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동조자 (The Sympathizer)
비엣 타인 응우옌 / 민음사 / 2023.5.30
본서는 필자가 2023년 11월 한국방문때 구입해 여러달 끼고 다닌 책이다. 같은 이민자여서일까… 읽는내내 저자 응우엔의 심정에 많이 공감했다. 다른한편으로 본서를 읽는동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개인적으로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 기록 (서적, 영화 등)을 잘보지 못한다. 주변강국으로부터 조리돌림 당하는 조선말, 일제식민지, 한국전쟁과 민족분열 등의 역사 순간마다 내분과 반목하는 모습이 너무 마음아프기 때문이다. 갈라치기로 흔드는 강국들 사이에서 이해득실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참으로 괴로운 순간으로, 차라리 눈을 감는다.
그런데 현재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그 연장선에 있는 듯하다. 베트남을 배경으로 한 본서 ‘동조자’는 근·현대의 한국사를 보는듯 마음이 시리다.
그러니 어찌 속히 읽어갈 수 있었겠는가! 몇장 넘기지 못하고 덮는 날이 더 많았다. 한국의 박찬욱 감독이 본서를 원작으로 영화화 했다는데 그 영화도 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
○ 저자 : 비엣 타인 응우옌 (Viet Thanh Nguyen)
1971년 3월 13일 베트남에서 태어난 미국 소설가이자 교수이다.
1975년 사이공이 함락되면서 가족 전체가 미국으로 이주하여 거기서 자랐다.
UC 버클리에서 영문학과 민족학을 전공했으며 현재는 USC에서 영문학과 미국에서의 소수 민족학을 강의하고 있다.
2016년 첫 장편소설인 ‘동조자’로 2016년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그 외에도 앤드루 카네기 메달 문학 부문, 데이턴 문학 평화상, 에드거 어워드 첫 소설상, 아시아·태평양 미국 문학상, 캘리포니아 첫 소설상 등을 휩쓸었다.
또한 2017년 2월 소설집 ‘난민’을 펴냈으며, 2022년에는 ‘동조자’의 후속작인 ‘헌신자’를 발표했다.
본서는 김희용 교수에 의해 번역되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 줄거리
본서는 모두 23장으로 구성되었다.
“나는 스파이, 고정간첩, CIA 비밀 요원, 두 얼굴의 남자입니다.”
이야기는 베트콩 재교육 수용소에 갇힌 ‘나’의 자백으로 시작된다. 1975년 4월, 남베트남 특수부 소속 육군 대위인 나는 수도 사이공이 함락당하기 직전 상관인 ‘장군’ 가족과 함께 CIA가 제공한 수송기를 타고 괌으로 탈출할 준비를 한다. 원래 북베트남 출신인 나는 어린 시절 전쟁을 피해 남쪽으로 피난을 가다가 CIA 공작원 ‘클로드’에게 발탁되어 정보 요원 일을 시작했다. 이후 클로드 덕분에 미국에서 대학원까지 졸업한 나는 고국으로 돌아와 엘리트 정보 장교가 되고, 장군과 함께 경찰에 파견되어 방첩 임무를 맡는다.
그러나 나는 사실 북베트남이 남쪽에 심은 고정 간첩이었다. 프랑스인 가톨릭 신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혼혈이라는 이유로 어릴 적부터 주변인들에게 따돌림을 당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나는 역시 혼혈이라는 이유로 동급생들에게 폭행을 당하다가 ‘만’과 ‘본’이라는 두 친구에게 도움을 받는다. 이 일로 가까워진 세 사람은 피를 섞는 의식을 통해 의형제가 되고, 나는 공산주의에 심취한 만에게 이끌려 함께 북베트남의 정보원이 된다. 이후 세 사람은 모두 군인이 되어 만과 나는 정체를 숨긴 채 북측 정보 장교로 활동하고, 본은 두 친구가 스파이인 것을 모른 채 남측 공수부대의 정예 하사관이 된다.
사이공 함락 직전, 나는 만에게서 장군과 함께 탈출하여 미국으로 건너가라는 지령을 받는다. 남베트남 군대의 잔당이 미국에서 미 정부의 지원을 받아 베트남 탈환을 시도할 것이므로 현지에서 그들의 동태를 파악하고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지령에 따라 장군 가족과 함께 미군 수송기를 타고 사이공을 떠나려던 나는 이륙 직후 북베트남군의 로켓 공격에 죽을 고비를 넘기며 간신히 미국령 괌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지만, 이 과정에서 친구 본은 아내와 아들을 모두 잃고 만다.
