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고사리를 중심으로 양치식물 이야기(2)
공룡과 운명을 같이하며
양치식물이 번성했던 시절에 자랐던 나무에는 나이테가 없다. 나이테는 온도차가 있을 때만 생기게 된다. 즉 식물이 자라고 있을 때와 자라지 못하고 쉬고 있을 때가 번갈아가며 있어야 나이테가 생성된다. 따라서 양치식물의 화석은 이첩기[二疊紀]까지 온도의 변화없이 식물이 계속 생장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이첩기라는 용어는 일본사람들이 만든 것이다. 한국에서는 페름기라고 한다. 양치식물을 이야기하려면 부득이 지구의 역사를 거론할 수밖에 없는데 그중에 거두절미하고 페름기만 짚어 보려고 한다. 페름기(Permian)는 고생대의 마지막의 여섯 번째 시기로, 약 2억 9000만년부터 2억 4500만년 전까지 시기이다. 페름기라는 이름은 우랄산맥 서쪽에 있는 페름시 부근의 지층의 이름을 페름계 지층이라고 부른데서 유래한다. 우랄산맥은 카자흐스탄 북부에서 북극해까지 러시아를 남북으로 종단하는 산맥이다. 독일에서는 이를 2개의 층이라는 의미인 Dyas(다이아스기)라고 부르면서 이를 일본어 스타일로 번역한 이첩기[二疊紀]라는 용어다. 다만 이 시기의 표준지층은 페름시 부근의 지층으로 정해져서 학술이나 일반에게는 페름기라는 명칭이 훨씬 더 많이 알려져 있다. 페름기에는 잘 나가던 지구의 생태계가 마치 벼락을 맞은 것 처럼 많고 많던 지구상의 생물체가 자취를 감출정도로 대멸종하는 재앙을 겪은 시기다. 그래서 페름기하면 “대멸종”기로 고쳐 부르기도 한다. “대멸종”은 2억 6000만년 전인 페름기 중기에 일어났는데, 해수면이 갑자기 낮아져 수많은 해양생물들이 멸종한 것으로 생각되며, 육상생물도 환경 변화에 따라 대량멸종이 일어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두 번째 일어난 사건은 고생대의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된 대멸종이었다. 중국 남부의 산에 남아있는 당시의 초지대에 남아 있는 화산재 분석에서 2억 5160만년 전에 갑자기 멸종이 시작되었다고 가정하고 있다. 고사리 등 양치식물도 대멸종에 휩쓸리긴 했겠지만 멸종에는 이르지 않았고 페름기 이전에 지각의 급변으로 지하에 매몰되면서 탄화하여 석탄이라는 화석을 대량으로 만들어 오늘날의 연료로 사용되기에 이른다. 지구를 뒤덮다시피 했던 양치식물이 땅속 깊이 매몰되던 시기를 석탄기[石炭紀]라고 하는데 고생대의 마지막 시기인 페름기 직전의 기간이다. 석탄기 이전을 데본기라고 하고 데본기, 이전을 실루리아기, 또 그 이전을 오로도비스기, 캄브리아기로 올라간다. 캄브리아기에서부터 생물체가 지구상에서 터전을 확실하게 잡으며 번창을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벼락도 맞고 땅이 꺼지고 갈라지기도 하며 천지개벽을 수없이 겪게 된다. 양치식물이 세상을 주름잡던 시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바다에서 태어난 생물들에게 육지는 넘보기 힘든 곳이었다. 메마르고 온도 변화가 큰데다 자외선이 강하게 쪼였기 때문이다. 최초의 생물이 바다에 나타난 지 30억년이 지나도록 육지는 텅빈 상태였다. 약 4억 2천만년 전 마침내 물가에 교두보를 마련한 원시 식물은 빠르게 진화해 육지를 초록으로 덮기 시작했다. 식물의 진화과정에서 식물이 상륙 작전에 성공하게 된 것은 “리그닌”이라는 목질의 소재를 발명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식물 조직을 단단하게 만드는 리그닌을 벽돌삼아 최초의 나무가 탄생했다. 중력에 짓눌려 땅바닥을 기던 식물은 하늘을 향해 키자람을 시작했다. 물과 양분을 나를 관다발과 뿌리, 잎이 잇따라 등장했다. 육지에 나무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약 3억5천만년 전 고생대 석탄기에 이르면 지구 최초의 원시림이 펼쳐진다. 바닷가 늪지대에 고층아파트 높이의 소철, 석송, 나무고사리가 삐죽삐죽 서 있는 사이로 비둘기보다 큰 잠자리가 날아다녔다.
