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신념과 신앙을 착각하지 말자 (히브리서 11:1-3)
信念과 信仰은 다릅니다. 신념은 개인의 의지나 사고에 기반한 확신을 의미합니다. 신념은 사람의 경험, 교육, 문화적 배경 등에 의해 형성됩니다.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그분의 인도를 따르는 것을 뜻합니다. 신념은 자기에게서 출발하지만, 신앙은 하나님께서 출발합니다. 신념의 중심에는 자기가 있지만, 신앙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신념은 자기 생각을 믿는 믿음이고,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성경에 신념과 신앙이 충돌하는 사건이 있습니다. 삼상 17장의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골리앗은 자신의 칼과 창과 단창인 나아갔지만, 다윗은 자신이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갔습니다.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이 아니라, 골리앗과 하나님의 싸움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골리앗과 같은 많은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신념과 신앙의 착각
자신의 신념을 신앙으로 착각: 자신의 신념을 절대적 진리로 여기고, 그것이 곧 신앙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은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진리는 자신의 신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해야 합니다. 정치적 신념이 신앙보다 앞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초기 선교가 서양문화의 우월의식을 갖고 접근해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신념이 강한 사람이 신앙이 깊다고 착각: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 신앙이 깊다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은 단순한 신념 이상의 것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논리가 있는 신념은 주관이 뚜렸하다고 하지만, 논리가 없는 신념은 고집만 세다고 합니다.
자기의 욕망을 하나님의 뜻으로 착각: 개인의 신념을 자신의 신앙으로 착각하여, 자기 목적을 이루려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뜻과 혼동하는 것으로, 신앙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을 수단화해서는 안됩니다. 신념은 자기 생각을 믿는 믿음이고, 신앙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믿음으로 살았던 여러 인물들의 예를 들어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습니다. 믿음은 관념이 아닌,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고하게 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는 도구입니다. 오늘은 11장 1-3절의 말씀을 의지하여 믿음의 세 가지 중요한 측면을 살펴보겠습니다.
1. 믿음의 정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믿음은 단순히 바라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받아들이는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믿음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계획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미래를 현재화하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월트 디즈니는 가족을 위한 공간으로 디즈니 랜드 만들었다. 단순한 ‘놀이 공원’이 아닌 ‘영원한 꿈의 나라’를 짓고자 했다. 캘리포니아 짓고 플로리다에 디즈니 랜드의 50배나 더되는 디즈니 월드를 건축하기 시작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월트 디즈니는 디즈니 월드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미망인에게 “디즈니씨가 디즈니 월드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서 안타깝습니다.” 라고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미망인은 “아닙니다. 제 남편은 이미 디즈니 월드를 다 보았습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았기에 때문에 디즈니 월드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현재 문화체육부 차관인 역도 금메달 리스트인 장미란씨가 시드니 와서 간증하였습니다. 그녀는 마음으로 먼저 바벨을 들어야 몸으로도 바벨을 들 수 있다고 합니다. 마치 장대 높이 뛰기 선수가 마음으로 먼저 장대를 넘지 못하면 몸으로 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스포츠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심상훈련(imagery training)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를 빙산으로 비유합니다. 의식은 물 밖의 빙산의 일각이고 무의식은 물 속에 잠긴 부분입니다. 물속에 잠겨 있는 무의식은 의식이 알 수 없는 놀라운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식이 의도적으로 믿음으로 선포하면 무의식은 의식이 선포한 그 말을 이루기 위해 에너지를 집중한다고 합니다.
