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하얀 십자가상 (White Crucifixion)
마르크 샤갈 / oil on canvas / 155×140cm / 1938년 / 시카고 미술관

프랑스의 화가 마르크 샤갈 (Marc Zakharovich Chagall, 1887년 7월 7일 ~ 1985년 3월 28일)은 러시아 비테프스크 출생으로, 추상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대의 화가다.
가난한 유대인 집안에서 일곱형제의 맏이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청어 도매 회사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집안 일을 돌보는 가난한 집안이었다.
어린 소년 샤갈은 그림 그리는 일에 뚜렷한 재능을 보였으며 꿈속에서 본 것들은 그림의 소재가 되어 날아다니는 사람, 돌아가신 할머니와 할아버지, 동물들 등 다양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실제의 모습과 닮지 않은 그의 이상한 그림들에는 관심이 없었다.
화가의 꿈을 꾸던 샤갈은 점원이나 회계원이 되길 바라던 어머니를 설득하여 마침내 미술학교에 진학했고, 1907년 페테르부르크에 가서 미술학교에 다닌 후, 10년 파리로 나와 아틀리에 “라 뤼슈”에서 그림공부를 하며 큐비즘 기법을 익혔다. 1911년 앙데팡당전에 첫 출품, 괴이하고 환상적이며 특이한 화풍으로 전위파 화가와 시인들을 놀라게 하였다.

‘하얀 십자가상 ‘(White Crucifixion)은 2차 세계 대전 발생전인 1938년에 완성되었다.
– 하얀 십자가상 (White Crucifixion)
.작가: 마르크 샤갈 (Marc Zakharovich Chagall, 1887 ~ 1985)
.위치: 시카고 미술관 (Art Institute of Chicago)
.제작 시기: 1938년
.장르: 기독교 미술
.시대: 초현실주의, 나이브 아트
.지원: oil on canvas
제2차 세계 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남긴 참혹했던 전쟁이다. 통상적으로 1939년 9월 1일 새벽 4시 45분 나치 독일군이 폴란드의 서쪽 국경을 침공하고, 소련군이 1939년 9월 18일 폴란드의 동쪽 국경을 침공함으로써 발발하였다.
한편에선 1937년 7월 7일 일본의 중화민국 침략, 1939년 3월 독일군의 프라하 진주 등을 개전일이 시작 되었다. 이 명화는 2차 세계 대전 전인 1938년에 완성되었다.

샤갈은 흰 십자가 주변에는 유대인의 이미지와 마을의 학살사건, 나치 독일군의 잔혹함을 그려 유대인의 2차 대전 전의 그 당시 위태로움과 불안함을 반영한 그림이다.
흰색은 색체의 근원은 빛이다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보통 광선의 영역으로 색을 모두합치면 우리 눈에는 흰색으로 보인다. 흰색은 눈에 보이는 가시광선 즉 빛의 색이다. 흰색은 물질적 지상의 세계를 초월한 색이며 검은색과 마찬가지로 죽음과 관계있지만 흰색으로 나타나는 죽음은 단지 물질의 죽음 일뿐이며 그와 동시에 영성이 깨어남을 나타내는 색이다. 종교에서는 신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흰색은 물질성의 완전한 소멸을 나타내지만 동시에 물질에 생명을 부여하는 의미를 지니며, 그 때문에 흰색은 영적인 치유를 하는 색이다.
흰 색의 빛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재난속에서도 구원을 희망하는 상징이다.
그리스도의 발밑으로는 원광안에 5대 초불이 그려져 있음은 독일, 러시아, 폴란드, 유대인, 오스트리아를 뜻하며, 박해와 죽음 또한 평화를 소망하는 기원 이다. 십자가 뒤로는 하늘에서 내리는 빛이 땅 끝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그 오른쪽 옆으로는 사닥다리가 십자가에 걸쳐 있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왼쪽 맨 밑으로는 유대인 복장 차림의 사람들이 공포에 질린 모습으로 방황하고 있으며, 바로 그 위로는 난민들이 배를 타고 미국으로 도망가는 모습을 그렸다. 언덕 아래로 유대인의 마을이 불타고 있으며 유대인들은 불속에서 사람들을 구하며 여기 저기 가구들이 널어져 있다. 그 마을에는 또한 러시아 병사들이 러시아 국기들을 들고 몰려오고 있다. 하늘에는 사람들의 옷 차림에서 구약 성서의 예언자들이 세상의 비극에 대하여 탄식하는 애통한 모습을 환상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오른쪽 아래 모퉁이에는 성경책이 활활 불 타고 있고 유랑하는 유대인들이 방황하고 있다.
십자가 오른쪽 뒤로는 유대인의 교회당에 나치 병사가 불을 지르고 거리에는 성체와 촛대 그리고 성경책들과 의자가 아무렇게나 마구 내던져 있으며 교회 지붕 뒤로는 독일 국기가 그려져 있다.
샤갈은 이 작품을 개인적인 관점으로 그리스도의 고통 받던 십자가을 통하여 2차대전 전 수난과 박해을 당하던 유대민족의 비참한 운명속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흰 색의 눈부신 빛으로 구원의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독자적인 형태의 이미지를 풍부하고 자유롭게 박해와 구원을 표현한 그림이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장 좋아하는 미술 작품인 마르크 샤갈의 ‘하얀 십자가’
이 작품을 소장한 시카고 미술관 (Art Institute of Chicago) 측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016년 2월 10일 제5회 이탈리아 전국 가톨릭교회 대회 참석차 피렌체를 방문한 길에 피렌체 대성당 맞은 편에 있는 성요한 세례당에서 가장 좋아하는 애호작 마르크 샤갈의 ‘하얀 십자가 (Crucifixion)’를 직접 관람했다고 한다.

