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적소개
고도를 기다리며
사무엘 베케트 / 민음사 / 2000.11.30
‘고도를 기다리며’ (프: En attendant Godot, 영: Waiting for Godot)는 아일랜드 출신의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쓴 2막의 부조리극이며, 부제로 “2막의 비희극”라 붙였다. 이 작품은 1940년대 후기에 작성되어, 1952년에 처음 발간되었다. 베케트는 처음 자신에게는 외국어인 프랑스어로 이 작품을 썼으며, 1954년에 영어로 번역되었다. 이 작품은 1953년 1월 3일 파리 시의 바빌론 극장에서 프랑스어로 초연되었다.
고도를 기다리며는 처음에 비평가들로부터 각기각색의 다양한 반응을 얻었고, 베케트가 “이 작품은 그것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뜻한다”라며 해석을 돕는 것을 거부하면서, 고의적으로 불분명하게 비치게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희곡 자체는 무엇이 희곡이 연극적 중요성을 가지게 하는지에 대한 개념을 정제시키며, 많은 유명한 극작가들(톰 스토퍼드, 해롤드 핀터, 에드워드 앨비, 샘 세퍼드)에게 영향을 끼쳤다.
현대극의 흐름을 바꾸어놓은 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작이자 부조리 문학의 정수,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다.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두 주인공의 의미없는 대화는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된 삶을 상징한다. 당신은 누구를 기다리는가. 그리고 지금 당신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기다려도 오지 않는 그 무엇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배어나오는 전후 부조리극의 고전이다.
○ 목차
제1막 9
제2막 95
작품 해설 159
작가 연보 179
○ 저자소개: 사무엘 베케트(Samuel Barclay Beckett)
1906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부유한 프로테스탄트 집안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23년 트리니티 칼리지에 입학하여 프랑스어·이탈리아어를 전공했고, 졸업 후 벨파스트에서 잠깐 교편 생활을 했다. 1928년에는 파리 고등사범학교의 강사로 부임했고 그곳에서 ‘율리시스’의 저자 제임스 조이스를 만나게 된다. 유럽 전역을 여행하던 끝에 1937년에 파리에 정착했고,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레지스탕스에 참여하기도 했다. 종전(終戰)까지 나치를 피해 은거, 노동자로 생활하면서 다수의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했다. 1953년 1월 파리에 있는 소극장 ‘테아트르 드 바빌론’에서 ‘고도를 기다리며’가 놀랄 만한 성공을 거두면서부터 세계적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전적으로 예술에 전념하고자 했기 때문에 라디오나 텔레비전 출연, 언론 인터뷰 등 모든 사람의 이목을 차단했다. 1969년 건강 악화로 튀니지에서 요양하던 중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게 되는데 이 때에도 수상식에서 대중연설을 하지 않으려고 수상식 참가를 비롯한 일체의 인터뷰를 거부했다. 1989년 부인이 사망한 지 5개월 후 세상을 떠났다.
베케트를 희곡 작가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베케트는 소설, 시, 희곡, 라디오, 텔레비전 드라마, 시나리오, 각종 평론 등 아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자신의 문학 세계를 구축한 작가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소설은 베케트에게 특별한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베케트가 독일의 게슈타포에게 쫓기면서 자신의 정신적 안정을 찾기 위해서 쓰기 시작했던 것이 바로 소설이었고, 또 너무나 고통스러운 작업이었기에 한동안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했던 것 역시 소설이라는 장르였기 때문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가 ‘고도를 기다리며’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사실 이 희곡은 3부작이라 불리는 소설 ‘몰로이'(1951), ‘말론 죽다'(1951), ‘이름 붙일 수 없는 것'(1953)을 집필하던 중의 베케트가 작가로서 자신을 다 소모해야만 할 것 같은 그 집필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잠시 다른 장르로 외도하여 휴식의 일환으로 가볍게 써낸 작품이다. 이처럼 베케트가 자신이 시도한 그 어느 장르보다도 심혈을 기울인 장르가 바로 소설이기에, 베케트의 문학 세계를 보다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한다면 희곡과 더불어 소설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그의 대표작 ‘고도를 기다리며’는 소위 부조리극에 대한 세인의 관심을 고조시켰으며 ‘현대의 고전’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사르트르가 ‘최초의 완벽한 희비극’이라 평가하기도 한 이 작품은 현대인을 ‘자아를 상실하고 희망을 잃어버린 존재’로 파악하는 실존주의와 맥을 같이한다. 고목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 황량한 길가에서 비슷한 처지의 두 사람이 ‘고도’라는 미지의 인물이 나타나 그들을 구원해 줄 것을 기다리며 나누는 대화와 사건들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베케트는 고독과 허무의 사이를 방황하는 고독한 의식의 불모성을 집요하게 추구하는 소설가로서 일찍이 식자(識者)들의 주목을 끌고 있었는데, 이 작품으로 연속 300회 상연이라는 흔히 볼 수 없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베케트는 이 작품으로 프랑스 문학의 선구자로 군림하면서 196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머피'(1938), ‘몰로이'(1951), ‘말론 죽다'(1951), ‘이름 붙일 수 없는 것'(1953), ‘와트'(1953) 등의 소설과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1953)가 있다. 그 외에도, 단막극으로 ‘승부의 끝'(1957), ‘무언극'(1957), 비평서 ‘프루스트'(1931)와 다수의 라디오 드라마와 시집이 있다.
