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2월 24일, 미국의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 (Samuel Phillips Huntington, 1927 ~ 2008) 별세
새뮤얼 필립스 헌팅턴 (Samuel Phillips Huntington, 1927년 4월 18일 ~ 2008년 12월 24일)은 미국의 정치학자이다.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하버드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냉전 이후의 세계질서에 대해 다룬 ‘문명의 충돌’의 저자로 유명하다.
– 새뮤얼 헌팅턴 (Samuel Phillips Huntington)
.출생: 1927년 4월 18일, 미국 뉴욕
.사망: 2008년 12월 24일 (81세), 미국 매사추세츠 마서스비니어드
.배우자: Nancy Arkelyan (1957 ~ 2008년)
.알려진 분야: Clash of Civilizations
.학력: 하버드 대학교 (1951년), 시카고 대학 (1948년), 예일대 (1946년) 등
정치학 분야에 혁명적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미래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의 틀을 제시한 세계적 석학. 군사정치학과 비교정치학 분야에서 뛰어난 학문적 성과를 올리고 이론정치와 현실정치를 두루 체험한 정치학자로 평가받는다.
1927년 뉴욕에서 태어나 1946년 예일대학교를 졸업한 뒤 시카고대학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 하버드대학교에서 23세의 젊은 나이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0년부터 1959년까지 하버드대학교, 1959년부터 1962년까지 컬럼비아대학교 정치학 교수로 일했고, 하버드대 국제관계연구소 소장과 존 올린 전략연구소 소장, 미국정치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군사정치학과 비교정치학 분야에서 학문적 성과를 올리고 이론정치와 현실정치를 두루 체험한 정치학자로 평가받고 있다.
베트남전쟁 당시 ‘전략촌’ 정책을 수립했으며, 1974년부터 1976년까지 국방 및 군비감축 민주당자문회의 의장을 지내고, 카터 (Jimmy Carter) 행정부 때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안보기획조정관을 지내는 등 현실정치에 적극 참여했다. 1970년에는 계간 시사전문지 「Foreign Policy」을 창간해 공동 편집인으로 활약했으며, 미국 정치학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2008년 12월 24일 향년 81세로 생을 마감했다.
○ 생애 및 활동
– 유년 생애와 학력
헌팅턴은 1927년 4월 18일 뉴욕에서 단편 작가 도로시 산본과 호텔 무역 저널의 발행인인 리차드 토마스 헌팅턴의 아들로 태어났다. 1946년 예일 대학교를 졸업했다. 미군에서 복무했으며, 1948년 시카고 대학에서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1951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23세라는 매우 젊은 나이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 학문적 경력
그는 1950년부터 1959년까지 하버드에서 테뉴어를 거절받을 때까지 교수로 재직했다. 1959년부터 1962년까지 컬럼비아 대학교 정치학 교수로 재직했다. 또한, 그는 컬럼비아대학 전쟁과 평화 연구소의 부소장도 역임했다. 1963년에 그는 하버드에 종신교수로 돌아가 사망 전까지 하버드에서 연구하며 가르쳤다. 헌팅턴은 교수 생활중 하버드대 국제관계연구소 소장과 존 올린 전략연구소 소장, 미국 정치학회 회장 등을 지냈으며, 현실정치에도 일부 참여해 휴버트 험프리 부통령과 지미 카터 대통령의 자문역을 지냈고 1970년엔 동료 워렌 D. 만셀과 함께 ‘Foreign Policy紙’를 발간해 국제정치 학술지를 1977년까지 운영했다.
헌팅턴의 첫 번째 주요 책은 ‘군인과 정부’였다. ‘군인과 정부’ (1957년)는 출간 당시 논란이 많았으나 현재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의 민-군관계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근대화 이론가들의 통념에 도전한 작품인 변화하는 사회 정치 질서 (1968년)로 유명해졌다. 이 작품은 경제적, 사회적 진보가 최근 식민지화된 국가에서 안정된 민주국가를 만들어 낼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민주주의의 위기의 공동저자였다.
헌팅턴은 2007년 은퇴할 때까지 계속해서 학부생들을 가르쳤다.
