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하의 생명과학 이야기
호박 수정과정의 생명과학
부제 (副題) : 호박 웨딩세레머니 라이선스
선친의 호박 농사
어린 시절 고향에서 선친의 호박 농사하시던 모습이 생생하다. 선친께서는 백여 평 남직한 텃밭에다 호박농사를 하시며 쏠쏠한 재미를 보셨다. 지금 생각하면 끔직한 일이지만 선친은 호박의 밑거름으로 똥을 채워서 호박을 키우셨다. 똥은 기생충알의 범벅일 수 있다고 배우던 시절인데 똥으로 호박을 키우시니 질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저러나 아랑 곳 하지 않고 똥으로 키운 호박음식을 먹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로부터 70여년이 지난 현금에, 시드니에서 선친과는 다른 방법이지만 호박재배를 하고 있다. 텃밭이 비좁긴 하지만 빈틈을 살려서 호박농사를 한다. 성수기에 매일 4-5개의 애호박을 수확해서 식품점에 납품도하고 이웃과 나눠 먹기도 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호박벌 (뒤영벌)
한국에서는 호박꽃이 만발하면 호박벌 (뒤영벌)이 찾아 들어 꽃가루 매개하게 되는데 호주에는 뒤영벌이 없다. 그래서 필자가 뒤영벌 역할을 대행하고 있어 그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시드니에는 영봉농가가 꽤 있어서 꿀벌은 많이 날아다닌다. 그러나 꿀벌은 꿀채취가 목적이기에 꽃가루 매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호박은 암수꽃이 확실하게 다르다. 호박의 암꽃은 꽃 이파리 밑둥에 새끼호박을 달고 나온다. 수꽃의 밑둥은 밋밋해서 단번에 알 수 있다. 호박꽃은 오전에 만개 하였다가 정오가 가까워오면 꽃잎을 오므리기 때문에 늦어도 오전 10시 이전에 꽃가루 매개를 해야 한다.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착상하면 놀라운 수전과정의 생체시스템이 작동하게 된다.
중복수정의 복잡한 과정
수정은 꽃가루 속의 정세포와 배낭 속의 난세포가 만나야만 이루어지게 된다. 호박 같은 속씨식물에서는 수배우체 (꽃가루) 자신이 대롱 모양으로 자라 난세포 가까이에 이른 후에야 비로소 정세포를 몸 밖으로 내보낸다. 이때 꽃가루는 발아하여 ‘꽃가루관’을 형성하는데, 이것은 씨방과 그 안의 밑씨로 단단히 싸여 있는 속씨식물의 배낭에 접근하기 위한 수단이다. 꽃가루는 튼튼한 외벽에 둘러싸여 있으나 외벽이 없는 부분이 있다. 이 곳을 ‘발아공’이라고 하는데, 발아공의 구 (口)는 식물에 따라서 일정하며, 발아할 때에는 이 구멍에서 내벽이 세포질과 더불어 대롱 모양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이 때 구멍의 수가 많으면 그 수만큼의 꽃가루관이 나오게 되는데, 언제나 꽃가루관핵과 생식핵은 서로 짝이 되어 그 중 1개의 꽃가루관에 들어가므로, 나머지의 핵이 들어가지 않은 꽃가루관은 얼마 후에 신장을 멈추게 된 한편, 꽃가루로부터 세포질과 핵을 받은 꽃가루관은 끝부분에서 차례로 세포벽을 만들어 자라나게 된다. 그러나 일정한 시기가 되면 꽃가루 세포는 더 이상 분열하지 않으며 세포질의 양도 늘어나지 않고 신장해 가기 때문에, 낡은 꽃가루나 꽃가루관은 속이 텅 빈 채로 남게 된다. 거기서 꽃가루 세포는 뒤쪽에 칼로즈 마개라고 하는 칸막이를 만들면서 나아 간다. 이와 같이, 꽃가루관이 형성되면 그 안의 생식핵은 다시 분열하여 2개의 정세포가 된다. 꽃가루관이 자라고 있는 동안은 원칙적으로 꽃가루관 핵이 앞쪽 끝 가까이에 있고 정세포는 그 안쪽에 있게 되는데, 꽃가루관이 밑씨에 이를 때 쯤에는 그 순서가 바뀌어 정세포가 꽃가루관핵을 앞지르게 된다. 일반적으로, 씨방 속의 밑씨에 도달한 꽃가루관은 주공을 지나 밑씨 속으로 들어가며, 이어서 배낭 속에 침입하게 된다. 이 때, 꽃가루관은 2개의 조세포가 접하는 부분으로부터 들어간다고 한다. 이것은 조세포의 배낭 세포에 접한 세포벽이 변형된 선형 장치를 이루고 있다가, 꽃가루관이 다가오면 팽창하여 해면상으로 됨으로써 꽃가루관이 쉽게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꽃가루관은 그 끝을 조세포의 어느 한쪽에 침입시켜 내용물을 방출하게 된다. 그러나 정세포를 받아들인 조세포에서는 수정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세포의 핵은 꽃가루관에서 방출된 꽃가루관핵과 함께 퇴화되어 세포 자체가 붕괴되고 만다. 한편, 꽃가루관이 침입하지 않은 다른 한쪽의 조세포도 이러한 현상이 급속히 진행되지는 않지만, 얼마 후에는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이와 같이, 조세포가 붕괴되면 배낭 세포 속에 방출된 2개의 정세포 중 1개는 난세포로 향하며, 다른 1개는 극핵의 집합체 또는 그들의 융합으로 생긴 중심핵으로 향하게 된다. 그 후 1개의 정세포는 그대로 난세포와 수정되며, 다른 1개의 정세포는 그 세포질을 벗어던지고 정핵이 되어 극핵과 수정하게 된다이와 같이, 속씨식물의 수정은 암배우체인 낭속의 두 군데에서 행해지므로, 이와 같은 복잡한 과정을 ‘중복수정 (重複受精)’이라고 불린다. 자연생태 시스템에서 이과정이 뒤영벌과 함께 진화해 왔지만 인간의 활동으로 이 시스템이 붕괴되어 부득이 인공적으로 수정작용을 대행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호박의 웨딩세레머니 (wedding ceremony) 라이선스 (licence)
이것이 필자가 자랑하고 있는 호박의 웨딩세레머니 (wedding ceremony) 라이선스 (licence)다. 농약과다 살포 등으로 한국의 야생 두영벌이 살아진 후에 네델란드 등 유럽에서 뒤영벌 벌통을 수입하였으나 현재는 한국의 농촌진흥청에서 개발한 뒤영벌 벌통을 활용해서 과채류 (果菜類) 농사를 한다고 한다.
