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4월 모임 ‘페다고지’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나눠
다음 5월 온라인 모임은 10일과 24일 [4월 12일과 26일(영상) 독서발제 전문포함]
매월 둘째, 넷째 주 수요일 오후 5시 모임을 갖는 독서토론모임 ‘시드니 시나브로’ (지도 구본영 교수)가 4월 모임을 지난 4월 12일과 26일 (수, 오후 5시) 전현구 목사의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서평”과 임기호 목사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발제로 온라인 모임을 가졌다.
전현구 목사는 4월 12일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서평을 나누며 서두에 “‘텍스트보다 컨텍스트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말로 서평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것은 본문을 알기 위해서는 당대의 상황과 문화를 이해해야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저자의 시대적 상황과 문화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라며 파울로 프레이리의 시대적 배경, 파울로 프레이리의 교육사상 (1, 2), 프레이리의 사회사상,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Pedagogy’ 비판 순으로 살핀 후, 결론부에서 “위와같이 프레이르의 교육사상과 철학을 비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교육의 문제점인 기득권층을 위한 경쟁교육/ 빈부격차/ 문화적 상황배제/소수자들의 차별/ 반노동자적인 착취…등은 파울로 프레이리의 교육사상과 철학에서 중요한 도전 이슈로 삼았다는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텍스트는 변하지 않아도 컨텍스트는 변한다. 아직 ‘자유의 실천’이 되지 못한 교육의 현장에 대해서, 여전히 존재하는 억압과 피억압의 암흑한 세계에, 희망을 주는 교육 페러다임(paradigm)이다. 페다고지가 지향하는 것은 더 완숙하고, 덜 추하며, 더 정의로운 세상을 위한 해방교육을 주창한다. 작금의‘쳇GPT시대’에 촉진자(교사)와 학습자간의 대화식 교육은 오늘날 큰 반향이 되고 있지 않은가? 프레이리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얼마전 필자는 파울로 프레이리의 교육사상 개념인 ‘패다고지’ 에 대해서 폭넓게 원론적 교육 개념에 대해서 정리한 적이 있었다. 서평을 읽기 전에 먼저 읽고 참고하면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라며 발제를 마쳤다.
이어 4월 26일에는 임기호 목사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발제로 나누며 서두에 “삶고 죽음은 선물이다. 받고 싶어서 받는 선물이 아니라, 어느 날 삶이라는 보따리에 쌓여서 전해지는 선물이다. 이 선물 보따리는 받고 싶다고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 받고 싶지 않다고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어지면 받아야 하고 빼앗기면 놓아야 하는 선물이다.
코로나 시즌을 마무리 하며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어도 가는 것은 순서가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이 시점에 이어령 선생님의 글을 위로를 넘어서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
시대의 지성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어령 선생님의 글은 한줄한줄이 선물과 같다. 삶의 종착역에서도 지치지 않는 열정을 가지고 자신이 얻은 것들을 나누고 떠나려는 의지는 놀라웠다. 일부러 종착역에 현금이 잔뜩 든 가방을 두고 내리는 키다리 아저씨와 같았다.
이 책은 빨리 읽고 덮어 놓을 책이 아니라, 천천히 읽고 마음에 담아 놓을 책이다. 눈으로만 읽는 책이 아니라, 가슴에 담아 놓을 책이다.
사람은 떠나지만 그의 흔적은 남는다는 말에 책임감을 느낀다. 삶의 발자취는 누구나 있지만 그 발자취를 따라 갈만한 사람은 많지 않다.
매일매일이 선물이라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덤으로 얻은 선물이 될 것을 확신하며 깊어가는 호주의 가을에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라며 책소개, 목차, 책 속에서 등의 순으로 발제를 이어갔다. 이날 임기호 목사는 영상으로 독서모임을 발제해 신선했다. [온라인 독서발제 영상 하단 첨부]
한편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는 독서에 관심있는 분 누구나 환영한다. ‘시드니 시나브로’의 목적은 “독서를 통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해외생활의 무료함을 달래주기 위함”이며, 목표는 “창의적 사고와 합리적 사고, 그리고 융합적 사고를 통하여 삶의 비전을 구체화시키기 위함”이다. 운영방식은 독서안내자가 책을 선정하여 소개하면 독서회원 각자가 주1회 장별로 읽고 요약하여 발표한 후 상호의견을 교환하는데, 모임은 매월 2, 4주째 수요일 오후 5시에 온라인으로 모인다.
다음모임은 5월 10일과 24일 (수, 오후 5시) 온라인으로 모인다.
구본영 교수와 함께하는 독서토론모임에 관심있는 분들은 전화 (0433 486 425)나 이메일([email protected])로 문의하면 된다.
