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목사의 특별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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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감
여기, 저기서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어린 시절 상처로 인한 불안감이 있는가 하면 나이가 들어서 생기는 연약함으로 인한 불안감도 있고 환경적인 부분에서 만족이 되지 못하는 상황들로 인한 불안감을 경험하는 등 다양한 불안들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현대인의 현 주소에는 ‘불안’이 있고 이 불안을 잘 극복하는 것이 삶의 질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보게 된다.
불안을 없애기 위한 노력으로 사람들은 다양한 노력들을 하게 되는데 그 중 많은 사람들은 ‘돈’을 모으려 한다. 돈이 있으면 불안한 상황에서 좀 더 잘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돈을 모으기 위해 일을 해야 하고 쉬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돈이 많다고 그 불안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이 많으면 돈을 잃어버릴까 봐 두려워한다.
아는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이 금이 한 주머니가 있었는데, 어느 날 도둑이 집에 와서 그것을 훔쳐갔다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전에는 금으로 인해서 매일 불안했는데 금이 없어지고 나자 차라리 마음이 편안해 졌다는 것이다. 불안하다는 것은 어쩌면 바라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처럼 되지 않고 안 좋은 상황에 이르게 될까 봐 불안해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기대를 내려 놓으면 오히려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데 어쩌면 현대인은 너무나 많은 기대와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기에 불안한 것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없는 중에 감사하고 나누며 웃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은 무소유가 오히려 불안과 염려를 가져가게 하고 평안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위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불안은 재정이 아주 많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재정이 너무 없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어느 한 분이 늘 불안하였는데 그 불안은 어릴 적 경제적으로 너무 어렵게 살아서 늘 걱정을 하는 것이 생활의 습관처럼 되다 보니 지금은 그렇게 어려운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매일 불안하고 매일 염려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런 분에게 불안은 그냥 하나의 습관이다. 불안해하고 염려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감사하면서 자신안에 있는 자원들을 자꾸 기억하는 것이 불안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늘 집이 없어서 불안했던 사람이 집을 구입하게 되자 이제 집을 구입할 때 빌린 빚(loan)을 갚아 나가는 것을 걱정하게 된다고 생각해 보자. 이럴 경우에는 ‘내가 집이 없었는데 집을 갖게 되었으니 너무 감사하구나’ 라고 옛날 보다 나아진 조건으로 인해 감사해야 하고 지금까지 재정적으로 책임 있게 살아온 나의 능력이 있으니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 거야 하고 나의 자원을 찾아서 불안을 이겨내는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재정과 같은 환경적 요인으로 나의 불안이 다스려질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물론, CoVid-19과 같은 외부적 큰 사건들이 불안을 가져오지만 결국 그 시대적 불안에 대처하는 정부나 기관들의 노력과 함께 개인이 당면한 불안을 이겨내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의 불안을 잘 이해하고 내가 나를 잘 돌보는 전략들을 통해 불안을 이겨내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가 언제 화를 낼 지 몰라 늘 불안해한다. 누구나 폭력 앞에서 사람은 두려워지고 공포를 느끼는 것이 정상이고 그것이 몇 번 경험되어지고 나면 폭력 앞에 있는 사람은 무기력함을 경험하게 되고 폭력의 환경에서 자신은 보호받지 못하고 아무런 대처도 할 수 없는 자로 여기며 우울해지게 된다. 이런 불안감을 늘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폭력을 행하는 가족이 있으면 “당장 신고하고 안정한 상황 가운데 사세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때로 폭력을 행하는 사람도 상처받은 사람이고 피해자로 살아왔던 적이 있던 사람이기에 그를 불쌍히 여기며 살아가는 배우자를 볼 때 최대한의 안전 대책만 돕게 될 때가 있다. 이렇게 환경이 변화하지 않아 늘 불안함을 경험하면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에게는 무기력감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불안과 폭력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필요한 부분이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할 수 있고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작은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힘을 키워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무기력 가운데서 잃어버린 자신의 가치와 소중함을 찾아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그 불안감을 진정으로 이겨내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불안이 불면증으로 다가온다. 불안한 사람은 잠을 자거나 깜깜한 밤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이는 잠을 자다가 깨지 못하고 목숨을 잃어버리게 될까 봐 두려워하는 경우가 있고 어떤 이는 잠을 자다가 깨고 나면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불안해하고 어떤 이는 잠을 들지 못해 불안해하고 어떤 이는 잠을 자다가 악몽에 시달려서 잠을 두려워한다. 또한, 깜깜한 것 자체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빛이 없는 환경에서 불안감을 많이 경험하고 불을 켜 놓고 잠을 청하다 보니 잠을 깊이 자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불안감이 불면증을 일으키게 되는데 나중에 불면증이 점점 심해지면 불면증 자체가 불안감을 더 일으켜서 악순환을 거듭하게 되는 경우도 생겨나게 된다.