– 개인 생애
헌팅턴은 1956년에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애들레이 스티븐슨의 연설을 함께 구성할 때, 그의 아내인 낸시를 만났다. 그들에게는 니콜라스와 티모시라는 두 아들이 있다.
몇 년간의 건강 악화 후, 헌팅턴은 2008년 12월 24일 매사추세츠의 휴양지인 마서즈 빈야드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충혈성 심장 질환과 무증상 당뇨병의 합병증이었다.
– 주목할 만한 저서와 그의 주장
.’사회변화중의 정치 질서’
1968년, 미국의 베트남 전쟁이 가장 격렬해졌을 때, 헌팅턴은 ‘사회변화중의 정치 질서’를 출판했는데, 이것은 지난 10년 동안 개발도상국에 대한 미국의 정책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근대화 이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헌팅턴은 사회가 현대화됨에 따라 사회가 더욱 복잡해지고 혼란스러워진다고 주장했다. 만약 이 장애를 일으키는 사회 현대화의 과정이 정치적이고 제도적인 근대화의 과정, 즉 근대화의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는 정치 기관을 생산하는 과정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결과는 폭력이 될 수 있다.
1970년대, 헌팅턴은 민주적이면서도 독재적인 정부의 조언자였다. 1972년 브라질에서 메디치 정부 대표들을 만났고, 1년 후 그는 너무 빠른 정치 자유화, 점진적인 자유화, 멕시코 제도 혁명당의 이미지를 본뜬 강한 정당국가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는 “정치적 부패에 대한 접근법” 보고서를 발간했다.
1980년대,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조언자가 되었는데, 그는 정치질서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아파르트헤이트를 개혁하고 증가하는 저항을 억누르기 위한 “전체 전략”을 짜는데 사용했다. 그는 남아프리카의 통치자들에게 개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국가의 억압적인 힘을 증가시키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고 확신시켰다.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청중들에게 개혁 과정은 종종 “복제성, 속임수, 잘못된 가정, 그리고 목적적 맹목적인”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아파르트헤이트를 없애기 보다는 “개혁”하려는 그의 호스트들의 프로젝트에 그의 미숙함 만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제 3의 물결’
헌팅턴은 1991년 저서 ‘제 3의 물결’에서 1974년 포르투갈의 혁명을 시작으로 유럽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등 전 세계 60여 개국을 포함하는 제3의 물결의 민주화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제 3의 물결에 따르면, 어떤 형태의 민주적 정권교체도 없다. 헌팅턴은 이 책으로 1992년 루이빌 대학 그래브마이어 상을 받았다.
.’문명의 충돌’
1993년, 헌팅턴은 포린 어페어스지에 실린 영향력 있고 자주 인용되는 기사인 “문명의 충돌?”이라는 제목의 질문으로 국제 관계 이론가들 사이에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 기사에서, 그는 소련의 붕괴 이후, 이슬람이 서구의 세계 지배에 가장 큰 장애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서방의 다음 큰 전쟁은 불가피하게 이슬람과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냉전 이후의 지정학 및 “불안정의 필연성”에 대한 서술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주창하는 영향력 있는 역사종말 논문과 대조적이다.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을 책으로 확장하여 1996년에 ‘문명의 충돌’를 출판했다. 이 기사와 책은 냉전 이후의 갈등이 이념적 차이보다는 문화적 차이 때문에 가장 빈번하고 격렬하게 일어날 것이라고 상정하고 있다. 냉전시대에는 자본주의 서부와 공산주의 동부 사이에 분쟁이 일어났지만, 이제는 세계 주요 문명들 사이에 7개의 문명과 8번째 문명의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1) 서양, (2) 라틴 아메리카, (3) 이슬람, (4) 중국, (5) 힌두교로 이뤄진 문화 조직은 현대 세계와 주권국가의 고전적 개념을 대조한다. 현재와 미래의 갈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변화를 이해하고 국가가 아닌 문화를 전쟁의 이유로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서 서구 국가들이 문화적 긴장의 화해할 수 없는 본질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우세를 잃게 될 것이다. 헌팅턴은 지정학적 조직과 구조에서 냉전 이후의 이러한 변화는 서방이 민주적 보편주의와 끊임없는 군사적 개입주의에 대한 반대를 버리고 문화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헌팅턴은 이 점을 강조하며 1996년 확장판에서 “인종 갈등과 문명 충돌의 신흥 세계에서 서구 문화의 보편성에 대한 서구의 믿음은 세 가지 문제를 겪고 있다: 그것은 거짓이고, 부도덕하며, 위험하다.”고 주장했다.
