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사관 칼럼

터진 웅덩이에 물 붓기
오늘은 아모스 8:11절의 말씀을 의지하여 ‘터진 웅덩이에 물 붓기’라는 제목으로 피차간에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아침마다 온라인으로 만나는 ‘세계선교회 중보기도회’에서 말씀을 듣고 또 같이 기도도 합니다. 며칠 전에 부흥회를 많이 다니던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는 많은 교회를 다니면서 성장하는 교회의 한 가지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장하는 교회는 인사를 잘하는 교회입니다. 그냥 인사가 아니라 만면에 미소를 띠고 인사를 잘하는 교회가 성장하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성장하려면 만날 때마다 밝은 웃음을 띠고 인사를 잘해야 합니다. 옆에 사람과 함께 지금 직접 실습을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인사를 잘하는 것 보니 우리 교회도 금방 성장하는 교회가 될 줄 믿습니다. 뒤에 새로 오신 분한테도 누가 인사했습니까? 인사가 만사입니다. 회사의 인사이동의 인사가 아니라, 인사는 Greeting입니다. 인사를 잘하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이고, 인사를 잘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인사 잘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아모스 자신을 “드고아의 목자 중에 있는 아모스”(암 1:1)라고 소개했습니다. 드고아는 남 유다의 베들레헴 근처에 위치한 작은 마을입니다. 아모스는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북 이스라엘 가서에서 예언을 했습니다. 그는 사회적 불의, 우상 숭배, 종교적 위선을 포함하여 사람들의 죄에 대한 경고와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보냄을 받았다. 북 이스라엘은 겉모습은 화려했지만, 안은 썩어 있었습니다.
구약에는 기름 부음을 받은 직책이 3가지 있습니다.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입니다. 왕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을 치리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맘대로 치리하면 악한 왕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치리하면 선한 왕이 됩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해서 사람 앞에 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할 때도 있지만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할 때도 있습니다. 제사장은 사람을 대신해서 하나님 앞에 선 사람입니다. 아모스는 선지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하나님을 대신하여 북 이스라엘에게 말씀을 전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선지자가 있습니다. 선지자를 분류하는 몇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시대에 따라서 선지자를 구분합니다. 시대 구분의 기준은 바벨론 포로입니다. 바벨론 포로 전에 활동한 선지자, 바벨론 포고 기간에 활동한 선지자, 바벨론 포로 후에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두 번째는 장소에 따라서 구분하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크게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와 남유다의 선지자로 나눕니다. 세 번째로 문서를 남긴 선지자와 남기지 않은 사람은 선지자로 나눕니다. 문서 선지자는 비문서 선지자보다는 많은 일을 했고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비문서 선지자 중에도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엘리야나 엘리사 같은 위대한 선지자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은 문서를 남기지 않았으나, 전무후무한 놀랄 만한 일들을 감당했습니다. 네 번째로는 책의 두께에 따라 나눕니다. 책의 분량이 많으면 대선지서이고, 책의 분량이 적은 사람은 소선지서입니다. 대선지자가 아니라 대선지서이고, 소선지자가 아니라 소선지서입니다. 대선지서는 5권인데 예레미야 애가는 예레미야가 썼기에 4명 이고, 소선지서는 12권인데 12명의 선지자가 각각 한 권씩 썼습니다.
아모스는 소선지서 중에 한 편을 썼던 사람입니다. 아모스가 남유다 출신인데 북이스라엘에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에 속한 선지자는 호세아, 아모스, 요나 입니다. 엄밀하게 보면 요나는 북이스라엘 출신으로 니느웨에서 활동을 했고, 아모스는 남유다 출신으로 북이스라엘에서 활동을 했고, 호세아만 북이스라엘 출신으로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오늘 본문 아모스 8장 11절을 새번역으로 읽어 보겠습니다. “그 날이 온다. 나 주 하나님이 하는 말이다. 내가 이 땅에 기근을 보내겠다. 사람들이 배고파하겠지만, 그것은 밥이 없어서 겪는 배고픔이 아니다. 사람들이 목말라 하겠지만, 그것은 물이 없어서 겪는 목마름이 아니다. 주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서, 사람들이 굶주리고 목말라 할 것이다.”
1. 그 날이 온다.
