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식물계의 반항아 [反抗兒], 식충식물 [食蟲植物]과 난초 [蘭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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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충식물의 반항
식물이 동물들에게 마구 짓밟히며 인간을 비롯한 동물들 삶의 치다거리 신세에 반항하는 것인가? 곤충 등 자질구레한 동물들을 잘도 잡아먹으며 살아가는 식물이 있다. 식충식물 [벌레잡이 식물]이다. 이제까지 알려진 식충식물의 포식행위로 쥐, 개구리, 비교적 작은 파충류 정도는 잡아먹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식충식물은 열악한 환경조건을 극복하기 위한 식물진화의 가장 혁신적인 모습으로 판단하고 있다. 종류에 따라 서식지는 매우 다양하며 (사막, 사바나, 열대 우림, 물 속, 늪지대 등) 한국의 늪지대에도 소수 서식한다는 보고가 있다. 특히 베네수엘라의 테이블 산은 강수량이 무진장 많은데다가 그 물이 바깥으로 다 흘러내리는 구조라 무기물, 유기물 할 것 없이 아주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식충식물로 진화한 식물 이외에는 대부분 사라졌다. 대부분의 식물은 필요한 미네랄을 토양에서 얻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곳에 사는 식물도 있다. 지금까지 식충식물은 8과, 15속의 630종이 알려져 있다. 이는 35만 종의 현화식물 [顯花植物 – 꽃이 피는 식물] 중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날로 감소하고 있다. 서식지 파괴와 생태계의 질소 풍부화가 가장 중요한 감소 원인으로 보인다.
찰스 다윈의 식충식물 연구
다윈이 식충식물을 비켜갈 수가 없었다. 그는 진화론이라는 획기적인 학설을 확립하는 와중에서도 식충식물을 관찰하고 책도 펴냈다 1879년에 마지막으로 쓴 저서가 바로 “곤충을 잡아먹는 식물들 (Insectivorous Plants)”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초판 8천권이 전부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의 식충식물에 관한 연구는 사기꾼에게 이용당한 에피소드가 전해지고 있다. 독일인 칼 리쉬 라는 자가 다윈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아프리카 동북쪽에 있는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서 사람도 잡아먹는 거대한 식인나무가 있는 걸 봤다는 내용의 서신을 다윈에게 보냈다. 물론 뻥이었지만, 다윈은 “자세히 모르겠으나 어딘가 미지의 알려지지 않은 곳에선 지금 우리의 상상을 넘는 동식물이 있을 테니까 그게 이상한 건 아니다.”라는 애매한 답장을 보냈다. 이 작자가 이걸 다윈도 공식으로 인정했다는 투로 1878년에 낸 그의 책 서문에 써서 책을 팔아먹는 사기극을 벌린 것이다. 나중에 과학자들에 의하여 뻥이라는 사실이 들어 났고 다윈이 억울하게 당했다는 것을 알고 어려움을 당하지는 안았지만 한동안 활동을 삼가고 꽤 불편하게 지냈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찰스 다윈 (Charles Dawin)의 진화론을 간단히 정의 하면 모든 생명체는 반드시 족보처럼 연결됐기 때문에 조상 없이 홀로 태어난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전제를 둔 이론이다. 실제로 70억의 세계인구 중 단 한 사람이라도 부모 없이 홀로 태어난 사람은 없듯이 모든 생명체는 먼저 세대와 연결돼 있다. 다윈이 살던 150년 전에는 관찰하는 방법 밖에 없었으니 세포내의 DNA변화에서 오는 진화의 단초를 상상 할 수 있었겠는가? 그때는 단지 생명체의 외모나 내부구조 내지 습성을 기준으로 종을 구분하던 시대였다. 다윈이 특별히 식충식물에 관심을 보인 까닭은 그들의 기이한 삶이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적 적응 현상을 설명하는데 매우 적합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다윈은 끈끈이주걱과 파리지옥을 가지고 참으로 많은 실험들을 수행한다. 이 식물들에게 곤충은 물론 고깃덩어리, 종이는 물론 심지어는 자신의 가래까지 뱉어 넣어보며 어떤 메커니즘으로 육식을 하는지를 연구했다. 양쪽으로 펼쳐져 있는 파리지옥의 잎몸 (leaf lamina) 안쪽 표면에는 3개의 가느다란 감각털 (sensitive hair)이 나 있는데 이 중 두 개를 건드리면 두 잎몸이 순식간에 오므라드는 반응이 시작된다. 실험에 의하면 감각 털 하나만 건드려서는 반응이 시작되지 않고, 반드시 두 번째 털에 접촉이 생겨야 오므라들기 시작한다. 이것 또한 아마 허구한 날 먹이도 아닌 것들이 공연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걸 막기 위한 적응일지 모른다. 허지만 다윈의 이와 같은 정밀한 관찰만으로 는 그 가 알고 싶어 하였던 식충식물의 진화의 단초를 찾지 못하고 끝 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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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충식물의 구조
