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목사의 특별기고

성전환 상담 금지법
교회에서 성윤리에 대한 강의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신기하게도 전화기에 동성애에 관한 동영상이 떠 있었다. 동성애에 대한 기독교적인 입장과 성경적인 기반을 이야기해서일까? 사람들의 소리를 다 듣고 있는 AI 전화기는 어느 새 관심있는 분야의 동영상을 준비해 놓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동영상은 게이로 살았던 사람들의 인생 말년에 에이즈에 감염이 되어 고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그들을 돌보고 있는 한 기독교 의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 의사 분이 돌보는 사람들은 에이즈로 인해서 뇌의손상이 와서 마비가 되신 분도 있으셨고 치매가 오신 분 또 항문 질환으로 고생하는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이었다. 병원에서 죽어가는 그 환자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의사 선생님이 인터뷰로 나눈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았다.
“게이들의 권리와 인권을 위해서 싸운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병에 걸려 누워있는 환자들을 방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 에이즈에 걸린 사람의 거의 모두가 성관계를 통해 감염이 되는데 동성애와 에이즈의 연관성을 이야기하면 동성애자들을 차별한다고 언급을 못하게 합니다. 좋은 면만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동영상에서 나온 나이가 70이 넘으신 분의 말이 또한 여운에 남았다. “십 대 때 남성을 좋아하게 되어서 그 길로 계속 갔습니다. 카페에서 노래를 했고 다른 남성을 유혹하기도 했습니다.” 그 분에게 동성애를 추구하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물었을 때 그 분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했다. “제발 젊은이들을 말려 주세요. 동성애는 90%가 성욕을 만족시키기 위한 관계입니다. 인격적인 관계가 아니에요. 후회해요”
DSM-4 정신 장애를 진단하는 편람에서 이전에는 동성애를 성죽독의 일환인 질환으로 분류를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정신 질환이 아닌 정상적인 또 다른 제 3의 성으로 여져지고 있고 법적으로도 그들의 권리가 보호될 뿐 아니라 이제는 그들의 성 정체성을 전환하는 것을 돕는 상담이 금지되어진 상태다.
태어나면서 부터 동성애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동성애 유전자 연구 결과에 의해서 가능하지 않음이 드러났음에도 신체적 성이 아닌 ‘사회적 성’이라고 불리는 젠더개념의 성을 자유롭게 허락하는 것이 인류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것인지는 개인적으로는 많은 의문이 든다. 특별히 사춘기의 아이들은 성적 호기심이 아주 많고 다양한 성적인 자극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시기이다. 어떤 환경에서 어떤 성적인 경험을 했느냐 또는 또래 친구와 주위의 문화를 통해서도 성에 대한 추구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는 시기이기에 자신을 잘 찾아주도록 격려해주고 돕는 것은 오히려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대부분의 문제 행동들 예를 들면, 난폭한 행동들, 쇼핑센터에서 물건을 훔치는 행동들, 가출하는 것, 성경험을 하는 것 등이 사춘기에 많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그 시기에는 육체적으로는 성숙한 것 같으나 정서적으로 혹은 생각으로는 미흡하고 충동적인 행동들을 많이 할 수 있는 시기이기에 성정체성에 있어서도 당연히 혼란을 느끼거나 고민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만들어진 법을 어길 수는 없으나 그 아이들이 최대한 바른 삶의 결정들을 할 수 있게 건강한 어른들이 도움을 줄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닌가라고 라고 조심스럽게 생각을 제시해 본다.
만약 아이가 청소년기에 갑자기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경험하고 있는 경우라면 서둘러 성의 정체성을 결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성을 바탕으로 조금은 더 기다려 주고 충분한 탐색과 생각을 통해 바른 결정을 내리도록 지혜로운 어른이 , 즉 그 아이를 인격적으로 대하며 사랑하고 염려하는 사람이 함께해 주며 청소년 아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확인하고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인 것이다.
사람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인권에서는 ‘자기 결정권’이 중요한 힘을 가진다. 병원에서 때로는 좋은 치료이며 꼭 받아야 고칠 수 있는 병이라고 하더라도 환자가 그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치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동의를 구하는 것이 꼭 필요한 부분이다. 이 자기 결정권의 부분은 성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데까지 영향을 주어 이제는 자신의 성적인 정체성까지 자신이 결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한 번 아이들이 결정하면 그것을 바꾸라고 요구하지 말아라 라고 하고 그것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는 분의 자녀가 20대 이후에 동성애자가 되었는데 주위에 그 누구 한 사람도 동성애자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던가 한 번 더 생각해 보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교육을 잘 받은 젊은 세대들은 친구들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것이기에 친구에게 조차도 그런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엄마는 아무도 그 말을 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서 너무속상해했다. 한 번 만 더 생각해 보라고 누구라도 이야기를 해주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젊은자녀들 둔 부모로서 함께 속상한 마음이 느껴졌다.
성인이 되고 나면 아이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결정은 결국 아이들 스스로가 해야 한다. 그런데, 미성숙한 사춘기의 아이들은 다양한 옵션과 선택의 결과를 깊이 생각하지 않고 결정을 내릴 수 있기에 앞에 나오는 사람처럼 사랑을 좇아서 살았던 자신의 삶을 인생의 후반에 후회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어른 들이 다양한 삶의 옵션과 또 그 결과들을 생각해 보게 함으로 건강한 결정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더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날의 성은 ‘자유’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책임’이라고 하는 것은 기술의 발전으로 필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선택한 삶의 방향은 그 선택한 것에 뒤 따르는 결과가 반드시 있음을 우리 모두는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한 두 사람이 자녀를 낳지 않으면 한국은 몇 십년 후에도 여전히 건재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녀를 낳지 않으면 한국은 정말 어느 학자의 말처럼 미래가 없게 된다.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전통적인 가정의 형태가 점점 더 허물어진다면 인류의 미래도 비슷하게 되지 않을까 라는 염려를 하게 된다. 개인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만큼 자유에 책임도 중요시 여기며 기존 사회의 질서와 전통도 소중히 여기는 시대가 되길 소망해 본다.

김훈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