“그 날이 온다”는 매우 중요한 미래의 시간을 언급하기 위해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는 문구입니다. 이 문구는 일반적으로 인류 역사의 절정과 최종 심판으로 이어지는 사건을 설명하는 종말론적 예언입니다. 종말이란 ‘끝’이란 말이다. 종말에는 ‘개인적인 종말’과 ‘우주적 종말’이 있다. 본문의 그 날은 역사적인 차원에서 BC 722년에 북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에 멸망될 때입니다. 아모스가 활동할 때는 여로보암 2세 때입니다. 북이스라엘은 강성했고, 물질적으로 풍부한 때입니다. 하지만 사회는 양극화 현상이 심화 되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가진 자에게도 좋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산업혁명 이후 극심한 양극화 현상의 결과로 공산주의가 출현하게 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언젠가는 그날이 옵니다. 그날을 알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 땅에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착각하며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라틴어가 있습니다. ‘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잊지 마라’는 뜻입니다. 로마 장군들이 다른 나라의 점령하고 개선 행진을 할 때 노예들이 뒤에서 ‘메멘토 모리’라고 외치게 하였습니다. 당신에 언젠가는 죽을 존재이니 교만하지 말라고 상기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지난 수요일 성경공부 시간에 ‘이 또한 또한 지나가리라’는 찬양을 했습니다. 다윗이 왕이 신하들에게 “내가 전쟁에서 성전을 하더라도 교만하지 않고 내가 전쟁해서 패배하더라도 절망하지 않는 그런 문구를 만들어 오라”고 했습니다. 신하들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결국 솔로몬에게 가서 도움을 구했습니다. 이때 솔로몬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문구를 써주었다고 합니다. 성공했다고 교만하지도 말고 실패했다고 절망하지도 말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이 또한 지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임사체험’이란 말을 아십니까? 임사체험은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체험입니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연구를 했는데 비슷한 체험을 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유체이탈’이 일어납니다. 영이 딱 떠올라 누워있는 자기를 바라보는 겁니다. 여러분은 이걸 믿어집니까? 제가 유체이탈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분명히 믿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영이 어디론가 빛을 통과하고 누군가를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가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영이 육체로 다시 돌아와 살아났다고 합니다. 임사체험의 경험은 조금씩 다르지만, 다시 살아난 사람들에게 한가지 공통된 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모두 예전과 같은 삶을 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체험하였기에 새로운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잘 죽는지 아십니까? 잘 죽으려면 잘 살아야 합니다. 어떡하면 잘 사는 줄 아십니까? 사랑하면서 살면 잘 사는 겁니다. 구약에는 613개의 율법이 있습니다. 613개의 율법을 하라는 것과 하지 말라는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라는 것은 248개, 하지 말라는 것은 365개입니다. 합하면 613개입니다. 구약적으로 잘 살려면 613개를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신약으로 오면 로마서 13장 10절에 사도 바울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했습니다. 613가지를 지키며 사는게 쉽겠습니까? 아니면 사랑하며 사는 게 쉽겠습니까?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하고, 잘살기 위해서는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남을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움하는 것도 잘못되었지만, 그것 때문에 정말로 사랑해야 할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그날은 반드시 온다는 것, ‘메멘토 모리’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영적 기근과 영적 기갈
오늘 본문은 영적 기근과 영적 기갈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습니다. 지금 홍수로 한국 전역에서 어려움을 격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국지적으로만 피해가 있었는데 올해는 전국적으로 워낙 비가 많이 와서 많은 어려움을 격고 있습니다. 저는 어릴 때 홍수를 경험했습니다. 어릴 때 흑석동에 살았는데 흑석동은 한강 둑보다 아래에 있습니다. 홍수가 나면 한강 물이 역류해서 동네로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땐 비가 올 때 물이 찰 거로 생각하는데 안 그렇더군요. 비는 그쳤는데 새벽에 하수도로부터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홍수가 났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 줄 아십니까? 마실 물입니다. 온 천지가 물이지만 정작 마실 물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정보의 홍수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풍요하게 살고 있습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영이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환경과 좋은 사람이 옆에 있더라도 영적 기근과 기갈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군중 속의 고독입니다. 풍요 속의 빈곤입니다. 세상으로는 영의 기근과 영적 기갈을 채울 수가 없습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는데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렘 2:13절)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학 1:6)
예레미야는 두 가지 악을 지적합니다. 첫 번째 악은 ‘생수의 근원’인 나를 버린 겁니다. 두 번째는 ‘스스로 웅덩이’를 파서 거기에 물을 채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터진 웅덩이에는 결코 물을 수가 없습니다. 학개 1장 6절에는 ‘구멍 뚫어진 전대’와 같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떠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아버지 없이 사는게 나는 더 행복할 거로 생각하기에 아버지를 떠난 것입니다.