서구 문명과 서구 기독교를 동일시하는 것은 헌팅턴의 독창적인 생각이 아니라 냉전 시대 이전의 전통적인 서구적 견해와 세분화였다. 비평가들 (예: Le Monde Pradcolitique의 기사)은 “문명의 충돌과 세계질서의 리메이킹”을 미국이 일으킨 중국 및 세계 이슬람 및 정교회의 문화에 대한 서방의 침략의 이론적 정당성이라고 부른다. 다른 비평가들은 헌팅턴의 분류법이 단순하고 자의적이며, 문명의 내부 역학 및 당파적 긴장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비판론자들은 헌팅턴이 엘리트들의 이념 동원과 인구의 미충족 사회경제적 요구를 갈등을 유발하는 진짜 인과적 요인으로 방치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현실주의적 박약에 불과하다고 비난하고 있다. 헌팅턴의 미국 정책에 대한 영향은 20세기 초 아시아 지도자들에 대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의 논쟁적인 종교 이론과 유사하다.
.’우리는 누구인가 – 미국의 정체성 도전’
헌팅턴의 마지막 책 ‘우리는 누구인가 – 미국의 정체성 도전’은 2004년 5월에 출판되었다. 그것의 주제는 미국의 국가 정체성의 의미이며 그가 라틴 아메리카인들의 대규모 이민으로부터 문화적 위협이라고 묘사한 것인데, 헌팅턴은 이 문제가 미국을 “두 민족, 두 문화, 두 언어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그는 미국이 이민자들에게 영어를 채택하도록 강요하고,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와 이슬람 이민자들의 위협에 맞서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개신교”로 눈을 돌릴 것을 요구했다. 학회지 정치관점의 서평에서 Gary M. 세구라 UCLA 공과대학장은 이 책이 분열된 견해와 미사여구로 인해 사회과학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세구라는 또한 헌팅턴의 학문적 지위 때문에 헌팅턴의 저술은 용서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 작품은 학문의 작품이라기보다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 미국 국립아카데미 논쟁
1986년 헌팅턴은 미국 과학 아카데미의 회원 후보로 지명되었다. 이 지명은 수학자 닐 코블리츠의 글에서 영감을 받은 예일대 수학자인 세르게 랭 교수가 반대했는데, 그는 헌팅턴이 수학을 잘못 사용하고 사이비 과학에 관여했다고 비난했다. 랭은 헌팅턴이 역사적 기록을 왜곡하고 사이비 수학을 사용하여 자신의 결론을 설득력 있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랭의 이러한 주장은 성공했다. 그 결과, 헌팅턴은 미국 국립아카데미에 두 번 지명되었으나 두 번 모두 탈락하였다.
○ 문명의 충돌 (clash of civilizations)
정치학자로서 헌팅턴의 연구들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역시 ‘문명의 충돌’ (clash of civilizations)이다. 이 주장은 냉전의 종식 직후인 1993년 ‘포린 어페어스’ (Foreign Affairs)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처음 발표되었고, 3년 후 동명의 저서로 확대 출간되어 세계 전역에서 치열한 찬반 논쟁을 일으켰다.
– 역사적 흐름
헌팅턴에 따르면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볼 때, 문명과 문명이 만날 때에는 항상 크고 작은 분쟁이 벌어져 왔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문명의 정체성을 대체하여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이 주도권을 차지하며 50년에 가까운 기간동안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가 지속된다. 그러나 80년대 말까지 세계 질서를 결정하던 미국과 소련의 양극(bi-polar) 냉전체제가 소련의 붕괴로 막을 내리면서, 다극 (multi-polar) 체제로 다시 세계질서가 재편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냉전 기간 동안 미국과 소련의 이념 대립을 위해 대신 싸워온 대리 전쟁 국가들 내부에서 쌓여온 갈등, 그리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을 대체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로서의 문명 정체성이 새로운 분쟁의 씨앗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 ‘문명의 충돌’에서의 문화권 분류
.Western – 헌팅턴은 가톨릭과 개신교 문화권을 Western으로 보았다. 미국, 캐나다, 이탈리아,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독일,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일부 지역, 파푸아뉴기니 등이 있다.
