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인문학 교실
7장 녹색 기독교
인문학으로 읽는 기독교 이야기 / 손호현 저 / 동연출판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
느림의 아름다움, 느리지만 정직하게 자신의 몫만큼만 갖는 그 사람이 아름답다. 그래서 마음체조가 필요하다.
2007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앨 고어는 대선에 석패한 무기력한 남자였으나, 그가 ‘불편한 진실’을 담은 메시지를 들고 다시 환경운동가로 돌아왔다.
그에 따르면 대기중 이산화탄소가 높아지면 지구의 온도도 높아진다. 지금 인류가 저극적인 치료의 조치를 하지 않는다면 45년 후에는 그것이 600ppm 이상이 될 것이다.
지구 온난화는 북극과 남극이라는 영구 동토를 위협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 GMO라 불리는 유전자변형식품들, 광우병 등등 우리 앞에는 환경 재앙의 어두운 그림자들이 짙게 놓여있다.
하지만 앨 고어는 아직 절망하기에는 이르며 지금이라도 우리의 삶의 방식을 근원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생활 방식을 바꿔야 하니까 불편한 진실이다.”
바보야, 문제는 기독교야?
1992년 대선에서 빌 클린턴은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선거구호로 미국인의 마음을 움직이며 당선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린 화이트는 생태위기의 이유에 대해서 “바보야, 문제는 기독교야”라고 말한다.
화이트는 “모든 형태의 생명은 자신의 환경을 변화시킨다”는 대전제에서 글을 시작한다.
생태계 위기의 뿌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깊다.
화이트가 바라본 기독교는 그리 생태친화적인 종교는 아니었다. 그에 따르면 기독교의 역사관과 창조관은 철저히 인간의 관점에서 본 역사와 우주다. 그는 과학과 기술의 무한진보에 대한 현대인의 믿음이 기독교의 종말론에 기초한 시간관, 즉 시간은 순환적이지 않고 역사의 끝을 향해 계속 발전해나간다는 역사관에 기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화이트는 창조이야기를, 특히 서양에서 전해지는 형태의 기독교는 세계가 이제까지 경험한 것들 중에서 가장 인간중심주의적 종교이다 … 기독교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이원론을 설정할 뿐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자연을 수탈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지라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 고대에는 자연을 숭배의 대상으로 보았으나 기독교는 이용의 대상으로 탈신성화한다. 오늘날 생태계 위기의 원인으로서 기독교가 막중하고도 무거운 죄책의 짐을 지고 있다. 오늘날 왜 이렇게 지구가 더워졌을까? 그건 기독교 때문이라는 것이다.
화이트는 생태계 위기를 극복할 방법에 대해서도 몇몇 중요한 사유를 제공한다.
(1) 화이트는 좀 더 많은 과학과 점 더 많은 기술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에 회의적이다.
(2) 화이트는 종교가 만든 문제는 종교가 풀어야 한다고 여기지만, 기독교 외의 새로운 종교가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회의적이다.
(3) 마지막으로 새로운 종교가 해결책이 아니라면 옛종교를 새롭게 읽는 것이 대답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까? 그러한 가능성에 예로 화이트는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의 자연주의 기독교 신앙을 언급한다 … 하지만 화이트는 프란체스코의 이러한 새로운 자연관에 기초한 대안적 기독교도 결국 실패했다고 판단하며 그리 큰 기대를 하지는 않는다. 본서의 저자는 생태론자들의 수호 성자 프란체스코가 다시 오늘날의 기독교 신앙속에 부활한다면, 대안적인 녹색 기독교가 결코 불가능한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흙이 되신 하나님과 녹색 기독교
녹색 기독교란 생태와 환경을 보호하고 그 속에서 조화롭게 거주할 수 있는 근거로서 성서와 기독교의 가르침을 강조하는 다양한 기독교 운동들과 단체들을 아울러서 부르는 이름이다. 어떤 구체적 교파나 단체가 아니라 생태친화적인 대안적 기독교를 형성하고자 하는 관심을 공유하는 모든 기독교인을 가리킨다.
녹색 기독교는 기독교 창조신앙의 편협한 해석을 수정하고자 노력한다. 화이트는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자연을 수탈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지”라고 창조 신앙을 해석하지만, 이른바 생태여성주의의 도래는 이러한 견해를 정면으로 반박한다. 생태여성주의란 자연에 대한 억압과 여성에 대한 억압이 종교적인 면에서나 정신사적인 면에서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보고, 이러한 이중적 억압이 결코 기독교의 본질이 아님을 드러내고자 하는 신학적 시도를 가리킨다 … 생태여성주의의 핵심적 가치는 모든 피조물의 상호 관계성과 상호 의존성이다.