어제 제가 큰 은혜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신학교 수업을 때 여학생이 커피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도 큰 커피를 사다 주었습니다. 얼굴이 무척 행복해 보였습니다.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한 주 동안 어떻게 지냈나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커피를 준 학생이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가 너무 크다며 간증을 했습니다. 개인의 기도 제목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들어 주시지 않고, 대신 자녀를 축복해 주심으로 위로해 주셨다는 간증을 했습니다. 큰딸이 아직 영주권이 없는데 큰 회계법인에 취직이 되고, 둘째 딸은 큰딸을 통해 취직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며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했습니다. 저를 감동하게 한 것은 그다음 이야기입니다. 기도의 응답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고, 자녀를 축복해 주심으로 위로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만약 기도가 응답이 되었다면 지금과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내 원대로 되지 않은게 은혜라는 것입니다. 마치 사도바울이 육신의 가시를 빼 달라고 3번이나 간절히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와 같습니다.
3. 회개와 회복
아모스의 예언은 회개와 회복의 가능성을 암시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모스를 그곳에 보낸 것은 멸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메시지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 18:23)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어 대속의 죽음을 허락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3일 만에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고 무덤에서 부활하였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한 계시록 2장과 3장에는 소아시아의 7 교회에 대한 칭찬과 책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각 교회에 하시는 말씀은 조금씩 다르지만, 마지막 구절은 모두가 같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사야 50장 4절에 “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학자의 혀와 학자의 학자의 귀를 달라고 했습니다. 학자란 히브리어로 ‘림무딤’입니다. 이 말은 ‘가르치다’와 ‘배우다’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학자는 가르치는 사람인 동시에 배우는 사람입니다. 학자의 혀를 갖기 위하여는 학자의 귀가 있어야 합니다. 배울 자세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가르칠 자격도 없습니다.
말세가 가까이 오면 올수록 영적 기근과 영적 기갈이 점점 더 심해집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날은 반드시 옵니다. 그날이 가까이 올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는 그리스도의 예수의 좋은 병사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성과 위선
진정성이란 안과 밖이 같은 것이고, 위선이란 안과 밖이 다른 것입니다. 진정성이 있는 사람은 투명한 사람이고, 위선적인 사람은 불투명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했습니다.
진정성 (Sincerity): 진정성은 솔직하고 정직한 태도를 의미합니다. 진정성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솔직하고 순수한 태도를 가지며, 감정과 생각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합니다. 진정성 있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속이거나 다른 사람들을 속이지 않으며, 일관성 있고 예의 바른 태도를 유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진정성은 신뢰와 긍정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위선 (Hypocrisy): 위선은 타인에게는 선량하고 정직한 척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태도를 말합니다. 위선자들은 자기 이익을 위해 진실을 감추거나 거짓을 이야기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속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위선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하며, 신뢰를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위선자들은 일관성이 부족하며,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 우선시할 때 자주 발생합니다.
인간 관계에서 진정성이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진정성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깊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기 쉽습니다. 솔직하고 정직한 태도는 사람들 사이의 신뢰를 증진시킵니다.
진정성은 감정적인 연결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솔직하게 표현하고 이해해주는 것이 인간관계를 더욱 강화시킵니다.
진정성은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현실적인 기대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위선적인 태도는 실제로 가능하지 않은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약속하고 실망을 안겨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진정성은 긍정적인 인간관계와 신뢰를 형성하는 데에 중요하며, 위선적인 태도는 반대로 인간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진정성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좋습니다.
플라시보와 노시보 효과
플라시보와 노시보 효과는 우리의 신체적 경험과 건강 결과에 대한 심리적 요인의 영향을 강조하는 매혹적인 현상입니다. 두 효과 모두 치료 효과 또는 증상 경험에 대한 인식을 형성하는 기대와 믿음의 힘을 포함합니다.
플라시보 효과:
플라시보 효과는 개인이 치료 중인 특정 상태에 대해 활성 약리학적 또는 치료적 효과가 없는 치료를 받을 때 발생하는 유익하거나 긍정적인 반응을 말합니다. 즉, 위약은 설탕 알약, 식염수 주사 또는 심지어 가짜 의료 절차와 같이 신체에 직접적인 생리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비활성 물질 또는 개입입니다.
