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인문학교실, “기독교 사상의 바다 속으로 풍덩 1” 나눠
손호현 저 ‘인문학으로 읽는 기독교 이야기’ 4장 나눔 … 다음모임은 8월 1일 (화) 오전 10:30 [7월 4일 발제전문 및 영상 포함]
매월 첫째 화요일 “홍길복 목사와 함께하는 ‘목회자인문학’ 모임”은 지난 7월 4일 (화) 오전 10시 30분, 호주미래대학 파라마타캠퍼스에서 주교재 ‘인문학으로 읽는 기독교 이야기’ (손호현 저) 4장 철학 “기독교 사상의 바다 속으로 풍덩”을 임운규 목사 (호주성산공동체교회)의 발제로 나눴다.
임운규 목사는 발제 서두에 “만약 신이 파악되지 않는다면 그밖에 무엇이 파악하기 위해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겠는가?”라고 말한 헤겔, “아무도 우리에게 신을 보여주지 않았다. … 보지못하면 알지도 못한다.” 말한 비트겐슈타인을 언급하며 기독교 사상의 의미를 되새겼다.
‘인간을 만든 신, 인간이 만든 신?’ 부분에서는 크세노파네스 (만일 소와 말과 사자가 손을 가지고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인간이 하는 일을 행할 수 있다면 말은 신의 모습이 자신을 닮도록, 소는 소의 모습으로, 그리고 신의 몸을 그들 각자의 형태에 따라서 만들었을 것이다.), 헤겔의 소외론, 포이에르바하의 투사론, 마르크스의 소외론 확대로 사회경제적 소외의 결과 강조한 종교아편론, 프로이트의 신화적 투사 등에 대해 나눴다.
‘신의 눈동자, 인간의 눈동자’ 부분에서 헤겔이 ‘신과 인간을 이분법을 통해 고립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미숙한 사유’라 말한 것과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하나님이 나를 보는 눈동자는 내가 하나님을 보는 눈동자이다. 나의 눈동자와 그의 눈동자는 하나이며 동일한 것이다.”라며 ‘진리는 전체이다.’라고 했다.
‘칸트의 카메라’ 부분에서 칸트는 인간의 인식구조를 12범주로 구성해 실재계와 현상계를 구분하는 것을 언급하며 종교비판을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자신의 신에 대한 인식이 정확히 신의 실재에 상응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고 본다.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고 했다.
‘침묵과 언어 사이에서’ 부분에서 부정신학과 긍정신학을 언급하며 아우구스티누스는 “만약 당신이 그것을 이해했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이 아니다.” (부정신학)라고 말한 것을 언급한다. 루돌프 오토는 “모든 개념과 이미지 너머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신성함의 경험을 ‘노미누제의 경험’이라고 불렀다.”라며 발제를 마치고 질의응답의 시간을 가졌다. 4장의 이어진 내용은 다음달 모임에 나눌 예정이다.
‘홍길복 목사와 함께하는 목회자인문학교실’ 다음 모임은 8월 1일 (화, 오전 10:30) 호주미래대학 파라마타캠퍼스 (L1 / 239 Church St Parramatta NSW 2150)에서 모인다.
다음은 7월 4일자 발제전문이다.
[목회자인문학교실 7월 4일자 발제전문] ‘인문학으로 읽는 기독교 이야기’ 3장 철학
기독교 사상의 바다 속으로 풍덩
테디 베어의 하나님
– 헤겔: “만약 신이 파악되지 않는다면 그밖에 무엇이 파악하기 위해 노력할 만한 가치가 있겠는가?”
– 비트겐슈타인: 아무도 우리에게 신을 보여주지 않았다. 보지못하면 알지도 못한다.
인간을 만든 신, 인간이 만든 신?
–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는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고 생각과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 크세노파네스: 만일 소와 말과 사자가 손을 가지고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인간이 하는 일을 행할 수 있다면 말은 신의 모습이 자신을 닮도록, 소는 소의 모습으로, 그리고 신의 몸을 그들 각자의 형태에 따라서 만들었을 것이다.
– 헤겔: 소외론
– 포이에르바하: 투사론
– 마르크스: 소외론 확대, 사회경제적 소외의 결과 강조해 아편론
– 프로이트: 신화적 투사
신의 눈동자, 인간의 눈동자
– 헤겔: 신과 인간을 이분법을 통해 고립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미숙한 사유 “한 종교는 신적 정신의 산물이다. 그것은 인간의 창작물이 아니라 인간 안에서 활동하는 신적인 작용과 신적인 창조적 과정의 결과적 생산물이다.”
–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하나님이 나를 보는 눈동자는 내가 하나님을 보는 눈동자이다. 나의 눈동자와 그의 눈동자는 하나이며 동일한 것이다.” “진리는 전체이다.”
칸트의 카메라
– 칸트: 인간의 인식구조를 12범주로 구성, 실재계와 현상계를 구분한다.
– 종교비판을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자신의 신에 대한 인식이 정확히 신의 실재에 상응한다고 주장할 수 없다.
