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고 (班固)의 한서 (漢書) 개관
1. 개요
중국 후한(後漢) 시대의 역사가 반고(班固)가 저술한 기전체(紀傳體)의 역사서로 전 120권이다. 전한서(前漢書) 또는 서한서(西漢書)라고도 부른다. 사기(史記)와 함께 중국 사학사(史學史)를 대표하는 저작이다. 처음 반고의 아버지 반표(班彪)는 사기가 무제(武帝) 태초(太初) 연간(B,C. 104~B.C. 101)까지만 서술되었고, 유향(劉向)·풍상(馮商) 등이 보충하였지만 부족하다고 느껴서, 사기후전(史記後傳) 65편을 쓰게 되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반고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수사(修史)의 일을 시작하였으나, 사사로이 국사를 개작한다고 고발을 당해 한때 투옥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반고의 원고를 본 명제(明帝)는 그를 칭찬하고 한서(漢書)의 저작을 명하였다. 그리하여 장제(章帝) 건초(建初) 연간(76~83)에 일단 완성을 보았으나 팔표(八表)와 천문지(天文志)가 미완성인 채 그가 죽자, 누이동생 반소(班昭)가 화제(和帝)의 명으로 계승하였고, 다시 마속(馬續)의 보완(補完)으로 완성되었다.
2. 저자

1) 성명:반고(班固)(32~92)
2) 자(字)·별호(別號):자는 맹견(孟堅)
3) 출생지역:부풍(扶風) 안릉(安陵)(현 섬서성 함양)
4) 주요활동과 생애
반고는 호족이요 외척이자 관료로, 가학의 전통이 있는 가정 출신이었다. 그는 한(漢) 무제 때의 월기교위(越騎校尉)를 지낸 반황(班况)의 증손자이다. 그의 부친 반표가 사망하자, 곧 사기후전의 정리에 착수하여 부친의 업적을 이루자 하였으나, “사사롭게 국사를 개작한다.”고 고발당해 투옥당하고 집안의 원고도 빼앗겼다. 그러나 원고를 본 명제의 눈에 들어 난대령사(蘭臺令史)라는 관직까지 얻었다. 그 후 반고는 16년에 걸쳐 한서(漢書)를 편찬했다. 40대 중반에 그는 장군 두헌(竇憲)을 따라 흉노(匈奴) 정벌에 나서기도 했다. 두헌이 유배되자, 반고도 상관의 몰락에 연루되어 투옥되고 문초를 당했으며, 60세에 옥에 갇힌 채 죽었다.
5)주요저작:양도부(兩都賦), 백호통의(白虎通義), 답빈희(答賓戲), 유통부(幽通賦) 등
3. 서지사항
한서는 사기가 사마천(司馬遷) 개인의 편찬이었던 것과는 달리 일종의 칙찬사서(勅撰史書)라 할 수 있는데, 한서는 명제가 반고에게 집필의 완성을 명령함으로써 완성될 수 있었다. 반고의 사상과 감정이 한나라 황제와 상통하였던 것이다. 즉 한서는 유씨(劉氏)의 한 왕조 통치를 옹호하기 위한 것으로, 유심주의의 신학 관점이 관통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사기의 체제를 채용하였고, 한 문제(文帝) 이전의 서술은 사기 원문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사마천의 사상적 관점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반고는 사서의 편찬에는 ‘성인’의 시비를 시비로 삼아야 하고 대도를 논하려면 유교 경전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그의 한서는 곧 유가의 표준으로써 시비를 저울질했기 때문에, 유씨 왕조의 입장에서 역사사건과 인물을 평가했다.
그는 사기가 한 왕조의 건립자인 유방(劉邦)을 여러 왕 가운데 끝에 끼워 넣어, 유방의 역사적 지위를 낮췄다고 보았다. 따라서 한서는 유씨의 한 왕조의 이름을 사서의 명칭으로 삼았으며, 한 고조(高祖)를 본기(本紀)의 첫 장에 위치하게 하고 항우(項羽)를 열전(列傳)으로 끌어내렸다. 아울러 ‘천통(天統)’을 얻었다고 선양하였다.