실제 치료 활동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사람들은 단순히 진정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상태나 증상이 호전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위약 효과는 엔도르핀과 도파민과 같은 천연 화학 물질을 방출하는 마음의 힘과 뇌의 능력으로 인해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되며, 이는 통증에 대한 인식 감소, 기분 개선 또는 웰빙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플라시보 효과는 대조군이 플라시보 치료를 받고 실험군이 테스트 중인 실제 치료를 받는 의학 실험에서 널리 관찰됩니다. 두 그룹의 결과를 비교하면 연구원이 조사 중인 치료가 진정으로 효과적인지 또는 관찰된 개선이 플라시보 효과의 결과인지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노시보 효과:
반면에 노시보 효과는 개인이 비활성 치료나 개입을 받은 후 유해한 영향을 경험할 때 발생하는 부정적인 반응입니다. 본질적으로 치료 자체가 실제로 해를 끼칠 가능성이 없더라도 치료가 해를 끼칠 것이라는 믿음이나 기대는 실제로 신체적 또는 심리적 증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약물의 잠재적인 부작용에 대해 알고 있고 그러한 부작용을 경험할 것이라고 강하게 믿는 경우 약물이 부작용을 일으키지 않더라도 그러한 증상을 경험하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증상은 치료에 의해 직접적으로 유발되지는 않더라도 이를 경험하는 사람에게는 실제적이라는 점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약 효과와 노시보 효과는 모두 건강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정신과 신체의 상호 연결성을 보여줍니다. 의료 전문가는 이러한 영향이 임상 시험 결과와 환자의 전반적인 웰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이를 인식해야 합니다. 또한 플라시보 및 노시보 효과를 이해하면 환자의 건강에 대한 해로운 믿음의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면서 기대의 긍정적인 힘을 활용하여 치료 전략을 최적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플라시보 및 노시보 효과는 건강과 웰빙에 영향을 미치는 정신과 신체 간의 상호 작용을 강조하는 더 광범위한 용어 및 관련 현상의 일부입니다. 관련 용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위약 반응: 이 용어는 위약 치료를 받은 사람에게서 관찰된 긍정적이거나 유익한 효과를 말합니다. 그것은 치료의 효능에 대한 개인의 믿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증상 또는 상태의 개선 범위를 포함합니다.
노시보 반응: 위약 반응과 유사하게 노시보 반응은 위약 치료를 받았지만 그것이 해를 끼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경험하는 부정적이거나 유해한 효과를 설명합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부정적인 기대에 의해 촉발된 역효과의 스펙트럼을 다룹니다.
기대 효과: 위약 효과와 노시보 효과를 모두 포함합니다. 기대 효과는 치료나 개입에 대한 개인의 믿음, 기대 또는 인식이 경험하는 결과에 영향을 미칠 때 발생합니다.
정신신체 의학: 이 의학 분야는 심리적 요인(예: 생각, 감정, 믿음)과 신체 건강 사이의 상호 작용을 연구합니다. 정신 및 감정 상태가 신체적 증상과 질병의 진행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조사합니다.
이중 맹검 연구: 이것은 위약 및 노시보 효과에 대한 편향과 통제를 완화하기 위해 임상 시험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연구 설계입니다. 이중 맹검 연구에서 참여자도 연구자도 연구가 완료될 때까지 누가 적극적인 치료를 받고 있고 누가 위약을 받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양쪽 모두에 대한 기대의 영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오픈 라벨 플라시보: 오픈 라벨 위약은 환자에게 투명하게 투여되는 플라시보 치료입니다. 놀랍게도 공개 라벨 위약은 특정 조건에서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으며 이는 위약 반응의 복잡한 특성을 강조합니다.
정신신경면역학: 이 학제간 분야는 심리적 과정, 신경계 및 면역계 사이의 연결을 탐구합니다. 정신 상태가 어떻게 면역 기능에 영향을 미치고 결과적으로 건강과 질병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합니다.
인지 행동 치료(CBT): CBT는 부정적인 사고 패턴과 행동을 식별하고 변화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심리 치료적 접근 방식입니다. 그것은 종종 불안, 우울증 및 통증 장애와 같은 심리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 상태를 치료하는 데 사용됩니다.
이 모든 용어는 심신 연결의 중요성과 우리의 생각과 믿음이 우리의 건강과 웰빙에 어떻게 가시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강조합니다. 이러한 효과를 이해하는 것은 치료 결과와 환자 관리를 최적화하기 위한 의료 연구 및 임상 실습 모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이중직 목회자
“천막 만드는 목회자” 또는 “일하는 목회자”로도 알려진 이중 직업 목회자는 교회나 종교 공동체에서 목회자 또는 영적 지도자로 섬기는 동시에 재정적으로 부양하기 위해 부업이나 직업을 유지하는 목회자입니다. 교회나 종교 단체에서 봉급이나 봉급을 받는 전임 목회자와 달리, 이중 직업 목회자는 수입을 위해 목회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이중직 목회자의 특징:
시간제 목회자 역할: 이중직 목회자는 일반적으로 교회나 종교 공동체에서 시간제로 봉사합니다. 그들은 설교를 하고, 영적 인도를 제공하고, 예배를 인도하고, 목회 의무를 수행하고, 다른 목회 책임에 참여할 수 있지만, 전임 목사에 비해 헌신하는 시간은 적습니다.