러시아 유대계 출신의 ‘파리파’ (Ecole de Paris) 화가 샤갈이 그린 이 유화 작품은 지난 2015. 9. 24일부터 2016.1.24일까지 피렌체의 스트로치 궁전에서 열리는 종교미술 특별전 ‘신성한 아름다움 (Divine Beauty) 반 고흐부터 샤갈과 폰타나까지’에 전시했으며, 가톨릭 교회 대회 기간 (11월 9 ~ 13일) 한시적으로 성 요한 세례당에 전시됐다.
교황은 아르헨티나 추기경 시절, 샤갈의 ‘하얀 십자가’를 애호작으로 꼽으면서 “십자가 처형을 잔혹하지 않고 희망적으로 표현했다. 평정심을 가지고 고통을 묘사했다. 내게는 샤갈이 그린 그림 중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라고 말한 바 있다. 교황은 샤갈을 ‘유대인이면서도 예수의 존재를 믿은 사람’으로 설명했던 것이다.
한편 프란체스코 교황은 2013년 가톨릭 매체 ‘내셔널 가톨릭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큰 울림을 준 화가로 미켈란제로 드메리시 카라바조를, 가장 좋아하는 그림으로 샤갈의 ‘하얀 십자가 처형’을 꼽은 바 있다.
이 그림은 샤갈 (Marc Chagall, 1889 ~ 1985) ‘흰색 십자가 처형’ (1938년)으로 못 박힌 예수는 고통받는 예수의 자화상이자 고통받는 사람들의 표상과 같은 것이다. 나치의 만행으로 죄 없는 사람이 이유 없이 고통당하고 죽어야만 했던 비참하고 암울한 유대인의 현실에 대응하여 아무 말 없이 이 상황을 지켜보며 세상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는 예수님의 슬픈 침묵.
별로 예수님의 고난을 자신의 고난으로 느끼지 못하고 심지어 그 옛날 죄 없는 예수를 죽음의 낭떠러지로 떠밀었던 그들에게 일 순간 다가선 십자가 책형이 남의 일화가 아닌 바로 자신과 자기민족에게 들이 닥친 고난으로 십자가에서 벌어진 예수님의 죽음을 바로 자신의 죽음이다.