–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2023년 5월 온라인 모임 안내
.모임: 매월 2, 4주째 수요일 오후 5시
.일시: 2023년 5월 10일, 24일 (수) 오후 5시
.아래 문의처로 연락주시면 온라인 모임에 합류됩니다.
지도 구본영 교수 (0433 486 425, [email protected])
총무 임기호 목사 (0414 228 660, [email protected])
간사 임운규 목사 (0425 050 013, [email protected])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4월 12일과 26일자] 발제전문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서평
○ 목차
제1장. 억눌린 자를 위한 교육의 정당성
억눌린 자를 위한 교육의 정당성
억누르는 자와 억눌린 자 간의 모순, 그리고 그 모순은 어떻게 극복되는가?
억압과 억누르는 자들
억압과 억눌린 자들
해방- 주어지는 선물도 아니고 자기만의 성취도 아닌 상호간의 과정
제2장. 은행예금식 교육과 문제제기식 교육
억압 도구로서의 ‘은행예금식’ 교육 개념 -전재와 비판
해방을 위한 도구로서의 ‘문제제기식’ 교육 개념 -그 전제
‘은행예금식’ 개념과 교사 -학생의 모순
‘문제제기식’ 개념과 교사 -학생 모순의 해소
교육- 상호과정, 세계의 매개
불완전함을 의식하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 그리고 보다 충만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
제3장. 대화론: 자유의 실천으로서 교육의 본질
대화론- 자유의 실천으로서 교육의 본질
대화론과 대화
대화와 프로그램 내용의 탐색
인간 -세계 관계, ‘생성 주제들’. 그리고 자유의 실천으로서 교육 프로그램 내용
‘생성 주제들’의 탐색과 그 방법
‘생성 주제들’의 탐색을 통한 비판적 의식의 각성
탐색의 여러 단계
제4장. 대화와 반대화
문화 행동의 이론들을 제시하는 모체로서 반대화와 대화
반대화적 행동의 이론과 그 특성- 정복, 분할과 통치, 조종, 그리고 문화 침해
대화적 행동의 이론과 그 특성- 협력, 해방을 위한 일치, 그리고 문화 종합
『부록』 억눌린 자 교육 프로그램의 실례
A, 들어가는 말
‘텍스트보다 컨텍스트가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말로 서평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것은 본문을 알기 위해서는 당대의 상황과 문화를 이해해야 올바른 해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 저자의 시대적 상황과 문화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B, 파울로 프레이리의 시대적 배경
파울로 프레이리는 1921년 9월 19일 브라질 북동부 페르남부쿠 주(州)의 도시 헤시피 (Recife)에서 아버지가 하급 장교인 군인으로 중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작가의 유년 시절인 1920 ~1930년대는 세계적 공항 시대로 아버지가 직장을 잃게 된다. 이때 경험한 가난의 고통이 한평생 이론적, 실천적 방향을 결정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된다. 1934년에 아버지가 죽게 되므로 가정의 어려움은 극에 달한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란시스 샤토브리앙 학교에 다니다가 헤시피의 오즈월드 크루즈의 학교의 장학생으로 옮기게 된다. 이때 이 학교를 다니면서 포르투갈어교사로 일하면서 법대 예비 과정을 이수하기도 한다. 플레이라는 방과 후나 주말에는 노동자의 자녀들과 함께 지냈던 경험들이 민중적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다. 오스왈드 크루즈 학교에서 뛰세, 프코, 프롬, 레비스트로, 미리땡, 무르니에, 사르트르, 등의 프랑스 사상이 프레이리의 초기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당시 남미에서 점차 확산하고 있던 가톨릭 사회운동, 해방신학 운동에 큰 영향을 받았다. 당시 까마라 주교를 통해서 기독교 기초공동체 운동에 참여도 했다. 학생 신분으로 대학 내 가톨릭 사회운동 단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44년 플레이라는 5년 연상인 초등학교 교사 엘자와 결혼하여 그녀는 남편이 문해교육에 관심을 가지도록 이끌었다. 1946년 플레이라는 첫 교육활동을 페르남부르크 주 소속 사회봉사기구인 ‘SESI’에서 시작했다. 1947년에는 이 기관에서 교육문화분과 위원장직을 맡아 농촌 빈민들과 도회지 공장노동자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1954년부터 플레이라는 해시에 대학에서 역사와 철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진보적인 고울랏 정권(1962~1964년) 이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어 프레이리가 300여 노동자들과 함께 45일 만에 문해교육을 완성하면서 프레이리의 사회운동, 교육 방법은 더욱 유명해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플레이라는 브라질 교육부의 ‘국가의 문해교육 프로그램’의 수반 직위를 담당하게 된다. 1964년 2백만여 명의 비문해 노동자들을 위한 24,000개의 문화 써클이 결성된다. 그 결과 플레이라는 그해 군사 쿠데타 세력이 구세요. 정권을 전복시키고 추방당하게 된다.
