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윤석열 대통령의 실패를 보면서, 교육을 생각한다
교육이념, 자존감 (自存感, Self-Esteem)과 (自信感, self-Confidence)
취근 시국관련 뉴스 시청하느라고 밤잠을 설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결국 체포되었다. 필자는 교육현장에서 평생을 살아오면서 윤석열 같은 대통령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대한민국의 교육풍토를 살펴 봐야 할 때라고 생각 한다. 뛰어난 기억력, 암기력으로 만 평가되는 한국교육의 성과물이 윤석열 대통령을 등장시킨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행복지수 세계1위로 꼽히고 있는 덴마크의 교육이념은 학생들에게 자존감을 심어주는 교육이라고 말한다. 교육사상가인 예스퍼 율 (Jesper Juul) 은 자존감과 자신감의 개념적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자존감 (自存感)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다. 반면 자신감 (自信感)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즉 무엇에 유능하며 어떤 재능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개념이다. 문제는 과도 (過度)한 자신감 (自信感)을 집착 시키는데 몰두 (沒頭)시키는 교육풍토다.
윤석열이라는 사람이 대통령, 우리 교육의 실패
교육은 인간의 마음을 형성하는 일에 관여한다. 따라서 우리 사회를 심층적으로 해부하고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교육에 대한 성찰이 필수적이다. 우리 교육이 그동안 어떠하였기에 윤석열이 라는 존재가 탄생하였을까? 그가 평범한 개인에 불과하다면, 이는 정신 치료의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위치에 있다. 따라서 윤석열은 우리 사회의 왜곡된 시스템과 교육의 참담한 실패를 표상한다.
많은 이들은 이번 12·3 내란 사태로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시민교육을 강조한다. 이는 지극히 맞는 말이다. 그런데 민주시민교육은 우리 교육의 최종적인 종착지이고 지향일 뿐, 교육 전체를 포괄하지는 못한다. 윤석열의 사례는 인간 성장 과정에서 교육이 실패한 지점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왜곡된 자아의 탄생, 자존감 교육의 실패
이 세상에 태어난 귀한 존재들이 최초로 받아야 할 교육의 본질이 무엇일까? 그것은 존재로서의 자신이 한없이 귀하고 소중하다는 정서와 인식이다. 자기 긍정 이야말로 인간 교육의 첫 단추이며, 민주주의의 근간인 인간 존중 정신을 내면화 하는 첫 출발이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이 첫걸음부터 비틀거린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살인적인 경쟁으로 내몰아서 뒤틀린 자아의식을 형성하게 만든다. 개인으로서 윤석열은 우리 교육의 이러한 실패를 잘 드러낸다. 윤석열은 엘리트 코스를 밟아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나 그의 행동 전반에는 낮은 자존감이 깊게 배어 있다. 그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사과할 줄 모른다. 남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며, 타자에 대해 매우 공격적인 성향을 보인다. 자신에 대한 비판을 견뎌내지 못하고, 폭력으로 응수한다. 이 모든 특성이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낮은 자존감을 보이는 것이 모순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제시카 조엘 알렉산더 (Jessica Joelle Alexander)는 <행복을 배우는 덴마크 학교 이야기>에서 덴마크 교육과 미국 교육을 비교하며, 덴마크 교육은 자존감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고, 미국 교육은 자신감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춘다고 말한다. 이러한 차이는 교육 철학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자존감(self-esteem)은 ‘나는 존재 자체로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내면적 자기 가치에 기반한다. 반면 자신감 (self-confidence)은 학위, 상장, 자격증 등 외부적 성취와 유능감과 관련된다. 이 환경에서 살아남고 성공한 윤석열은 매우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매우 허약한 자존감을 지닌 사람이다. 높은 자신감과 낮은 자존감의 조합은 우리 사회의 성공한 많은 이들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공통점이다. 이들은 스스로 행복감을 느끼기가 어렵다. 그것은 타자에 대한 적대와 공격으로 때로 표출된다. 우리사회와 교육은 지금도 자신감과 자존감의 괴리를 지닌 또 다른 윤석열을 길러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초경쟁적 교육 시스템은 개인의 불행할뿐만 아니라 사회적 갈등과 파편화도 심화하고 있다.
공감 능력과 공화주의적 사고의 부재
존재로서의 자존감을 기른 후, 다음 단계의 교육적 과업은 사회인으로서 타자와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공감 능력이다. 윤석열은 이러한 공감 능력의 결핍을 보여준다. 그의 행동은 공감의 역설 (paradox of empathy)로 잘 설명될 수 있다.. 윤석열은 자신과 가까운 집단에 과도하게 공감하는 반면, 반대 집단에는 극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의 공감 범위는 아내와 측근에 한정되어 있으며, 이런 태도는 “아내를 위해 계엄까지 해 보았다”라고 희화화 (戲畫化)되어 유통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실패를 보면서 본질적으로 대한민국의 교육풍토를 성찰 (省察)하는 계기로 삼아야한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3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민주화 실천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 (북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