.Orthodox – 헌팅턴은 정교회 문화권과 동구권을 Orthodox로 보았다. 발칸반도와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정교회 문화권과 구소련에 속해있던 지역이 있다.
.Islamic –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는 이슬람 문화권이다. 다만 같은 기독교 계열임에도 정교회를 Orthodox로 따로 분류한 것과는 달리, 수니파와 시아파로 크게 갈리는 이슬람 문화권은 그냥 하나로 묶었다. 이에 대해 서구중심주의라는 비판이 있다.
.African –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문화권이다.
.Latin American – 토착 문화(아즈텍, 마야 문명, 잉카 등)와 가톨릭 문화권(에스파냐, 포르투갈)이 혼합된 특성을 지니고 있다.
.Sinic – 유교 문화권이다.
.Hindu – 인도 아대륙을 중심으로 남아시아를 아우르는 힌두교 문화권이다.
.Buddist – 불교 문화권이다. 아예 다른 문화를 보유하고 있는 몽골을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과 함께 같은 문화권으로 분류했다. 이들은 기본적인 생활 방식도 매우 다르지만, 분류의 기준이 된 불교도 교리가 상당히 다른 종파를 믿는다. 몽골은 티베트 불교이고,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는 상좌부 불교이다. 이런 점도 헌팅턴의 분류가 지극히 자의적이고 서구중심주의라는 비판의 소재가 된다.
.Japanese – 특이하게도 일본을 Sinic에 포함하지 않고 Japanse로 분류했는데, 유교가 국가의 근본이자 체제였던 국가에 비해 신토와 불교의 영향력이 강했던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일본에서도 유교의 영향력은 매우 컸고, 한반도와 중국 대륙으로부터 기원한 문물로 사회의 근간을 이루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학자는 한국, 중국, 일본을 같은 문화권으로 묶는다.
.비판과 논란이 매우 많은 분류이다. 일단 이슬람교는 시아파와 수니파가 서로 갈등이 심한데다, 불교도 대승 불교와 상좌부 불교가 다른데 그냥 하나로 묶었다. 또한 베트남은 역사적으로 북부 지방을 제외하면 유교 문화권이라고 볼 수 없다. 일본은 일반적으로 동아시아 문화권으로 분류되지만, 헌팅턴은 특이하게도 ‘Japanese’로 따로 분류했는데, 신토와 불교의 강한 영향력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헌팅턴 개인의 선호 때문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유교가 국가의 근본과 체제가 된 중국 대륙이나 한반도와 달리 일본은 신토와 불교가 계속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다만 일반적으로 일본을 유교 문화권이라고 분류하는 만큼 일본에서도 유교의 영향력은 매우 컸고, 애초에 에도 막부는 통치 이념을 성리학으로 삼았다. 또한 한반도와 중국 대륙으로부터 기원한 문물로 사회의 근간을 이룬 일본을 독자적으로 분류한 것은 너무 지나치다는 비판이 있다.
– 냉전 이후 세계 질서 예측
.서구 (Western)의 영향력은 줄어들 것이며, 동아시아와 이슬람 문명의 영향력이 증대될 것이다. 이슬람 국가들과 인근 국가들간의 세력 균형이 위협을 받을 것이며, 비서구 문명들은 자신의 문화의 고유한 가치를 강화해 갈 것이다.
.서구의 압도적인 패권은 점차 약화될 것이며 그 패권은 점차 비서구 세계, 특히 동아시아 문명으로 빠르게 이동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패권의 이동은 비서구 사회의 자긍심과 서구 사회에 대한 거부감을 증대시킬 것이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이념의 쇠퇴로 인하여 종교의 이념적 가치가 부활하여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할 것이다. 특히 비서구 국가들은 서구 문명의 타락성에 반감을 가지며 서구 문명에 대한 안티테제로서의 종교의 순수성을 강조할 것이다.