○ 역자: 오증자
서울여대 교수와 월간 「샘터」의 주간을 역임했다. 옮긴 책으로 <바다의 침묵>, <에밀>, <몽테크리스토 백작>, <위기의 여자, 아름다운 영상>, <프랑스현대희곡집 1, 2, 3> 등이 있다.
○ 책 속으로
.놈의 시간 얘기를 자꾸 꺼내서 사람을 괴롭히지 좀 말아요! 말끝마다 언제 언제 하고 물어대다니! 당신, 정신 나간 살마 아니야? 그냥 어느 날이라고만 하면 됐지. 여느 날과 같은 어느 날 저놈은 벙어리가 되고 난 장님이 된 거요. – 작가한마디
.포조 : 이젠 울음을 그쳤군. 그러니까 당신이 저놈을 대신에게 된 거구려, 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아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요. 웃음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니 우리 사회가 나쁘다고는 말하지 맙시다. 우리 시대라고 해서 옛날보다 더 불행할 것도 없으니까 말이요. 그렇다고 좋다고 말할것도 없이. 그런 얘긴 아예 할 것도 없어요. -81
.자코메티의 조각과 같은 철사형으로… 서구에서는 대체로 십자가 모양의 형상을 한 나무를 주로 세웠다고 하는데 그것은 종교적 구원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연출자의 해석에 비롯된 것이라 짐작된다. -166
.실은… 아시다시피… 암 당연하지. 당연하고 말고. 내가 당신들이라도 그 고댕인지… 고데인지… 고도인지… 하여튼 그자하고 만날 약속을 했다면 날이 완전히 어두워질떄까지 기다려보고 나서야 단념을 하든말든 하겠고. 제가 거들어 드릴까요? 당신이 부탁을 한다면 혹시? 뭐를요? 내게 다시 앉아달라고 말이오. 그게 거들어드리는 게 될까요? 그럴것 같은데! 좋습니다. 선생님, 부디 다시 앉으시지요. 아니아니, 그럴 필요 없어요. 저 그렇게 서 계시지 마십시오 감기드시겠습니다. -57
.블라디미르: 확실한 건 이런 상황에선 시간이 길다는 거다.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우린 온갖 짓거리를 다 해가며 시간을 메울 수밖에 없다는 거다. 뭐랄까 얼핏 보기에는 이치에 닿는 것 같지만 시실은 버릇이 되어버린 거동을 하면서 말이다. 넌 그게 이성이 잠드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짓이라고 할지 모르지. 그 말은 나도 알겠다. 하지만 난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성은 이미 한없이 깊은 영원한 어둠 속을 방황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야. 너 내 말 알아듣겠냐? -134-135
.블라디미르 :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무서운 산고를 겪고 구덩이 밑에서는 일꾼이 꿈속에서처럼 곡괭이질을 하고, 사람들은 서서히 늙어가고 하늘은 우리의 외침으로 가득하구나.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습관은 우리의 귀를 틀어막지. (에스트라공을 바라본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겠지. 그리고 말하겠지. 저 친구는 잠들어 있다. 아무것도 모른다. 자게 내버려두자고.
블라디미르: 아직은 가지 마시오.
포조: (발을 멈추며) 난 가겠소.
블라디미르: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데서 가다가 넘어지면 어쩔려고?
포조: 일어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겠지. 그리고 나서 다시 떠나는 거요.
