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목사의 특별기고

한국인을 특별히 사랑하는 몽골 사람들
태브나와 오뚜느는 아주 특별한 몽골 사람들입니다. 두 사람은 몽골의 두 번째 도시인 다르항 (Darkhan)에 있는 YWAM (Youth with A mission)의 대표 리더인데 아주 한국말을 잘 합니다. 태브나는 한국 선교사님이 다르항 베이스의 리더였을 때 그 분을 따라다니며 통역을 하던 스텝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태브나가 20대 중반 밖에 안되었던 어느날, 한국 선교사님께서 갑자기 몽골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큰 프로젝트를 가지고 많은 일을 진행하던 한국인 리더는 몽골 정부로 부터 추방령이 내려진 것입니다. 그래서 베이스 리더의 자리를 태브나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자, 태브나는 너무 어리고 한국으로부터의 많은 재정적 지원으로 운영되었던 베이스였기에 새로운 젊은 리더를 재정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거의 대부분의 스텝들이 떠나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베이스를 테브나는 16년 동안 성실하게 운영하면서 베이스를 지켜왔고 발전시켰습니다. 한국에서 유학을 하고 한국을 좋아하는 아내인 오뚜느는 다른 나라로 가자고 남편에게 조른 적도 여러번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테브나는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키고 떠나지 않으려 했습니다. 태브나는 지역 교회도 3군데를 개척해서 교회와 베이스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지역 교회의 목사님들과도 여러 행사들을 많이 운영합니다. 필자가 잠시 머무는 동안 몽골에는 설 명절이 있었습니다. 태브나는 명절을 맞이해서 몇 일동안 어른들과 아프신 분들을 방문해서 인사하는 일을 하는 것에 시간을 보냈습니다. 앞으로 비전센타를 추가로 세워서 중독 사역과 언어 학교를 운영하는 비젼을 가지고 자신이 일하는 교회에서 비전센터의 기반을 쌓는 일을 위해 헌금을 모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6월 에 땅을 파게 됩니다.
그의 아내인 오뚜느는 5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오뚜느는 한국에서 국어 국문학과를 공부하고 호주 기독교 대학의 상담학과를 공부해서 상담사로 몽골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역 시청 사무소에서 오뚜느와 상담사들에게 청소년들을 위해 상담을 할 수 있는 상담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가정에서 학대를 경험한 아이들에게 상담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다르항 베이스에도 상담실을 만들어 놓았고 또 다르항 베이스에서 독립사역으로 하고 있는 유치원에도 일 주일에 한 번씩 방문해서 어린 아이들에게 상담을 제공합니다. 오뚜느는 부모로부터 보호를 잘 받지 못하는 아동과 청소년들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상담사역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올 해 부터는 호주 기독교 대학의 캠퍼스를 세우고 상담학과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필자가 캠퍼스에서 만난 상담학부의 학생들은 놀라웠습니다. 이미 석사까지 심리학을 공부하신 분, 중독 사역을 하고 계신 분이 계셨고 대부분이 선교사와 교회 지도자였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천 킬로가 떨어진 곳에서 어떤 학생은 천 사백 킬로가 떨어진 곳에서 강의를 듣기 위해 다르항까지 온 분도 계셨습니다. 이런 분들을 섬기기 위해 오뚜느는 숙박 비용이나 식사 비용을 받지 않고 무료로 식사와 아주 맛있는 디저트를 제공하고 선물까지 준비해서 주었습니다. 오뚜느와 담당 스텝들은 단순히 공부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기독교 공동체의 모습을 학생들에게 함께 제공하고 다르항 베이스의 비전을 함께 나누고 기도하게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바트라는 다르항 베이스에서 14년이나 장기 스텝으로 일한 선교사입니다. 제가 14년 전에 처음으로 몽골을 방문했을 때, 19살의 DTS (Disciples Training School) 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 스텝으로 일을 하면서 북한을 방문하고 북한을 위한 선교사로 헌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할 때도 북한 선교를 기뻐하는 아내를 만나게 되었고 지금은 북한 선교를 위해 온 가족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만 해도 다리만 건너면 북한으로 갈 수 있는 대련이라는 곳에서 5개월간 머물면서 북한 선교를 위한 사역을 하는 선교사님들과 연계해서 기도하면서 실제적인 전략을 구상하고 돌아왔습니다. 이 가족은 어린 두 자녀가 있는데 북한 선교를 위해 아이들은 집에서 홈 스터디로 키우면서 북한에서는 옥수수 농장을 운영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하지 못하는 북한 선교의 일을 몽골의 선교사님이 죽음을 각오하고 한다고 하는 것이 놀라웠고, 감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쉘은 눈에 띄는 다르항 베이스의 선교사입니다. 외모가 워낙 한국 사람처럼 보이고 20대 중반이어서 어떤 청년일까 궁금했습니다. 미쉘은 한국에서 12년간 있으면서 국제학교를 졸업한 청년입니다. 그래서 한국 사람처럼 한국말을 잘 하고 또 영어도 아주 잘합니다. 미쉘은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의 비올라 대학에서 IT로 학사 공부를 하고, 몽골에 돌아와서는 최고로 좋은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중앙 아시아에 선교사로 떠나기 위해서 훈련을 받고 있는 스텝으로 YWAM 다르항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미셸은 울란바트라에 살고 있는 아주 특별한 부모님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쉴이 대기업을 그만 두고 또 부모님을 떠나 선교사로서의 삶을 사는 것이 부모님에게는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부모님이 지금은 크리스챤이 되어서 열심히 아들을 돕고 자신의 집을 게스트 하우스처럼 열어 놓고 몽골을 방문하는 다르항의 손님이 있으면 따뜻하게 집에서 잠을 재워주고 공항까지 데려다 주는 일을 합니다. 미쉘의 엄마는 불교였다가 아들 때문에 기독교인이 되었는데 7일만에 성경을 두 번이나 읽었다고 합니다. 아빠는 러시아에 오랫동안 사시던 분이어서 음식 솜씨가 아주 뛰어납니다. 필자가 하루 머물게 되었을 때 본인은 금식으로 인해 음식도 못 먹으면서 아주 열심히 러시아 음식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6일밖에 없었던 몽골에서의 시간이지만 몽골의 문화와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들로 인해 그들과 금방 정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래서 떠나는 발걸음에 여운이 가득합니다. 어려운 중에 나누는 삶을 살아가는 그들 모두가 복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좋은 기독교 상담자들이 많이 배출되어서 몽골의 개인과 가정 그리고 교회와 사회를 건강하게 세워나가는 데에 많은 기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를 바랍니다. 현재는 2% 퍼센트 밖에 안되는 기독교인이 몽골에 있지만 서로 협력을 잘하고 있는 몽골 기독교에 부흥의 불길이 활 활 타오르기를 기도합니다.

김훈 박사 (호주기독교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