2. 믿음의 선진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히 11:2)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등 믿음의 조상들은 그들의 믿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칭찬받았고, 그들의 삶은 믿음의 증거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따랐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계획이 이들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제일 먼저 아벨의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4장을 보면 아벨과 그제물을 받았고, 가인과 그 제물을 받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8절과 12절에 두 번이나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 모두에게 믿음의 아버지로 칭함을 받는 인물입니다. 이슬람교 성지인 메카의 카바 신전은 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건축했다고 무슬림들은 믿고 있습니다. 전세계 모스크는 카바 신전을 중심으로 지어졌습니다. 이맘이 설교하는 자리는 메카를 향해야 합니다. 무슬림은 죽어서도 머리는 메카 쪽으로 향하여 묻습니다. 8절은 창세기 12장의 하란을 떠날 때의 믿음입니다. 가야할 곳을 알지 못하고도 떠나는 믿음입니다. 22장은 모리아 산에서 100세 때 얻은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부활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9절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실리실 줄로 생각한지라”고 했습니다.
3. 믿음의 결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히 11:3)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이해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세상이 창조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게 하며,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을 확신하게 합니다. 창세기 1장 1절이 믿어지지 않으면 나머지의 말씀은 지식은 될지언정 믿음은 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존하시고, 통치하시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못박혀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고, 3일만에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부활하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분은 지금도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동행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믿음은 미래를 현재화하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고, 믿음으로 치유 받고, 믿음으로 응답 받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삽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그분의 계획을 확신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 믿음이 우리의 삶을 이끌어가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는 원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켈틱 신학 (Celtic Theology)
페트릭(Patrick)과 콜롬바(Columba)
페트릭(Patrick)과 콜롬바(Columba)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초기 기독교의 전파와 확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들이다.
1. 성 패트릭(Saint Patrick)
성 패트릭은 아일랜드의 수호성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5세기경에 활동한 인물로,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한 주요 사도 중 하나이다.
생애: 성 패트릭은 로마 브리타니아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 아일랜드 해적들에게 납치되어 노예로 팔렸던 인물이다. 몇 년간 아일랜드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 탈출하게 되었다. 브리타니아로 돌아온 후, 그는 성직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갈리아(현대 프랑스)에서 신학 공부를 했다고 알려져 있다.
아일랜드에서의 선교: 패트릭은 주교로 임명된 후, 다시 아일랜드로 돌아가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드루이드교와 같은 이교도 신앙을 가진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했다. 그의 선교 활동은 아일랜드 전역에 걸쳐 교회를 세우고 많은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데 성공했다.
유산: 성 패트릭의 날(3월 17일)은 그의 죽음을 기념하는 날로, 오늘날에도 전 세계에서 성대하게 기념되고 있다. 패트릭은 아일랜드의 기독교와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전해지고 있다.
2. 성 콜롬바(Saint Columba)
성 콜롬바는 6세기경에 활동한 아일랜드의 수도사이자 선교사로, 특히 스코틀랜드에서 기독교를 전파한 공로로 유명한 인물이다.
생애: 콜롬바는 521년에 아일랜드에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아일랜드의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나중에는 자신만의 수도원을 설립했으며, 그의 명성은 점차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아이오나 수도원: 563년에 콜롬바는 스코틀랜드의 서해안에 있는 작은 섬 아이오나(Iona)로 이주하여, 그곳에 수도원을 세웠다. 이 수도원은 스코틀랜드와 북부 영국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중심지가 되었다. 콜롬바는 피그미인(스코틀랜드 원주민)과의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그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했다.
유산: 콜롬바는 스코틀랜드 기독교의 창립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지며, 그의 영향력은 스코틀랜드 전역에 걸쳐 확산되었다. 아이오나 수도원은 중세 초기의 중요한 기독교 중심지로 자리 잡았으며, 콜롬바의 성자적 삶과 업적은 오랜 세월 동안 존경받고 있다.
페트릭과 콜롬바는 각각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 기독교 신앙을 확립하고 확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그들의 헌신과 열정은 오늘날까지도 기억되고 기념되고 있다.
