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귀도 레니 (Guido Reni, 1575 ~ 1643)의 ‘베아트리체 첸치’ (Beatrice Cenci)
귀도 레니 / Oil on canvas / 64.5 x 49cm / 1662년 / 로마 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 소장
‘베아트리체 첸치’ (Beatrice Cenci)는 중세 바로크 시대에 활동한 이탈리아 화가 귀도 레니 (Guido Reni, 1575 ~ 1643)가 남긴 작품이다.
작품 속 인물 베아트리체 첸치 (이: Beatrice Cenci, 1577년 2월 6일 ~ 1599년 9월 11일)는 16세기 로마에서 프란체스코 첸치라는 귀족의 딸로 태어났으나 불행하게도 14세에 아버지에게 능욕을 당하고 만다.
복수심에 불타오르던 베아트리체는 고통을 함께해 온 어머니와 오빠의 도움으로 짐승 같은 아버지의 심장에 시퍼런 칼날을 꽂는다.
일가족이 모두 존속살해 혐의로 체포됐으나 베아트리체는 어머니와 오빠를 보호하기 위해 혹독한 고문에도 비명 한 번 지르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그녀는 로마의 산 탄젤로교 (橋) 앞 광장에서 죄수복 차림으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 당시 그녀의 나이 불과 16세. 한 떨기 꽃봉오리가 한창 부풀어 오르던 시점이었다. 이 때문에 처형 당일 그녀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로마 시민들이 절세의 미녀가 채 피어나기도 전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비극적인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고 했다.
1599년 베아트리체가 사형당하기 직전 그녀를 보기 위해 많은 시민들이 모였는데, 여기에 화가 귀도 레니도 있었다.
죽음을 앞둔 그녀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 남기고 싶었던 귀도는 16세 소녀의 덧없는 모습을 아련하게 그렸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흐를 것 같아 보이는 아련한 눈빛, 매마른 피부, 수수한 의상 등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아름다움과 동시에 허탈함을 주었다.
베아트리체를 그린 귀도의 그림은 현재 ‘모나리자’,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와 함께 세계 3대 아름다운 여인 그림으로 여겨지고 있다.
죽음을 앞둔 베아트리체를 한 편의 그림으로 담은 귀도 레니. 그가 남긴 어떤 아름다운 그림보다 베아트리체의 그림이 깊이 있게 느껴지는 이유 또한 그녀의 스토리와 아름다움을 담았기 때문이 아닐까?
- 스탕달 신드롬 (Stendhal Syndrome)
흔히들 뛰어난 예술작품을 봤을 때 그 아우라로 인해 잠시 정신을 잃는 현상을 ‘스탕달 신드롬’ (Stendhal Syndrome)이라고 한다.
소설 ‘적과 흑’의 프랑스 작가 스탕달 (Stendhal, 1783 ~ 1842)이 산타 크로체 교회에 진열된 베아트리체의 초상화를 관람한 뒤 전시관 계단을 내려오는 도중 심장이 뛰고 무릎에 힘이 빠지는 특이한 경험을 했는데, 그 일로 연유된 말이다.
1817년 프랑스 작가 스탕달 (Stendhal)은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귀도 레니가 그린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을 보고 허탈감과 황홀경을 느껴 무릎에 힘이 빠지고, 현기증이 나는 현상을 겪었다고 한다.
그후 스탕달은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첸치 일가족’ 이란 글을 썼다.
한 심리학자가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책을 내면서 한때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 작가소개 : 귀도 레니 (Guido Reni, 1575 ~ 1642)
귀도 레니 (Guido Reni, 1575년 11월 4일 ~ 1642년 8월 18일)는 바로크 시대의 이탈리아의 화가다.
귀도 레니는 볼로냐의 음악가 집안 출신이었던 다니엘 레니 (Daniele Reni)와 기네브라 드 포찌 (Ginevra de’Pozzi) 사이에서 태어났다. 9살이 되던 해에 그는 데니스 칼배트 (Denis Calvaert)의 화실에서 견습생이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레니는 알바니 (Albani)와 도메니치노 (Domenishino)의 화실에 합류하게 된다. 그는 페란티니 (Ferrantini)라는 이름의 화가에게서도 미술 교육을 받았다.
– 귀도 레니 (Guido Reni)
.출생 : 1575년 11월 4일
.사망 : 1642년 8월 18일
.국적 : 이탈리아
.사조 : 바로크
.주요작품 : ‘성녀 마리아의 대관’,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 ‘오로라’
레니가 12살이 되었을 무렵, 칼배트의 제자 3명이 루도비코 카라치 (Ludovico Carracci : 안니발 카라치의 사촌)와 함께 칼배트 화실과는 라이벌 관계였던 다른 화실, Accademia degli Incamminati (“새로이 출항하는” 혹은 진보하는 학원이라는 뜻)로 전향하게 된다.
그들은 안니발 카라치를 추종했던 볼로냐의 화가들을 위해 훌륭하고 성공적인 학교의 토대를 건설하려 했다. 볼로냐의 타 화가들처럼 귀도 레니의 작품들은 폭넓은 주제를 이용하는 스타일이 많다.
베아트리체 죽음 직후인 1600년대부터 귀도는 동료 알바니와 함께 로마로 떠나 실제 안니발레 카라치의 파네스 성 (Farnese Palace)의 프레스코 장식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이후 인정을 받아 1604년까지 스폰드라토 추기경의 의뢰를 받으며 로마에서 지냈는데, 훗날 교황 바오로 5세의 눈에 띄어 교황 임기기간 동안 가장 위대한 화가로 인정받게 된다.
로마에서 유명해진 그는 여러 작업의뢰를 받았는데, 그중 가장 대표작은 다름 아닌 보르게세 가문 (House of Borghese)의 성 중앙 홀 천장에 그린 ‘오로라 (Aurora)’라는 작품이다. 이 성은 Palazzo Pallavicini-Rospigliosi에 위치해 있으며, Scipione Borghese 추기경을 위해 마련되었다.
이른바 ‘오로라 별장’이라고 불리는 성의 중앙 홀 천장에는 태양의 신 아폴로와 황금전차가 세상의 빛을 가져오면서 새벽의 신 오로라를 따라가고 있는 프레스코 그림이 그려져 있다. 2~30대의 귀도 레니는 이처럼 신화와 종교적인 주제를 가지고 미술이 가진 아름다움을 표현하는데 집중했다.
- 귀도 레니의 대표작들
Abduction of Deianira, 1620-1621. 켄타우로스 네소스에게 납치당하는 헤라클레스의 부인 데이아네이라
St Dominic’s Glory crowning the Arca di San Domenico.
The Archangel Michael, painted for the Capucins’ Church in Rome.
Penitent Magdalene, ca. 1635, Walters Art Museum, Baltimore.
David with the Head of Goliath (1605, Oil on canvas, 220 x 145 cm) at Musée du Louvre, Paris.
The Rape of Europa (1630s) at The National Gallery, London. It was made for King Władysław IV of Poland.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