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귀스타브 쿠르베 (Jean-Désiré Gustave Courbet, 1819 ~ 1877)의 ‘오르낭의 매장’ (A Burial at Ornans)
귀스타브 쿠르베 / 캠퍼스 유채 / 315cm X 660cm / 1849~1850년 / 파리 오르세이 미술관 소장
“천사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천사를 그릴 수 없다”고 했던 귀스타브 쿠르베 (Jean-Désiré Gustave Courbet, 1819 ~ 1877).
그는 미술사에서 손꼽히는 사실주의 화가로 1819년 스위스와의 국경 근처에 있는 프랑스의 프랑슈콩테 주의 오르낭이라는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오르낭의 매장”은 고향에서 행해진 별로 알려지지 않은 마을 사람의 매장 장면을 그린 것으로 이 그림은 프랑스 회화사에 사실주의라는 대 전환점을 가져온 문제작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오르낭의 매장”은 1848년에 그의 고향 마을에서 있었던 친척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그린 것이다.
가로가 거의 7m, 세로가 3m가 넘는 대작인 이 그림에는 총 46명이 등장하는데 실제 사람의 크기 정도의 인물들이다.
그동안 큰 그림에 등장한 인물들은 대부분 화가들이 실제의 사건을 그렸다 하더라도 등장인물과 장면은 화가들이 재창조한 것이었으나 쿠르베는 그 순간 실제로 참석했던 인물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
말 그대로 장례식일뿐 어떤 극적인 순간도 없다.
이들은 고인이 묻힐 무덤 주위에 몰려 있는데 이들의 직업이나 지위를 나타내는 의복이 다양한 계층이 모여있음을 암시하고는 있지만 특정한 사람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등장인물들의 시선 역시 제각각 다른 곳을 보고 있다.
쿠르베가 그린 “오르낭의 매장”은 프랑스의 역사화가로 유명한 자크-루이 다비드 (Jacques-Louis David, 1748 ~ 1825)의 그림 “나폴레옹의 대관식” (1806)과 많이 비교된다.
신고전주의를 확립한 화가로 꼽히는 다비드의 “나폴레옹의 대관식”은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한쪽 벽면을 거의 다 차지할 정도의 대작으로 보는 사람을 압도할 정도의 대작이다.
이 그림에는 약 200명에 이르는 등장인물들이 나오는데 그들의 시선은 모두 나폴레옹을 향해 있다.
그동안 왕이나 고귀한 사람, 또는 종교적인 성인들의 모습을 그린 대작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쿠르베가 그린 “오르낭의 매장” 앞에서 당황했다.
커다란 캔버스에 많은 사람을 등장시켜 그린 큰 그림은 역사화를 연상시킨다.
당시 프랑스의 화가들은 역사화가로 인정받고 역사화의 주문을 받아 그릴 수 있기를 희망했다.
이유는 안정된 수입과 함께 화단에서 인정을 받게되기 때문이었다.
쿠르베는 신화의 주인공이거나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이 아니더라도 역사화의 주제가 될 수 있고 자신의 고향마을 에 살았던 평범한 인물의 장례식도 역사화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해 역사화의 개념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자신이 “오르낭의 매장은 낭만주의의 매장”이라는 기록을 남겼을 정도로 이 그림에 자신감을 보였다.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는 결국 민중이기 때문에 이름없는 평범한 인물들의 죽음을 그린 그림도 충분히 역사화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이 그림을 1850년 살롱전에 출품하여 사실주의라는 새로운 미술사조를 연 것으로 평가받은 쿠르베는 1855년에 파리 만국박람회에 작품 14점을 출품하였는데 그중에서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작품 3점이 전시거부 되었다 .
그러나 쿠르베는 자신의 그림이 전시 거부가 된 이유를 정치적인 검열 때문이었다고 후원자들에게 호소하며 오히려 홍보의 기회로 이용하여 개인적인 전시공간을 마련하고 40여점을 전시하여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같은 그의 행동은 많은 화가들에게 용기를 주기도 했으나 그를 비방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