지금은 세포 속 유전자를 무려 10억 배로 확대 관찰하기 때문에 종의 구분은 더 이상 난제가 아니다. 그뿐 아니라 현대기술에 의해 새로 발견된 식충식물의 행위를 관찰해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감탄을 자아낸다.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민물에 떠돌면서 사는 통발 (Utricularia)이란 식물이 있다. 통발은 여러해살이풀로서 물 속에서 생활한다. 줄기는 가늘고 길며 가로 뻗는데, 뿌리가 없으며 물 위에 뜬다. 잎은 깃 꼴로 잘게 갈라져 있으며 빽빽하게 달리는데, 그 일부는 벌레를 잡는 주머니로 변화 되었다.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꽃줄기의 윗부분에는 3-6cm의 꽃자루를 가진 5개 정도의 황색 꽃들이 달리는데, 열매는 열리지 않는다. 한편, 겨울에는 줄기 끝에 공 모양의 눈이 생기며, 물 밑에 가라앉아 겨울을 보낸다. 주로 연못이나 늪에서 자라며 한국에서는 제주·경남·경기·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통발은 세상에서 가장 빠른 식충식물 이다. 이 식물의 입은 초당 1만 5천 번 움직입니다. 입 근처의 촉수만 건드려도 진공청소기처럼 벼룩을 빨아들여 상황이 종료된다. 먹이 감은 소화액에 용해가 되어 식물에 미네랄을 공급한다. 통발은 줄기에 길이 0.2mm 내지 1mm정도의 작은 투명주머니를 가졌다. 이 주머니는 마치 물고기처럼 입을 벌리고 있다가 주위에 물벼룩 [Water fleas]이 지나 가면 자그마치 1만 5천분의 1초의 속도로 낚아 챈다 [이 장면은 사이트에서 통발을 검색하면 볼 수 있음] 이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 1초에 1천장을 찍는 초고속 카메라를 사용해야 했다. 이렇게 빨리 먹이를 낚아채는 속도는 동물세계에는 찾을 수 없어서 한동안 연구대상이었는데 그 해답은 물리학자들이 밝혀냈다. 즉 통발은 이온현상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온현상이란 원자들 간에 전자를 뺏고 뺏기는 현상으로 그 속도는 수 십 억 분의 1초에 지나지 않고 그 힘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원자들이 뭉쳐서 물질을 유지한다. 쓰레기처럼 물 위를 떠도는 잡초가 어떻게 양자물리학을 이용해서 먹이사냥을 할 수 있을까? 지금 과학자들은 이를 계속 연구 중 이지만 만약 이 원리를 통발처럼 이용할 수 있다면 세계는 전면적인 새로운 에너지혁명을 맞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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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충식물의 조상
그러면 다윈이 찾지 못한 식충식물의 조상은 과연 누구일까? 유전자 판독으로 나타난 조상은 바로 난초였다. 식물군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며, 학계에 알려진 종만해도 3만여 종에 달하는 난초는 무척 교묘한 속임수를 쓴다. 색깔이나 향기나 생김새 등에 걸친 난초의 풍부한 위장 전술에 식물학자나 진화생물 학자들은 탄복해 마지않았다. 다윈도 난초에 깊이 심취하여 ‘난초의 재생산 전략’이라는 주제로 책 한 권을 썼을 정도이다. 그러나 생물학자들은 최근에 와서야 난초가 왜 그렇게 지독한 사기꾼 노릇을 하는지, 번식이나 생존, 생태계에서의 위치와 같은 중요한 문제에서 다른 식물들과 어떤 차이점을 갖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냈다. 난초의 생태를 세세히 살펴보면, 어떤 식물은 일찍부터 자주 번식을 하는 반면 어떤 식물은 당당한 태도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자신들의 유전자를 확실히 물려주는 방법을 선호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4억 5천만 년 전 육지에서 식물이 번식하기 시작했을 때는 모두가 뿌리번식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자기 종자를 멀리 넓게 보낼 수 없어 식물은 동물이 선호하는 과일을 만들고 그 속에 씨를 숨겨 동물의 먹이가 되게 했다. 씨는 동물의 변과 함께 멀리 퍼져 뿌리를 내렸는데 식물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더 창의적이고 대대적인 종의 번식을 꾀한 것이 바로 꽃이었다. 꽃을 피워 곤충을 유혹한 행위는 인류의 르네상스 문화혁명에 비유할 수 있다. 꽃이 없었다면 현재 70억 인구가 먹고 사는 식량 생산이 불가능했다. 이렇게 고마운 꽃은 과연 어떤 식물이 최초로 만들었는지? 이것도 난초가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초기 꽃의 화석을 보면 약 5천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렇게 오래된 화석으로는 유전자 검증이 불가능하여 어느 종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무 송진이 화석이 되면 마치 투명 프라스틱 처럼 된다. 이를 주단이라 한다. 근래 발견된 주단 화석 하나가 꽃은 난초가 원조라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즉 발견된 주단 속에 벌이 원형 그대로 갇혔는데 그 벌에 묻은 꽃가루가 바로 난초 꽃 가루였기 때문이다. 이 주단은 8천만 년 전 것으로 공룡시대에 이미 난초 꽃이 있었음이 새롭게 밝혀진 것이다. 동물진화에서 가장 성공한 생명체가 인간 이라면 식물계에서는 난초라고 주장하고 있다. 난초는 군더더기가 없고 단아하다. 난초가 고고한 자태로 자신을 신주처럼 떠받드는 인간을 보며 빙긋이 웃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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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3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민주화 실천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 (북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