멜엔 데지(Melendez, 1999) 는 프레이리의 생애에서 사상의 인식론적 전환지점에 대한 분석에서 세 시기를 제시한다. 첫 번째 시기는 1964년까지다. 이 시기에는 해방신학과 실존주의의 영향이 강하였다. 두 번째 시기는 1965년부터 1975년까지는 세계 곳곳에서의 여러 실천적 경험을 통하여 그의 마르크스주의적 경향을 강화하게 된다. 플레이라는 1964년도에는 잠시 칠레에서 머물며 기독교 민주당 정권하에서 좌파 세력의 분열과 이데올로기 투쟁을 가까이서 지켜보게 되고 칠레의 좌익혁명 운동의 조직과 활동 그리고 생활개선 운동을 경험하게 된다. 프레이리의 초기 민중적 정체성, 급진적 휴머니즘과 프레이리가 접하게 된 마르크스주의와의 비판적 통합기라 할 수 있다. 이후 마르크스주의는 정치적 실천의 조직의 원리에서 많은 영향을 주었고 계급이라는 범주를 이전보다 마르크스적인 범주에 가깝게 사용한다. 1970년대는 하버드로 건너가 글을 쓰며 강의를 하였으며 중남미 각 나라를 돌며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앞장섰다. 이때 신 마르크스주의 경향을 강화하게 된다. (1978년) 당시의 아프리카는 중남미와는 달리 직접적인 식민 지배에 대한 독립투쟁, 계급투쟁, 사회주의 혁명의 과정에 있었으며 플레이라는 이런 과정에 문해교육을 통해서 도움을 주거나 사회주의 혁명 이후의 국가 재건 과정에 대해 조언하기도 했다. 이런 경험들이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의 정치적 성격이 보다 강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존재에 대한 질문들이 경직된 마르크스주의에 매몰되는 것을 언제나 경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프레이리의 사상의 낭만주의적, 자유주의적 성격에 대해 비판받고 있다.
해방신학은 1950년대부터 태동하여 남미에서 토착화된 신학으로서 지배층에 맞서 민중들과 함께하며 서구 신학의 기득권을 옹호하는 보수성을 비판하고 남미의 사회적 모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응하며 싸우며, 성서에 대한 민중의 입장에서 재해석과 교회 역할에 대해 상황에 맞는 새로운 해석에 참여하여 해방신학은 프레이리의 사상의 한 축을 형성하게 된다.
남미 해방신학은 1950년대의 서구 개발주의의 낙관적 전망이 무너지면서 종속 경제의 문제에 대한 비판과 서구신학의 전통에서 독립하여 남미 자체의 토착화된 신학의 필요성은 보수적 서구 신앙에 대한 극복으로서 해방신학의 태동을 요구받게 된 것이다. 해방신학은 교회와 세속과의 경계 허물기로부터 출발하여 현실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투쟁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서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해방신학에서 인간의 원죄를 서구신학에 반하여, 인간의 죄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며, 그 죄의 현 실태가 인간에 의한 인간에 대한 착취, 압제적 구조, 지배와 노예 구조 등의 근본적 인간 소외를 말한다(Gutierrz), 이런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프레이리의 사상은 교회가 민중과 함께 사회적 모순에 대해서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신학과 마르크스주의는 인식론적으로 대립하지만, 프레이리의 사상에서 해방신학과 마르크스주의와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김성재 교수는 해방신학과 마르크스주의와 관계를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로 해방신학이 현실 상황 분석의 수단으로 마르크스의 이론을 사용하는 측면이 있다. 즉 마르크스주의의 무신론과 유물론적 세계관에 대한 해방신학의 입장은 신마르크스트의 입장을 따르며, 마르크스주의의 이데올로기와 그의 과학적 방법을 분리하여 마르크스주의의 방법론을 차용한다. 두 번째로 해방신학이 사회주의를 대안적 사회체제로 선택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회주의가 자본주의보다 형제애, 정의, 평화의 그리스도굑 원리와 일치한다고 판단하고 사회주의를 현실정치의 대안으로 선택하며 형제애에 기반한 공동 소유를 원시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모델로 본다. 다시 말해서 남미의 해방신학 중 상당한 그룹이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하고 그 대안으로 남미 고유의 기독교적 사회주의 체제를 지향한다(Gutierrez). 변화이기에 이전에 인간 주체의 의식화를 통한 생산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상부구조 수준에서의 의식화 작업이다. 이런 해방교육의 혁명이론에서의 이론적 정당화를 알뛰세의 ‘모순의 중층결정과 상부구조의 자율성’ 테제에서 얻는다.
