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소개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Goya)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Christ on the Cross)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Goya), 유화, 225x154cm, Museo del Prado, Madrid, 1780년

고야의 작품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Christ on the Cross)에는 커다란 나무 십자가에 예수님께서 매달려 계신다. 머리 위에는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여진 패가 히브리, 로마,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양손과 발에는 커다란 못이 박혀져 있다.
머리에 쓰고 계신 가시관과 못 박힌 손과 발을 보면, 가시관 사이사이로 가시에 찢긴 살과 피가 보이고, 커다란 못과 손바닥 사이에서는 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양발에 박힌 못과 발 사이에서도 피가 흘러 나무 십자가 아래까지 흐르고 있다.
예수님의 얼굴을 보면 너무 아파서 입을 벌리고 있으며, 심지어 눈에 눈물이 흥건히 고여 눈 주위와 뺨을 적시고 있는 것이다. 그의 그림 속의 예수님은 가시관과 대못 때문에 아파하시고 고통스러워하고 계신다.
눈물이 흥건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두 눈은 하나님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라고 말씀하고 계신 듯하다.
고야는 어두움과 밝음의 대조를 통하여 돌아가시기 직전의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배경을 어둡게 함으로써 예수님과 십자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의 수많은 ‘십자가상의 예수그리스도’ 그림과는 달리, 고야의 그림 속에서 나는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그리스도를 보고 있다.
* 스페인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판화가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Goya, 1746 ~ 1828)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Goya, 1746년 3월 30일 ~ 1828년 4월 16일)는 스페인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이자 판화가이다. 고야는 궁정화가이자 기록화가로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18세기 스페인 회화의 대표자로 특히 고전적인 경향에서 떠나 인상파의 시초를 보인 스페인 근세의 천재 화가로 알려져 있다. 파괴적이고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과 대담한 붓터치 등은 후세의 화가들, 특히 에두아르 마네와 파블로 피카소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Goya)
.본명: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 이 루시엔테스 (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
.출생: 1746년 3월 30일
.사망: 1828년 4월 16일
.직업: 화가, 판화가, 석판화가, 인그레이버, 에칭화가
.스승: José Luzan
.제자: Antonio de Brugada, Agustín Esteve
.사조: 낭만주의
.주요 작품: La maja desnuda, San Bernardino of Siena preaching before Alfonso V of Aragon, The Dog, Portrait of Don Ramón Satué, 1808년 5월 3일, The Clothed Maja, Caprichos
“El sueño de la razón produce monstruos.”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눈을 뜬다. _ 프란시스코 고야 (Francisco José de Goya y Lucientes, 1746년 3월 30일 ~ 1828년 4월 16일)
스페인의 화가 고야는 인간의 광기와 어두운 면이 드러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젊은 시절에는 로코코 양식의 영향을 받아 화사한 귀족적 화풍을 가진 궁정 화가였지만, 병으로 후천적 청각장애를 얻으면서부터 외부인과의 접촉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집에서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당시에 그린 그림은 캔버스 위에 그린 것이 아니라 집에 있던 하얀 벽위에 그렸는데 검은색 바탕, 기괴할 정도로 일그러진 사람들의 형상과 얼굴, 우울한 주제의식 때문에 ‘검은 그림’이라고 불린다. 또한 병 재발의 불안감과 더불어 당시의 유럽 전역에서 일어나는 침략과 전쟁에서 인간의 광기를 지켜보며 인간에게 극도의 혐오감을 가지게 된다. 결국 비관주의가 그의 화풍을 바꾼 것이다. 그 후 꾸준히 사회비판적 작품들을 내게 되었는데 주로 평범한 사람들의 무지한 모습과 그것을 이용하는 높으신 분들의 암적인 모습을 그렸다.

대중들에게는 ‘마드리드, 1808년 5월 3일’이라는 작품이 가장 유명하다. 이 그림은 ‘1808년 5월 2일, 마드리드’ 그림과 한 쌍으로 제작되었는데 그 그림은 이집트의 맘루크 용병대를 앞세운 나폴레옹 군대가 마드리드 시내로 쳐들어와서 시민들을 학살하자 시민들이 그에 용감하게 맞서 싸우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어지는 드리드, 1808년 5월 3일그림은 앞서 있었던 전투 이후 저항했던 마드리드 시민들과, 나폴레옹이 자신의 동생을 왕위에 앉히자 멀쩡한 왕자인 아스투리아스 왕자 (후일 페르난도 7세)를 제쳐두자 시위를 일으킨 시민들을 향해 폭력 진압을 하는 프랑스군을 그려낸 그림으로 당시 진압으로 수천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고야의 의도는 ‘인간을 향한 인간의 폭력의 고발’이다. 진압당하는 시민들의 표정만 보이고 진압군의 표정을 보여주지 않는 것 또한 의도한 것이라고 한다. 감정 없이 잔혹한 짓을 일삼는 진압군을 묘사하려는 의도였다.
그 외에 유명한 작품으로 ‘옷을 입은 마야’와 ‘옷을 벗은 마야’가 있다. 사실 이 작품은 뒷 이야기 때문에 더 유명해진 사례이다. 이 그림의 모델이 누구인가의 논쟁은 당시부터 지금까지 이어진다.
당시 누드화를 배척하는 교황청의 소환으로 재판정에도 회부되었으나 워낙 고야가 유명한 화가였고 이 그림은 그 당시 실권을 쥐고 있었던 고도이 총리의 의뢰를 받아서 만들어진 후 총리가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처벌은 면하고 원래 있던 누드화에 옷을 덧칠하는 조건으로 마무리되었다.
‘아들을 먹어치우는 사투르누스’도 꽤 인지도 있는 작품이다. 자신의 지배권을 빼앗길 것이라는 예언을 두려워한 사투르누스가 공황에 빠진 채로 아들들을 먹어치우는 장면을 그린 상상화로, 집에 그려놓은 벽화를 캔버스에 옮겨 전시 중이다.
동기가 된 또 다른 그림 ‘거인’이라는 작품에 대하여 2000년대에 지속적으로 위작 논란이 있었다. 고야의 작품이 아니라 고야의 아들 Javier Goya가 그린 것이라는 주장이 일었으나, 2009년에 스페인 대학들과 다수의 전문가들이 고야의 작품으로 인정함으로써 오롯이 고야의 작품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고야의 작품들은 대부분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마드리드 5월 3일’, ‘옷을 입은/벗은 마하’, ‘사투르누스’ 모두 프라도에 있다.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