석탄기
고생대 석탄기에서 페름기에 걸쳐 1억년 가까이 적도를 중심으로 지속된 거대한 숲의 시대는 인류에게 석탄을 남겼다. 삼척탄전 등 강원도의 무연탄도 이 시대의 유산이다. 국내 최대의 탄광인 강원도 태백시 장성탄광에서는 오늘도 수 백명의 광부가 지하 1000m 깊이에서 1인당 하루 9t꼴로 무연탄을 캐낸다. 이들은 서민의 구들장을 데우는 연탄을 만들거나 동해화력발전소의 연료로 쓰인다. 대한석탄공사 개발부장은 “탄광에서 석탄은 시루떡의 팥고물처럼 층을 이루고 있는데 지각변동을 받아 45~70도 기울어진 모습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다량의 석탄이 부존된 지층이 형성된 지질시대를 석탄기라고 부른다. 영국의 지질학자 윌리엄 코니베어러와 윌리엄 필립스가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822년 지은 것으로 최초의 지질시대 구분이기도 하다. 석회암이 고생대 초기에 바다에서 형성된 암석이라면, 석탄은 바다가 융기하여 형성된 호수나 얕은 해안가에 고생대 후기에 육지에서 크게 번성했던 키가 큰 고사리, 소철 등의 식물들이 전세계적으로 대거 묻혀 만들어졌다. 그래서 이 지질시대를 고생대 ‘석탄기’라고 부른다. 한국의 경우 고생대이후 오랫동안 땅속에 묻혀 있어서 탄소(C)의 함량이 매우 높고 다른 휘발성 불순물들이 적은 무연탄이 주로 생산된다. ‘무연탄’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불순물이 적어 연기가 거의 없기 때문인데, 연탄을 만들거나 화력발전소의 연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글로소프테리스(Glossopteris)
지금까지 찾아낸 양치류의 화석을 잘 관찰하면 다음과 같은 특색이 드러난다. 지금은 찾아 볼 수 없는 멸종된 식물이지만 석탄기에 번창했던 대표적인 식물이 있다. 호주 대륙에는 글로소프테리스(Glossopteris)라는 나무가 자랐었다. 글로소프테리스(Glossopteris)는 고생대 후기부터 중생대 초기에 곤드와나 대륙에 번성하였던 식물군이다. 글로소프테리스의 잎의 모양은 길쭉하고 둥글다. 이 때문에 그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로 혀를 의미하는 glôssa, tongue와 고대 그리스어로 양치식물을 의미하는 pterís, fern에서 유래하였다. 이 식물의 화석은 남반구 각 대륙의 석탄기 지층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곤드와나가 하나의 대륙이었음을 증명해주는 자료이기도 하다 아시아대륙에서는 자이간토프테리스(Gigantopteris)라는 식물이 번성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리고 우랄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알래스카에 이르는 대륙에는 칼리프레리스(Callipteris)라는 식물이 대표속[屬-genus]으로 나타난다. 이처럼 한때 무성했던 양치식물이 사라진 것은 기후변동 때문으로 여겨진다. 거대한 체구의 공룡도 양치식물과 함께 지구 위를 누비다가 멸종했다. 그 당시의 화석을 보면 침엽수와 은행나무 등 건조에 강한 식물들만이 자랐다는 증거가 여기저기서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증거들로 미뤄 보아 양치류와 공룡이 지구의 지배자 자리를 내놓을 무렵에 기후의 커다란 변동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엄청난 조산운동[造山運動]이 유럽을 중심으로 일어났다. 조산 운동은 지구 표면을 덮은 약 10장의 강한 판이 운동을 하여 다른 판에 부딪치거나 다른 판 밑으로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판끼리 접촉하는 지대에서는 지진이나 화산 활동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조산 운동을 통해 알프스나 히말라야 같은 대산맥도 생겨난 것이다. 이와 같은 견해를 판구조론이라 한다. 