C. 파울로 프레이리의 교육사상(1)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사상의 기초가 되는 인식론과 지식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레이리의 인식론과. 인식론은 그의 교육이론, 학습이론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일관성 있는 원리에 의해서 전개되고 있다. 프레이르의 인식론의 핵심은 기존의 이원론을 극복하려는 ‘변증법적’ 접근이다. 즉 ‘비이원론적’ 관점에 근거한다. 프레이리의 이론적 핵심 개념들은 이론과 실천, 의식과 세계, 주관성과 객관성, 자아와 타자 등과 같이 이원 쌍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원 쌍의 개념들은 둘 중 하나가 우월하고 하나는 열등하다는 식의 고전적 개념이 아니라 대응 쌍의 개념들은 서로를 개념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전제조건으로 잘하는 ‘이항 전제’의 관계에 있다. 즉 상호 전제적 역할을 한다.
상호 전제와 관계성을 탐구하는 인식 과정에서 각 요소들 사이의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분할이 필요하다. ‘거리두기’와 ‘분할하기’는 물리적인 거리나 구분이 아니라 동시에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탐구하기 위한 분할이다. 거리두기와 분할의 과정이 없는 인식은 총체적 인식이 아닌 추상화된 관념적 인식일 뿐이다. 그래서 프레이리의 인식주체와 인식 대상의 ‘거리두기’ 즉 객관화 적업을 통해서만 세계와 인간의 변증법적 관계에 접근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프레이리의 ‘거리두기’와 ‘분할하기’는 그 자체가 완결된 목적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위한 과정이다. 실례로 성인 문해 학습의 경험에서도 학습자가 학습 자료를 분할하고 대통합시키는 작업을 거듭하면 할수록 자신과 관계된 근본적 모순의 핵심에 보다 가까이 접근해 나감을 보여준다. 여기에 얻은 총체적 인식은 다시 구체적 상황에 대한 이해로, 그 구체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총체적 맥락으로 나아가는 나선형적 순환을 통해서 심화.확장되어 나간다. 지식 습득행위는 행동으로부터 성찰로 행동에 대한 성찰로부터 새로운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변증법적 운동이다.
프레이리의 지식 습득 과정은 접근의 과정에 있는 것이지 결코 고정된 상태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온전한 인식은 없기에 비판적 문제 제기를 통해서 끊임없이 진리에의 점근 과정에 있다. 비판적 성찰이 없다면 궁극성도 없다. ‘문제 제기’의 과정은 현재 시점에서의 진리성에 대한 판단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면서 계속되는 실천적 진리추구와 과정을 가능하게 한다. 진리성의 문제는 현재 시점에서의 진리와의 대응 또는 관념적 적합성의 유지 정도가 아닌 현재의 자신의 인식 내용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적 문제 제기’의 정도에 달려 있는 것이다. 변화이기에 이전에 인간 주체의 의식화를 통한 생산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상부구조 수준에서의 의식화 작업이다. 이런 해방교육의 혁명이론에서의 이론적 정당화를 알뛰세의 ‘모순의 중층결정과 상부구조의 자율성’ 테제에서 얻는다.
D. 파울로 프레이리의 교육사상(2)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사상의 기초가 되는 인식론과 지식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레이리의 인식론과. 인식론은 그의 교육이론, 학습이론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일관성 있는 원리에 의해서 전개되고 있다. 프레이르의 인식론의 핵심은 기존의 이원론을 극복하려는 ‘변증법적’ 접근이다. 즉 ‘비이원론적’ 관점에 근거한다. 프레이리의 이론적 핵심 개념들은 이론과 실천, 의식과 세계, 주관성과 객관성, 자아와 타자 등과 같이 이원 쌍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원 쌍의 개념들은 둘 중 하나가 우월하고 하나는 열등하다는 식의 고전적 개념이 아니라 대응 쌍의 개념들은 서로를 개념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전제조건으로 잘하는 ‘이항 전제’의 관계에 있다. 즉 상호 전제적 역할을 한다.
