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감상
리투아니아의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 (Jascha Heifetz)의 “Violin Concerto” Beethoven
야샤 하이페츠 (Jascha Heifetz, 1901년 2월 2일 ~ 1987년 12월 10일)는 리투아니아 태생의 유대계 바이올린 명인이다. 그는 20세기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들 중 한 명으로 꼽힌다.
○ 생애 및 활동
1901년 2월 2일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태어났다. 다만 출생년도에는 논란이 있어 1899년이나 1900년생이란 주장도 있다. 어머니가 비범함을 부각시키려 나이를 줄였다는 추측도 있다. 1903년부터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으며 5살 때부터 ‘Vilna’s Imperial School of Music’에서 일리야 말킨에게 바이올린을 배웠다. 7살때 코브노 (오늘날 리투아니아의 카우나스)에서 펠릭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를 연주하였다. 1910년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들어가 레오폴트 아우어 밑에서 수학하였다. 1911년 4월, 하이페츠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야외 음악회에서 25,00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연주를 하여 선풍적인 반응을 얻었다. 1912년 10월 28일 하이페츠는 아르투로 니키쉬가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닉과 협연하였으며 오스트리아와 스칸디나비아를 여행했다.
1917년 10월 27일 처음으로 일 미국 카네기 홀에서 첫 공연을 하였고, 반주자 앙드레 베노이와 함께 11월 9일 첫 음반을 냈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 순회공연을 시작하였고; 세계 방방곳곳에 런던과 파리 (1920), 오스트레일리아는 1921년에, 아시아 (일본&조선)는 1923년에 첫 공연을 하였다.
1919년, Samuel Chotzinoff가 반주자가 되었으며, 1925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였고, 같은해 Isidor Achron 로 반주자가 바뀌었다.
1929년 남미에서 데뷔하였고, 1930년, 디니쿠의 Hora Staccato 녹음을 발표했다.
1934년, Emanuel Bay가 반주자가 되었으며 러시아에서 17일 동안 13개의 공연을 하였는데, 이는 모국으로의 유일한 귀환이었다.
1936년, Lawrence Tibbett와 함께, 미국 음악가 협회 (American Guild of Musical Artists) 설립을 도왔다.
1939년, They Shall Have Music에서 영화 데뷔 하였으며, 1942-44 – 미군을 위한 USO 투어로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전선에서 8주동안 45개의 공연을 했다.
1947부터 20달의 휴가를 가졌다. 1954년, Brooks Smith가 반주자가 되었고, 1958-59 – UCLA 의 “Regents’ Professor”가 되었다.
1961년,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교수가 되고, 같은해 LA에서 하이페츠&피아티고르스키 공연 시리즈를 시작해, 나중에는 샌프란시스코와 뉴욕까지 확대되었다.
1972년, LA 음악센터에서 마지막 공연을 가졌고, 이는 동시에 마지막 레코딩이 되었다. 은퇴 후 어깨에 문제가 생겨 수술을 했으며 그 후에 다시는 바이올린을 우리가 아는 하이페츠 특유의 그 자세로 들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사망하기까지 노년에는 지역이나 방문하는 음악가들과 실내 음악을 즐겼으며,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이 계약을 끝냈으나, 사적으로는 사사를 계속했다.
낙상과 그 후유증으로 인해 1987년 12월 10일, LA Cedars-Sinai Medical Center에서 사망하였다.
○ Jascha Heifetz “Violin Concerto” Beethoven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 61 by Ludwig van Beethoven
Allegro ma non troppo (Cadenza: Auer-Heifetz)
Larghetto
Rondo (Allegro)
Jascha heifetz, violin
Hollywood Bowl Orchestra
Serge Koussevitzky, conductor
02.IX.1950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