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정자경쟁 [sperm competition] 속에 생명과학
정자들의 경쟁은 오직 1인자만 살아남아야 하는 생존게임이다. 정자가 그토록 치열한 경쟁에서 성취하고자 하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의 머리 부분에 내재되어 있는 유전자-DNA를 심처[深處]에서 개선장군을 기다리고 있는 난자 [卵子ovum]의 유전자와 짝을 맞추기 위해서이다. 정소는 포유류의 경유, 음낭 안에 있는 한 쌍이 있으며 정자생산과 테스테론 등 성호르몬을 분비하여 성활동을 촉진한다. 정자의 생산공장인 정소는 세정관 [細情管]이라는 가늘고 긴 관이 감겨져 있으며 이 세정관에서 정자를 생산한다. 이 정자 공장이 체온보다 낮아야 활발한 공정이 진행되기 때문에 외부에 배치된 것이며 약 35℃이상은 되지 않아야 정자생산이 정상으로 가동된다. 이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기온이 낮으면 오무러들고 날씨가 더우면 늘어지게 되는 것이다. 황소의 음낭은 생체온도계 기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경우, 정소에서 정자가 만들어 지기까지 75-90일로 보고 있으며, 근 3개월에 걸쳐 전사[戰士]로서의 자격을 갖춘 정자가 완성된다. 돌격신호와 함께 전립선과 정랑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액에 몸이 실려 전쟁터에 휩 쌓이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정자의 본색이 들어나기 시작한다. 정소안에서 얌전하던 정자는 격전지에 투입되자마자 임전무퇴 [臨戰無退], 좌충우돌 [左衝右突]하며 결승선 [決勝線]을 향해 필사의 진격을 한다. 사람의 정자 모양은 노 [櫓-oar]처럼 생긴 머리와 채찍처럼 길다란 꼬리를 갖고 있다. 크기는 머리가 0.005mm, 꼬리가 0.045mm이다. 정자의 머리에는 남자 염색체의 절반에 해당되는 23개가 빽빽하게 들어 차 있다. 수많은 정자들은 대오를 이루면서 꼬리를 사용하여 목표 고지인 난자를 향해 swimming을 해야 한다. 수영 속도는 분당 3mm이다. 한번 사정할 때 정액은 평균 3mL의 정액과 함께 격전지에 투입된 정자의 숫자는 2-3억 마리의 정도로 보고 있다. 사람과 같이 일부일처 [一夫一妻] 제의 동물들은 다른 수컷의 정자와의 전쟁을 할 필요가 없지만 일부다처 [一夫多妻] 제인 동물의 정자가 암컷의 생식기 안에서 다른 수컷의 정자와 전쟁을 치르는 현상이 과학자들의 의해 관찰되었다.
1988년 영국의 생물학자인 로빈 베이커와 마크 벨리스는 비정상적인 세포가 정자 경쟁과 수정의 전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입증한 카미카제 정자 (kamikaze sperm)이론을 발표했다. 2차대전말에 일본군은 자살특공대라고 할 수 있는 인간병기 [兵器] 전략을 구사 한일이 있다. 카미카제특공대 같은 자살특공대 가까운 정자의 자살특공대가 있는 것이 관찰되어 진 것이다. 사람의 정자를 관찰한 것이 아니고 쥐의 정자를 관찰한 결과이지만 난자가 암컷의 생식기관 안에서 수정되는 동물에서는 오로지 암컷이 이중성교 (doublemating)를 할 때 정자 경쟁이 일어난다. 암컷이 한 마리 이상의 수컷이 배설해 놓은 정자를 생식기관에 보유하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수컷과 짝짓기를 하는 것을 이중성교라고 한다. 로빈 베이커와 마크 벨리스 이론에 따르면 정자는 맡은 역할에 의해 두 종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난자와 수정하는 능력을 가진 극소수의 정자이고, 다른 하나는 동료 정자가 수정에 성공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 스스로 희생하는 것이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생물학자들은 임신에 부적합한 정자들을 쓸모없는 자연의 실패작이라고 생각했다. 학교실험실의 광학현미경으로 정자를 관찰해 봐도 의외로 기형 [奇形]의 정자들을 볼 수 있다. 꼬리가 2개 달린 것, 머리가 2개 달린 것, 꼬리를 활발하게 흔드는 활동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움직임이 없는 죽어 있는 것 같은 정자 등 로빈 베이커와 마크 벨리스는 정자들이 모두 반드시 수정 능력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이론을 제기한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정자는 맡은 역할에 의해 두 종류로 구분된다. 하나는 난자와 수정하는 능력을 가진 극소수의 정자이고, 다른 하나는 동료 정자가 수정에 성공하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서 스스로 희생하기 때문에 일본군의 카미카제 (神風) 특공대원을 비유하여 설명한 것이다. 카미카제 정자에는 봉쇄 [封鎖]정자와 살상 [殺傷]정자의 두 종류로 나눈다. 봉쇄정자는 난자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길목에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하고 다른 수컷의 정자가 암컷의 질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장벽을 만든다. 불량품 정자들은 못생긴 머리를 함께 조아리거나 기형의 꼬리를 휘감아서 질의 입구를 봉쇄하는 마개를 형성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마개는 일그러진 모양으로 죽은 정자들이 엉겨붙어 굳어진 것이다. 짝짓기 후에 정자들이 암컷의 질을 봉인하는 교미 마개는 초파리, 뱀, 박쥐, 원숭이 등 대부분의 동물에서 발견되었다. 교미마개는 일종의 정조대 [貞操帶]인 셈이다. 한편 살생정자들은 여성 생식기의 내부를 배회하면서 다른 남자의 정자를 수색하고, 스스로 분비하는 매우 치명적인 효소를 사용하여 경쟁자를 섬멸하거나 무력화 시킨다.