미국의 여성신학자 샐리 맥페이그의 ‘하나님의 몸’이라는 책에 “… 우리는 하나님이 전체 우주를 자신의 생명의 몸으로 가진다고, 즉 하나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산출하고 인도하고 구원하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빌립보서 2:6-8에 2,000년 전 하나님은 자신의 신성을 마치 그릇에서 물을 비우듯 비우고, 나사렛의 예수라는 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남으로 전체 우주와 자신의 존재론적 연대성을 표현하셨다는 것이다.
성육신 신앙, 몸이 되신 하나님, 흙이 되신 하나님 신앙은 자연의 탈신성화를 넘어서 거룩한 환경으로서 자연의 재신성화를 가져오게 된다.
녹색 기독교는 이렇게 재신성화된 거룩한 환경으로서의 자연관에 기초하여 기존의 인간중심주의를 생명중심주의로 발전시킨다.
기독교 창조신앙의 핵심적 가르침은 ‘정복적 지배’가 아니라 ‘청지기적 돌봄’이다.
생태 위기의 사회경제적 이유들
– 생태위기의 근원을 둘러싼 다양한 견해
화이트 (L. White) – 기독교의 역사관과 창조관을 철저히 인간의 관점에서 본 역사와 우주관이다.
앳 필드 (R. Attfield) – 인간이 자연에 대해 지배적 관계를 설정하게 된 이념적 틀은 유대 기독교 사상이다.
머천트 (C. Merchant) – 인간중심적 윤리관이 생태위기의 상황을 만들었다.
에런필드 (D. Ehrenfield) – 인간의 지나친 인간우월주의 즉 인본주의는 생태위기를 만들어 냈다.
– 저자의 견해
첫째, 세계 열강들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확장욕을 꼽을 수 있다.
둘째, 인구증가를 들 수 있다. 세계인구가 증가하면 그러한 인구가 환경에 끼치는 영향도 병행하여 증가하게 된다.
셋째, 제1세계 국가들의 책임을 들 수 있다. 오늘날 생태계위기에 대한 책임의 80%이상은 지구 북반구에 위치한 이른바 제1세계의 국가들에 있다. 그 가운데 23%의 책임은 미국에 있다. 연간 세계 에너지 소비량의 약 23%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넷째, 식량문제로 인한 환경파괴를 들 수 있다. 인류는 농업기술의 발달을 통해 기아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밝지 않다.
다섯째, 육식의 사치를 들 수 있다. 영국과 미국 같은 세계부유층의 육식 패턴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영양실조에 빠지게 하는 한 원인이다.
여섯째, 에너지의 소비와 고갈을 들 수 있다. 앨 고어의 ‘불편한 진실’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의 증가와 지구 온난화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명히 보여준다.
일곱째, 산림파괴를 들 수 있다. 산림은 지구의 허파이다.
여덟째, 군사강국들의 전쟁과 군사주의를 들 수 있다.
이처럼 생태계 위기의 진짜 주범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다 … 기독교는 이러한 무한파괴의 욕망에 저항하는 종교가 되어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욕망의 습관만을 과도하게 학습하였는지도 모른다. 바로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의 본질적 한계일 것이다.
자연, 땅, 자원은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그것은 우리와 우리의 후손이 계속 거주해야 하는 집이며 고향이다.
아시시의 성자 프란체스코의 설교를 듣기 위해 새들이 그의 주변에 몰려들었다는 전설은 인간이 다른 동물과 유기적인 생명의 교제를 형성 할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나부터 바뀌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한 제안들
미국의 여성신학자 로즈마리 류터는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제안한다.
(1) 우리의 감수성이 변해야 한다 … 자연세계를 소유와 착취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을 버리고, 공감과 사랑의 대상으로 보는 근본적인 감수성 전환이 필요하다.
(2) 대체 에너지를 모색해야 한다.
(3) 또 하나의 방법은 배출물의 통제이다.
(4) 교통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
(5) 노동 시스템의 변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6) 환경친화적인 주거방식을 확립해야 한다.
(7) 다국적 기업들의 힘의 남용에 대한 지방적 통제가 필요하다.
(8) 식량의 문제는 기술의 문제가 아닌 분배의 문제이다.
(9) 채식주의를 확대해야 한다.