또한, 사기와는 달리 효혜황제(孝惠皇帝)를 위한 본기를 세우고, 고조와 여후(呂后)가 집정하기 전 사이에 아주 짧은 혜제기(惠帝紀)를 삽입함으로써, 유씨의 한 왕조의 국통을 밝히고 유심주의적으로 이 기간의 정권은 여전히 유씨에게 귀속된 것이지 여치(呂稚)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타내고자 했다. 또한, 왕망(王莽)에 대해서도 왕망본기(王莽本紀)를 세우지 않고 열전(列傳) 말미에 위치시켰다.
이처럼, 한서는 사서를 통해 왕조교체에 대한 하나의 ‘정통’ 관념을 제시한 셈이다. 하늘이 정하는 정통 관념은 이전부터 있어왔으나, 정식으로 사서의 편찬을 이끈 것은 반고부터이며, 이후 중국사학의 전통 관념이 되었다.
4. 내용
한서의 명칭은 반고 스스로가 붙인 것이다. 앞에 ‘전(前)’ 자를 추가한 것은 양 원제(梁元帝) 시기에 편찬된 금루자(金樓子)의 취서편(聚書篇)에 처음 보이는데, 대체로 후한서가 간행되자 이를 구별하기 위해서였다.
한서의 기본 자료는 무제 이전은 대부분 사기에서, 그 이후는 반표가 지은 후전(後傳) 65편을 저본으로 하였다. 이 밖에 칠략(七略)·상서(尙書)·홍범오행전(洪範五行傳)·전국책(戰國策)·과진론(過秦論)·신어(新語)와 유흠(劉歆)·왕충(王充)·양웅(楊雄) 등의 논저들을 참고로 하였다. 한서는 수서(隋書)에는 115권이라 하였고, 통지(通志)에는 120권이라 하여 권수에 차이가 있으나, 이는 본래 100편인 것을 안사고(顏師古)가 주할 때 권질을 나누어놓았기 때문에 20권이 많아지게 된 것이다. 대체로 한서의 체제는 사기를 답습하였으나, 세가(世家)를 두지 않고 서(書)는 지(志)로, 본기는 제기(帝紀)로 고쳤다.
한서의 내용 중 권 1부터 권 12까지는 제기로, 고제(高帝, 고조)부터 평제(平帝)까지 12편 13권으로 되어 있다. 특징적인 것은 사기에는 고조본기(高祖本紀) 뒤에 여후본기(呂后本紀)가 있으나, 한서에서는 여후기(呂后紀) 앞에 혜제기를 두고 있다. 또 사기에서의 항우본기(項羽本紀)·진섭세가(陳涉世家)를 한서에서는 모두 열전에 넣었다.
권13부터 권20까지는 표(表)로 이성제후왕표(異姓諸侯王表)·제후왕표(諸侯王表)·왕자후표(王子侯表)·고혜고후효문공신표(高惠高后孝文功臣表) ·경무소선원성애공신표(景武昭宣元成哀功臣表) ·외척은택후표(外戚恩澤侯表)·백관공경표(百官公卿表)·고금인표(古今人表)로 8편 10권으로 되어 있다. 사기에는 본래 10편으로 되어 있으나 한서는 8편으로 하였다. 그중 외척은택후표(外戚恩澤侯表)와 고금인표(古今人表)는 사기에는 없는 것을 새로 만든 것이다.
권21부터 권30까지는 지(志)로 율력(律曆)·예악(禮樂)·형법(刑法)·식화(食貨)·교사(郊祀)·천문(天文)·오행(五行)·지리(地理)·구혁(溝洫)·예문(藝文) 10편 18권으로 되어 있다. 지는 사기의 서와 같은 것으로, 사기의 예서(禮書)·악서(樂書)를 예악지(禮樂志)로, 율서(律書)·역서(曆書)를 율력지(律曆志)로, 천관서(天官書)를 천문지(天文志)로, 봉선서(封禪書)를 교사지(郊祀志)로, 하거서(河渠書)를 구혁지(溝洫志)로, 평준서(平準書)를 식화지(食貨志)로 고쳤다. 그리고 형법지(刑法志)·지리지(地理志)·예문지(藝文志)는 새로 추가하였다.