요컨대 카미카제 정자이론에 따르면 정자들은 분업을 통해 경쟁자를 물리치는 고도로 진화된 전략을 갖고 있다. 내부에다 사생결단의 경쟁과 처절한 전쟁을 벌여 놓고 당사국 [當事國]은 오불관언 [吾不關焉]의 형국 [形局]이다. 정자들은 자궁의 목 부분, 즉 자궁경부에 있는 점액을 뚫고 자궁속으로 나아간다. 이 점액은 끈적끈적한 덩어리이기 때문에 정자들이 뚫고 지나가기가 무척 힘들다. 따라서 겨우 2백 마리의 정자가 난자의 세포막에 도달한다. 이들은 머리에 들어 있는 효소를 방출하여 난자의 세포막을 녹인다. 궁극적으로 억세게 운이 좋은 한 마리의 정자가 난자 안으로 들어가면 정자는 용해되고 유전물질만 남게 되어 수정이 된다. 바로 그 순간에 난자의 세포막에는 재빠른 변화가 일어나서 다른 정자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수정막 [受精膜]이라는 철벽이 만들어 진다. 정자와 난자의 염색체가 융합된 수정란이 분열을 개시하면 새로운 생명체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 순간을 탄생의 시작이라고 본 것이 동양문화이며 서양은 자궁에서 빠져 나온 날을 생명의 시작으로 본 것이 동서 문화의 차이다. 정자와 난자가 생성되는 기간과 수정 후에 자궁 안에서의 성장기간을 합하면 1년이 되기 때문에 동양에서 생각하는 출생과 함께 1살로 치는 것은 극히 과학적 근거라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1600년대 정자가 발견됐을 때 정자는 하나의 작은 생명체라고 봐서 ‘극미동물’ (animalcule)이라고 하였으며 내부의 축소형의 개체가 웅크리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었다. 이는 추상 [推想]이었으나 과학자들이 동물의 정자의 활동을 면밀한 관찰통해서 정자 독단으로 의식 [意識]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밝혀냈다. 생물의 행동연구에 많이 이용되는 2종류의 흰발을 가진 생쥐가 있다. 애완용 쥐로 알려진 ‘흰발생쥐’ (Peromyscus maniculatus)는 땅굴 파기를 좋아한다. 이 쥐가 판 땅굴은 입구에서 보금자리까지의 거리가 짧다. 이에 비해 미국 남부에 많이 사는 ‘올드필드 흰발생쥐’ (Peromyscus polionotus)는 땅굴을 길게 파서 입구에서 보금자리까지 거리가 멀다. 또 보금자리에 뱀과 같은 적이 들어왔을 때를 대비해 도망갈 수 있는 탈출용 땅굴을 하나 더 판다. 이 습성은 학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에 이 습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 종류의 쥐의 유전자 조작을 해서 땅굴파는 습성을 바꿀 수 있었으며, 이 실험과정에서 정자들의 의식 [意識]적인 행동을 관찰한 것이다. 하버드 대학의 포유류 진화 유전학자 하이디 피셔 (Heidi Fisher) 박사 연구팀은 두 종의 쥐의 정자를 대상으로 실험했다. 두 종의 정자들을 하나의 배양접시에 섞어 담았더니, 정자의 3분의 2가량이 자신과 같은 종의 정자들과 무리를 짓더라는 것이다.
