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0년 12월 29일, 미국의 독학 화학자이자 발명가 ‘고무의 아버지’ 찰스 굿이어 / 찰스 굳이어 (Charles Goodyear, 1800 ~ 1860) 출생
찰스 굿이어 (Charles Goodyear, 1800년 12월 29일 ~ 1860년 7월 1일)는 미국의 독학 화학자이자 발명가이다. 코네티컷주의 뉴헤이븐에서 출생하였다. 고무 제조에 대한 여러 가지 연구와 발명으로 오늘날의 고무 공업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일명 ‘고무의 아버지’다.
금속 상사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나, 고무와 유황이 작용하여 굳은 고무를 만드는 가황을 발견하였다 (1834 ~ 1844년). 1836년에는 질산에 의한 생고무 표면 처리 방법을 발명하였다. 이 방법은 고무 표면의 점착성 때문에 일어나는 불편을 없애 주었으며, 1844년에 특허를 얻었다. 1852년 에보나이트를 발명하였으며 그의 이름을 기념한 타이어 (tire)가 있다.
– 찰스 굿이어 (Charles Goodyear)
.출생: 1800년 12월 29일, 미국 코네티컷 뉴헤이븐
.사망: 1860년 7월 1일, 미국 뉴욕 뉴욕
.국적: 미국
.배우자: 클라리사 비처 굿이어 (1824 ~ 1860년)
.자녀: 찰스 굿이어 주니어, 윌리엄 헨리 굿이어, 아멜리아 굿이어, 신시아 굿이어, 앤 굿이어 등
.형제자매: 넬슨 굿이어, 아마사 굿이어 주니어, 헨리 굿이어, 로버트 굿이어 등
고무 제조에 대한 여러 가지 연구와 발명으로 오늘날의 고무 공업에 크게 이바지한 ‘고무의 아버지’다. 특히 1839년, 고무의 황처리 공법 (vulcanization)을 개발한 공로로 위대한 발명가로 불린다.
– 여담
1903년에 굿이어가 고무바퀴에 이름을 붙이려고 고민하던 중에, 자신의 딸이 “자동차에서 가장 피로 (tire)를 느끼는 부품은 아마도 바퀴가 아니겠느냐”고 말한 것을 계기로, 비로소 타이어 (Tire)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우스개가 있다.
실제로는 15세기에 이미 수레바퀴의 겉을 둘러친 철판을 tyre라고 부르고 있었으므로 이 이야기는 농이다.
일단 굿이어는 타이어를 만들거나 타이어를 고려한 사람이 전혀 아니다.
그는 고무를 활용할 방법을 만들다가 황을 넣어서 가황법을 만든 것이다. 굿이어라는 회사가 있어서 마치 그가 타이어를 발명한 것으로 착각하기도 하는데, 굿이어 타이어가 등장한 건 그가 죽은 후 40년 넘게 지나서, 그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구두의 제법 중에 ‘굿이어 웰트’라는 것이 있는데 이 사람과 관련이 있다. 바로 굿이어의 아들인 찰스 굿이어 Jr.가 이 제법을 개발하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타이어를 비롯한 고무 제품에서의 거대 기업중 하나인 굳이어도 이 사람의 이름을 따와서 지어졌다.
다만 찰스 굿이어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 굿이어 사후 40여년 ‘굿이어 타이어 앤 러버 컴퍼니’ 설립
공기압 타이어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 미국에서는 유명한 타이어 회사가 하나 설립됐다. 굿이어 타이어 앤 러버 컴퍼니 (Goodyear Tire and Rubber Company)다.
– 회사 이름에 굿이어 (Goodyear)라는 이름이 붙여진 과정은 흥미롭다
인터리스팅 엔지니어링 닷컴 (Interesting Engineering.com)이라는 글로벌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가황의 아버지 찰스 굿이어’ (Charles Goodyear: The Father of Vulcanization)라는 코너가 있다.
영어 불카니제이션 (Vulcanization)은 고무에 황을 넣어 강도와 탄성을 증가시키는 가황 (加黃)을 말한다.
이 단어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불의 신’ 불칸 (Vulcan)에서 따왔다. 그럼, 가황의 아버지 찰스 굿이어는 누굴까.
미국인 발명가 찰스 굿이어 (Charles Goodyear, 1800 ~ 1860)의 본업은 철물점 운영이었다.
그는 30대 이후에 여러 제품에 고무를 사용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의 놀라운 고무 실험이 시작된 건 1834년이다 (His groundbreaking work on rubber would begin with his experimentation in 1834).
– 우연한 실험에서 더 단단하고 강도 높은 고무 발견
인터리스팅 엔지니어링 닷컴은 “그 5년 후 1839년 우연히 가황의 과정을 발견하게 되었다” (5 years later he would accidentally discover the process known as vulcanization)고 했다.
어느 날 찰스 굿이어는 인도 고무와 황을 섞는 실험을 하다가 실수로 혼합물을 뜨거운 스토브 위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 혼합물이 녹기는커녕 더 강도 높고 단단한 물질이 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견고한 타이어 탄생 순간이었다.
인터리스팅 엔지니어링 닷컴은 “대단한 발견에도 불구하고 찰스 굿이어는 1844년까지 가황고무 특허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Despite the significance of his discovery, Goodyear would struggle to patent vulcanized rubber until 1844)고 설명했다.
특허 공방전뿐만 아니라 찰스 굿이어는 엄청난 부채와 감옥 수감, 자녀들의 잇단 죽음이 겹치면서 불행한 삶을 살았다. 그런 그는 1860년 7월 19일 무일푼으로 죽었다. 실제로 많은 빚을 남겼다.
– 찰스 굿이어 기리는 뜻에서 회사 이름 지어
하지만 가황법을 발견, 고무 산업 개척의 길을 연 찰스 굿이어의 업적은 헛되지 않았다. 그의 사망 40년 후인 1898년, 미국 발명가이자 기업인인 프랭크 세이벌링 (Frank Seiberling, 1859 ~ 1955)은 굿이어 타이어 앤 러버 컴퍼니 (Goodyear Tire and Rubber Company)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인터리스팅 엔지니어링 닷컴은 “창업자 프랭크 세이벌링은 찰스 굿이어를 기리는 뜻에서 회사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했다.
이 매체는 “이름이 같은 것을 제외하고는 찰스 굿이어 자신도 그 가족도 수십억 달러 규모의 이 회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Apart from his namesake neither Charles himself or his family have any connection with this multi-billion dollar company)고 덧붙였다.
참고 = 위키백과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