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이야기
인류의 꿈 불로장생, 해파리는 알고 있다!
진시황 (秦始皇)의 불로장생
불로장생 (不老長生)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단연 (斷然)코 진시황 (秦始皇)이다. 그러나 진시황만 ‘불로장생’하려고 발버둥친 것은 아니다. 인간 (Human sapiens)은 어느 누구나 불로장생을 꿈꾼다. 장생 (長生)을 넘어 영생 (永生)을 갈망한다. 인간 (Human sapiens)은 영생이 꿈과 희망이기에 사이비 종교 교주들은 감언이설 (甘言利說)로 신자들을 농락 (籠絡)해 왔다. 진시황은 호언장담 (豪言壯談)하였다. “나는 불로불사 (不老不死) 하는 황제로 영원히 이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 라고. 진시황은 과연 얼마나 오래 살았을까? 진시황은 기원전 210년에 나라를 살핀다는 명목으로 길을 나섰다가 병을 얻어 고작 50세에 객사 (客死)하였다고 전하여 지고 있다. 그의 나이 고작 50세의 객사 (客死)다. 길을 떠난 목적은 불사 (不死)의 약을 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의 병명은 수은 (Hg) 중독이라는 설도 있다. 당대에는 수은 (Hg)을 불사의 약으로 알고 먹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는 언제나 더하고 뺄 것이 있다 치더라도 불로장생을 꿈꾸던 황제의 최후로는 걸맞지 않다.
죽는 것이 자연의 섭리 (攝理)인가?
불로장생은 인간의 오랜 꿈이기도 하고 부질없는 욕망과 어리석음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하다. 진시황의 전설과 같은 최후를 듣고 나면 역시 인간은 언젠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자연의 섭리 (攝理)라고 되새기게 된다. 하지만 누구나 죽는 것이 자연의 섭리가 아니라면 어떠한가? 주변을 돌아보자. 나무는 1천 년, 2천 년을 살고 세균은 적절한 조건이 갖춰지면 지속적으로 분열한다. 분열 횟수에는 제한이 없으니 무한분열 (無限分裂)이 가능하다. 즉 노화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죽지 않고 사는 것은 식물이나 세균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노화를 모르는 생명체들
무성생식을 하는 멍게, 불가사리, 히드라, 해파리 등도 적절한 조건이 주어지면 늙지도 죽지도 않을 수 있다. 불로장생! 진시황이 무덤에서 벌떡 일어날 얘기다. 그런데 천지개벽 (天地開闢)이 온 듯한 인류세 (人類世, Anthropocene)의 엠제트세대가 주류가 되어 가고 있는 세상이 됐는데 불로장생이 그들의 귓구멍에 먹혀들어 가겠는가? 지켜봐야 할 일이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과학자 겸 벤처기업가가 있다. 하버드 의대 교수인 싱클레어 (Sinclair)다. 그는 단순한 생명체중 하나인 효모 (酵母)를 이용해서 항노화 (抗老化) 물질을 개발하여 기업가로 세상에 알려졌다. 다음의 내용들은 싱클레어의 저서 노화의 종말에 나오는 주요한 대목이다. ‘투리토프시스 누트리쿨라 (Turritopsis nutricula)’ 라는 해파리는 이론적으로 무한히 생명을 반복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투리토프시스 (Turritopsis nutricula)’ 라는 해파리는 카리브해 연안에 서식하는 5mm 크기의 아주 작은 해파리다. 보통 해파리들은 번식이 끝난 뒤 죽는 반면 투리토프시스는 번식 뒤에 오히려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 투리토프시스는 번식이 끝나면 다시 미성숙 상태인 폴립(polip)으로 돌아간다. 몸체를 원통형 모양으로 취한 뒤 바위 등에 붙어 지내는 것이다. 익히 알려진 것처럼 도마뱀은 꼬리나 다리가 잘려도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형분화 (異形分化)의 원리로 하나의 세포를 다른 종류의 세포로 바꾸는 것이다. 투리토프시스는 도마뱀과 마찬가지로 이런 이형분화를 할 수 있는데, 꼬리나 다리처럼 신체의 일부가 아니라 몸 전체를 재생할 수 있다. 그런데 죽지 않는 해파리라니…, 계속 번식만 하고 죽지 않는다면 개체 수가 얼마나 많을까? 정확한 개체 수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본래 투리토프시스는 카리브해에 서식했지만 지금은 열대 기후의 바다 어디서나 발견되기 때문이다. 이는 화물선들이 배의 안정을 위해 싣는 물을 따라 전 세계로 퍼져 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무성생식을 하는 생물의 지속가능한 삶은 특별한 효소 때문에 가능하다.