석탄기에서 이첩기 말기까지 사이에 맹렬한 조산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 북아메리카에서는 애팔래치아 변동이 일어났으며 우랄산맥 텐샨산맥 유럽중앙고지로부터 서부에 이르는 고지까지 엄청난 지각변동이 수반됐다. 이에 따라 산이 높아지고 계곡이 깊어졌으며 바다가 현저히 줄어들고 건조한 넓은 사막이 생겼다. 높은 산맥의 출현과 바다물의 후퇴로 인해 기후의 변동이 심해졌고 이 때문에 남극에서 북극까지 그야말로 살기좋은 온난한 환경 아래에서 무한정 자라던 나무고사리류 중에서 사라지는 종류가 많아졌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는 대륙의 중심부에서 커다란 빙하의 흔적이 발견됐다. 그러나 빙하 후기에 닥쳐온 추위와 건조한 기후조건 하에서도 글로스프테리스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도전은 새로운 응전을 낳았다. 글로소프테리스에서 보듯이 추위와 건조에 견딜 수 있는 양치류가 생겨났다. 이러한 현상은 남반구와 북반구에서 똑같이 일어났다. 이 식물의 멸종 원인은 씨앗의 크기와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하는데, 씨앗의 크기가 매우 커서 씨앗이 다른 지역으로 퍼질 수 없었던 것이 멸종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정이다. 양치식물같기도 하고 속시식물의 조상같기도 한 글로소프테리스류의 식물이 자취를 감추고 양치류세상이 도래하게 되었는데 양치류중에서도 나무고사리 종류가 번성하고 지구 곳곳에 어마어마한 흔적을 남기게 된다.
제주도의 고사리 피난처
제주도는 한반도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섬이지만 이국의 자연같은 느낌을 주는 것은 고사리 덕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제주도는 한반도에서 고사리의 피난처같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자라는 실고사리와 밭풀고사리는 숲 가장자리 등지에서 서식하고 있으나 대부분의 양치식물은 응달이나 숲속에서 자라고 있다. 또 남쪽의 거문도, 제주도의 비자림, 납읍의 상록수림, 섭섬, 물장울과 울릉도의 성인봉계곡 등은 양치식물이 자랄 수 있는 훌륭한 터전이 돼 주었다. 이런 곳들을 가 보면 인공적으로 양치식물을 가꿨다고 해도 곧이 들을만큼 잘 정리돼 있다. 바라보기는 좋으나 들어갈라치면 발디딜만한 틈새도 없다. 특히 일색고사리의 경우는 장관이다. 국내에서 양치식물의 서식지로 유명한 제주도를 찾아가 숲이 울창한 계곡에 들어가면 바위면까지도 노출된 것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이끼와 양치식물이 사이좋게 어울려서 바위면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비자림의 울타리를 벗어나서 깊고 얕은 동굴을 들여다 보면 각종 양치식물들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마치 사람들의 발뿌리를 피해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제주도의 협재굴에서 3km정도 떨어진 곳에 소천굴이 있다. 밖은 추워서 모든 식물이 떨고 있었는데 굴안은 김이 자욱한 온실이다. 이 굴안에 들어섰더니 돌토끼고사리 석위 및 도깨비고비가 문을 지키고, 누운괴불이끼 더부사리고사리 등이 바위면을 온통 점유하고 있었다. 이곳의 고사리들은 추위를 피해 굴속으로 들어온 등산객같이 보였다. 이러한 피난처가 있기에 한국에서 자라는 양치식물의 약80%가 제주도에서 서식한다. 지구상에서 자라는 양치식물은 1만2천종이고 한반도에서는 2백29종과 21변종이 발견돼 있다.
박광하(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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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2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