권31부터 권100까지는 〈열전〉으로 〈진승항적열전(陳勝項藉列傳)〉으로부터 〈서전(敍傳)〉까지 70편 79권으로 되어 있다. 〈열전〉에는 〈유림전(儒林傳)〉·〈순리전(循吏傳)〉·〈혹리전(酷吏傳)〉·〈화식전(貨殖傳)〉·〈유협전(游俠傳)〉·〈영행전(佞倖傳)〉·〈외척전(外戚傳)〉과 〈흉노전(匈奴傳)〉, 〈서남이양월조선전(西南夷兩粤朝鮮傳))〉, 〈서역전(西域傳)〉 등이 실려 있다. 《사기》의 〈세가〉가 〈열전〉으로 바뀌고 〈자객(刺客)〉·〈골계(滑稽)〉·〈일자(日者)〉·〈구책(龜策)〉의 4전이 생략된 반면 〈서역전(西域傳)〉이 추가되었다. 《한서》의 외국관계 기사는 《사기》에 비해서 훨씬 충실하다. 특히 〈흉노열전〉과 〈서역전〉은 《한서》의 가치를 높여주는 부분으로 손꼽힌다. 반면 〈조선전(朝鮮傳)〉은 사기를 거의 전재한 것으로 가치가 떨어지나 〈지리지〉와 함께 당시 낙랑군을 비롯한 한의 동방진출과정을 전하고 있어 연구자료로서 의의가 있다.
《한서》는 후한·삼국(三國)·수(隋)·당(唐)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보충하였는데, 그중 복건(服虔)·응소(應劭)·신찬(臣瓚)이 대표적이며, 당의 안사고(顏師古)는 위의 주석가들의 설을 종합하였다. 청대(淸代)에서도 전대소(錢大昭)의 《한서변의(漢書辨疑)》, 심흠한(沈欽韓)의 《한서소증(漢書疏證)》, 주수창(周壽昌)의 《한서주교보(漢書注校補)》, 왕선겸(王先謙)의 《한서보주(漢書補注)》 등이 있으며, 이 중에서 왕선겸의 《한서보주》는 안사고 이래 제일 잘된 것이다. 《한서》의 간본으로는 청(淸)나라 건륭(乾隆)의 무영전판(武英殿版) 《한서》와 왕선겸이 송(宋)나라로부터 이후 청나라 말기까지의 제학자의 주석을 수집 증보한 《한서보주》 120권이 대표적이다.
5. 가치와 영향
《한서》는 후대의 사학의 발전과 사서편찬에서 《사기》의 역사적 의의를 능가하고 있다. 사서의 편찬학으로 볼 때, 반고의 업적은 기전체의 정통화와 규범화를 완성시켰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당시 대부분의 사서가 몇 조대를 함께 서술하고 적어도 두 조대를 함께 서술하였거나 아니면 한 조대 안에서 짧은 시기를 택하거나 또는 하나의 사실(史實)을 서술하였다. 그런데 단대사의 방식으로 한 조대의 역사를 서술한 것은 반고의 《한서》가 처음이다.
그러나 유지기가 비평한 것처럼 〈오행지(五行志)〉는 크게 잘못된 것으로, 춘추(春秋) 이래 엉터리 미신에 대하여 기록했기 때문에 후세에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와 〈부서지(符瑞志)〉와 같은 좋지 못한 예를 남기게 되었다.