켈틱 신학(Celtic Theology)
켈트족은 유럽 전역에 걸쳐 확산되었으며, 특히 갈리아(현대 프랑스)와 브리타니아(영국과 아일랜드)에서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다. 로마 제국의 확장에 따라 갈리아와 브리타니아의 켈트족은 로마 문화와 접촉하며 점차 로마화되었지만,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등지에서는 로마의 영향을 받지 않고 독자적인 문화를 유지했다.
켈틱 신학(Celtic Theology)은 초기 기독교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를 포함한 켈트족이 살고 있던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발전한 독특한 신학적 전통을 말한다. 이 신학은 자연과의 조화, 공동체 중심의 신앙, 성삼위일체의 신비,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강조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켈틱 신학은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과 차별화되며, 켈트족의 문화와 세계관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의 기독교 신앙을 형성한 것이다.
켈틱 신학의 주요 특징
1. 자연과의 조화: 켈틱 신학에서는 자연을 하나님의 창조물로 보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산, 강, 바다 등 자연의 요소들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자연에 대한 깊은 존중과 사랑은 켈틱 신학의 중요한 특징이다.
2. 삼위일체의 신비: 켈틱 신학은 성삼위일체에 대한 깊은 이해와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삼위일체의 신비는 켈틱 기독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이는 켈트족의 삼중성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와 연결된다. 성 패트릭이 세잎클로버를 사용해 삼위일체를 설명했다는 전설은 이러한 이해를 잘 보여준다.
3. 공동체 중심의 신앙: 켈틱 신학에서는 개인보다 공동체가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공동체 속에서 신앙이 성장하고, 서로를 돌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강조된다. 수도원 생활이 켈틱 기독교에서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아이오나 수도원과 같은 곳은 단순한 기도와 예배의 장소를 넘어, 공동체 생활과 교육의 중심지였다.
4. 순례와 영적 여정: 순례는 켈틱 기독교에서 중요한 영적 실천이었다. 순례는 단순히 성지 방문이 아니라, 신앙적 성장과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추구하는 여정으로 여겨졌다. 켈틱 기독교에서 순례는 영적 변화를 경험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5. 신의 임재에 대한 인식: 켈틱 신학은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들은 하나님이 일상적인 일들 속에서도 함께 하신다고 믿으며, 그들의 기도와 찬송에서 일상생활의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찬양했다.
6. 고유의 영성: 켈틱 기독교는 고유의 영성을 갖추고 있었으며, 이는 깊은 묵상과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적 신앙을 강조했다. 이들은 삶의 모든 순간이 하나님과의 만남의 기회라고 여겼으며, 성경과 자연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중시했다.
현대에서의 영향
켈틱 신학은 현대 기독교 영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자연을 존중하고 환경을 보호하려는 현대의 기독교 운동, 그리고 공동체 중심의 신앙 생활을 중요시하는 흐름에서 켈틱 신학의 가르침이 재조명되고 있다. 또한, 현대의 영성 운동에서도 켈틱 기도와 찬양, 그리고 순례와 같은 전통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켈틱 신학은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과는 다른 독특한 시각을 제공하며, 자연과의 조화, 공동체 생활, 그리고 일상에서의 하나님의 임재를 강조하는 점에서 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
창조신학과 구속신학
기독교 신학의 두 중요한 영역으로 ‘창조신학과 구속신학’이 있다.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구속에 대한 이해를 다루는 분야이다. 두 신학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면서도 각각 고유한 초점과 주제를 가지고 있다. 창조신학은 마치 하나님이 거대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와 같다. 하나님은 우주와 모든 생명체를 창조하셨고, 그 과정은 마치 정교한 예술 작품을 완성하는 것과 같다. 구속신학은 마치 하나님이 쓰신 위대한 구원 이야기와 같다. 이 이야기는 인간의 타락과 구속, 그리고 궁극적인 회복을 다루고 있다.