뒤영벌 사육기술 개발
뒤영벌 사육기술 개발은 야생벌을 실내에서 사육, 번식이 가능하도록 실내사육 조건으로 온도, 습도, 먹이 등 사육환경을 구명해서 사육기술을 성공시켰다고 한다. 또 자연계에서 1년에 1세대인 뒤영벌을 연중사육하기 위해 냉장온도, 냉장시기 등을 구명해 저온처리방법을 개발했고 탄산가스 처리시기, 시간 등을 구명해 탄산가스 처리방법도 개발했으며 이렇게 개발한 기술 등으로 휴면을 타파할 수 있었고 1년에 최소 3번 이상 사육이 가능하도록 국내 최초 연중사육기술도 개발되었다고 한다. 야생벌인 뒤영벌을 화분매개 곤충용으로 선택한 것은 뒤영벌이 꿀벌과 달리 꿀을 생산하지 않는 화분매개 전용벌이기에, 토마토 등 꿀이 없는 무밀 (無蜜)작물에도 효과적일 뿐 아니라 땅벌로 저온에도 강하기 때문이다. 또 적은 마리수로 활동성이 뛰어나 좁은 공간의 하우스에 효과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 연구관은 “이러한 장점 때문에 뒤영벌을 선택했고 보다 많은 작물의 화분매개에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실내 대량생산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개발 동기를 밝혔다. 뒤영벌은 국외에서 1987년에 처음 상품화됐으나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까지 전혀 생산되지 않고 뒤영벌 주요생산국가인 네덜란드, 벨기에, 이스라엘 등에서 전량 수입되는 상황이였다”며 본격적으로 개발연구를 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화분매개곤충 뒤영벌의 사육기술 개발의 경제적 효과는 2001 ~ 2008년까지 8년간 약 53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2002년까지 국내에서 전혀 생산하지 못해 100% 수입했던 뒤영벌을 2013년에는 87%나 국내 자체 생산함으로써 수입대체 효과를 얻었다. 또 2002년도에 15만원하던 농가보급 가격을 2013년에는 6만5000원으로 56%나 낮출 수 있게 됐다고 한다.
한국의 농촌진흥청 연구관은 “2002년 이전까지 불모지였던 국내 뒤영벌 시장이 우리가 개발한 기술이전으로 불과 10년 사이에 급성장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 2018년까지 농가보급률을 30%, 수입대체율을 100%로 올려 화분매개 곤충 시장의 확대보급을 통해 식량생산 증대를 촉진토록 하겠다”고 향후 계획을 밝혔다. 우선 연구 방향을 국내에서 뒤영벌 증식기술 개발이 절실히 요구되는 만큼 뒤영벌 산업화로 가닥을 잡고 수입대체율 100%, 또한 농업인에게 부담되는 뒤영벌 구입비 50% 이상 인하에 연구개발 목표를 설정했다. 뒤영벌 산업화를 위한 첫 단계로 땅속에 사는 야생벌을 실내로 들여와 실내사육기술을 개발하고 휴면을 타파해 연중사육기술 개발, 산업화를 위한 대량생산기술 개발 등에 초점을 두고 체계적인 연구를 시작했으며. 또한 개발된 기술을 산업체에 이전하고 현장에 그 기술을 보급하는 등 총 5단계로 연구체계를 수립했다고 한다. 이렇게 개발된 기술을 산업체에 이전했는데 2002년까지 전무하던 생산업체가 2013년 14개 업체로 급성장해 국내 화분매개 곤충 산업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대량증식한 뒤영벌을 기존의 호르몬처리나 인공수분에 의존하던 토마토 등의 시설작물에 적용해 품질향상과 노동력도 절감할 수 있었다. 또 시설작물 전용으로 사용하던 뒤영벌을 노지 작목에도 적용한 기술로 개화기에 저온 등으로 수분이 불리한 사과 등의 과수나무에 저온에 강한 뒤영벌을 적용해 수정률 향상과 노동력을 크게 절감할 수 있었다. 동시에 과일, 채소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종자생산 작물에까지 이 기술을 적용시켜 무의 경우 채종량을 80% 이상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한다. 한국의 위상(位相)이 다방면에서 높아져 가고 있지만 선진화된 K농업도 세계적인 명성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박광하 (전 여주대신고 교감, 전 수원계명고 교장)
필자 박광하 선생은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마친 후에 평생을 생물과학 강의와 교육에 헌신하여 왔다. 30여년 전 호주로 이주하여 시드니에 거주하며 민주화 실천과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생명과학이야기’ (북랩)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