세속적 고용: 수입을 보충하고 재정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중 직업 목회자는 목회자 역할 외에 다른 직업을 갖습니다. 이 부업은 개인의 기술, 자격 및 관심사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들은 교육, 상담, 의료, 사업 또는 사역과 세속적 책임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다른 직업과 같은 다양한 직업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재정적 독립성: 이중 직업 목회자들은 시간제 목회자 역할에서 받는 보수가 자신과 가족을 전적으로 부양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종종 발견합니다. 다른 직장에서 일함으로써 그들은 영적 지도자로서의 소명을 계속 수행하면서 재정적 독립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이중 직업인 이유:
소규모 회중: 자원이 제한된 소규모 교회나 종교 공동체에서는 전임 목회자를 지원하는 것이 재정적으로 타당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중 직업 배치를 통해 회중은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고 목회적 지도력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 개척: 이중 직업 사역은 일반적으로 교회 개척 상황에서 볼 수 있습니다. 새 교회를 시작할 때 회중은 처음에 목사에게 풀 타임 급여를 제공하기에 충분한 회원이나 기부금이 없을 수 있습니다.
개인적 선택: 일부 목회자들은 풀타임 급여를 제공하지 않더라도 특정 지역이나 지역 사회에서 사역하도록 부름 받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이중 직업을 선택합니다. 그들은 봉사하면서 자신을 부양하기 위해 기꺼이 다른 직업을 갖습니다.
이중 직업 목회자가 되는 것은 목회 책임, 개인 생활 및 세속 직업의 효과적인 균형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도전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들과 연결하고, 다양한 삶의 경험을 이해하고, 교회와 더 넓은 지역 사회 모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보람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소쉬르의 기표와 기의
Ferdinand de Saussure(1857-1913)는 스위스 언어학자이자 기호학자로 현대 언어학과 구조주의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집니다. 그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나 학자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소쉬르의 연구는 구조적 체계로서의 언어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언어학, 인류학, 문학이론, 기호학 등 다양한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Ferdinand de Saussure의 주요 기여 및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일반 언어학 과정: 소쉬르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는 그의 강의 노트를 편집한 “일반 언어학 과정”(1916년 사후 출판)입니다. 이 작업은 역사 및 비교 언어학에서 공시적 또는 정적 시스템으로서의 언어 조사로 초점을 이동함으로써 언어학 연구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랑그와 파롤: 소쉬르는 “랑그”(언어)와 “파롤”(말하기) 사이의 근본적인 구별을 도입했습니다. “Langue”는 화자가 공유하고 의사 소통을 허용하는 규칙과 구조를 포함하는 언어의 기본적이고 추상적인 시스템을 나타냅니다. 반면에 “가석방”은 화자가 말하는 개별적인 사례 또는 실제 언어 사용을 의미합니다.
기표와 기의: 소쉬르의 작업은 언어 기호의 이중성을 강조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언어 기호는 분리할 수 없는 두 부분, 즉 단어의 물리적 형태 또는 소리 패턴인 “기표”와 해당 단어와 관련된 정신적 개념 또는 의미인 “기의”로 구성됩니다. 둘 사이의 관계는 자의적이고 관례적이다.
공시적 분석(Synchronic Analysis): 언어 분석에 대한 Saussure의 접근 방식은 공시적이었습니다. 즉, 언어의 역사적 발전을 추적하기보다는 특정 시점에 존재하는 그대로 언어를 연구하는 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구조주의: 소쉬르의 작업이 구조주의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그의 생애 동안 “구조주의”라는 용어는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기본 구조 및 패턴 측면에서 현상 분석을 강조하는 더 넓은 이론적 움직임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소쉬르의 아이디어는 노암 촘스키를 비롯한 후기 언어학자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유산은 기호학 및 문화 연구와 같은 구조 분석에 의존하는 언어 및 기타 분야 연구를 계속 형성하고 있습니다.
“기표”와 “기의”의 개념은 스위스 언어학자인 Ferdinand de Saussure에 의해 소개되었으며 그의 언어 기호 이론의 필수 구성 요소입니다. 소쉬르에 따르면 언어는 개인 간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기호 체계입니다. 언어 기호는 언어의 기본 단위이며 분리할 수 없는 두 부분인 기표와 기의로 구성됩니다.
기표: 기표는 우리가 감각을 통해 인지하는 단어의 물리적 형태 또는 소리 패턴입니다(보통 구어 또는 문어). 우리가 듣고, 보고, 쓸 수 있는 것은 기호의 유형적이고 물질적인 측면입니다. 예를 들어 영어에서 “cat”이라는 단어는 /kæt/로 발음되는 “c”, “a” 및 “t” 문자로 구성된 기표입니다.
기의: 기의는 기표와 관련된 정신적 개념 또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기호의 추상적이고 비물질적인 측면입니다. “고양이”라는 단어의 경우 기의는 우리가 고양이과 가축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정신적 이미지 또는 아이디어를 나타냅니다.