블라디미르: 떠나기 전에 저자한테 노래나 한 곡 부르게 하쇼.
포조: 누구에게 말이오?
블라디미르: 럭키 말이오.
포조: 럭키에게 노래를?
블라디미르: 그렇소. 아니면 생각을 하게 하든가. 낭독을 시켜도 좋고.
포조: 저놈은 벙어리인걸.
블라디미르: 벙어리라니?
포조: 그렇다니까. 신음소리 한마디 못 낸다오.
블라디미르: 벙어리라! 언제부터요?
포조: (버럭 화를 내며) 그놈의 시간 얘기를 자꾸 꺼내서 사람을 괴롭히지 좀 말아요! 말끝마다 언제 언제 하고 물어대다니! 당신, 정신 나간 살마 아니? 그냥 어느 날이라고만 하면 됐지. 여느 날과 같은 어느 날 저놈은 벙어리가 되고 난 장님이 된 거요. 그리고 어느 날엔가는 우리는 귀머거리가 될 테고.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거요. 어느 같은 날 같은 순간에 말이오. 그만하면 된 것 아니냔 말이오? (더욱 침착해지며)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149-150
○ 등장인물
.블라디미르(디디) – 떠돌이, 고도를 기다린다.
.에스트라공(고고) – 떠돌이, 고도를 기다린다.
.포조 – 잔인한 지주
.럭키 – 포조의 노예, 끈에 묶여 포조에게 끌려다닌다.
.양치기 소년
○ 출판사 서평
‘고도’에 깔려 있는 허무주의적이고 비극적인 세계 인식은 이 작품이 인생의 부조리를 인식하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전후 실존주의 문학의 한 흐름임을 보여준다. “여자들은 무덤 우에 걸터앉아 무서운 산고를 겪고 구덩이 밑에서는 일꾼이 꿈속에서처럼 곡괭이질을 하고. 사람들은 서서히 늙어가고 하늘은 우리의 외침으로 가득하구나. 하지만 습관은 우리의 귀를 틀어막지”라는 블라디미르의 대사는 그 단적인 예가 된다. 실제로 ‘고도’의 창작 배경은 전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아일랜드 출신인 베케트는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중립국 국민이라는 안전한 신분을 이용해 프랑스 친구들의 레지스탕스 운동을 도왔다. 그러던 중 그가 가담하고 있던 단체가 나치에 발각되어 당시 독일의 비점령 지역이었던 프랑스 남단 보클루즈(이 지역의 이름은 작품 속에 등장한다)에 숨어살게 되었는데, 거기서 할 수 있는 일은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는 다른 피난민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얘깃거리 하나가 동이 나면 또 다른 화제를 찾아내야만 했는데 바로 이것이 ‘고도’에 나오는 대화의 양식이다.
이런게 베케트는 자신의 체험에서 얻은 사실적인 요소들에서부터 시작하여 구성을 극도로 단순화함으로써 작품을 창조해 낸 것이다.
–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고도’를 기다린다
‘고도’를 난해한 작품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작품의 토대가 되는 기다림의 상황은 오히려 의미가 정해져 있지 않음으로 인해 보편성을 띠게 된다. 1957년 등장 인물 중에 여성이 없다는 이유로 미국의 샌 쾐틴 (San Quentin) 교도소에서 공연되었을 때 1,400여 명에 달하는 죄수들은 예상을 뒤엎고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고도’가 “바깥 세상이다!” 혹은 “빵이다!” 혹은 “자유다!”라고 외쳤다.
한편 1960년대 폴란드에서 공연을 관람한 사람들은 ‘고도’가 러시아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고 생각했고, 프랑스 통치 하의 알제리에서 공연되었을 당시 땅이 없는 농부들은 그들에게 약속되었으나 아예 실시되지 않은 토지 개혁에 관한 연극이라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고도 Godot가 영어의 God와 프랑스어의 Dieu의 합성어의 약자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베케트는 “이 작품에서 신을 찾지 말라”고 했으며 “여기에서 철학이나 사상을 찾을 생각은 아예 하지 말라. 보는 동안 즐겁게 웃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극장에서 실컷 웃고 난 뒤, 집에 돌아가서 심각하게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여러분의 자유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결국 ‘고도’의 의미는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 개개인에게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택스트의 의미가 열려 있음으로 인해 ‘고도’는 아직 까지도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며 널리 사랑 받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