올드필드 흰발생쥐는 대부분이 일부일처제다. 때문에 이 종의 정자는 다른 수컷의 정자와 만나서 경쟁을 할 가능성이 낮다. 동일 수컷의 정자들끼리만 경쟁을 벌이면 되는 것이다. 실험결과도 이런 상황을 반영했다. 올드필드 흰발생쥐의 정자들은 다른 수컷의 정자들과 만나도 무리를 짓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이에 비해 흰발생쥐는 확연히 다르다. 한 마리의 암컷이 여러 수컷과 교미한다. 1분 만에 여러 수컷들을 상대할 정도다. 그래서 한 마리의 암컷에서 태어나는 새끼 흰발생쥐들은 아빠가 여럿이다. 때문에 흰발생쥐의 정자는 다른 수컷의 정자들과 심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피셔 연구팀은 2마리의 흰발생쥐의 정자를 한데 섞어놓았다. 그러자 예상대로 동일 수컷의 형제 정자들끼리 무리를 짓는 것을 보았다.
놀라운 점은 2마리의 흰발생쥐가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간일지라도 정자들은 서로간의 출신처 [出身處]를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영국 셰필드 대학의 저명한 동물행동학자 팀 버크헤드 (Tim Birkhead) 교수는 “이번 연구가 정자가 혈연관계인지 아닌지를 구분해내는 능력을 갖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의문은 정자가 어떻게 서로를 알아보느냐하는 점이다. 버크헤드 교수는 “수컷 쥐가 정자의 표면에 서로를 알아볼 수 있도록 화학적 특징을 남겨놓았다거나 혹은 정자가 유전적으로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낼 것”으로 추측했다. 실제로 효모와 같은 일부 단세포 생물은 서로를 알아보고 결합할 수 있도록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갖고 있다. 피셔 박사는 흰발생쥐도 이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유인원의 교미체제는 고환의 크기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사람의 경우 고환 한쌍의 평균 무게는 약 42.5g정도 된다. 사람이 고환을 유인원의 고환과 비교해보면, 고환의 크기와 몸무게와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사람보다 몸집이 큰 고릴라의 고환이 사람의 고환보다 작은 반면에 사람보다 몸집이 작은 침팬지의 고환이 사람의 고환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몸무게는 2백kg정도 나가는 수컷 고릴라가 침팬지보다 네배 이상 무겁지만 고환의 무게는 도리어 약 1백10g인 침팬지가 고릴라보다 네배 가량 더 무겁다. 1970년대에 영국 생물학자인 로저 쇼트는 교미를 자주하는 종일수록 큰 고환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몇 마리의 수컷이 한 마리의 암컷과 일상적으로 교미를 하는 종일수록 특별히 큰 고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암컷 고릴라의 경우 새끼를 낳고서 3-4년 동안 성관계를 갖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시 새끼를 잉태할 때까지 한 달에 오로지 며칠 동안만 수태가 가능하다. 그러므로 여러 마리의 암컷을 거느린 유능한 수컷일지라도 교미를 자주 할 수 없다. 기껏해야 1년에 서너번 밖에 기회가 없는 것이다. 요컨대 수컷 고릴라는 정액을 많이 사용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유인원 중에서 가장 작은 고환을 갖게 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수컷 침팬지는 수많은 암컷들과 거의 매일 교미를 할 수 있다. 암컷 침팬지 역시 수많은 수컷과 짝짓기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암컷에게 가장 많은 정자를 주입시키는 수컷이 그 암컷을 임신시킬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다. 따라서 정자를 생산하는 고환이 커지게 된 것이다.
이 두 종류의 중간정도 되는 인간의 고환이 이 두 종류의 중간정도 된다는 것을 봐서 일부일처 [一夫一妻]제도 아니고 일부다처 [一夫多妻]도 아닌 중간 형태의 성문화를 유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론이다. 왜냐하면 아직도 일부 부족 [部族]은 일부다처 [一夫多妻] 혹은 다부일처 [多夫一妻]의 성문화를 거부감없이 유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문화이건 간에 종족보전의 의지가 담긴 유전자-DNA에서 출발한다. 생명체의 시작과 함께 해온 정자들의 의지 [意志]와 경쟁 mechnism을 경외감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다. 정자들을 소모품으로 생각하고 마구 낭비하는 인간들은 이 오묘하고 목표의식이 투철한 정자들의 행동을 보며 오불관언 [吾不關焉]의 태도를 숙고하여야 하지 않을까?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3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민주화 실천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 (북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