1. 창조신학(Creation Theology)
창조신학은 하나님이 세상과 모든 존재를 창조한 사실에 대한 신학적 탐구이다. 이는 성경의 창세기 1장과 2장에서 시작하여, 하나님이 창조주로서의 역할과 그 창조의 의미를 깊이 있게 다루는 신학이다. 창조신학은 하나님이 전능하신 창조주로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임을 강조한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존재하며, 이는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를 드러낸다.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것은 본래적으로 선하며, 창조의 완전함과 아름다움을 반영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는 창세기의 표현은 창조의 선함을 강조한다. 창조신학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음을 강조하며, 인간에게 주어진 특별한 역할과 책임에 대해 논의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창조 세계를 돌보고 관리해야 하는 청지기적 사명을 갖고 있다. 창조신학은 자연 세계와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를 중시한다. 하나님의 창조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며, 환경 보호와 생태계 보전도 이와 연관된 신학적 주제이다.
2. 구속신학(Redemption Theology)
구속신학은 인간의 죄와 타락,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과 구원의 과정을 다루는 신학이다. 이는 주로 신약 성경, 특히 복음서와 바울 서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 구속신학은 인간이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음을 강조한다.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해 인간은 죄의 본성을 가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인간의 죄를 속량하고 구원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핵심이다. 예수님은 죄 없는 완전한 희생 제물로서, 인류의 죄값을 치르셨다. 구속신학은 인간이 자신의 노력이나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강조하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음을 가르친다. 구속신학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생명과 성령을 통한 변화를 다룬다. 구원받은 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살아간다.
3. 관계와 통합(Relationship and Integration)
창조신학과 구속신학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창조는 하나님의 원래 계획과 의도를 드러내며, 구속은 그 창조의 타락 이후의 회복과 완성을 목표로 한다. 창조의 선함과 인간의 타락,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과 회복은 기독교 신학의 큰 그림을 이루며,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창조신학과 구속신학은 하나님의 예술 작품과 구원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전체적인 계획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두 신학을 통합적으로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 세계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리고 그 사랑이 어떻게 구속의 역사 속에서 드러나는지를 깊이 깨닫게 된다.
사사기 요약
사사기는 구약성경에 속한 책으로,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부터 이스라엘에 왕정이 세워지기 전까지 약 300년 동안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그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이방 민족들로부터 압제를 당하게 되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판관들을 세우시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판관들은 단순한 재판관이 아니라, 군사적 지도자이자 영적 지도자로서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인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1. 사사기의 구조와 주제
사사기는 주로 “죄-압제-회개-구원”이라는 주기적인 패턴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이방 신들을 숭배함으로써 죄를 짓습니다. 이에 따라 하나님은 이방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압제하도록 허락하십니다. 고통을 겪은 이스라엘 백성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며, 하나님은 판관을 세워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판관이 죽으면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죄를 짓기 시작하고, 이 주기는 반복됩니다.
2. 주요 사사
사사기에는 12명의 판관들이 등장하며, 그들 각각은 고유한 역할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옷니엘: 사사기에 등장하는 첫 번째 판관으로, 갈렙의 조카입니다. 이스라엘이 메소포타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에게 압제를 당할 때, 하나님은 옷니엘을 세워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에훗: 모압 왕 에글론의 억압하에 있던 이스라엘을 구원한 판관입니다. 에훗은 왼손잡이였으며, 이를 이용해 에글론을 암살하고 모압의 지배로부터 이스라엘을 해방시켰습니다.
삼갈: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친 판관으로, 소모는 막대기로 600명을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갈에 대한 기록은 짧지만, 그의 용맹함이 드러납니다.
드보라: 이스라엘의 유일한 여성 판관이자 선지자입니다. 드보라는 바락과 함께 가나안 왕 야빈과 그의 군대장관 시스라를 상대로 승리를 이끕니다. 드보라의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여인들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기드온: 미디안 사람들의 압제하에 있던 이스라엘을 구원한 판관입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300명의 소수 정예 병력을 이끌고 미디안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능력과 인간의 연약함을 대비시키며, 하나님이 약한 자를 통해 큰 일을 이루심을 보여줍니다.
