,2,3서를 쓴 것으로 추정됩니다. 에베소에서 목회 중 밧모섬으로 유배 되어, 그곳에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했습니다. 요한일서 1:1-4는 예수님이 ‘태초부터 계신 생명의 말씀’이심을 밝히면서, 우리가 그분을 직접 체험하고, 증언하고, 교제할 때 충만한 기쁨을 얻을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본문의 말씀을 의지하여 ‘생명의 말씀 안에서 누리는 행복’이란 제목으로 피차 간에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생명의 말씀을 체험하기
요한은 예수님을 “태초부터 계신 생명의 말씀”이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이 모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존재하는 분임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 1장 1절과 14절에도 같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은 그 예수님을 직접 들었고, 눈으로 보았으며, 손으로 만졌다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역사 속에 오신 분이며, 이시간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기도와 묵상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찬양과 예배 가운데 임재하시는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표현은 예수님과 개인적으로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을 넘어서,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간접경험이 아니라, 예수님을 직접경험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인격적인 만남은 기도, 성경 읽기, 예배 참석 등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과 인도하심을 더 깊이 느끼고 이해하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고 체험하면,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분을 닮고자 하는 열망이 커집니다. 갈등과 어려움을 만날 때에도 예수님이 주시는 위로와 소망을 붙잡으면서, 믿음 안에서 담대해지고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생명의 말씀을 증언하기
요한은 자신이 경험한 예수님의 진리를 혼자만 간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 전한다”고 말하면서, 믿음이 결코 개인 안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와 세상으로 뻗어나가야 함을 보여 줍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하는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이야기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원주의, 해체주의, 상대주의, 혼합주의 등을 주장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세상에는 절대란 절대로 없다’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정신이 지배하는 시대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진화론이 대세인 세상에서 창조론을 주장한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 사랑과 은혜를 경험했다면, 그분을 소개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됩니다. 때로는 우리의 작은 친절과 섬김, 혹은 삶 속에서 드러나는 변화된 모습 자체가 훌륭한 간증이 될 수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설득하는 3가지 방법을 언급하였습니다. 이성인 로고스, 감성인 파토스 그리고 인격은 이토스입니다. 이성보다는 감성보다는 인격이 설득력이 높습니다. 세상이 강퍅해질수록 말의 전도 보다 삶의 전도가 필요합니다. 삶의 전도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제로 실천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보여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신앙의 진정성을 느끼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3. 생명의 말씀 안에서 친교하기
요한일서에서 핵심적으로 강조하는 단어 중 하나가 ‘사귐’’입니다. 사귐은 헬라어로 ‘코이노니아’입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의 만남이 아니라 생명의 말씀인 그리스도 안에서의 ‘친교’를 뜻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친교는 신자들이 서로를 지지하고, 함께 성장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를 통해 신앙 공동체는 더욱 강해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갈 수 있습니다.
교회에는 4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예배: 교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신자들은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교육: 교회는 성경 공부와 신앙 교육을 통해 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이를 통해 신앙이 깊어지고,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를 얻습니다. 봉사: 교회는 지역 사회와 세상에 봉사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손길을 내밀 수 있습니다. 교제: 교회는 신자들이 서로 교제하고, 사랑과 격려를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이를 통해 신자들은 서로의 신앙을 지지하고, 함께 성장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하고, 교회 구성원들은 ‘지체’와 같다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의식’은 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의 몸을 이루는 공동체 의식을 의미합니다. 지체는 상호 의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지체는 중요하며,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한지체가 아프면 모두가 아프고, 한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모두가 함께 영광을 받습니다. 지체는 다양성과 통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 지체는 다양한 은사와 역할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통일됩니다. 이는 교회의 다양성을 존중하면서도 하나됨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별은 있지만 차별은 없습니다. 차별은 수직적으로 나누는 것이 구별은 수평적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지체는 사랑과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지체들은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합니다. 이를 통해 공동체는 더욱 강해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전할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생명의 말씀인 예수님을 실제로 체험하는 것, 그분을 세상에 담대하게 전하는 것, 그리고 그분 안에서 지체의식을 갖고 친교하는 것, 이것이 생명의 말씀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기쁨입니다.

기도란 무엇인가?
기도는 길입니다. 육의 기도는 숨길이고, 영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소통의 길입니다. 육의 기도가 막히면 육이 죽고, 영의 기도가 막히면 영이 죽습니다. 영의 기도는 일방적으로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변화시켜 내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화되어 하나님 편이 되는 것임 편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하나님의 회의”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이 자신의 뜻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백성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1.기도의 태도
기도에 태도는 기도자가 취해야 하는 내적 자세와 심리적, 영적 준비를 의미합니다. 성경은 기도할 때 은밀한 가운데 하나님께 나아가야하며, 중언부언하지 말아야 함을 가르칩니다 (마 6:5-7). 겸손한 태도로 기도하는 것은 필수적이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분의 도우심에 의존해야 합니다 (약 4:10).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약 1:6). 모든 기도는 감사로 충만해야 하며 (빌 4:6),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그분의 선하심을 인정하는 중요한 태도입니다. 감사의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고, 우리가 이미 받은 것에 대한 만족과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표현합니다. 기도는 단순히 새로운 것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심화시키는 과정입니다.
2.기도의 대상
기독교의 기도와 다른 종교의 기도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본질적인 차이는 기도의 대상입니다. 기독교의 기도의 대상은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창조주시며,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의존하는 행위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고, 우리의 삶을 세밀하게 돌 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의 모든 것을 맡기고 신뢰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중보자이자 구세주로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과의 화목을 누립니다. 성령님: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를 돕고 하나님의 뜻에 맞게 기도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할지 모를 때에도 성령님은 대신 간구하십니다(롬 8:26).
3.기도의 내용
기도의 내용은 우리의 신앙의 수준을 반영합니다. 육신의 기도는 물질적 필요와 감정적 욕구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는 건강, 경제적 안정 등 세속적 필요를 포함합니다. 반면, 영의 기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영적 성장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깨달음을 구합니다. 육신의 기도는 나 중심의 기도이고, 영의 기도는 하나님, 중심의 기도입니다. 기도가 자신의 필요와 욕망에만 집중되어 있다면, 이는 신앙이 아직 성숙하지 않음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반면, 먼저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구하는 기도는 더 깊은 신앙의 표현입니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채스우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