.하지만 이슬람과 동아시아는 도전의 기반이 서로 다르다. 동아시아는 빠른 경제 성장에 기반을 둔 자기주장을 펼칠 것이며 이슬람은 인구 증가를 기반으로 자기 주장을 펼칠 것이다. 이 두 차이점은 두 문명의 각기 다른 도전이 세계 질서의 위협에 끼치는 정도의 차이를 야기한다. 경제 성장에 기반을 둔 동아시아는 이미 구축되어 있는 세계 질서 하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슬람은 비 자본주의적인 방식, 즉 테러리즘과 같은 무력 행사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 즉, 동아시아보다는 이슬람이 더욱 세계 질서에 위협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자신들의 가치가 세계 보편적인 가치임을 주장하는 서구 문명에 맞서 동아시아 (특히 중국), 이슬람의 도전이 앞으로의 세계 질서의 위협 요소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요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정교회 (러시아), 일본, 인도 (Hindu)는 이 문명의 경계선에 걸쳐서 있어, 협력과 갈등의 요인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안에 따라서는 서구의 편에, 또는 비서구의 편에 설 것이다.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국으로 부상하려는 것을 미국이 저지하려고 할 경우, 대규모 전쟁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 현실 세계 대입
이 책은 냉전이 종식된 직후인 1993년도에 출간된 책이지만, 이후 세계 질서 변화에서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다수의 주요 사건들이 발생했다.
.이슬람 문명과의 갈등 – 새뮤얼 헌팅턴이 예언한 이슬람 문명의 부상과 갈등은 2001년 가장 극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이후, IS의 등장과 이로 인한 일련의 테러 역시 이슬람과 서구의 갈등이 격화되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
.종교의 순수성 강화 – 사우디아라비아와 카타르의 지원을 바탕으로 이슬람주의 세력이 성장하여 서구를 타락한 존재라는 이데올로기를 내세우고 대립하면서 자신의 세력권 안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슬람 근본주의를 강요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 – 중국의 부상은 헌팅턴이 예상한 방식으로, 경제적인 성장과 그로 인한 경제적 패권 장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중국의 위안화가 준 기축 통화화 되면서, 미국의 달러화 본위제 기반 경제 패권 역시 위협을 받고 있다.
.서구와 비서구 사이의 경계선 – 서구와 비서구 사이의 경계선에서는 지속적으로 갈등이 발생하고 있으며, 경계선 상의 몇몇 국가들은 서구와 비서구 사이에서 시소처럼 자국의 이득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패권 이동에 따른 대규모 전쟁 – 기존의 전통적인 정치학 이론에 의하면 세계의 패권이 한쪽에서 다른 한 쪽으로 이동할 때 대규모의 전쟁이 발생한다고 한다. (다행히도) 아직까지 미국과 중국 사이의 전쟁 가능성은 희박한 편이지만,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십수년 안에 미국과 중국의 경계선에서 대규모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비판9 890년경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은 냉전 이후 국제질서의 장래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이 팽배했던 학계에 경종을 울렸으며, 새로운 분쟁의 원인을 제시했다는 점에 의의를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주장은 좋게 말하면 ‘명쾌하고 냉철한 선견지명’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나쁘게 말하면 ‘이분법적 숙명론과 서구중심주의에 기반한 대립 선동’으로 비판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문명 간의 충돌은 숙명인가?
문명충돌론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비판은 서로 다른 문명들 사이의 대화, 공존 가능성과 이를 위한 노력의 필요성은 평가절하한 채, 대립과 충돌의 숙명성만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문명도 엄연히 인간이 만든 것인데, 인간이 문명에 일방적으로 지배받기만 한다는 주객전도식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발하여 1998년 독일 학자 하랄트 뮐러도 ‘문명의 공존’ (Das Zusammenleben der Kulturen)이란 저서를 통해 헌팅턴의 견해에 반박했다. 그는 문화는 섬처럼 독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를 통해 움직이며, 서로 다른 두 문화가 만났을 때 충돌이 아니라 양립하거나 새로운 문화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2001년 9.11 테러 직후, “무지의 충돌” (The Clash of Ignorance)이라는 글로 문명충돌론을 비판했다.