소쉬르는 기표와 기의 사이의 관계가 자의적이고 관습적이라고 강조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단어의 물리적 형태(기표)와 단어가 나타내는 의미(기의) 사이에 고유한 연결이나 자연스러운 관계가 없음을 의미합니다. 둘 사이의 연관성은 사회적 관습과 특정 언어 공동체 내에서 공유된 이해에 의해 결정됩니다.
예를 들어, 다른 언어에서 “고양이”라는 단어는 다른 기표(예: 스페인어의 “gato”, 프랑스어의 “chat”)를 갖지만 기의(고양이 동물의 개념)는 언어 간에 유사하게 유지됩니다.
소쉬르의 기표론과 기의론은 근대 구조언어학의 근간을 이루며 기호학, 문학이론, 문화학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기표와 기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면 언어가 의사소통과 의미의 체계로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실존주의와 구조주의 (existentialism and structuralism)
실존주의와 구조주의는 20세기에 등장한 두 가지 뚜렷한 철학적, 이론적 접근법입니다. 둘 다 인간의 경험과 세상을 이해하는 데 관심이 있지만 기본 원칙과 초점이 크게 다릅니다. 다음은 실존주의와 구조주의를 비교하는 몇 가지 주요 사항입니다.
현실의 본질:
실존주의: 실존주의는 개인의 존재, 자유, 주관적 경험을 강조한다. 그것은 개별 인간이 무의미하고 부조리한 우주에서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창조한다고 가정합니다. 실존주의자들은 개인의 선택, 책임, 그리고 세상에 존재하는 경험에 초점을 맞춥니다.
구조주의: 반면에 구조주의는 인간의 경험과 현상을 조직하고 형성하는 기본 구조에 초점을 맞춥니다. 이는 이러한 구조가 의미와 기능을 결정하며 종종 이진 대립과 보편적 패턴의 분석에 의존함을 시사합니다.
인간 선택의지와 자유:
실존주의: 실존주의는 인간의 선택 의지와 자유를 강조합니다. 실존주의자들은 개인이 진정한 선택을 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외부의 제약에 직면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형성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구조주의: 구조주의는 인간의 행동과 의미를 결정하는 기본 구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접근 방식에서 더 결정론적입니다. 개인이 이러한 구조에 종속될 수 있지만 초점은 개별 기관보다는 작동 중인 더 큰 시스템에 더 있습니다.
주관성 대 객관성:
실존주의: 실존주의는 매우 주관적이며 개인의 고유한 경험, 감정 및 관점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개인의 진정성을 소중히 여기고 개인이 자신의 존재를 직시하고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창조하도록 격려합니다.
구조주의: 구조주의는 개인의 주관성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근본적인 구조와 패턴을 이해하고자 하는 보다 객관적인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문화와 경험에 걸쳐 공통성과 보편성을 식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의미에 대한 접근:
실존주의: 실존주의자에게 의미란 매우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문제입니다. 각 사람은 자신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창조할 책임이 있으며, 이는 실존적 불안과 책임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구조주의: 구조주의자는 의미가 현상을 구성하는 기본 구조에서 파생된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시스템 내의 요소에 일관성과 중요성을 제공하여 의미가 생성되고 이해되는 방식을 형성합니다.
분야에 미치는 영향:
실존주의: 실존주의는 철학, 문학, 심리학 및 예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으며 개성, 진정성 및 인간 조건에 대한 질문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구조주의: 구조주의는 인간 경험의 보편적인 구조와 패턴을 식별하는 데 중점을 두고 언어학, 인류학, 문학 이론,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요약하면 실존주의는 개성, 자유, 주관적 경험을 강조하는 반면 구조주의는 인간 현상을 형성하는 기본 구조와 보편적 패턴에 초점을 맞춥니다. 두 접근 방식 모두 인간 경험에 대한 이해에 기여했지만 서로 다른 각도와 관점에서 접근합니다.
구조주의는 인류학, 언어학, 사회학, 문학이론 등 다양한 학문 분야의 이론적 접근과 방법이다. 20세기 초에 등장하여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구조주의는 현상을 구성하는 기본 구조를 조사하여 현상을 분석하고 이해하려고 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시스템 내 요소의 의미와 기능을 형성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구조주의의 주요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본 구조에 초점: 구조주의자는 시스템 내 요소 간의 관계를 관리하는 기본 구조를 식별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관찰된 현상에 일관성을 부여하는 조직 원리로 볼 수 있습니다.
모델로서의 언어: 언어학은 구조주의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Ferdinand de Saussure와 같은 구조 언어학자는 언어가 기표(단어 또는 소리)와 기의(개념 또는 의미) 사이의 구조화된 관계를 가진 기호 체계라고 주장했습니다.
