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곡감상
주세페 베르디 (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 1813 ~ 1901)의 가극 ‘팔스타프’ (Falstaff)
팔스타프 (Falstaff)는 주세페 베르디가 작곡하고, 셰익스피어의 희곡 《윈저의 즐거운 부인들 (The Merry Wives of Windsor)》을 기초로, 아리고 보이토가 대본을 작성한 3막의 오페라이다. 이는 베르디의 마지막 오페라로, 그가 살면서 지은 26개의 오페라 중에서 유일한 희극 작품이다. 또한 이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배경으로 작성한 베르디의 3번째 작품으로, 영어 희곡, 맥베스의 첫 번째 각색 작품처럼, 팔스타프는 푸가 양식인, 유명한 “Tutto nel mondo è burla” (세상의 모든 것이 농담이로다)를 포함한다. 팔스타프는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 1부》와 《헨리 4세 2부》에도 등장한다.
1893년 2월 9일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카라 극장에서 초연되어 굉장한 성공을 거뒀다. 아이다와 오텔로 발표 직후의 거대한 인기만큼은 아니지만, 팔스타프는 그 세련됨과 멜로디의 창안으로 오랫동안 비평적인 총애를 받았다.
○ 등장인물
존 팔스타프 경 – 늙고 뚱뚱한 기사바리톤
바르돌프- 팔스타프의 부하 테너
피스톨- 팔스타프의 부하 베이스
포드 – 부유한 시민 바리톤
앨리스 포드 – 포드의 부인 소프라노
앤- 포드 부부의 딸 소프라노
펜톤 – 앤의 구혼자 테너
카이우스- 의사로 또다른 앤의 구혼자 테너
피이기 부인 – 포드의 이웃 여자 메조소프라노
퀴클리 부인 – 카이우스의 하녀 알토
○ 줄거리
– 1막
.가터 여인숙
의사인 카이우스가 갑자기 들이닥쳐 팔스타프가 자신의 집에 침입해서 하인들을 두들겨 팼으며 팔스타프의 시종들인 바르돌포와 피스톨라가 자기에게 술을 먹이고 지갑을 훔쳐갔다고 몰아세운다. 팔스타프는 자신이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의 두 시종들은 부인한다. 카이우스는 화를 내며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다가 팔스타프의 욕설과 함께 쫓겨난다.
돈없는 빈털터리 뚱뚱보 기사 팔스타프는 재정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다가 윈저 거리의 부유한 부인들인 알리체 포드와 메그 페이지를 유혹할 계획을 세운다. 그는 두 부인들 모두에게 연애편지를 써 바르돌포와 피스톨라에게 전하도록 시킨다. 그러나 그들이 명예를 들먹이며 거절하자 팔스타프는 진정한 명예가 어떠한 것인지 일장 연설을 한 후 두 하인들을 쫓아낸다.
.포드가의 정원
알리체 포드, 그녀의 딸 난네타, 메그 페이지와 퀴클리 부인이 한 자리에 모인다. 팔스타프에게서 받은 편지를 꺼내 보던 알리체와 메그는 그가 이름만 바꿔 같은 글을 보낸 것을 알게 되고 그에게 복수하기로 결심한다.
두 부인이 사라지면 포드씨가 카이우스, 바르돌포, 피스톨라와 펜톤 등 흥분한 남자 네 명과 함께 등장한다. 카이우스는 팔스타프에 대해 화를 내고 바르돌포와 피스톨라는 팔스타프가 부인을 유혹하려 한다고 경고를 한다. 난네타와 사랑에 빠진 젊은이 펜톤은 포드에게 그 계획을 설명한다.이로 인해 포드는 팔스타프의 계획과 모든 정황을 다 알게 된다.
알리체 포드, 난네타와 메그가 다시 등장하고 펜톤이 난네타를 발견한다. 모두가 무대를 떠난 후 난네타와 펜톤은 둘만의 짧은 시간을 가진다. 그 때 갑자기 등장한 여인들로 인해 둘의 밀회는 방해를 받는다. 펜톤은 몸을 숨기고 그들이 퀴클리 부인을 팔스타프에게 보내 알리체와의 밀회를 약속하기로 하는 것을 엿듣는다. 펜톤은 남자들이 나타나기 전 난네타와 잠깐 다시 만난다. 남자들 역시 나름대로의 복수를 계획하고 여자들과 남자들 양쪽 다 자신들의 계획을 구체적으로 짜기 시작한다.