상호 전제와 관계성을 탐구하는 인식 과정에서 각 요소들 사이의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분할이 필요하다. ‘거리두기’와 ‘분할하기’는 물리적인 거리나 구분이 아니라 동시에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탐구하기 위한 분할이다. 거리두기와 분할의 과정이 없는 인식은 총체적 인식이 아닌 추상화된 관념적 인식일 뿐이다. 그래서 프레이리의 인식주체와 인식 대상의 ‘거리두기’ 즉 객관화 적업을 통해서만 세계와 인간의 변증법적 관계에 접근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프레이리의 ‘거리두기’와 ‘분할하기’는 그 자체가 완결된 목적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위한 과정이다. 실례로 성인문해 학습의 경험에서도 학습자가 학습 자료를 분할하고 대통합시키는 작업을 거듭하면 할수록 자신과 관계된 근본적 모순의 핵심에 보다 가까이 접근해 나감을 보여준다. 여기에 얻은 총체적 인식은 다시 구체적 상황에 대한 이해로, 그 구체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총체적 맥락으로 나아가는 나선형적 순환을 통해서 심화.확장되어 나간다. 지식 습득행위는 행동으로부터 성찰로 행동에 대한 성찰로부터 새로운 행동으로 이루어지는 변증법적 운동이다.
프레이리의 지식 습득 과정은 접근의 과정에 있는 것이지 결코 고정된 상태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온전한 인식은 없기에 비판적 문제 제기를 통해서 끊임없이 진리에의 점근 과정에 있다. 비판적 성찰이 없다면 궁극성도 없다. ‘문제 제기’의 과정은 현재 시점에서의 진리성에 대한 판단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면서 계속되는 실천적 진리추구와 과정을 가능하게 한다. 진리성의 문제는 현재 시점에서의 진리와의 대응 또는 관념적 적합성의 유지 정도가 아닌 현재의 자신의 인식 내용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적 문제 제기’의 정도에 달려 있는 것이다. 2 프레이리의 교육 실천은 제 3세계 성인 문해학습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여기서 기존의 문해교육을 극복하기 위해서 새로운 문해 학습 교재 제작 원리, 문해교육 진행원리를 제시한다. 교재의 제작에서 민중이 사용하고 있는 단어, 어휘, 구문법을 수집히거 지역민의 주제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중심 단어를 추출한다. 문해교육 교재인 ‘편찬물’ 제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편찬물의 내요. 선정과 조직 과정에 문해 학습자가 주체적으로 참여자가 된다. 제작된 편찬물은 ‘문화 서클’이라는 학습 공동체에서 교사와 학습자 간의 대화적 방법을 통해서 학습자의 구체적인 경험과의 관계 속에서 토론된다. 여기서 하나의 흐름을 발견하게 되는데 ‘편찬물에 대한 학습자의 거리 두기– 편찬물에 제시된 요소에 대한 해독- 관계성에 대한 인식- 인식의 총체적 획득- 인식론적 순환을 통한 심화 확장이라는 학습 과정이 프레이리의 인식론의 과정과 동일함을 보여준다.
프레이리는 인간의 실존적 문제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폐 다 고지]에서 인간과 인간화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인간의 실존적 의미와 가치를 찾는 인간화의 과정은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것들에 대한 인식과 투쟁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러한 인간화의 과정은 세계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투쟁, 즉 프락시스(Praxis)를 통해서 챙취된다. 내면화된 억압자의 모습을 떨치고 세계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갖고 실천하는 과정을 인간화의 과정이라고 한다. 프레이리는 인간의 의식의 단계를 ‘준변화불능적.마술적 의식’,‘순진한 변화가능적 의식’, ‘비판적 의식’으로 구분했다. 이런 변화 과정의 의식화는 반드시 행동을 촉진시키고 행동을 동반한다. 진정한 사고는 실천과 구분되지 않으며 행동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프락시스(praxis)는 의식화를 구성하는 전제적 개념이다. 프락시스의 결과는 늘 비판적인 사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프락시스는 억눌린 자들의 새로운‘존재 이유’가 된다. 이런 의식화는 인간을 책임 있는 주체로서 역사과정에 개입할 수 있게 해줌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자기 확인을 추구하게 하며 광신으로부터 자유하게 한다.
E. 프레이리의 사회사상
프레이리의 인식론은 그의 교육관과 혁명관에서 잘 드러난다. 그의 교육과 혁명은 멈출 수 없다. 멈추는 순간 교육의 본질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프레이리는 분명하게 현재를 고정시키려는 우파와 미래를 고정 시키려는 좌파를 반대한다. 끓임없는 문제제기를 통해서 의식화 과정으로서의 교육은 새로운 현실 창조 과정 속에서 중단되지 않으며 언제 어디서나 계속되어야 한다. 그래서 교육을 말하면서도‘유토피아’를 말한다. 그래서 프레이리의 교육론이 지나치게 관념론적이고 초월적 현실관에 의존하고 있다고 비판받은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토피아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교육은 고정불변의 산물이 아니기에 고정하고 상정하는 순간 교육이라는 유토피아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교육 자체가 영구하듯이 유토피아도 종결된 것이 아니기에 끊임없지 지향하는 과정에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듯 유토피아적 성격을 포기한다는 것은 미래가 인간에게 더 이상 의미를 던져 줄수 없기 때문이다. 프레이리의 유토피아는 교육과 혁명의 영속성이라는 본질적 지점을 설명하려는 하나의 담론이다.