문명충돌론의 지지자들은 코소보 전쟁, 9.11 테러,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등의 사례가 헌팅턴의 주장이 옳았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알 카에다와 이슬람국가가 세력, 규모 측면에서 이슬람 전체의 입장을 반영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보다는 이슬람 인구가 많은 국가들 내부의 정치, 사회적인 불안정 및 취약성으로 이들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제대로 예방 및 통제하는 데 실패한 것이 문제의 본질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또한, 시아파와 수니파의 갈등,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분쟁, 르완다 학살 등 문명 내부의 충돌을 설명할 수 없다.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도 ‘문명 충돌’이라는 요소만으로 단순화하기 어려운 문제다. 그보다는 동아시아 지역이 차지하는 국제적인 정치, 경제, 군사적 중요성의 비중 강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해석이 더욱 설득력이 높다. 만약 동아시아가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국제 질서의 주변부일 뿐이라면, 굳이 미국 같은 패권국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그리고 헌팅턴의 문명충돌론대로라면 중국과 같은 문화권에 속하는 대만, 한국 등은 진작에 중국과 협력 관계에 있어야 했겠지만, 오히려 문명적으로 이질적인 미국과 동맹 내지는 제휴 관계에 있으면서 중국을 견제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구중심주의 (미국과 서유럽 중심)
냉전의 종식으로 ‘자본주의 대 공산주의’라는 이념 대립의 구도가 무너지고, 명백한 적이 사라지자, 헌팅턴이 문화권이라는 새로운 진영 논리를 끌어들여 서구 세계 (사실상 미국)가 상대해야 할 새로운 이념적 적대 세력을 만들어냈다는 비판이 있다. 기존의 냉전 세계관이 끝나니 이제는 러시아를 ‘정교회’, 서아시아를 ‘이슬람’, 중국을 ‘유교’라는 식으로 이름만 바꾸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문명’의 탈을 쓴 자의적 구분
헌팅턴은 1차적으로 종교, 문화에 따라 구분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국제적인 세력 논리를 이름만 바꿔 나누어 놓은 세력 정치 반영에 불과하다. 고대 한반도와 중국 대륙으로부터 받은 문물로 사회 근간을 이룬 일본을 굳이 동아시아와는 별개의 문명권으로 구분하였는데, 정작 동아시아 국가들은 모두 종교의 정치 개입을 부인하는 세속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냉전 시절 공산주의 지배의 영향으로 종교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된 러시아와 동유럽을 ‘정교회’권으로 구분한 것도 똑같이 치우쳐진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이 책이 소개되기 전까지 국내에서는 ‘문명’이란 말을 세계 4대 문명이란 식으로 고고학적인 의미를 담아 주로 썼기 때문에 가지는 반감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일본을 별개 문명으로 놓으면서 필리핀과 파푸아 뉴기니를 서구 (Western) 문명의 일부로 간주했으니 종교를 기준으로 분류하는 부분은 헌팅턴 개인의 선호에 따른 자의적 분류라고 봐도 무방하다.
또한 미국 내 영향력이 적거나 세력 정치와 반대되는 경우는 정말 무성의한 분류를 보여주는데 대표적인 예로 스리랑카와 인도차이나 반도 일부 지역을 몽골과 함께 Buddhist (불교) 문화권으로 묶은 것을 들 수 있다. 애초에 몽골은 저 지역들과는 기후와 생활 환경 자체가 다르고 스리랑카의 싱할라인과 동남아시아에서 주로 믿는 상좌부 불교와 몽골의 티베트 불교는 서구의 개신교와 카톨릭, 동구의 정교회만큼이나 교리가 판이하게 다르다.
경희대학교 교수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교수는 자신의 저서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에서 중국과 한국을 같은 문화권으로 묶었다고 비판했다.
.미국 이민자 문제에 대한 부정적 시각
애초에 미국은 이민자인 영국 청교도들이 세웠으며 그들의 문화와 제도를 통해 키운 국가이기에 그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가령 히스패닉계가 미국 내에 지나치게 많아 동화되지 않고 자신들의 정체성만을 고집하여 미국 안에 독립 자치령을 만들 수도 있다는 등이 있다. 이는 실제로 미국 백인/흑인들의 불안감에 부합하며, 히스패닉 불법 이민자들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보탰다.