잠의 경우에는 불안함으로 생기는 잠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 버리는 것이 오히려 잠을 자는데 도움이 된다. ‘못 자면 어쩌지? ‘ 라고 하는 불안한 생각을 ‘잠이 안 오면 안 자면 되지!’ 라는 생각으로 불안한 생각을 편안하게 바꾸어 주는 것이 잠을 자는데 도움을 준다. 어떤 한 분이 잠을 자고 깨지 못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을 한다고 하길래. 크리스챤 인 그 분에게 그러면 “잠을 자고 못 깨면 어때 ~ 나는 더 좋은 천국에 가면 되지! “ 라는 생각을 하라고 했더니 훨씬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응답을 주셨다. 만약 최악의 상황이 생기면 나는 이런 대처를 할 수 있어 라고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 많은 사람의 불안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질을 낮추는 일을 하고 있다. 불안감은 누군가 에는 미래를 준비하고 누군가에게는 더 기도를 하게 하고 누군가에게는 적극적이게 하는 좋은 면이 있기도 하지만 만성적이고 반복적인 불안감은 대부분의 경우 무기력하게 하고 짜증을 내도록하고 불안을 없애 주는 행동이나 물건들에 집착을 보이게 한다.
그러므로 불안할 때 그냥 내버려두지 말고 불안감을 없앨 수 있는 적극적 전략들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그것들에는 운동하기, 복식 호흡, 최악의 상황에서 대처하는 나의 모습 그리기, 감사하기, 나의 자원 기억하기, 극단적 생각을 객관화하기, 기도하기, 걱정 인형 사용하기 등과 같은 것 등이 있다.
무엇보다도 불안이 나의 문제만이라 생각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이라 생각하며 불안한 나를 나무라기 보다 공감해주며 격려로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는 “자기 긍휼 (self-compassion)”이 필요할 것이다. 현대 사회의 문제인 불안의 문제를 함께 우리 공동체가 이겨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굿모닝을 당하다
학교에서 학생들과 나눔의 시간이 있었는 데 한 학생이 자신이 우울증과 무기력함으로 힘이 들었는 데 호주에 와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굿 모닝” 이라고 인사를 해주는 것을 통해서 어제의 삶이 아닌 그리고 내일의 삶이 아닌 오늘의 삶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렇게 하루 하루 굿 모닝을 당하다 보니 자신의 삶이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고 괜찮아졌다는 이야기였다.
영어를 배우면서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굿 모닝” 이라는 인사 말인데 단순한 인사말로만 받을 것인가 아니면 그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서 “그래, 오늘 아침은 정말 좋은 아침이야 “ 라고 받아들일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을 하느냐에 따라 아침을 맞이하는 한 사람의 마음은 천국이 될 수도 있고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아침에 만나는 늘 같은 사람들이 형식적으로 인사하는 굿 모닝은 ‘오늘도 어제와 똑같은 하루입니다. 오늘도 특별한 것을 없겠지요! 오늘도 기대가 되지 않지만 살아야 하니 억지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런 삶을 살아가는 당신에게 ‘굿 모닝’ 합니다.’ 이런 굿 모닝은 우리에게 생명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 그것은 지치고 식상한 의미 없는 한 마디일 뿐이다.
그에 비해서 하루의 삶을 신이 주신 놀라운 선물인 것을 기억하며 누군가에게 새롭고 가치 있는 아침을 선사하는 의미로서의 “굿 모닝”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오늘은 어제 없었던 새롭고 좋은 날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우리 기대해 봅시다. 당신에게도 멋지고 새로운 일이 일어나기를 축복하고 바랍니다.’ 라는 뜻을 담고 있다. 위의 굿 모닝을 당한 학생은 아마도 누군가 로부터 굿모닝 인사를 통해 축복을 경험하고 마음이 녹아지고 따뜻해지는 경험을 했음이 틀림없다.