프레이리는 인간의 주체성과 실천을 강조하면서 경제적 영역에서의 투쟁보다 문화적 차원의 투쟁을 강조한다. 토대와 상부구조의 관계에서 알뛰세의 ‘중층결정론’을 받아 들이면서 그람시의 헤게모니와 문화적 실천과 흐름을 같이 하면서 상부구조에서의 문화적 실천을 중요시 한다. 문화적 지배의 측면에 대한 분석과 이에 대한 대항 문화적 실천을 중요시 한다. 그래서 교육 실천은 곧 문화적 실천이었다.
F. 파울로 프레이리의 [페다고지: Pedagogy] 비판
프레이리의 교육이론은 제3세계에서의 교육 실천이기 때문에 제1세계에서의 적용은 어려울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텍스트보다 컨텍스를 중요시하는 교육이론이라 정치적이면서도 이데올로기적인 것이어서 시대 상황에 따라 급격하게 변할 수 있다.
프레이리의 교육이론은 교육 실천이 주로 성인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이다. 학습자의 자발성과 학습의 전 과정에서 참여가 성인교육과는 달리 학교 교육이나 청소년 교육에서는 적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프레이리의 교육이론은 정치적 문해교육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서 문해교육 이외의 다른 영역에는 적용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육원리가 아니라 학습 방법론적인 차원에서만 받아들일 때 이론은 사라지고 기술적 공학 주의에 의해서 왜곡될 수 있다. 프레이리의 교육활동에 대한 비판에서 개량주의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다. 문화적 활동으로서의 교육이 과연 체제 변화에 실질적으로 동력을 얻을 수 있겠는가?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에서 이론 내적 문제와 비일관성에 대해 문제는 대부분 분석적이고 체계적으로 기술되기보다는 중첩된 내용이 많다.
프레이리의 사상은 마르크스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르크스주의와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게 사실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버거(Berger)는 포스트 모더니즘적 입장에서 프레이리의 교육사상을 비판했는데 문해교육은 정치적 의식의 확장과 개인의 정치활동을 위한 유용한 도구일 뿐이라고 혹평했다.
G. 나오는 말
위와같이 프레이르의 교육사상과 철학을 비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 교육의 문제점인 기득권층을 위한 경쟁교육/ 빈부격차/ 문화적 상황배제/소수자들의 차별/ 반노동자적인 착취…등은 파울로 프레이리의 교육사상과 철학에서 중요한 도전 이슈로 삼았다는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텍스트는 변하지 않아도 컨텍스트는 변한다. 아직 ‘자유의 실천’이 되지 못한 교육의 현장에 대해서, 여전히 존재하는 억압과 피억압의 암흑한 세계에, 희망을 주는 교육 페러다임(paradigm)이다. 페다고지가 지향하는 것은 더 완숙하고, 덜 추하며, 더 정의로운 세상을 위한 해방교육을 주창한다.
작금의‘쳇GPT시대’에 촉진자(교사)와 학습자간의 대화식 교육은 오늘날 큰 반향이 되고 있지 않은가? 프레이리가 우리에게 준 선물이다.
얼마전 필자는 파울로 프레이리의 교육사상 개념인 ‘패다고지’ 에 대해서 폭넓게 원론적 교육 개념에 대해서 정리한 적이 있었다. 서평을 읽기 전에 먼저 읽고 참고하면 조금은 도움이 될 것이다.
발제: 전현구 목사 (시드니시나브로 회원)
독서토론모임 시드니시나브로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시대의 지성 이어령과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라스트 인터뷰’
김지수 (지은이), 이어령 / 열림원 출판 / 2021.10.27.
들아가는 말
삶고 죽음은 선물이다. 받고 싶어서 받는 선물이 아니라, 어느 날 삶이라는 보따리에 쌓여서 전해지는 선물이다. 이 선물 보따리는 받고 싶다고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 받고 싶지 않다고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주어지면 받아야 하고 빼앗기면 놓아야 하는 선물이다.
코로나 시즌을 마무리 하며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어도 가는 것은 순서가 없다는 말을 실감했다. 이 시점에 이어령 선생님의 글을 위로를 넘어서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
시대의 지성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어령 선생님의 글은 한줄한줄이 선물과 같다. 삶의 종착역에서도 지치지 않는 열정을 가지고 자신이 얻은 것들을 나누고 떠나려는 의지는 놀라웠다. 일부러 종착역에 현금이 잔뜩 든 가방을 두고 내리는 키다리 아저씨와 같았다.