(10) 통합적인 유기농법에 기초한 소규모의 농업을 장려해야 한다.
(11) 핵은 폐기되어야 한다.
(12) 일회용 물품사회는 극복되어야 한다.
(13) 인구 억제와 여성 해방은 서로 관련되어 있다.
(14) 군사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15) 생태 파괴 세력에 대한 저항을 위해 ‘기초 공동체’를 구성해야 한다.
(16) 마지막으로 지구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오래된 미래
앞으로 나아갈 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오히려 되돌아보는 게으름이 문제의 실마리를 제공하곤 한다.
– 노자의 ‘도덕경’ 80장 : 이른바 ‘소국과민’의 이상이다. 국가를 작게 하고 백성을 적게 하는 것이 문명의 이상이라는 것이다. 편리한 도구들을 많이 만드는 것이 반드시 삶을 값지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던 때도 있었다.
– 생태여성주의자 헬레나 노르베르-호지의 ‘오래된 미래’ : 이 책의 저자는 16년간에 걸쳐 히말라야 고원의 ‘라다크’ 마을에서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
‘오래된 미래’라는 책제목은 어쩌면 역설이지만 단지 역설만은 아니다. 우리 문명은 어쩌면 계속된 발전과 전진만이 아니라 과거의 유기적이었던 삶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가의 여부에 그 생존 가능성이 놓여 있을 수도 있다.
윤동주의 고흐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다짐했던 시인 윤동주는 1943년에 일본 유학기간 동안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들을 읽었다. 고가 소유한 책의 목록에는 ‘고흐 서간집’과 ‘고흐의 생애’가 들어 있다. 윤동주의 ‘서시’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이 둘이 바라본 별은 무엇이었을까?
미국 인디언의 수와미족 추장은 피어스 대통령에게 “어떻게 당신은 하늘을, 땅의 체온을 사고 팔 수 있습니까. 그러한 생각은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합니다. 더욱이 우리는 신선한 공기나 반짝이는 물을 소유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것들을 우리한테서 살 수 있겠습니까. 이 땅의 구석구석은 우리 백성에게는 신성합니다. 저 빛나는 솔잎들이며 해변의 모래톱이며 어두침침한 숲속의 안개며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은 우리 백성들의 추억과 경험 속에서 성스러운 것들입니다.”라고 편지한다.
부록 : ‘오래된 미래’를 읽고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지음 / 중앙북스 / 2015년
코로나바이러스사태이후 세계화의 열풍은 한풀 꺾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멈출 줄 모르는 세계화의 열풍은 세계의 도시화를 가속화시켜 심리적 지리 (mental geography)를 변화시켰다.
그러나 그물망 같은 연결과 속도 그리고 경쟁추구라는 세계화의 특징은 지역성과 공동체성을 퇴색시켰다.
이 책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점점 붕괴되어 가고 있는 지역공동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으며, 세계화과정 속에서 지역의 전통문화를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성찰할 수 있게 해준다.
○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Helena Norberg Hodge, 1946년생 ~ )는 사회운동가, 언어학자, 그리고 작가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스웨덴 출신의 언어학자이자 에코페미니스트이며 에콜로지 및 문화를 위한 국제 협회 (ISEC)의 발기인이자 대표이다.
본래 스웨덴과 영국의 런던 대학교에서 언어학을 수학하던 학생이었던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1970년대 중반, 자신의 학위 논문을 위해 인도 북부에 위치한 라다크를 방문했다.
그는 논문을 위해 꾸준히 라다크와 외부를 드나드는 과정에서, 라다크의 문화와 철학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서구 문명의 유입 과정에서 라다크의 전통 문화와 가치관이 붕괴되는 것을 목격하고, 현대 산업사회를 비판하는 강연 활동을 펼치게 된다.
그는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Ancient Futures: Learning from Ladakh)라는 저서로 유명하며 이 책은 30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그는 1986년 대안적 노벨상이라 불리는 바른 생활상 (Right Livelihood Award)를 받았으며 현재 에콜로지 및 문화를 위한 국제협회의 대표로서 생태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그는 또한 60명의 사회 활동가, 경제학자, 연구원, 작가들이 경제적 세계화에 관한 활동과 연구를 개최하는 세계화에 관한 국제 포럼 (IFG)의 공동 발기인 중 한 명이기도 하다.
○ 이 책의 줄거리
저자인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Helena Norberg Hodge)는 라다크 지역에서 16년 동안 생활하였다.