– 비트겐슈타인: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 이성의 한계를 지키는 합리적인 태도이다. 동시에 우리는 자신의 유한한 개념들로 규정한 하나님 너머의 하나님, 신비로서의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침묵과 언어 사이에서
– 부정신학: 하나님에 대해 문화적으로 축적된 모든 종교적 관념을 제거하고, 순전히 초월적인 신관념으로 돌아가려는 흐름이다. 신의 신비로운 실재 앞에서 침묵해야한다.
– 긍정신학: 신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관념을 가능한 한 최대로 조직적인 언어로서 표현하고자 한다.
– 아우구스티누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이해했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이 아니다.” (부정신학)
– 루돌프 오토: 모든 개념과 이미지 너머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신성함의 경험을 ‘노미누제의 경험’이라고 불렀다. (압도적인 신성경험)
삼위일체론 : 1+1+1=1(?)
– 삼위일체론을 다른 종교들과 구별되는 기독교만의 독특한 신론이다. 단순 용어로만 정리가 쉽지않다.
– 도전적 용어 ‘페리코레시스’: 한국어로는 ‘상호내재’ 혹은 ‘상호침투’로 번역한다.
플라톤의 창조론, 기독교의 창조론
– 플라톤의 창조론: 그의 책 ‘티마이오스’에 “우주가 이미 존재하던 물질로부터 창조되었다.”
– 기독교의 창조론: 무로부터의 창조론, ①창조자와 피조물은 구분 ②신의 창조는 신의 권위 ③창조물을 선하게 여김 ④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혹은 이미지를 따름
당구 치는 하나님
– 토마스 아퀴나스: 합리적인 이성적 사유로 신이 존재한다는 것 증명할 수 있다.
– 아리스토텔레스: 부동의 동자
–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로 다섯 가지 증명의 길을 주장한다.
‘임금과 하녀’ : 왜 하나님은 인간이 되셨는가?
– 키에르케고르의 우화: ‘임금과 하녀’ 우화를 통해 인간이해와 사랑 표현한다.
– 빌 2:5~8의 케노시스 / 예수의 성육신, 도성인신 (요 1:14)
예수는 어떻게 구원하는가?
– 대표적인 세 이론: 희생이론 (하나님의 양), 승리이론 (죽음에서 부활, 죄없는 예수의 죽음으로 악마의 정당성 상실해 승리), 도덕적 모범 이론 (완벽한 인간상 제시, 도덕적 본보기는 19세기 유럽에 절대적 영향줌)
성령, 삼위일체의 신데렐라
– 거룩한 영 혹은 성령의 정확한 본질이나 역할 규정은 힘들다.
– 니케아신조 (325년): 간단히 “우리는 성령을 믿습니다.”
– 콘스탄티노플 회의 (381년): 추가, 발전되어 “우리는 성령을 믿습니다. 성령은 주님이시며 생명의 수여자이십니다. 그는 성부로부터 나옵니다. 그는 성부와 성자와 함께 경배를 받으시며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는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의 의미: ①성령은 생명의 숨 ②성령은 지금 우리와 함께하는 하나님의 존재양식 ③성령은 진리의 계시자 ④성령은 삶의 성화자 ⑤성령은 교회 공동체의 인도자
주기도문
– 기도는 하나님과의 일종의 의사소통의 시도이다. 하나님을 인격적인 존재로 생각하는 것이다.
– 예수의 의해 주어진 주기도문 (마 6:9-13; 눅 11:2-4)을 모범으로 한다.
– 주기도문을 보면 기독교는 현실도피의 종교가 아니라 이 사회에 진심으로 깊숙이 참여하는 역사 참여자들의 종교이다.
사도신경 : 믿음의 알짬
– 대략 1500년이 넘도록 기독교인들은 사도신경을 고백해 왔다. 오순절 이후 성령체험한 12사도가 각각 한 가지씩 고백한 12가지 항목을 모았다고 전해진다.
– 역사적으로 사도신경은 세례문답과 관련이 있다. 세례문답이 4세기에 와서는 직선적 진술의 형식으로 변하고, 5세기에 비로소 완결된 신앙 고백문의 형태를 띠게 된다. 750년에 피르미니우스의 텍스트가 공인된 본문으로 서방교회에서 인정받게 된다.
– 사도신경의 원래 이름은 사도들의 상징이다. (예: 플라톤 ‘향연’의 동전, 루피누스의 내전시 상징 혹은 암호 구분, 루터의 설교에 벌들이 꿀을 채취하듯 핵심만 모은 것)
– 신앙고백 중 ‘저승에 가시어’를 한국 개신교에서는 생략했다.
세례
– 기독교 종교에 들어오는 가입예식이다.
– 물은 죽음과 재생을 동시에 상징한다. (종교학자 엘리아데의 이해, 아틀란티스의 신화 혹은 노아의 홍수이야기 등, 크리소스톰의 언급)
– 세례는 죄를 없애는 의식으로 이해됐다. (콘스탄티누스황제는 살며 피를 묻힐 수밖에 없기에 죽기 직전에 세례받음)
– 유아세례라는 성례전이 있다.
– 세례의 의미는 한마디로 무엇일까? 무술을 통한 삶의 도를 추구한 무술인 철학자 이소룡은 자신이 추구한 무술의 근원적 힘은 물처럼 되려 한데 있다고 말한다. (도덕경 8장의 상선약수)
발제 : 임운규 목사 (호주성산공동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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