이 책은 빨리 읽고 덮어 놓을 책이 아니라, 천천히 읽고 마음에 담아 놓을 책이다. 눈으로만 읽는 책이 아니라, 가슴에 담아 놓을 책이다.
사람은 떠나지만 그의 흔적은 남는다는 말에 책임감을 느낀다. 삶의 발자취는 누구나 있지만 그 발자취를 따라 갈만한 사람은 많지 않다.
매일매일이 선물이라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덤으로 얻은 선물이 될 것을 확신하며 깊어가는 호주의 가을에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 아래의 내용은 알라딘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책소개
이 시대의 대표지성 이어령이 마지막으로 들려주는 삶과 죽음에 대한 가장 지혜로운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오랜 암 투병으로 죽음을 옆에 둔 스승은 사랑, 용서, 종교, 과학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우리에게 “죽음이 생의 한가운데 있다는 것”을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로 전달한다.
지난 2019년 가을, 「김지수의 인터스텔라」 ‘이어령 마지막 인터뷰’ 기사가 나가고, 사람들은 “마이 라이프는 기프트였다”라고 밝힌 이어령 선생님의 메시지에 환호했다. 7천여 개 이상의 댓글이 달리는 등 큰 화제를 모은 이 인터뷰는 그의 더 깊은 마지막 이야기를 담기 위한 인터뷰로 이어지며 이 책을 탄생시켰다. 1년에 걸쳐 진행된 열여섯 번의 인터뷰에서 스승은 독자들에게 자신이 새로 사귄 ‘죽음’이란 벗을 소개하며, ‘삶 속의 죽음’ 혹은 ‘죽음 곁의 삶’에 관해 이야기한다.
스승 이어령은 삶과 죽음에 대해 묻는 제자에게 은유와 비유로 가득한 답을 내놓으며, 인생 스승으로서 세상에 남을 제자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낸다. “유언의 레토릭”으로 가득 담긴 이 책은 죽음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스승이 전하는 마지막 이야기이며, 남아 있는 세대에게 전하는 삶에 대한 가장 지혜로운 답이 될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 스승이 필요한 당신에게
1. 다시, 라스트 인터뷰
어둠과의 팔씨름 / 마인드를 비워야 영혼이 들어간다 / 죽음은 철창을 나온 호랑이가 내게 덤벼드는 일 / 니체에게 다가온 신의 콜링 / 자기 머리로 생각하면 겁날 게 없다 / 가장 중요한 것은 비어 있다 / 풀을 뜯어먹는 소처럼 독서하라
2. 큰 질문을 경계하라
라스트 혹은 엔드리스 / 유언이라는 거짓말 / 큰 질문을 경계하라 / 대낮의 눈물, 죽음은 생의 클라이맥스 / 글을 쓰면 벼랑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다 / 밤에 쓴 편지는 부치지 않는다
3. 진실의 반대말은 망각
쓸 수 없을 때 쓰는 글 / 죽음이란 주머니 속에서 달그락거리는 유리그릇
4. 그래서 외로웠네
운 나쁜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해 / 지혜의 시작은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 운명을 느낀다는 것은 한밤의 까마귀를 보는 것
5. 고아의 감각이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솔로몬이라는 바보, 바보들의 거짓말 /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는 즐거움 / 폭풍우 친다고 바다를 벌하는 사람들 / 중력을 거스르고 물결을 거슬러라
6. 손잡이 달린 인간, 손잡이가 없는 인간
‘케이스 바이 케이스’에 진실이 있다 / 나는 타인의 아픔을 모른다 / 손잡이 달린 인간, 손잡이가 없는 인간
7. 파뿌리의 지옥, 파뿌리의 천국
어쩌면 우리는 모두 파 뿌리 / 구구단은 무조건 외울 수밖에 없어 / 밤사이 내린 첫눈, 눈부신 쿠데타 /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8. 죽음의 자리는 낭떠러지가 아닌 고향
이익을 내려면 관심 있는 것에서 시작하라 / 인생은 파노라마가 아니라 한 커트의 프레임 /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9. 바보의 쓸모
탕자, 돌아오다 / 바보로 살아라, 신념을 가진 사람을 경계하라 / 꿈은 이루는 게 아니라 지속하는 것 / 성실한 노예의 딜레마
10. 고통에 대해서 듣고 싶나?