– 2막
.가터 여인숙
바르돌포와 피스톨라는 팔스타프에게 돌아가 잘못을 뉘우치는 척 한다. 퀴클리 부인이 도착한다. 그녀는 팔스타프에게 그를 향한 사랑으로 불타는 알리체가 남편이 없는 2시에서 3시 가이에 그를 찾아와 만나고 싶어한다고 전한다. 또한 그녀는 메그 역시 그를 사랑하고 있으나 그녀의 남편이 자주 집을 비우지 않는다고 한다. 팔스타프가 자신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을 때 바르돌프가 또 다른 사람이 찾아왔다고 알린다.
그의 이름은 폰타나로 실상은 포드가 가명을 대고 찾아온 것이다. 그는 팔스타프에게 와인과 금을 주면서 알리체 포드를 사랑하고 있으나 그녀를 유혹하려는 자신의 노력이 모두 헛되었다는 말을 한다. 팔스타프가 먼저 성공하고 나면 자신이 유혹하기 더욱 쉬울 것이니 그녀를 얻기 위해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팔스타는 자랑스럽게 그녀의 바보 같은 남편이 없는 동안 밀회를 갖기로 이미 약속했다고 밝히면서 기꺼이 응한다. 그는 폰타나가 질투로 인한 분노로 야단을 치도록 남겨둔 채 사라진다. 멋지게 차려 입은 팔스타프가 다시 나타나고, 두 남자는 예의를 차리며 인사를 나눈 후 나간다.
.포드 가의 어느 방
여자들이 팔스타프의 방문을 준비한다. 퀴클리 부인이 그가 오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면서 그와 만났던 이야기를 한다. 알리체는 하인들에게 빨래 바구니를 가지고 오라고 시키고 나서 난네타가 울고 있는 것을 알아챈다. 그녀의 아버지가 의사인 카이우스와 그녀를 결혼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세명의 여자들은 질겁하고 알리체는 난네타에게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안심시켜준다.
알리체가 류트를 연주하고 있을 때 팔스타프가 도착한다. 그는 자신이 날씬했을 때에는 노포크 공작의 수습기사였다고 자랑하면서 유혹하려고 한다. 그가 알리체를 껴안으려 할 때 퀴클리 부인이 급히 달려들어와 메그가 도착했다고 알린다. 팔스타프는 휘장 뒤에 숨는다. 메그는 알리체가 연인을 숨겨놓고 있다고 생각한 포드가 미친 듯이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러나 포드는 진짜로 남자들을 이끌고 집으로 온다. 그는 빨래 바구니를 비우면서 곳곳을 수색하기 시작하고 카이우스와 펜톤, 바르돌포와 피스톨라는 온 집안으로 흩어진다.
겁에 질린 팔스타프는 메그에 대한 사랑을 말하면서 구해달라고 한다. 그녀는 그를 바구니 속에 집어 넣고 빨래감으로 그를 덮는다. 열띤 수색이 벌어지고 있을 때 난네타와 펜톤은 휘장 뒤에서 잠시 함께 있을 순간을 포착한다. 입맞춤 소리가 나자 포드는 알리체와 팔스타프가 숨어있다고 짐작한다. 난네타와 펜토는 동시에 그들의 사랑을 밝히고 메그와 퀴클리 부인은 팔스타프를 계속 숨기려 노력한다. 포드는 주위 상황을 정리한다. 휘장이 떨어지면서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 드러나자 화가 난 포드는 펜톤에게 나가라고 명령하고 계속 수색을 한다. 알리체는 하인들을 불러 빨래 바구니를 창 밖으로 던져버리라고 한다. 모든 사람들이 다시 모이고 한바탕 웃고 난 알리체는 포드에게 저 아래 템즈 강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보여준다.
– 3막
여인숙에 돌아오기 전에 팔스타프는 우울한 기분으로 세상의 유감스러운 상태를 저주한다.