돌라: 단편적인 기록만 남아 있는 판관으로, 그는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입다: 암몬 자손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구한 판관입니다. 입다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께 서원했으나, 그 서원이 그의 딸을 희생시키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입산, 엘론, 압돈: 이 세 명의 사사들은 짧은 기록만 남아 있으며, 그들의 판관 활동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들 또한 이스라엘을 일정 기간 동안 이끈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삼손: 사사기에서 가장 유명한 사사 중 하나로, 그의 이야기는 블레셋 사람들과의 싸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삼손은 나실인으로서 하나님께 특별한 서원을 했으며, 엄청난 신체적 힘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블레셋 여인 들릴라와의 관계로 인해 힘을 잃고 결국 포로가 됩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삼손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신의 힘을 회복하고, 블레셋의 신전에서 적들과 함께 죽습니다.
3. 사사기의 신학적 의미
사사기는 이스라엘의 영적, 도덕적 쇠퇴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의 결과를 강조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반복적인 배신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끊임없이 판관을 세우시는 신실한 분으로 묘사됩니다. 이 책은 하나님의 인도와 구원이 인간의 불완전함과 상관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사기의 마지막 구절인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판관기 21:25)는 이스라엘이 왕정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는 배경을 설명합니다.
판관기는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구속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하며, 결국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강조하는 중요한 책입니다.
욥기 요약
1. 욥의 시험 (욥기 1-2장): 욥은 경건한 사람으로 많은 재산과 가족을 가지고 있었지만, 사탄의 도전에 의해 자녀들과 재산을 모두 잃고 심한 병에 걸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습니다.
2. 욥의 항변 (욥기 3-31장): 세 명의 친구들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 욥을 위로하러 오지만, 그들은 욥의 고난이 그의 죄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그를 책망합니다. 욥은 친구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하나님께 고통의 이유를 묻는다.
3. 엘리후의 연설 (욥기 32-37장): 젊은 엘리후가 등장하여 욥과 그의 친구들을 비판하며, 하나님의 공의와 주권를 변호합니다. 엘리후는 욥의 태도를 교만하다고 지적합니다.
4. 하나님의 응답 (욥기 38-41장): 하나님은 폭풍 가운데 나타나셔서 욥에게 그분의 창조와 주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일련의 질문을 던지며 인간의 한계를 깨닫게 합니다.
5. 욥의 회복 (욥기 42장): 욥은 하나님 앞에 겸손히 회개하고, 하나님은 그의 친구들에게 욥을 위해 제사를 드리라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은 욥의 재산과 가족을 두 배로 회복시켜 주시며, 욥은 다시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욥은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하나님께 회개하고 친구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두배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욥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고난 중에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고(욥 23:10), 겸손히 회개하며(욥 42:6), 자기를 비난하는 친구를 위해 기도(욥 42:10)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욥기는 고난 중에 축복받는 비결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독일 태생의 심리학자이자 사회 철학자로, 그의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Escape from Freedom)는 1941년에 출판된 중요한 심리학 및 사회학적 연구서입니다. 이 책에서 프롬은 인간의 자유와 그것에 대한 두려움을 탐구합니다.
주요 개념
자유의 이중성:
프롬은 자유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긍정적인 면에서 자유는 개인에게 자율성과 창의성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에서는 고립과 불안감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불안감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합니다.
자유로부터의 도피 기제:
권위주의적 경향: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 인한 불안을 피하기 위해 권위에 복종합니다. 권위주의적 인물들은 자신을 더 강력한 사람이나 이념에 복속시킴으로써 안정감을 찾으려 합니다.
