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감상
우크라이나 출신의 미국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Vladimir Samoylovych Horowitz, 1903 ~ 1989)의 슈만의 꿈 (SchumannTraumerei)
블라디미르 사모일로비치 호로비츠 (Vladimir Samoylovych Horowitz; 러: Владимир Самойлович Горовиц; 1903년 10월 1일 / 구력 9월 18일 ~ 1989년 11월 5일)는 우크라이나 출신의 미국 피아니스트이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피아니스트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Vladimir Samoylovych Horowitz)
.본명: 블라디미르 사모일로비치 호로비츠 (Vladimir Samoylovych Horowitz)
.출생: 1903년 10월 1일, 우크라이나 키예프
.사망: 1989년 11월 5일, 미국 뉴욕
.국적: 미국
.부모: 소피 호로비츠, 시메온 호로비츠
.배우자: 완다 토스카니니 호로비츠 (1933 ~ 1989)
.자녀: 소니아 토스카니니 호로비츠
.형제자매: 레지나 호로비츠
.명연주: 쇼팽의 〈스케르초 1번〉, 〈바르카롤>, <소나타 2번>, 〈마주르카〉,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와 〈오베르만의 골짜기〉,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과 <피아노 소나타 2번>, 스크랴빈의 <연습곡>, <전주곡> 및 〈시곡〉과 〈소나타 9번〉,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등
○ 생애 및 활동
키에프 태생으로, 키에프 음악원에서 블루멘펠트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소년 시절부터 범상치 않은 천재적 재능을 발휘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및 러시아 혁명 직후의 혼란기에 고국을 탈출, 1923년 독일 제국 바이에른주 뮌헨에서 피아니스트 첫 데뷔하였으며 이듬해 1924년 독일 제국 베를린에서 피아니스트 정식 데뷔하였고, 이후 영국 런던과 프랑스 파리에서 압도적인 호평을 받았다. 1928년 도미하여 성공적으로 데뷔하고, 곧 명지휘자 토스카니니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결국 그의 딸 완다와 결혼까지 하게 된다. 그 후 구미에서 활약했으나 건강이 좋지 못하게 되어, 1953년에는 완전히 무대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1965년 5월에는 카네기 홀에서 부활 독주회를 개최하여 무대에 다시 복귀하였다. 그는 몸이 다소 허약하였지만 손가락 끝은 날카로워 명확한 터치에 능하고, 다이내믹하다는 평을 들었다. 또 옥타브의 연속, 세련되면서도 박력있는 음악적 효과를 빚어내는데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하지만 한 작곡가의 작품에 몰입하여 작품을 연주하지 않은 것은 그의 약점으로 항상 지적받았다. 템포, 리듬은 빈틈없이 꼼꼼했지만, 후기에는 건강 상태 때문에 점차로 음악에 주관이 강한 낭만적 기분이 강렬하게 나타나, 과거의 확고한 템포나 리듬이 자유로이 다뤄지는 경향이 점점 심해졌다.
명연주는 쇼팽의 〈스케르초 1번〉, 〈바르카롤>, <소나타 2번>, 〈마주르카〉,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와 〈오베르만의 골짜기〉, 슈만의 〈어린이의 정경〉,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과 <피아노 소나타 2번>, 스크랴빈의 <연습곡>, <전주곡> 및 〈시곡〉과 〈소나타 9번〉, 스카를라티의 소나타 등이다.
- 연주 성향
호로비츠의 트레이드 마크는 크게 세가지로 알려져 있다: 가장 난해한 패시지를 장난처럼 가볍고 깔끔하게 넘기는 테크닉, 십여개 단위로 쪼갠듯한 셈여림 조절, 그리고 천둥같은 포르티시모. 숙련된 거장 피아니스트들도 힘들어하는 패시지들을 페달없이 여유있게 스타카토로 가볍게 연주한다.
20세기의 뛰어난 피아니스트들 중 한 명인 호로비츠는 기교와 표현력 모두 균형을 잃지 않는 연주를 보여준다. 그는 작곡을 “해석”한다기 보다는 스스로의 색채를 입히는 연주자다. 개성이 너무 강해서 그가 친 모든 곡들은 마치 도장을 찍은듯이 호로비츠라는 걸 알기가 쉽다. 다만 그의 손에 거치는 모든 곡들에 그 특유의 다이내믹과 페달 사용법이 묻기 때문에 원작자의 의도에 충실해야하는 몇몇 작곡의 연주는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그의 쇼팽이 대표적인 예다. 절제미와 페달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현대의 쇼팽 해석과는 다른, 페달없이 메마른 사운드가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온다. 물론 뛰어난 테크닉과 강렬한 색채 덕분에 “호로비츠의 연주”로서 들을 가치는 있다고 평가받는다. 또 이렇게 음색을 자유자재로 다룬 그답게 모든 콘서트에서 자신만의 피아노와 전속 피아노를 가지고 다녔다. 첫 서방 데뷔때 스타인웨이를 고른 이후로 특별제작된 스타인웨이만을 썼다.