○ 이탈리아의 작곡가 ‘오페라의 거인’ · ‘오페라의 아버지’ 주세페 포르투니노 프란체스코 베르디 / 주세페 베르디 (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 1813 ~ 1901)
주세페 포르투니노 프란체스코 베르디 (이: 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 1813년 10월 10일 ~ 1901년 1월 27일)는 이탈리아의 작곡가로, 주로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그는 19세기 이탈리아 오페라의 가장 영향력있는 작곡가이다. 베르디의 작품은 세계 각지 유수의 오페라 극장에서 자주 상연된다.
– 주세페 포르투니노 프란체스코 베르디 (Giuseppe Fortunino Francesco Verdi)
.출생: 1813년 10월 10일, 이탈리아 레 론콜레
.사망: 1901년 1월 27일, 이탈리아 밀라노
.배우자: 주세피나 스트레포니 (1859 ~ 1897년), 마르게리타 바렛치 (1836 ~ 1840년)
.오페라 작곡가: 안토니오 기슬란초니, 아리고 보이토,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
이탈리아를 넘어 세계 오페라사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거장이어서 ‘오페라의 거인’ 내지는 ‘오페라의 아버지’로 불린다.
바로 직후에 등장한 후배 자코모 푸치니와 더불어, 19세기와 20세기 사이의 오페라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거장이다.
베르디는 에밀리아로마냐 주 파르마현에서 1813년 10월 10일에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주로 행상들을 상대로 조그마한 여인숙 겸 잡화상을 경영하였다. 소년 시절의 베르디에게는 이른바 천재 소년다운 에피소드는 아무것도 전해져 있지 않지만 시골에서는 다소 그 음악적 재능이 눈에 띌 정도였다. 1832년 5월 18세 때 고향을 떠나 밀라노로 가서 밀라노 음악원의 입학시험을 보았으나 실패했다. 음악원의 판정은 첫째로 음악원의 입학 자격 연령을 4세나 초과한 것, 둘째는 그런데도 불구하고 베르디의 음악은 서투르고 소박하다 하였다. 결국 베르디는 밀라노에서 개인교수를 받아 작곡공부를 시작했다.
이듬해 베르디에게 기회가 왔다. 밀라노 악우협회 (樂友協會)가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를 연주했을 때 베르디는 대리 지휘자 역할을 했는데 이 때의 역량이 인정되어 악우협회로부터 오페라 작곡을 의뢰받은 것이다. 이리하여 최초의 오페라 ‘산 보니파치오의 백작 오베르토’가 작곡될 예정이었으나, 1834년에 베르디는 취직 차 일단 귀향하였고 1836년 아버지 친구의 딸과 결혼했다.
그러나 이 동안에도 밀라노의 화려한 오페라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어 1839년 처자를 데리고 밀라노로 이주하였다. 이 해 ‘산 보니파치오의 백작 오베르토’가 밀라노 스칼라극장에서 초연되어 다소의 성공을 거뒀다. 26세 때의 일이었다. 유명한 악보 출판업자인 조반니 리코르디가 이 오페라의 출판을 신청해 왔고, 스칼라 극장에서도 3편의 오페라의 작곡을 의뢰해 왔다. 전도가 양양하였으나 아들과 처를 차례로 잃어버리고, 더욱이 스칼라 극장이 오페라 부파를 작곡해 줄 것을 요구했기에 구상을 변경해서 ‘하루 만의 임금님’을 작곡했으나 무참히 실패하여 자신을 잃은 베르디는 한때 작곡을 단념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친구들의 원조나 조언으로 베르디는 이 위기를 극복하여 1842년부터 1850년에 걸쳐 14곡의 오페라를 썼다. 이러한 작품 가운데에는 ‘제1회 십자군의 롬바르디아인’ (1843), ‘에르나니’ (1844), ‘잔 다르크’ (1845), ‘레냐노의 전쟁’ (1849) 등 애국적인 독립정신을 구가한 작품이 특히 뛰어났다. 당시의 이탈리아는 오스트리아나 프랑스의 압박하에 있어 완전한 독립국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물론 이탈리아 독립 운동의 외침도 점차 높아졌으나 베르디의 오페라는 그러한 이탈리아인들의 기분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베르디는 오페라에 애국주의를 주입함으로써 오페라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 시기의 베르디는 이탈리아인으로서 참으로 애국의 상징이었다.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국외로부터도 초청되어 런던이나 파리에서 자작을 상연하여 이탈리아 오페라의 대표적 작곡가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오늘날 이 오페라들은 베르디의 대표작으로는 생각되고 있지 않다. 사실 19세기 중엽의 이탈리아인들을 열광시킨 것은 사실이나 베르디가 참으로 원숙된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모습을 보인 것은 1850년 이후의 일이다.