파괴적 경향: 일부 사람들은 자유로 인한 고립감을 극복하기 위해 파괴적이 됩니다. 이는 타인이나 자신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자동적 동조: 다른 사람들의 기대나 사회적 규범에 무조건적으로 따름으로써 자아를 상실하지만, 안정감을 찾습니다. 이는 현대 사회에서 매우 흔한 현상입니다.
역사적 배경:
프롬은 중세 사회와 근대 사회를 비교하면서, 중세 시대의 사람들은 고정된 사회적 위치와 역할 덕분에 자신을 안정적으로 느꼈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근대에 들어와서 개인은 더 많은 자유를 얻게 되었지만, 동시에 불안과 고립감을 더 많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긍정적 자유:
프롬은 진정한 자유는 단순히 외부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아를 실현하고 창조적인 삶을 사는 데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아닌 ‘자유로의 도달’을 의미합니다.
결론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자유를 경험하고, 그것이 주는 불안으로부터 어떻게 도피하려 하는지를 탐구한 중요한 저서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진정한 자유를 찾아 자기 자신을 실현할 수 있도록 사회적 구조와 개인의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감사와 간구
감사와 간구는 신앙 생활에서 중요한 두 가지 측면입니다. 이 둘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며, 신앙인의 삶에 각각 독특한 영향을 미칩니다.
감사 (Thanksgiving)
의미:
감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분의 공급하심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됩니다.
성경적 근거:
성경에서는 감사하는 마음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서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적 중요성:
감사는 신앙인의 마음을 겸손하게 만들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합니다. 또한, 감사하는 태도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하게 하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도록 돕습니다.
실천 방법:
일상생활에서 받은 작은 축복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거나, 감사의 일기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간구 (Supplication)
의미:
간구는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와 소원을 아뢰는 기도입니다. 이는 하나님께 우리의 삶의 문제와 고민을 맡기고, 그분의 도움과 인도하심을 구하는 행위입니다.
성경적 근거:
성경에서는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간구하라고 권고합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서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합니다.
영적 중요성:
간구는 하나님께 우리의 의존성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실제적으로 관여하시고, 그분의 뜻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신뢰를 표현합니다.
실천 방법:
구체적인 필요와 문제를 하나님께 아뢰고, 그분의 뜻에 따라 응답을 기다리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간구할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지혜를 구하는 것도 좋습니다.
차이점 요약
감사는 하나님께 이미 주어진 것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며, 과거와 현재의 은혜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간구는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와 소원을 아뢰는 기도이며, 현재와 미래의 필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 둘은 서로 보완적이며, 함께 실천할 때 더 풍성한 신앙 생활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간구할 때도 감사하는 마음을 함께 가지면, 우리의 기도가 더 깊고 진실하게 됩니다.
감사와 간구는 기독교 신앙에서 중요한 두 가지 측면입니다. 둘 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만, 그 목적과 본질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감사 (Thanksgiving)
목적: 하나님께서 이미 행하신 일들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베풀어 주신 은혜와 축복에 대한 인식과 감사를 나타냅니다.
본질: 감사는 만족과 인정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에 대해 기뻐하고, 그분의 은혜를 인정하며 찬양합니다.
예시: 성경에서 다윗은 시편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많은 기도를 남겼습니다. 예수님도 떡과 물고기를 나누기 전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효과: 감사는 마음의 평안과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게 만듭니다.
간구 (Supplication)
목적: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와 소원을 아뢰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삶의 필요와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도움을 구하는 과정입니다.
본질: 간구는 필요와 소망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그분의 능력과 자비를 구합니다.
예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기도문을 가르치시면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도록 가르치셨습니다. 바울도 여러 서신에서 교인들에게 기도로 간구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효과: 간구는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맡기고 신뢰하게 합니다. 또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며 신앙이 성장합니다.
결론
감사는 하나님께서 이미 베푸신 은혜에 대한 반응이고, 간구는 현재와 미래의 필요에 대한 요청입니다. 두 가지 모두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며, 균형 있게 신앙 생활을 이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