6. 내용 (목차)

– 본기
고제기(高帝記)
혜제기(惠帝記)
고후기(高后記)
문제기(文帝記)
경제기(景帝記)
무제기(武帝記)
소제기(昭帝記)
선제기(宣帝記)
원제기(元帝記)
성제기(成帝記)
애제기(哀帝記)
평제기(平帝記)
– 표(表)
이성제후왕표(異姓諸侯王表)
제후왕표(諸侯王表)
왕자후표(王子侯表)
고혜고후문공신표(高恵高后文功臣表)
경무소선원성공신표(景武昭宣元成功臣表)
외척은택후표(外戚恩澤侯表)
백관공경표(百官公卿表)
고금인표(古今人表)
– 지(志)
율력지(律暦志)
예악지(禮樂志)
형법지(刑法志)
식화지(食貨志)
교사지(郊祀志)
천문지(天文志)
오행지(五行志)
지리지(地理志)
구혁지(溝洫志)
예문지(藝文志)
– 열전
.권31 진승항적전(陳勝項籍傳)
진승(陳勝)
항적(項籍)
.권32 장이진여전(張耳陳餘傳)
장이(張耳)
진여(陳餘)
.권33 위표전담한왕신전(魏豹田儋韓王信傳)
위표(魏豹)
전담(田儋)
한왕 신(韓王 信)
.권34 한팽영노오전(韓彭英盧吳傳)
한신(韓信)
팽월(彭越)경포(黥布)
노관(盧綰)
오예(吳芮)
.권35 형연오전(荊燕吳傳)
형왕(荊王)
연왕(燕王)
오왕(吳王)
.권36 초원왕전(楚元王傳)
초원왕(楚元王)
유벽강(劉辟彊)
유향(劉向)
유흠(劉歆)
.권37 계포난포전숙전(季布欒布田叔傳)
계포(季布)
난포(欒布)
전숙(田叔)
.권38 고오왕전(高五王傳)
제도혜왕(齊悼惠王)
조은왕(趙隱王)
조유왕(趙幽王)
조공왕(趙共王)
연영왕(燕靈王)
.권39 소하조참전(蕭何曹參傳)
소하(蕭何)
조참(曹參)
.권40 장진왕주전(張陳王周傳)
장량(張良)
진평(陳平)
왕릉(王陵)
주발(周勃)
.권41 번역등관부근주전(樊酈滕灌傅靳周傳)
번쾌(樊噲)
역상(酈商)
하후영(夏侯嬰)
관영(灌嬰)
부관(傅寬)
근흡(靳歙)
주설(周緤)
.권42 장주조임신도전(張周趙任申屠傳)
장창(張蒼)
주창(周昌)
조요(趙堯)
임오(任敖)
신도가(申屠嘉)
권43 역육주유숙손전(酈陸朱劉叔孫傳)
역이기(酈食其)
육고(陸賈)
주건(朱建)
유경(劉敬)
숙손통(叔孫通)
.권44 회남형산제북왕전(淮南衡山濟北王傳)
회남여왕(淮南厲王)
형산왕(衡山王)
제북정왕(濟北貞王)
.권45 괴오강식부전(蒯伍江息夫傳)
괴통(蒯通)
오피(伍被)
강충(江充)
식부궁(息夫躬)
.권46 만석위직주장전(萬石衞直周張傳)
석분(石奮)
위관(衛綰)
직불의(直不疑)
주인(周仁)
장구(張歐)
.권47 문삼왕전(文三王傳)
양효왕(梁孝王)
대효왕(代孝王)
양회왕(梁懷王)
.권48 가의전(賈誼傳)
가의(賈誼)
.권49 원앙조조전(爰盎晁錯傳)
원앙(袁盎)
조조(鼂錯)
.권50 장풍급정전(張馮汲鄭傳)
장석지(張釋之)
풍당(馮唐)
급암(汲黯)
정당시(鄭當時)
.권51 가추매노전(賈鄒枚路傳)
가산(賈山)
추양(鄒陽)
매승(枚乘)
노온서(路溫舒)
.권52 두전관한전(竇田灌韓傳)
두영(竇嬰)
전분(田蚡)
관부(灌夫)
한안국(韓安國)
.권53 경십삼왕전(景十三王傳)
임강민왕(臨江閔王)
하간헌왕(河間獻王)
임강애왕(臨江哀王)
노공왕(魯共王)