러시아의 대표적이라 할 만한 피아노 음악 작곡가들, 즉 스크리아빈, 라흐마니노프, 프로코피예프를 레코딩한 호로비츠의 연주는 지금까지도 독보적이다. 특히 리스트 곡에 대해선 화려함과 박력으로 전문가와 일반 대중들에게 크게 환호받았다. 이 외에도 전성기 때 자신의 기교적인 면모를 보여주기 위해 리스트의 헝가리 랩소디 몇곡에 붙인 자신만의 카텐차, 소품 편곡, 수자의 ‘성조기여 영원하라’에 붙인 매우 화려하고 기교적인 편곡 등이 레퍼토리에 있었고, 소품을 좋아하여 말년에는 표현력이 드러나는 슈만의 소곡, 모츠코프스키의 소품곡, 쇼팽의 마주르카, 스카를라티 곡 등을 자주 연주하기도 했다. 특히 스카를라티 곡에 대한 재발견으로 주목받기도 하고, 말년에 그가 연주한 슈만의 소품곡 중 어린이 정경의 트로이메라이는 그의 라스트 트레이드마크로 그 아름다움과 색채감에 있어서 최고의 절찬을 받는 곡이기도 하다.
- 신이 내린 천재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Vladimir Hrowitz)
20세기를 주름잡았던 가장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있었다.
바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rowitz, 1903~1989)다.
페달 밟기를 유독 싫어했던 그는 페달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도 끊기거나 어색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완벽한 연주를 하였다.
그의 연주를 듣는 이로 하여금 과연 호로비츠의 손가락이 몇 개인지 의심하게 할 정도였다.
그러한 독특한 연주 기법은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고, 피아니스트들 사이에서도 그의 명성은 하늘을 찔렀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Vladimir Hrowitz), 사실 그는 피아니스트로서 명성을 떨치기까지 정말로 어느날 갑자기 신이 하늘에서 내려주신 것처럼 순탄치는 않았다.
6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그의 마지막 피아노 스승인 펠릭스 블루멘펠트는 “너는 더 이상 배울 게 없으니 어떤 스승도 모시지 말라”고 하였다.
본래 작곡가가 꿈이었지만, 러시아 혁명으로 집안이 망하면서 소년가장으로서 생계형 피아니스트의 삶을 살게 된다.
1925년 어느날, 베를린에서 열린 공연에서 연주회 직전에 갑작스레 병이 난 피아니스트 함부르크를 대타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하게 된다.
그 당시 지휘자였던 유겐 팝스트는 그 초인적인 힘에 너무나 놀라서 자신의 귀를 믿지 못해 그의 손을 확인하려고 연주 도중 지휘대에서 내려오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그 날을 계기로 그의 공연 티켓을 구매하기 위한 치열한 줄서기 광경이 펼쳐졌고 라흐마니노프를 비롯한 당대 유명 피아니스트들이 그의 연주를 듣고 경의를 표했으며 여러 라이벌들을 무릎 꿇리며 패배감을 안겨주기도 하였을 만큼 그의 연주 기법은 압도적이고, 카리스마 있으며, 상상을 초월했다
(호로비츠의 연주 기법에서 보이는 손가락 모양, 거의 밟지 않는 페달 등은 사실 일반적인 연주법을 반대로 거스르는 것이었기 때문에 현재까지도 호불호가 갈리는, 즉 ‘안티팬’이 있는 편이다).
넘치는 인기로 인하여 바쁜 일정 소화와 은퇴를 반복했던 그는 1989년 심장마비로 사망하기 직전인 11월 1일에 마지막 연주 영상을 남긴다.
○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대표 연주곡 ‘슈만의 꿈’ (SchumannTraumerei)
– Horowitz plays SchumannTraumerei in Moscow
– In April 1986 Horowitz hold a concert in Moscow.
로베르트 슈만 (1810~1856)의 ‘꿈 (Träumerei)’ 이 곡은 슈만이 1838년 클라라와 결혼하고 가장 행복하던 시기에 완성한 피아노 모음집 ‘어린이 정경 (Kinderszennen) op.15’의 제7번 곡이다.
‘어린이 정경’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어른을 위한 동화 (童話)라고 봐야 하는 음악이다. 이 곡 최고의 연주자는 20세기 전반부를 평정했던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1903 ~ 1989)’이다.
연주회가 있던 그날은 1986년 4월 20일 일요일 오후 4시 비내리는 모스크바였다. 호로비츠는 고향을 떠난지 60년 만에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 대강당 (볼쇼이홀)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음향효과가 좋다고 소문난 ‘볼쇼이홀 (Bolshoi Hall)’ 3개층 1,800석에 달하는 자리는 입추의 여지가 없는 만석을 기록했고, 밖에서는 표를 구하지 못한 수 백명의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서성대고 있었다.
영상물에 보이는 노신사의 눈물에서 알 수 있듯 엄청난 파장의 감동을 불러온 바로 그 음악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