살다 보면 과거에 대해서 후회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가까운 지인 중에 한 분이 늘 과거에 대해서 후회하는 말을 많이 하곤 했는 데 세월이 흘러서 그 분이 자신이 과거에 대해서 후회하면서 너무 많은 세월을 보냈다고 이야기하면서 이제는 바꿀 수 없는 과거로 인해 후회하면서 살지 않기로 했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너무 잘 했다고 격려를 해 주었는데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은 지인의 딸이 엄마와 같이 과거의 후회스러운 일로 인해서 너무나 고통스러워하며 밤에는 잠을 잘 못자고 불안해하며 오늘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부정적 사고 패턴이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전수되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현재의 삶을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 과거를 돌아보면서 과거의 잘못된 선택에 대해서 후회하고 그것에 대해서 누군가를 원망하고 돌이키지 못하는 과거로 인해서 분노와 슬픔을 느끼고 그 감정을 현재의 삶에서 고스란히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무기력감과 죄책감 그리고 자기 연민 또는 피해 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분들이 생각 외로 많다. 그런 분들에게 ‘굿모닝’ 이 필요하다. 그 분들에게 ‘어제의 다른 선택이 오늘의 다른 삶을 만들었을 지 모르나 당신이 살아내야 하는 현실의 삶은 오늘 입니다. 그러므로 힘이 들던, 좋던 간에 현재의 삶을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굿 모닝’을 찾아가고 만들어 가세요’ 라는 격려의 굿 모닝 말이다.
아프리카에서 풀을 뜯어 먹고 사는 얼룩말은 아주 짧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멀리서 사자가 지켜 보고 달려 올 수도 있는데 아주 여유롭게 풀을 뜯어 먹고 한다는 것이다. 10분 전에 도망가고 힘들었던 것을 잊어버리고 지금 여기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어먹으며 행복할 수 있는 것이 얼룩말과 같은 동물들이다. 그에 비해서 인간들은 어떠한가? 10년 전 어쩌면 수십년 전에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 기억과 관련된 감정을 바로 재경험하기도 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기억을 너무 잘 하다 보니 비슷한 모습을 가진 사람을 보면 경멸감을 느끼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한다. 또한 트라우마와 같은 기억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때 불쑥 불쑥 파편의 기억으로 다가와 괴롭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 기억으로 오늘을 괴롭게 살아가는 증상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라고 하는 이름까지 붙혀져있다.
왜곡된 사람의 기억이 현재의 삶에도 고통을 주고 현재에 가능해야 하는 사회적 기능을 잘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종종 보게 되면 현재를 ‘굿 모닝’으로 살아가기 위해 심리 치료의 일환인 기억 치료를 받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기억으로 대체되지 못한 나쁜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뿌리의 역할을 해서 연관된 또 다른 나쁜 기억들을 생성해 낼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버지에게서 상처를 많이 받아서 권위자에 대해 신뢰가 없던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그 사람의 기억이 과거의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또 다른 권위자 예를 들면, 직장 상사와 같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뢰 없음이 적용이 될 수 있고 그것이 정정이 되지 않으면 더 강화가 되어서 ‘역시, 권위자들은 다 문제가 있어. 신뢰하면 안되는 거지!’ 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쁜 기억 위에 또 다른 나쁜 기억이 합쳐져서 자신의 왜곡된 신념을 더 강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마음의 상처도 최대한 빨리 치료를 받아서 얼룩말처럼 지금의 삶에서 평안하게 풀을 뜯으며 살아갈 수 있을 때 오늘의 ‘굿 모닝’을 최대한 경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큰 상처가 없다면 작은 일상의 훈련들을 통해 매일의 삶에서 굿 모닝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매일의 삶에서 ‘감사 일기’를 쓰는 것이다. 감사는 부정적 기억도 긍정적이게 도와준다. 그 외, 아침에 일어나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시 복식 호흡을 하며 하루를 오감을 느끼며 자신을 격려하며 시작하는 것 또는 하나님께 하루를 위탁하며 그 하루를 ‘굿 모닝’으로 시작하는 것 등을 통해 오늘 하루를 사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염려, 걱정이 많은 사람은 아침에 노트에 염려거리를 기록하고 일기가 염려는 갖고 있고 나는 염려하지 않는 하루를 보내기로 결정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롭게 되었도다.” 어제의 나, 어제의 상처, 어제의 일들은 오늘을 살게 도와주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며 눈부신 오늘 하루를 ‘굿 모닝’으로 맞이하며 충만한 하루를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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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