강도역왕(江都易王)
교서우왕(膠西于王)
조경숙왕(趙敬肅王)
중산정왕(中山靖王)
장사정왕(長沙定王)
광천혜왕(廣川惠王)
교동강왕(膠東康王)
청하애왕(淸河哀王)
상산헌왕(常山憲王)
.권54 이광소건전(李廣蘇建傳)
이광(李廣)
소건(蘇建)
.권55 위청곽거병전(衛靑霍去病傳)
위청(衛靑)
곽거병(霍去病)
.권56 동중서전(董仲舒傳)
동중서(董仲舒)
.권57상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
사마상여(司馬相如)
.권57하 사마상여전(司馬相如傳)
사마상여(司馬相如)
.권58 공손홍복식예관전(公孫弘卜式兒寬傳)
공손홍(公孫弘)
복식(卜式)예관(兒寬)
.권59 장탕전(張湯傳)
장탕(張湯)
.권60 두주전(杜周傳)
두주(杜周)
.권61 장건이광리전(張騫李廣利傳)
장건(張騫)
이광리(李廣利)
.권62 사마천전(司馬遷傳)
사마천(司馬遷)
.권63 무오자전(武五子傳)
여태자(戾太子)
제회왕(齊懷王)
연날왕(燕剌王)
광릉여왕(廣陵厲王)
창읍애왕(昌邑哀王)
.권64상 엄주오구주보서엄종왕가전(嚴朱吾丘主父徐嚴終王賈傳)
엄조(嚴助)
주매신(朱買臣)
오구수왕(吾丘壽王)
주보언(主父偃)
서악(徐樂)
.권64하 엄주오구주보서엄종왕가전(嚴朱吾丘主父徐嚴終王賈傳)
엄안(嚴安)
종군(終軍)
왕포(王褒)
가연지(賈捐之)
.권65 동방삭전(東方朔傳)
동방삭(東方朔)
.권66 공손유전왕양채진정전(公孫劉田王楊蔡陳鄭傳)
공손하(公孫賀)
유굴리(劉屈氂)
전천추(田千秋)
왕흔(王訢)
양창(楊敞)
채의(蔡義)
진만년(陳萬年)
정홍(鄭弘)
.권67 양호주매운전(楊胡朱梅云傳)
양왕손(楊王孫)
호건(胡建)
주운(朱雲)
매복(梅福)
운창(云敞)
.권68 곽광김일제전(霍光金日磾傳)
곽광(霍光)
김일제(金日磾)
.권69 조충국신경기전(趙充國辛慶忌傳)
조충국(趙充國)
신경기(辛慶忌)
.권70 부상정감진단전(傅常鄭甘陳段傳)
부개자(傅介子)
상혜(常惠)
정길(鄭吉)
감연수(甘延壽)
진탕(陳湯)
단회종(段會宗)
.권71 준소우설평팽전(雋疏于薛平彭傳)
준불의(雋不疑)
소광(疏廣)
우정국(于定國)
설광덕(薛廣德)
평당(平當)
팽선(彭宣)
.권72 왕공양공포전(王貢兩龔鮑傳)
왕길(王吉)
공우(貢禹)
공승(龔勝)
공사(龔舍)
포선(鮑宣)
.권73 위현전(韋賢傳)
위현(韋賢)
.권74 위상병길전(魏相丙吉傳)
위상(魏相)
병길(丙吉)
.권75 수양하후경익이전(眭兩夏侯京翼李傳)
수홍(眭弘)
하후시창(夏侯始昌)
하후승(夏侯勝)
경방(京房)
익봉(翼奉)
이심(李尋)
.권76 조윤한장양왕전(趙尹韓張兩王傳)
조광한(趙廣漢)
윤옹귀(尹翁歸)
한연수(韓延壽)
장창(張敞)
왕존(王尊)
왕장(王章)
.권77 갑제갈유정손무장하전(蓋諸葛劉鄭孫毋將何傳)
갑관요(蓋寬饒)
제갈풍(諸葛豊)
유보(劉輔)
정숭(鄭崇)
손보(孫寶)
무장륭(毋將隆)
하병(何並)
.권78 소망지전(蕭望之傳)
소망지(蕭望之)
.권79 풍봉세전(馮奉世傳)
풍봉세(馮奉世)
.권80 선원육왕전(宣元六王傳)
회양헌왕(淮陽憲王)