진영논리나 인종차별 논란을 떠나서 헌팅턴은 미국 역사를 아주 피상적으로 그것도 부정확하게 일반화한다는 주장을 피할 수 없다. 일단 청교도 문서를 보면 알다시피 이 “미국의 청교도”라는 종교집단은 하나로 단순하게 구분할 수 있는 집단도 아니다. 초창기 미국으로 이주해온 종교적 소수자 집단 가운데 가장 먼저 온 교파가 청교도였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다. 미국 백인 중 가장 인구 비중이 높은 집단은 주로 루터교회를 믿던 독일계 미국인이며, 미국 초창기 역사에서 정치 분야에서 활약한 교파 사람들은 상당수가 유니테리언 교회 신도였다. 16~18세기 미국에서는 유럽 각지에서 이주해온 칼뱅파 외에도 독일 루터교회 신도들도 많았는데, 루터교회는 청교도와 엄연히 갈래가 다르지만 그럼에도 독일계 루터파들은 초창기 미국 사회에서 이질감 없이 빠르게 적응했다. 미국 청교도가 단일화된 민족 종교집단이었으면 어림도 없는 이야기이다.
미국이 영국에서 이주해온 청교도 문화와 제도를 이어받았다는 주장은 미국 보수층들을 결집시킬 이데올로기로는 나름 적합한 설명이겠지만 역사적 정확성을 놓고 보면 낙제점 수준의 설명이다. 미국 문화는 인종 (영국계/독일계), 종교 (개신교) 같은 요인 외에도 유럽/아시아와 다르게 전통 기득권층 (토지귀족, 관료화된 성직자 계급)이 없었던 사회적 요인, 이용 가능한 토지가 사실상 무한대였던 지리적/경제적 요인이 더 컸다. 종교에서 아무리 평등을 강조해도 토지는 부족한데 인구만 많다던지 하면 해당 사회에 평등이 뿌리내리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해보자. 미국 영토가 21세기에도 계속 확장되는 것도 아니고 대신 사회와 경제는 기술 발전과 더불어 빠르게 변화하는 마당에 불법 이민자만 안 오면 미국 문화가 부패하지 않고 보전된다는 주장 자체가 의미가 없다.
게다가 정치적 올바름 문제를 떠나서, 새뮤얼 헌팅턴은 그냥 “히스패닉들이 많이 이민 올 수록 미국 정체성이 위협받는다.”라고 단순히 주장할 뿐이다. 자기 책에서 히스패닉 인구 증가 변화 지도만 두 장 딸랑 보여주고,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책은 커녕 그 인과관계의 증거조차 제대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는 헌팅턴의 의도가 어쨌건 간에 인종차별을 조장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 저서
– 주요 저서
군인과 정부, 1957년
사회변화중의 정치 질서, 1968년
제 3의 물결, 1991년
문명의 충돌, 1996년
우리는 누구인가-미국의 정체성 도전, 2004년
– publications
“National Policy and the Transoceanic Navy.” United Stats Naval Institute Proceedings 80, 5 (May 1954): 483-493. online
The Soldier and the State: The Theory and Politics of Civil-Military Relations (1957)
The Common Defense: Strategic Programs in National Politics (1961)
Political Order in Changing Societies (1968)
The Crisis of Democracy: On the Governability of Democracies with Michel Crozier and Joji Watanuki (1976)
Political Power: USA USSR – Similarities and contrasts, Convergence or evolution with Zbigniew Brzezinski (1977)
American Politics: The Promise of Disharmony (1981)
“Democracy’s third wave.” Journal of democracy 2.2 (1991): 12–34. online
The Third Wave: Democratization in the Late Twentieth Century (1991)
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 (1996)
“After twenty years: the future of the third wave.” Journal of democracy 8.4 (1997): 3–12. online
Who Are We? The Challenges to America’s National Identity (2004), based on the article The Hispanic Challenge, Foreign Policy, March/April 2004
– As editor
Culture Matters: How Values Shape Human Progress with Lawrence E. Harrison (2000)
Many Globalizations : Cultural Diversity in the Contemporary World with Peter L. Berger (2002)
참고 = 위키백과, 교보문고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