이항대립: 구조주의자들은 종종 요소가 반대 대응물(예: 밝음/어두움, 뜨거움/차가움, 남성/여성)과 관련하여 정의되는 이항대립의 관점에서 현상을 분석합니다. 이러한 대립은 시스템 내에서 의미를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보편적 구조: 구조주의자들은 특정 구조와 원칙이 다양한 문화와 인간 경험에 걸쳐 보편적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행동과 인지를 이해하는 방법으로 이러한 보편적인 패턴을 식별하려고 합니다.
객관적인 분석: 구조주의자들은 객관적인 분석을 위해 노력하고 그들의 연구에서 개인적인 편견을 피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개별 요소보다는 기본 구조에 중점을 둡니다.
구조주의와 관련된 주목할만한 인물로는 언어학의 Ferdinand de Saussure, 인류학의 Claude Levi-Strauss, 문학 이론의 Roland Barthes 및 Jacques Lacan이 있습니다. 구조주의는 영향력이 있었지만 결국 구조주의가 고정된 구조와 보편성에 대한 강조를 비판한 포스트 구조주의 및 해체와 같은 다른 이론적 접근 방식에 자리를 내주었다는 점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존주의는 19세기와 20세기, 특히 20세기에 등장한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운동입니다. 주로 무관심하거나 불합리한 세상에서 개인의 존재, 자유, 선택 및 개인의 주관적인 경험에 중점을 둡니다. 실존주의는 인간 조건, 삶의 의미, 개인이 자신의 존재에서 직면하는 책임과 선택에 깊이 관여합니다.
실존주의의 주요 주제와 개념은 다음과 같습니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 실존주의자는 인간이 먼저 존재하고 선택과 행동을 통해 본질을 정의한다고 주장합니다. 목적이 정해진 사물과 달리 인간은 미리 정해진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경험과 판단을 통해 정체성과 가치를 만들어간다.
개인의 자유와 책임: 실존주의는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며, 개인이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생각을 강조합니다. 자유에는 그러한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릅니다.
진정성: 진정성은 실존주의의 핵심 개념입니다. 사회적 규범이나 외부의 기대에 순응하기보다 자신의 진정한 자아와 가치관에 따라 살아간다는 생각을 말합니다. 진정성을 포용하는 것은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하는 데 중요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불안과 부조리: 실존주의자들은 인간의 자유를 인정하고 삶에 미리 정해진 목적이나 의미가 없다는 데서 오는 내재된 불안과 두려움을 인정합니다. 이러한 불안은 우주의 광대함과 무관심 앞에서 인간의 추구가 헛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존재의 부조리를 인식함으로써 종종 고조됩니다.
개인과 타인: 실존주의는 종종 개성과 타인에 대한 인정 사이의 긴장을 탐구합니다. 개인의 실존을 강조하는 동시에 실존주의자들은 인간 관계의 중요성과 다른 사람들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도 인식합니다.
의미 찾기: 실존주의자들은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질문과 씨름합니다. 미리 결정된 의미가 없는 개인은 무의미해 보이는 우주에서 자신의 목적과 가치를 창조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실존주의는 철학, 문학, 심리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저명한 실존주의 철학자로는 장 폴 사르트르, 시몬 드 보부아르, 알베르 카뮈, 쇠렌 키에르케고르, 프리드리히 니체 등이 있습니다. 실존주의적 주제는 종종 문학 작품과 영화에서 탐구되며 인간 경험의 복잡하고 성찰적인 특성을 반영합니다.

20세기 최고의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 4월 2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1951년 4월 29일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세상을 떠난 영향력 있는 철학자였습니다. 그는 언어철학, 심리철학, 논리철학, 수학철학 등 다양한 철학 분야에 지대한 공헌을 한 20세기 철학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비트겐슈타인은 저명한 오스트리아 가문에서 태어났고 그의 초기 교육은 공학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특히 철학자 Arthur Schopenhauer의 작품을 읽은 후 철학에 강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버트런드 러셀 밑에서 공부하여 초기 작품인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로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Tractatus”는 비트겐슈타인의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 중 하나로 간주되며 언어, 논리 및 현실 간의 관계를 다루려고 시도했습니다. 여기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의미 있는 명제는 본질적으로 세계의 표현 또는 그림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언어의 “그림 이론”이라는 개념을 제안했습니다. 그는 철학의 문제는 언어의 논리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며 이러한 문제는 언어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나중에 상당한 철학적 변화를 겪었고 그의 후기 작업, 특히 그의 사후 출판된 작업인 “Philosophical Investigations”는 “Tractatus”에 제시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습니다. “Philosophical Investigations”에서 Wittgenstein은 언어, 의미 및 이해의 복잡성을 탐구하여 언어 사용의 실용적이고 사회적인 측면과 의미를 결정하는 데 있어 언어 게임과 맥락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언어학, 인지과학, 문학이론 등 철학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품은 오늘날까지도 철학자와 학자들에 의해 계속 연구되고 토론되고 해석되고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두 가지 주요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에서 제시된 초기 철학과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및 기타 관련 저술에서 발견된 후기 철학. 이 두 단계는 그의 철학적 전망과 접근 방식의 중요한 변화를 나타냅니다.