인도 북쪽지방의 티베트 고원에 위치한 라다크는 사막지역이며 험준하고 건조한 땅이다.
이곳에서 살고 있는 라다크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생태적이고 친환경적인 삶을 영위해 왔으며 세계화의 물결의 흐름을 타지 않고 자급자족적인 삶을 추구해왔다.
저자는 그 곳에서 거주하면서 경험적 관찰을 통하여 라다크 사람들은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며 동물과 식물들도 라다크공동체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체임을 확인하고 라다크 사람들이야말로 서구경쟁사회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생태적 마음을 지닌 자급자족 공동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라다크는 비록 주변의 건물은 낡고 오래되었지만 그들은 그것들을 보존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모든 사람들이 오래된 건축양식을 통하여 과거를 이해할 수 있고 현재와 미래를 위한 연속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다시 말해서 그 곳 사람들은 자연과 더불어 지역의 다양한 자원과 전통적인 기술들을 이용하여 비교적 풍요로운 생활문화를 조상대대로 이어온 사람들이었다.
또한 생산자와 소비자들은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면서 친밀한 관계와 삶의 터전을 유지해온 그들이었다.
그러나 인도정부는 1970년대 중반이후 라다크를 세계인들에게 개방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저자는 서구자본주의의 폐해인 이기심과 물질주의 그리고 라다크 젊은이들의 부분별한 소비지향적 욕구가 결합하여 라다크의 전통적인 좋은 인간관계와 오래된 전통들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였다.
○ 이 책의 내용 중에서 생각해 볼 귀절들을 발췌해 보았다
– 라다크 사람들에게 있어서 공존은 최우선적으로 여기는 가치다.
– 늙은 사람은 생활의 모든 분야에 참여하며 쓸모없이 혼자서 허공을 바라보며 지내는 세월이 없다.
– 조부모들은 기운이 세지는 않지만 다른 일로 기여할 수 있다.
– 늙은 사람들이 생기있고 모든 일에 관여할 수 있는 주된 이유는 젊은이들과의 계속적인 접촉이다.
– 이웃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돈을 버는 것보다 중요하다.
– 이웃끼리 갈등이 있을 땐 자발적 중재자라는 장치가 있다.
– 라다크 사람들은 세계화의 영향으로 GDP가 성장하였지만 정신적인 풍요로움을 상실하였다.
– 세계화이후 젊은 세대는 자신감이 없어졌고 외모에 신경을 썼으며 이웃간에 대화할 시간이 줄어들었다.
– 세계화이후 지역공동체는 활성화되지 못하고 붕괴되기 시작하였으며 소규모 기업들이 감소하였고 공동체성이 퇴색하였다.
○ 느낀 점
독자는 10년전 이 책을 읽었던 적이 있는데 2020년 3월 코로나바이러스사태로 글로벌화, 세계화 추세가 주춤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다가 다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마을 전체의 노력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 오래된 미래를 읽고 독자는 세계화의 경향을 인정하면서도 지역화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인간없는 삶의 공간을 생각할 수 없듯이 삶의 공간이 없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삶의 터는 지역공동체를 유지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지닌 공간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화로 인해 국가간 경계가 점점 허물어져 왔으며 다국적 기업을 넘어 초국적 기업의 등장, 각종 재화의 신속한 유통과정은 인류로 하여금 물질주의적, 소비지향적 가치관이 팽배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었다. 최근 세상은 급속한 사회변화로 사람들의 왕래가 빠르고 지식이 더해가고 있으며 사람들의 소득수준이 향상될수록 아기를 더 낳지 않는 차원을 넘어 아예 맞벌이 무자녀 (DINKs: Double Income No Kids)시대가 도래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독자는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세계화의 엄습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인류의 미래는 암울하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따뜻한 경제로 지역을 생태적, 공동체적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고 지역화(localization)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 책은 지역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과 전통을 계승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의 평균수명은 늘어나고 있지만 행복년수는 과연 늘어나고 있는가? 세계화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국가들의 행복지수는 경제성장과 함께 높아지고 있는가? 자문해본다. 공동체적 가치인 배려와 나눔 그리고 절제와 공공선은 우리 모두가 끊임없이 추구해야만 하는 가치인 것이다. 향후 지속적인 세계화의 파고가 더 거세게 몰려온다면 이에 맞설 수 있는 지역화로의 대응이 절실하다고 본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래된 미래는 현대인들에게 세계화의 물결에서 놓치기 쉬운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발제 : 구본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