1850년 37세의 베르디가 40일 동안 단숨에 작곡해낸 ‘리골레토’는 이듬해 3월 베네치아에서 초연되어 오페라 사상 드물게 보는 영광을 불러일으켰다. 베르디도 다소 자신을 가졌던 듯하며 특히 유명한 아리아 ‘여자의 마음’은 초연 전에 거리의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무대연습 때에도 가수에게 악보를 주지 않고 초연의 전야 겨우 악보가 주어졌다고 한다. 베르디의 생각대로 이 아리아는 일세를 풍미한 명가가 되었고 그의 명성은 더욱더 상승했다.
‘리골레토’ 이후의 베르디는 그의 독특한 선율미와 극적 구성력을 마음껏 구사하여 여러 가지 인간감정, 등장인물을 정확히 묘사하여 여러 가지 걸작을 세상에 내놓았다. ‘일트로바토레’ (1853), ‘라 트라비아타’ (1853), ‘돈 카를로스’ (1867), ‘아이다’ (1871), ‘오텔로’ (1887), ‘팔스타프’ (1893) 등이 그 주된 작품이다. 이와 같은 작품에서 전과 같은 애국주의는 후퇴하고 어떤 정황, 또는 환경에서의 ‘인간 그 자체’의 표현이 의도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인간성’을 오페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는 아마 모차르트와 비견할 만한 최고봉이라 하겠다. ‘리골레토’, ‘라 트라비아타’, ‘아이다’ 모두가 비극이나, 셰익스피어의 명작으로 된 ‘오텔로’는 비극 오페라의 최고봉이다. 셰익스피어가 쓴 인간성을 이만큼 훌륭히 오페라화할 수 있었던 작곡가는 아직까지 없다. 같은 셰익스피어로 된 ‘팔스타프’는 베르디의 유일한 희극이다. 여기에는 오페라 부파의 정신 승화, 고답적인 웃음의 교묘한 음악화가 보인다.
오페라 사상 이와 같은 불멸의 작품이 작곡된 시기에 베르디의 신변에도 잡다한 변화가 일어났다. 1859년 재혼하고 1861 ~ 1865년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국회의원이 되는 등 음악 이외의 일로 나날이 바빠졌다. 한편, 오페라 이외의 작품도 착수하였는데 최대 걸작은 이탈리아의 애국시인 알레산드로 만초니의 죽음을 애도하여 쓴 ‘레퀴엠’이다. 부와 명성에 둘러싸인 베르디는 1901년 1월 27일 밀라노의 한 호텔에서 향년 88세의 일생을 마쳤다. 이탈리아 오페라 사상 우뚝선 이 거장, ‘소리’를 위하여 일생을 건 이 거장의 죽음을 슬퍼하여 장례식에는 20만이 넘는 대군중이 참가하였다고 한다.
○ Falstaff
As the saying goes, “Shakespeare invented him, Verdi made him immortal” – and, surely, it was Bryn Terfel who defined him.
Terfel first sung Falstaff in 1999, and in 2021, the bass-baritone superstar returns once more to the role at Grange Park Opera.
In a production by Stephen Medcalf first shown in the 17th century Farnese theatre in Parma in 2011 with designs that are truly Falstaffian including sensational backcloths by Italian supremo Rinaldo Rinaldi.
Natalya Romaniw, Janis Kelly and Sara Fulgoni are the conniving wives of Windsor in Verdi’s only comic opera, written when the composer was 80, contradicting the adage that you can’t teach an old dog new tricks. The opera is a hymn to the irrepressibility of the human spirit. _ Grange Park Opera
참고 = 위키백과, 유튜브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