초기 비트겐슈타인(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비트겐슈타인은 “Tractatus”에 제시된 초기 철학에서 언어, 논리 및 현실의 본질을 다루려고 했습니다. 그는 철학적 문제는 언어의 구조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며 이러한 문제는 언어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Tractatus”의 핵심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언어의 그림 이론: 비트겐슈타인은 의미 있는 언어는 세계의 구조에 해당하며 의미 있는 명제는 현실에 대한 사실을 나타내는 그림과 같다고 제안했습니다.
논리적 원자론: 그는 언어가 단순하고 분해할 수 없는 의미 요소인 원자 명제로 분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 다음 이러한 원자적 명제에서 복잡한 명제가 만들어집니다.
언어의 한계: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형이상학적, 윤리적 질문을 포함하여 일부 질문은 의미 있는 언어의 한계를 넘어선 침묵으로 남겨져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철학적 조사):
그의 후기 철학, 특히 “철학적 조사”에서 비트겐슈타인은 “Tractatus”에 표현된 견해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맥락에서 언어와 의미의 복잡성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그는 다양한 언어 게임과 활동에서 언어의 사용을 강조하면서 사회적 관행과 삶의 형태로서의 언어에 관심을 돌렸습니다.
“철학적 조사”의 핵심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언어 게임: 비트겐슈타인은 특정 사회적 관행과 맥락에 내재된 다양한 형태의 언어 사용인 언어 게임의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단어와 표현의 의미는 고정되고 보편적인 구조를 고수하기보다는 이러한 언어 게임에서의 사용에서 비롯됩니다.
가족 유사성: 비트겐슈타인은 범주나 개념에 대한 엄격한 정의에 반대하고 대신 가족 유사성이 범주의 다양한 구성원을 연결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이 개념은 명확한 정의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에 도전하고 언어의 유동성을 강조합니다.
사적 언어 논증: Wittgenstein은 사적 언어의 개념을 비판하여 언어와 의미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며 사적 정신적 경험으로 축소될 수 없다고 제안했습니다.
전반적으로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Tractatus”의 논리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대한 초점에서 “Philosophical Investigations”의 언어의 실용적이고 사회적인 측면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했습니다. 그의 작품은 계속해서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며, 많은 철학자들은 그의 철학의 두 단계 사이의 명백한 대조에도 불구하고 가치를 발견합니다.
“그림 이론”은 Ludwig Wittgenstein의 초기 철학에서 중심 개념으로, 그의 영향력 있는 저서인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에서 제시되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언어의 그림 이론” 또는 “의미의 그림 이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이론은 언어, 논리 및 현실 사이의 관계, 특히 의미 있는 명제가 세계에 대한 사실과 어떻게 일치하는지 설명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림 이론의 요점:
표현으로서의 언어: 비트겐슈타인은 의미 있는 언어가 세계를 표현하는 기능을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명제는 그것이 세상의 방식과 일치한다는 의미에서 그림으로 그려질 수 있다면 의미가 있습니다.
논리적 구조로서의 그림: Wittgenstein에 따르면 의미 있는 명제는 그림이나 상황의 논리적 표현과 같습니다. 사물의 배열과 세상의 논리적 관계를 반영합니다.
원자적 명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가 단순하고 불가분의 의미 단위인 원자적 명제로 분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원자 명제는 모든 의미 있는 진술의 구성 요소입니다.
논리적 분석: “Tractatus”는 철학에서 논리적 분석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적 문제는 언어와 논리의 오해로 인해 발생하며 언어와 그 논리적 구조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형이상학 및 윤리적 질문과 같은 현실의 특정 측면은 언어의 범위를 넘어서서 말로 표현할 수 없거나 말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림 이론은 논리실증주의와 언어철학의 초기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것은 복잡한 철학적 문제를 단순하고 논리적으로 구조화된 명제로 축소하려고 시도했으며 언어와 세계 사이의 논리적 관계에 대한 연구를 장려했습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나중에 그의 후기 작품, 특히 “철학적 조사”에서 그림 이론과 그의 초기 철학의 다른 많은 측면을 거부했습니다. 그의 후기 철학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와 의미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언어 게임과 가족 유사성을 제안하면서 언어의 실용적이고 사회적인 측면으로 초점을 옮겼습니다. 나중에 그가 그림 이론을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철학사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남아 있으며 비트겐슈타인의 지적 여정의 근본적인 측면입니다.





사진 = 김환기 사관
김환기 사관 (구세군라이드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