텔로미어 (telomere)
바로 ‘텔로머라아제’다. 텔로머라아제 (Telomerase)는 DNA 염색체 끝부분에 있는 말단소체인 텔로미어 (telomere)를 보호하는 특정 효소다. 지난 2009년 엘리자베스 블랙번, 캐롤 글라이더, 잭 조스택 박사 등 3명은 텔로머라아제 효소와 텔로미어의 역할을 규명한 연구로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다. 텔로머라아제 효소가 인체의 노화와 암세포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낸 공로다. 세포의 염색체 가장자리에 있는 말단소체 (末端小體)는 대게 동일한 염기서열이 수천 번 반복돼 있다. 그런데 염색체를 복제할 때마다 이 반복 부위를 조금씩 잘라내게 된다. 한번 분열할 때마다 말단소체 (末端小體)의 길이는 조금씩 짧아진다. 세포분열이 반복되고 말단소체의 길이가 계속 짧아지면 세포가 더 이상 분열할 수 없는 때가 온다. 이것이 바로 노화다. 모든 생물은 세포분열을 하면서 말단소체가 점차 짧아지는데 그 길이에 따라 수명이 다르다. 같은 연령이라도 사람마다 노화 정도에 차이가 있는 것도 텔로머라아제 이 텔로미어의 길이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텔로머라아제 (Telomerase)
한편 텔로머라아제 효소는 생물이 세포분열을 한 뒤 염색체의 말단부가 짧아지는 것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한다. 인체에서 텔로머라아제는 난자가 수정된 직후인 배아기단계 까지만 존재한다. 배아기 세포가 성장해 뇌세포나 심장세포와 같이 분화된 후에는 텔로머라아제의 생산이 중단된다. 단 생산세포로 분화된 세포만 예외적으로 이 효소를 가지고 있게 된다. 그런데 앞서 말한 해파리나 멍게, 불가사리, 히드라 등의 무성생물은 스스로 텔로머라아제를 활성화해 노화를 억제하거나 방지한다. 현재 스웨덴 고텐부르크 대학 연구팀은 인간 노화를 억제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무성생식하는 동물을 연구하는 중이다. 특히 인간과 유전자의 유사성이 있는 멍게, 불가사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앞서 인간은 배아기 (胚芽期) 이후로 텔로머라아제의 생산이 중단된다고 했으나 예외의 세포가 있다. 바로 암세포다. 암세포에서는 텔로머라아제가 활성화돼 지속적으로 세포분열이 있어도 말단소체가 짧아지지 않는다. 즉 영구히 분열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몸에서 영원한 것이 암세포라니… 인간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는 병 속에 불멸의 비밀이 숨어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로장생의 아이러니 (Irony)가 아닐 수 없다. 본격적 인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오래 산다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인식도 있다. 병들고 쇠약한 몸과 외로움, 경제적인 어려움 등은 수명 연장의 그늘이다. 하지만 오래 살면서 젊음과 활력도 유지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그 신선수 (神仙水)를 마시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여전히 진시황과 같은 꿈을 꾸고 있는지 모른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3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민주화 실천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 (북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