초효왕(楚孝王)
동평사왕(東平思王)
중산애왕(中山哀王)
정도공왕(定陶共王)
중산효왕(中山孝王)
.권81 광장공마전(匡張孔馬傳)
광형(匡衡)
장우(張禹)
공광(孔光)
마궁(馬宮)
.권82 왕상사단부희전(王商史丹傅喜傳)
왕상(王商)
사단(史丹)
부희(傅喜)
.권83 설선주박전(薛宣朱博傳)
설선(薛宣)
주박(朱博)
.권84 적방진전(翟方進傳)
적방진(翟方進)
.권85 곡영두업전(谷永杜鄴傳)
곡영(谷永)
두업(杜鄴)
.권86 하무왕가사단전(何武王嘉師丹傳)
하무(何武)
왕가(王嘉)
사단(師丹)
.권87상 양웅전(揚雄傳)
양웅(揚雄)
.권87하 양웅전(揚雄傳)
양웅(揚雄)
.권88 유림전(儒林傳)
정관(丁寬)
시수(施雠)
맹희(孟喜)
양구하(梁丘賀)
비직(費直)
복생(伏生)
구양생(歐陽生)
임존(林尊)
주감(周堪)
장산부(張山拊)
왕식(王式)
후창(后蒼)
호모생(胡母生)
엄팽조(嚴彭祖)
안안락(顔安樂)
방봉(房鳳)
.권89 순리전(循吏傳)
문옹(文翁)
오성(五成)
황패(黃霸)
주읍(朱邑)
공수(龔遂)
소신신(召信臣)
.권90 혹리전(酷吏傳)
질도(郅都)
영성(寧成)
조우(趙禹)
의종(義縱)
왕온서(王溫舒)
윤제(尹齊)
양복(楊僕)
감선(咸宣)
전광명(田廣明)
전연년(田延年)
엄연년(嚴延年)
윤상(尹賞)
.권91 화식전(貨殖傳)
백규(白圭)
정정(程鄭)
.권92 유협전(游俠傳)
주가(朱家)
전중(田仲)
극맹(劇孟)
곽해(郭解)
우장(萭章)
누호(樓護)
진준(陳遵)
원섭(原涉)
.권93 영행전(佞幸傳)
등통(鄧通)
조담(趙談)
한언(韓嫣)
이연년(李延年)
석현(石顯)
순우장(淳于長)
동현(董賢)
.권94상 흉노전(匈奴傳)
흉노(匈奴)
.권94하 흉노전(匈奴傳)
흉노(匈奴)
.권95 서남이양월조선전(西南夷兩粤朝鮮傳)
서남이(西南夷)
남월(南粤)
민월(閩粤)
동해국(東海國)
위씨조선(衛氏朝鮮)
.권96상 서역전(西域傳)
선선국(鄯善國)
저말국(且末國)
소완국(小宛國)
정절국(精絶國)
융로국(戎盧國)
서미국(抒彌國)
거륵국(渠勒國)
우전국(于闐國)
피산국(皮山國)
아타국(烏秅國)
서야국(西夜國)
포리국(蒲犁國)
의내국(依耐國)
무뢰국(無雷國)
난두국(難兜國)
계빈국(罽賓國)
아익산리국(烏弋山離國)
안식국(安息國)
대월지국(大月氏國)
강거국(康居國)
대완국(大宛國)
도괴국(桃槐國)
휴순국(休循國)
연독국(捐毒國)
사거국(莎車國)
소륵국(疏勒國)
울두국(尉頭國)
.권96하 서역전(西域傳)
오손국(烏孫國)
고묵국(姑墨國)
온숙국(溫宿國)
구자국(龜茲國)
울리국(尉犁國)
위수국(危須國)
언기국(焉耆國)
아탐자리국(烏貪訾離國)
비륙국(卑陸國)
비륙후국(卑陸後國)
욱립사국(郁立師國)
선환국(單桓國)
포류국(蒲類國)
포류후국(蒲類後國)
서저미국(西且彌國)
동저미국(東且彌國)
겁국(劫國)
호호국(狐胡國)
산국(山國)
차사전국(車師前國)
차사후국(車師後國)
차사도위국(車師都尉國)
차사후성장국(車師後城長國)
.권97상 외척전(外戚傳)
고조여황후(高祖呂皇后)
효혜장황후(孝惠張皇后)