카오스 앞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 나는 물독인가 두레박인가 돌멩이인가 / 상처를 가진 자가 활도 가진다 / 비극 속에서만 보이는 영혼의 움직임 / 인간은 지우개 달린 연필 / 인간은 천사로 죽을까 악마로 죽을까
11. 스승의 눈물 한 방울
눈물은 언제 방울지는가 / 인사이트는 능력 바깥의 것 / 빛이 물처럼 덮치듯 신도 갑작스럽게 우리를 덮친다 / 영성에서 지성으로
12. 눈부신 하루
누가 짐승이 되고 누가 초인이 될까 / 인간은 타인에 의해 바뀔 수 없다 / 욥 그리고 자족의 경지
13. 지혜를 가진 죽는 자
작은 죽음들의 시간, 정적 / 네 개의 눈 / 지혜자 혹은 광인
14. 또 한 번의 봄
의식주의 언어, 진선미의 언어 / 돈의 길, 피의 길, 언어의 길 / 누가 누구를 용서할 것인가
15. 또 한 번의 여름-생육하고 번성하라
뱀 꼬리와 묵은지 / 리더는 사잇꾼, 너와 나의 목을 잇는 사람들 / 목자, 인류 최고의 생명자본
16. 작별인사
새벽에 가장 먼저 머리를 쳐드는 새, 부지런함이 아닌 예민함 / 가장 슬픈 것은 그때 그 말을 못한 것 / 마지막 선물
에필로그
라스트 인터뷰 “죽음을 기다리며 나는 탄생의 신비를 배웠네”
책 속에서
P.8
지금 이 순간, 스승이 필요한 당신에게 이 특별한 수업의 초대장을 건넨다. 위로하는 목소리, 꾸짖는 목소리, 어진 목소리…… 부디 내가 들었던 스승 이어령의 목소리가 갈피마다 당신의 귓전에도 청량하게 들리기를.
P.47
“영화가 끝나고 ‘the end’ 마크가 찍힐 때마다 나는 생각했네. 나라면 저기에 꽃봉오리를 놓을 텐데. 그러면 끝이 난 줄 알았던 그 자리에 누군가 와서 언제든 다시 이야기가 시작될 수 있을 텐데. 그때의 라스트 인터뷰가 끝이 아니고, 다시 지금의 라스트 인터뷰로 이어지듯이. 인생이 그래.”
P.86
“한밤에 까마귀는 있고, 한밤의 까마귀는 울지만, 우리는 까마귀를 볼 수도 없고 그 울음소리를 듣지도 못해. 그러나 우리가 느끼지 못할 뿐, 분명히 한밤의 까마귀는 존재한다네. 그게 운명이야. 탄생, 만남, 이별, 죽음…… 이런 것들, 만약 우리가 귀 기울여서 한밤의 까마귀 소리를 듣는다면, 그 순간 우리의 운명을 느끼는 거라네.”
P.120
“우리는 영원히 타인을 모르는 거야. 안다고 착각할 뿐. 내가 어머니를 아무리 사랑해도 어머니와 나 사이에는 엷은 막이 있어. 절대로 어머니는 내가 될 수 없고 나는 어머니가 될 수 없어. 목숨보다 더 사랑해도 어머니와 나의 고통은 별개라네. 존재와 존재 사이에 쳐진 엷은 막 때문에. 그런데 우리는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위선을 떨지. ‘내가 너일 수 있는 것’처럼.”
P.155~156
“죽기 직전, 눈앞에는 인생이 파노라마 필름처럼 펼쳐진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아닐세. 인생은 파노라마가 아니야. 한 커트의 프레임이야. 한 커트 한 커트 소중한 장면을 연결해보니 파노라마처럼 보이는 거지. 한 커트의 프레임에서 관찰이 이뤄지고, 관계가 이뤄져. 찍지 못한 것, 버렸던 것들이 나중에 다시 연결돼서 돌아오기도 해.”
P.241
정작 나는 선생님과 나의 대화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 없었다. 선생님도 우리의 대화가 어떻게 정리될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생각하는 자로서 그는 항상 용기백배했고, 듣고 정리하는 자로서 나는 가끔 허둥거렸다. 어떤 피드백도 없는 상황에서, 나는 매주 화요일 그가 가장 귀한 것을 줄 거라 믿었고, 그는 내가 가장 ‘촉촉한’ 이어령을 써낼 것이라 믿었다.
P.291
“바다에 일어나는 파도를 보게. 파도는 아무리 높게 일어나도 항상 수평으로 돌아가지. 아무리 거세도 바다에는 수평이라는 게 있어. 항상 움직이기에 바다는 한 번도 그 수평이라는 걸 가져본 적이 없다네. 하지만 파도는 돌아가야 할 수면이 분명 존재해. 나의 죽음도 같은 거야. 끝없이 움직이는 파도였으나, 모두가 평등한 수평으로 돌아간다네. 본 적은 없으나 내 안에 분명히 있어. 내가 돌아갈 곳이니까.”
발제: 임기호 목사 (시드니시나브로 총무)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