그림 우편 상단의 화염에 휩싸인 유대 회당 위 리투아니아 국기를 보면 당시 리투아니아에서 수십만명의 유대인들의 수난을 연상할 수 있듯이 샤갈 (Marc Chagall, 1889 ~ 1985)은 러시아에서 난 리투아니아계 유대인 화가로 그는 1889년 오늘의 리투아니아 국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러시아의 비테브스크라는 조그만 촌락의 가난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해산물 창고의 사무원, 모친은 잡화상 점원으로 일했다고 하며, 9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그는 찌들린 가난을 겪었던 자기 고향의 모든 것을 일생 동안 사랑했으며, 이 고향에서의 사랑과 추억이 분노와 원망이 아닌 그의 작품의 아름답고 환상적인 소재가 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유대 박해가 최고조에 이를때 세계 곳곳에서 어이없이 벌어진 유대인이 겪는 고통을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비유로 그림을 그렸다.
하얀 십자가 처형은 터번을 두르고 유대인처럼 전통 기도복인 탈리스를 걸치고 있는 예수가 그림 중심에 십자가 처형을 받고 있는 점에 대하여 여타의 십자가에 못박힌 작품들과 특별한 차이점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 주변에는 당시 나치의 유대인에 대한 파괴와 만행을 그렸다.
그림의 오른쪽 위에는 나치 군인이 유대회당 (시너고그)을 난입하여 불을 지르고 파괴와 약탈을 서슴지 않고 있다.

왼쪽으로는 붉은 공산당 기를 보면 유추해 볼 수 있듯이 나치의 폭압에 이은 구 소련 공산당의 유대인 탄압을 의미합니다. 역시나 마을 전체가 불 타고 있고 노아의 홍수를 만나 탈출을 시도하고 있는 큰 배, 내 팽겨진 경전 토라 (Torah), 토라를 부둥켜 안고 황급히 달아나는 자, 심지어 유대민족의 대예언자 초록 옷을 입은 엘리야 마저 민족을 떠나 탈출을 감행하고야 맙니다. 유대 랍비들과 선조들의 혼령들은 예수의 머리 윗 부분에서 방황하면서 민족사의 아비규환을 절규하고 있다.
한편 그림을 통해서 종교가 아닌 샤갈의 가슴을 느껴볼 수 있는데, 경건한 유대교 신자로 살면서 예수를 통해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찾았기에 종교의 간극을 벗어난 하늘의 사람으로서 그의 작품은 유대의 느낌을 지울 수 없으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고통 받는 유대인의 자화상으로서 유대교와 기독교를 가로막고 있는 울타리를 허물고 예수의 사랑과 평화를 통해 만방에 드러난 하나님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경계를 벗어나 하나님을 확인하는 용기있는 그림이 아닐 수 없다.
정 중앙에 예수는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수난을 침묵으로 저항하고 있으며, 대학살로 죽어가는 유대인들의 비극을 자신의 죽음처럼 처절하게 견디고 있다 . 샤갈은 그렇게 죽은 예수에게서 민족의 동질성을 느꼈으며, 이 시대의 십자가 죽음을 민족사적 죽음으로 연대하고 있으며, 온통 사방에 시시각각 밀려오는 피비린내 나는 한 인간의 고통 앞에서 숨가빠오지만 예수의 발 밑에 촛불은 여전히 불빛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예수의 죽음이 곧 부활을 의미하듯이 가해자와 피해자를 서로 번갈아 가면서 피묻은 십자가를 가슴에 묻는 비극을 종식시킨는 수단으로 십자가에 못박힌 슬픈 예수의 마음을 보여주며 사무친 원한으로부터 민족의 생명력과 사랑의 기운이 들불처럼 불타오르기를 간절히 바라는 소망의 현존을 이 그림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 그림은 틀에 박혀 갑갑한 현실 속에서 현대인을 해방시켜 아름다운 상상과 꿈의 세계로 안내 하는가 하면 저마다의 십자가에 매달린 영혼을 일깨워 “당신은 사랑이다.” 라고 태초에 잊어버렸던 님의 생명의 원기와 사랑의 색깔을 되찾아 내고 있다.
“인생에서나 예술에서나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 우리가 아무 스스럼없이 사랑이라는 말을 입 밖에 낼 수 있을 때, 모든 것은 변하게 된다. 진정한 예술은 사랑 안에 존재한다. 이것이 바로 나의 기교이고, 나의 종교이며, 수천 년 전부터 우리에게 전해 온 새롭고도 오래 된 종교이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