고조박희(高祖薄姬)
효문두황후(孝文竇皇后)
효경박황후(孝景薄皇后)
효경왕황후(孝景王皇后)
효무진황후(孝武陳皇后)
효무위황후(孝武衛皇后)
효무이부인(孝武李夫人)
효무구익조첩여(孝武鉤弋趙婕妤)
효소상관황후(孝昭上官皇后)
위태자사양제(衛太子史良娣)
사황손왕부인(史皇孫王夫人)
효선허황후(孝宣許皇后)
효선곽황후(孝宣霍皇后)
효선왕황후(孝宣王皇后)
.권97하 외척전(外戚傳)
효원왕황후(孝元王皇后)
효성허황후(孝成許皇后)
효성반첩여(孝成班婕妤)
효성조황후(孝成趙皇后)
효원부소의(孝元傅昭儀)
정도정희(定陶丁姬)
효애부황후(孝哀傅皇后)
효원풍소의(孝元馮昭儀)
중산위희(中山衛姬)
효평왕황후(孝平王皇后)
.권98 원후전(元后傳)
효원황후(孝元皇后)
.권99상 왕망전(王莽傳)
왕망(王莽)
.권99중 왕망전(王莽傳)
왕망(王莽)
.권99하 왕망전(王莽傳)
왕망(王莽)
.권100상 서전(敍傳)
.권100하 서전(敍傳)
7. 참고사항
- 명언
. “태초(太初)(BC. 104~BC. 101) 이후는 《사기(史記)》에 빠지고 기록되지 않은 탓에 이전의 기록을 찾고 소문을 모아 《한서(漢書)》를 서술하니 고조(高祖)로부터 시작하여 평제(平帝), 왕망(王莽)의 찬탈에 이르기까지 12대 230년의 일을 기록하였다.[太初以後 闕而不錄 故探篹前記 綴輯所聞 以述漢書 起于高祖 終于孝平王莽之誅 十有二世 二百三十年] 〈서전(敍傳)〉
. “흐름을 타면 그대로 가고, 험난한 곳을 만나면 멈춰 선다.[乘流則逝 遇坎則止]” 〈가의전(賈誼傳)〉
. “〈임금이〉 언로를 열고 간언을 구할 때에 얼굴색을 온화하게 하고 받아들이더라도……선비들은 오히려 두려워서 감히 다 말하지 못합니다.……더구나 위엄으로 떨게 하고 권세로 억누른다면 비록 요(堯) 임금과 순(舜) 임금 같은 지혜와 맹분(孟賁)과 같은 용맹이 있더라도 꺾이지 않는 자가 있겠습니까.[開道而求諫 和顔色而受之……士猶恐懼而不敢自盡……震之以威 壓之以重 則雖有堯舜之智孟賁之勇 豈有不摧折者哉]” 〈가추매로전(賈鄒枚路傳)〉
. “서역(西域)은 무제(武帝) 때 처음으로 교류하였는데, 본래 36국이었으나 그 후 점차 나뉘어 50여 개국이 되었으며, 모두 흉노(匈奴)의 서쪽, 오손(烏孫)의 남쪽에 자리 잡고 있다.[西域以孝武時始通 本三十六國 其後稍分至五十餘 皆在匈奴之西烏孫之南]” 〈서역전(西域傳)〉
1) 색인어:반고(班固), 반소(班昭), 마속(馬續), 한서(漢書), 전한서(前漢書), 서한서(西漢書), 한서보주(漢書補注)
2) 참고문헌
• 漢書(班固 撰, 標點校勘本, 中華書局)
• 漢書補註(王先謙 補注, 王雲五 主編, 臺灣商務印書館)
• 漢書全譯(許嘉璐 主編, 二十四史全譯, 漢語大詞典出版社)
• 漢書辭典(倉修良 主編, 山東敎育出版社)
• 漢書人表考(梁玉繩 撰, 臺灣商務印書館)
• 漢書及補注綜合引得(洪業 等 編, 上海古籍出版社)
• 漢書 外國傳 譯註(김유철․하원수, 동북아역사재단)
• 漢書(小竹武夫 譯, ちくま文庫) _ 연구자: 서영수

크리스천라이프 편집부