이제, 태어나면서부터 ‘이중성’을 지닌 ‘나’는 미국으로 건너가 이민자이자 이중간첩으로 살아가게 된다. 겉으로 보기엔 베트남 대위이지만, 알고 보면 CIA 비밀요원이고, 마지막 꺼풀을 벗기면 베트콩 고정간첩인 ‘나’는 같은 이민자 출신인 베트남인들을 감시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나라를 잃었으면서도 여전히 권력욕을 놓지 않고 고국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는 베트남 군인들, 시혜적이며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구출자’ 미국인들, 미국 문화와 물질문명에 흠뻑 빠져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사람들… 그사이에서 영원히 두 얼굴의 남자로 살아가는 ‘나’, 그리고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을 상징하는 두 친구에 관한 우정과 첨예한 이데올로기, 고도의 정치·사회 풍자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 인상깊은 귀절
나는 스파이, 고정간첩, CIA 비밀요원, 두 얼굴의 남자입니다. 아마 그리 놀랄 일도 아니겠지만, 두 마음의 남자이기도 합니다.(7쪽)
이런 일은 다낭과 나트랑에서 이미 벌어져, 미국인들은 필사적으로 달아났고 방치된 주민들은 멋대로 서로 공격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이런 사례가 있었음에도 사이공은 이상할 만큼 고요했고, 대다수 시민들은 아무도 간통의 진상을 밝히지 않는 한 서로 끈덕지게 매달린 채로 물에 빠져 죽기조차 마다하지 않으면서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처럼 행동했습니다. (19쪽)
그들은 내 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전우였습니다. 그들이 사랑하는 도시는 막 함락되려는 참이었지만, 내가 사랑하는 도시는 곧 해방될 터였습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의 종말이었지만 내게는 단지 세상의 변화일 따름이었습니다. 그래서 2분 동안 우리는 진심을 가득 담아 노래하면서 지난날을 안타까워하고 애써 시선을 돌려 미래를 외면했습니다. 배영을 하면서 폭포 쪽으로 다가가는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35쪽)
우리 대학을 포함한 많은 대학 캠퍼스에서, ‘호호호’는 산타클로스의 전형적인 웃음소리가 아니라, ‘호호호찌민, 민족해방전선은 승리하리라!’라는 인기 구호의 도입부였습니다. 그 당시 나는 학생들의 꾸밈없는 정치적 열정을 질투했습니다. 나는 베트남공화국에서 온 선량한 시민 역할을 하기 위해 자신의 열정을 깊숙이 감춰야만 했으니까요. (105쪽)
그래, 자네! 자네의 동양적인 본능을 견제하기 위해 자네는 미국인들이 나면서 배워 온 무의식적인 행동들을 부단히 연마해야만 해.
음과 양 같은 건가요?
바로 그거야!
나는 혼란에 빠진 내 동양적인 내면과 서양적인 내면에서 발생한 위산 역류로 시큼한 맛이 느껴지는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습니다. 교수님?
음?
만일 제가 교수님께 사실은 아메라시안이 아니라 유라시안이라고 말씀드린다면,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학과장이 나를 다정하게 보면서 담배 파이프를 꺼냈습니다.
아니, 이 친구야. 절대 아니야. (111~112쪽)
내가 목청을 가다듬고 말했습니다. 미즈 모리?
음?
당신과 사랑에 빠질 것 같아요.(137쪽)
그가 죄가 없다면 어쩌지요?
클로드는 그저 자기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담배 연기로 도넛 모양을 만들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죄가 없지는 않아. 특히 이런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182쪽)
어쨌든, 시도를 했다는 이유로 게이를 비난해서는 안 돼요. 나 자신의 미소와는 완전히 다른 미소를 지으며 그가 말했습니다. 내 미소와 그것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효과를 유심히 살펴본 후에, 나는 내 미소가 프랑이나 마르크 같은 2류 국제 통화의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윤의 미소는 금본위제하의 금이었기에 너무 눈부셔서 오로지 그것만 보이고 그것을 쳐다보게 되며, 직접 보면 압도적이어서 그가 어떻게 ‘신’ 광고의 배역을 따냈는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279쪽)
○ 본서의 의미와 가치
저자 비엣 타인 응우옌 (Viet Thanh Nguyen)은 베트남 전쟁 난민 출신이다. 전쟁이 한창이던 1971년 남베트남 지역에서 자랐다. 1975년 호찌민이 함락되자 난민이 돼 네 살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 사회와 동화하고자 했지만, 부모님이 운영하던 가게 건너편에 붙은 ‘또 다른 아시아인이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팻말을 보고 충격받았다고 한다.
영문학과 민족학을 전공하며 미국과 베트남이라는 두 세계 사이의 낙차를 끊임없이 인식하며 살아왔다. 현재는 서던캘리포니아대에서 영문학과 소수 민족학을 강의하고 있다. 미국 내 소수 민족으로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은 연구와 집필로 이어졌고, 그 첫 성과물이 장편 소설 ‘동조자’다.
‘이중적 정체성’은 응우옌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다. 베트남 전쟁 직후를 배경으로 한 본서의 주인공은 북·남베트남, 미국 중앙정보국 (CIA) 사이의 ‘이중간첩’이다. 미국과 베트남에 오가며 주위의 동료들을 감시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본서의 제목에서 드러나듯 주인공은 어느 세력에나 ‘동조’하고, 쉽게 한쪽 편을 정하지 못하는 인물임을 보여준다. 마치 이국의 삶에 놓인 이민자 처럼 말이다.
본서는 한동안 침묵해 온 베트남의 역사를 불러내 ‘문학에 빠져 있던 부분을 채우고, 목소리를 가지지 못했던 것들에게 목소리를 부여한다’는 평을 얻었다.
임운규 회원 (시드니시나브로 회원)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